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 Murasaki Shikibu]
978경 일본 교토[京都]~1014경 교토.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중기의 일본 궁녀.
일본의 가장 위대한 문학작품이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완전한 장편소설로 여겨지는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의 저자이다. 진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으며, 무라사키라는 별명은 그녀가 쓴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딴 것으로 짐작된다. 생애를 알려주는 주요자료로는 1007~10년까지 씌어진 일기가 있으며 이것은 그녀가 모셨던 황후인 조토몬인[上東門院]의 궁정생활을 매력적으로 엿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다.
일부 연구가들은 무라사키가 1001년(남편인 후지와라 노부타카[藤原宣孝]가 죽은 해)부터 1005년(그녀가 궁정에서 시녀로 일하기 시작한 해)까지 〈겐지모노가타리〉를 전부 썼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 길고 복잡한 소설을 쓰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세월이 걸려 1010년 무렵까지도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 14장은 다른 작가가 썼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무라사키 시키부의 일기는 애니세플리 오모리와 고치 도이가 번역한 〈고대 일본 궁녀들의 일기 Diaries of Court Ladies of Old Japan〉(1935)에 수록되어 있다.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 Genji monogatari]
11세기초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가 쓴 일본문학의 걸작( 무라사키 시키부, 모노가타리).
본격 장편소설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훌륭한 문학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겐지 모노가타리〉는 지극히 세련되고 우아한 귀족들로 이루어진 독특한 사회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소설의 대부분은 겐지왕자가 살면서 여러 여자들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힘차게 행동하는 장면은 없지만 인간의 감정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매우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으며, 이 세상의 덧없음이라는 불교적 깨달음이 반영되어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어두워진다. 아서 웨일리가 번역한 〈겐지의 이야기 The Tale of Genji〉(1935)는 영국 문학의 고전이다
후쿠자와 유키치[?壻귐, Fukuzawa Yukichi]
1835. 1. 10 일본 부젠[豊前]~1901. 2. 3 도쿄[東京].
일본 메이지 시대[明治時代]의 계몽사상가·교육자·출판가.
1868년 도쿠가와 씨[德川氏]의 지배를 종식시킨 메이지 유신(維新) 때 정부 요인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구사상의 도입을 위해 앞장섰고 그가 거듭 표현한 대로 일본의 '힘과 독립'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했다.
가난한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2세 때 아버지와 사별하는 등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러나 그는 나가사키[長崎]로 가 학교에서 소위 '란가쿠'[蘭學]라는 새로운 학문을 공부했다. 1854년 매슈 페리 제독에 의해 개항되기 전까지는 네덜란드인들이 일본에서 유일한 서양인들이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은 서양의 지식과 과학을 표현하는 용어로 '란가쿠'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1860년 함장의 종복으로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갔으며, 1862년 바쿠후[幕府] 사절단에 끼어 프랑스·영국·네덜란드·독일·러시아·포르투갈을 다녀왔다. 그는 돌아온 뒤 〈서양 사정 西洋事情〉을 썼는데, 이 책은 서양의 정치·경제·문화 제도를 명확하면서도 쉽게 묘사했기 때문에 곧 널리 읽혔다. 이후 서양문물을 도입하려는 노력을 계속했으며, 쉬운 문체를 개발해내고 대중강연과 대중토론을 처음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메이지 유신 직전의 몇 년 간 반(反)외세 감정이 팽배해 있었던 시절에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옹호했기 때문에 몇 차례 목숨을 위협당하기도 했다. 메이지 유신 후 일본정부가 외국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할 때, 정부로부터 계속 입각(入閣) 권유가 있었으나 독립된 지식인층 육성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이를 뿌리쳤다.
후쿠자와는 의회주의 정부, 보통 교육, 언어 개혁, 여성의 권리 등에 대해 그 필요성을 역설하는 책을 100여 권 이상 집필했다. 그의 저서 〈학문의 권장 學問のすすめ〉 첫머리에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아래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썼다. 1868년에는 게이오 의숙[慶應義塾]을 설립했다. 이 학교는 정부의 지배를 받지 않는 최초의 독립된 사립종합대학인 게이오대학으로 발전했으며 수많은 실업계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1882년에는 〈지지신포 時事新報〉를 발간했는데, 이 신문은 수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 중의 하나였으며, 당시의 수많은 자유주의적 정치가들과 언론인들에게 훈련의 장(場)이 되었다. 죽기 직전인 1901년에 쓴 〈자서전〉에서 후쿠자와는 메이지 유신으로 모든 봉건적 특권들을 폐지하고, 1894~95년의 청일전쟁으로 중국을 제압한 것(이로써 일본이 세계열강 대열에 끼는 계기가 되었음) 등은 자신의 삶을 완성시켰다고 단언했으며, 단 한 가지 아쉬움이라면 그의 많은 친구들이 이러한 훌륭한 변화를 보지 못하고 죽은 것이라고 썼다.
출처 : DAUM 검색 브리태니커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