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0대 왕(재위 1720∼1724). 숙종과 장희빈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재위 동안은 노론, 소론 당쟁의 절정기였습니다. 자식이 없고 병약하여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세제(영조)로 책봉하였고 노론의 압박으로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고
물러날 위기에 몰리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소론의 지지로 다시 친정했으며 김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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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노론 4대신 등 노론 세력을 숙청한 신임사화가 있었습니다.
경종이 즉위하던 시기 우리나라 정치상황은 아주 치열했었습니다.
당쟁에 이기면 살고, 자리 보존도 할 수 있었지만, 지면 죽고, 자신의 파가 영원히
득세하지 못하던 시기였지요. 우리나라 정치사를 통틀어 최고의 혼란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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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가 몇 년 사이 몇 번이나 바뀌기도 하던, 자고 일어났더니 집권세력이 바뀌었던
무서운 시기입니다. 환국정치는 경종의 아버지인 숙종 때부터 시작되는데 이때는
임금인 숙종이 환국을 주도했었기에 숙종의 말 한마디에 신하들 목숨이 왔다갔다
했습니다. 온갖 중상모략이 난무했고 살아남기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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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였었습니다. 그 비극은 숙종의 본비인 인현왕후가 세자를 낳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때문에 숙종은 세손을 낳을 수 있는 첩을 많이 두게됩니다.
그 틈을 타서 권력을 잡고자 인동 장씨라는 역관 집안에서 숙종의 마음에 쏙 들만한
미인을 궁궐에 후궁으로 들이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장옥정이고 경종의 친어머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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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궁의 신분으로는 조선사를 통틀어 최초로 중전의 자리에까지 오르게된 신데렐라라고
할 수 있지요. 집안이 역관이라는 기술직을 세습하는 중인 집안이라 세도는 없었지만
중국과의 외교와 무역을 독점해서 재력이 좋아서 돈으로 신분을 사고 싶어했던
집안입니다. 조선시대는 재력이 아무리 좋아도 양반이 되지 못하면 지배층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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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했기 때문에 온갖 비리를 써서 장옥정을 궁궐로 보냈었습니다.
장옥정이 입궁하던 시기 궁궐은 서인과 남인이 예송논쟁 이후로 치열한 격쟁에
치달아 있었고, 권력의 중심에 서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장옥정은 타고난 미색이었고, 애교도 잘부리고 말솜씨도 좋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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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종에 마음에 들어 후궁 중 최고인 '희빈'의 첩지를 받습니다.
장희빈이 어찌나 예뻤던지 조선의 정사인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이쁘다고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장희빈이 임신도 하고, 나중에는 아들도 낳는데
중전인 인현왕후는 아이도 못낳고, 또 천성이 매우 어질어서 장희빈을 헐뜯고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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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말도 못하는 성격이었다 합니다. 인현왕후의 세력은 서인이었고, 장희빈의
세력은 남인이었는데 장희빈이 아들을 낳고, 또 세자에까지 책봉이 되면서
세자책봉 문제에 시비가 붙었는데 인현왕후의 세력들이 이를 반대해 숙종이 화를
내며 서인을 축줄해버리고, 인현왕후도 폐비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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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는 남인이 득세하게되고, 장희빈은 중전이 되었는데 이때 장희빈이
서인들 중 노론의 영수이던 송시열을 사약을 내려 죽였지요. 장희빈을 중전에까지
만든건 장희빈의 의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세력을 굳건히 하고 싶은 남인들의
지원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고 축줄된 서인 중에서 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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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가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전개하게됩니다. 그것을 남인들이 진압했는데 숙종은
그것을 보고 마음이 바뀌어 반대로 인현왕후의 편을 들게 되지요.
그래서 남인들을 축출하고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하던 노론도 빼놓고 소론을
집권시킵니다. 이때 인현왕후의 무수리 출신인 최무수리가 인현왕후의 생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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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에 없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을 보고 숙종이 반해서 인현왕후를 복위시키는데
찬성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숙종이 최무수리를 보다보니 너무 이뻐서 후궁으로
삼았고 그 여자는 숙빈 최씨가 되었고, 숙빈도 아들을 낳았는데 그 사람이 연잉군이고
후에 영조가 됩니다. 집권한 소론은 장희빈을 존중하는 분위기여서 같은 서인끼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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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과 노론의 정쟁이 또 심화되었고, 그 와중에 장희빈이 중전에서 빈으로 강등되고
인현왕후는 다시 중전으로 복위했지만 건강이 나빠 곧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장희빈의 아들은 세자로 책봉이 되었죠. 장희빈은 인현왕후를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궁궐에서 내친것도 모자라 아예 없애고 싶어서 무당을 불러다가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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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것을 들키게 된 것이 무고의 옥이고, 이로 인해 소론이 축출당해
노론이 집권하게 되었으며 장희빈은 사약을 받지요. 경종은 어릴때부터 정말 불안한
상황에서 자랐고, 어머니가 죽는 것을 보아야 했기에 정신적 충격도 엄청났었습니다.
그리고 태어날때부터 몸도 아주 약했다 합니다. 그는 자신의 존재자체가 어머니의 출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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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었고, 남인이나 소론과 노론의 권력 다툼의 도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건강까지 나빠 재임기간 겨우 4년동안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일각에서는 암살되었다고 보기도 합니다만, 여튼 그것은 정사는 아닙니다.
경종이 건강이 안좋은 이유로 세자책봉 문제가 불거졌는데 그것 때문에 목호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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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변사건이 일어납니다. 남인 서자 출신인 목호룡이 소론에 가담해 노론이 경종을
암살하고 자신의 세력인 연잉군을 추대하려고 했다고 고변한 사건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 신축사화와 임인사화입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노론이 축출되고 다시 소론이 집권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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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소론의 과격파인 김일경 중심의 정권은 노론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벌여서
그의 재위 4년 동안은 당쟁(黨爭)의 절정기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정국의 혼란과
비정한 살육의 정치는 경종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자리에 누운지 단 몇
일 만에 급서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사망을 두고 세간에는 게장을 먹고 독살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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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무수한 추측이 난무하였는데 영조에 이르러 경종의 사망에 대한 해명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능은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의릉입니다.
2015.5.5.tue.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