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예초기를 들고 설치게 한 범인은 바로 꾼이었다.
동생은 일자날 밖에는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꾼이 작년부터 농사연구를 하면서 초경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초경날의 쓰임새에 대하여 동생에게 이야기했었다. 그 후 동생은 초경날로 옥수수대를 베어넘기더니 매니아가 되어 있었다.
“초경날로 베니 돌이 튀지 않아서 참 좋네.”
그 후로 밭둑을 깎았고 헛골을 깎을 때도 초경날을 사용했다.
“초경날 너무 좋아하지 말아. 돌은 튀지 않지만 조금만 베어도 날이 무뎌지기 때문에 일자날에 비하여 비싸잖아. 일자날은 오천원인데 초경날은 이만원이니 아껴써야 할 걸.”
그런데 이번에는 참깨를 초경날로 베겠다고 설쳐댔다.
“초경날을 쓰려면 뭘 더 부착해야겠다. 콩 벨 때 쓰는 갈퀴를 달지 그래? 참깨가 풀과 함께 넘어지니 일에 효율이 없어서 안되겠다.”
“그런 것도 있었어? 당장 사 와.”
“돈으로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어. 그건 보통 철물점에서 파는 게 아니고 특허업체에서 따로 사와야 한다고.”
꾼이 특허업체라고 했지만 특허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반화되지 않은 물건이고 보면 취급업체에 연락하여 구입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튼 동생과 함께 예초기로 참깨를 베는 수밖에 없었다.
찌이익 쏴아악 아아아앙
초경날은 울음소리가 특이했다. 가냘프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귀곡성이라고 할 만큼 꺄아아악 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등뒤에서는 예초기의 둔탁한 엔진소리와 초경날의 울음소리는 암수가 함께 내는 화음 같기도 했다. 구월 하순이면 아침저녁으로는 쌀랑해도 대낮에는 따끈했다. 등에서는 예초기 엔진이 내리누르고 초경날이 붙어있는 대를 들고 작업하는데 기진맥진했다.
“장서방이냐. 일만 시키게. 막걸리 한 잔 주어.”
예초기 일꾼들은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꾼은 밭둑에 기대어 누웠다. 가을 하늘은 유난히 파랬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대낮에는 건조한 것이 아무리 땀을 흘려도 금방 말랐다. 파란 하늘에 덩어리 구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토끼, 솜사탕 같은 모양에 손오공이 타고 다녔음직한 모양의 구름도 떠 있었다.
<저런 하늘에다 작은 집짓고 살면 기막히겠다.>
“뭐해. 좀 쉬었으니 일해야지.”
꾼은 눈을 번쩍 떴다. 시계를 보니 5분정도 잠들었던가 보았다.
몸이 개운했다. 아까는 피곤하더니 그렇게 조금 눈을 붙였는데도 피로가 풀렸다는 게 신기했고 그게 꾼의 장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기진맥진 해지면 일을 아주 놓아 버렸으나 꾼은 잠시의 휴식시간이 오면 누워 온 몸에 힘을 빼고는 하늘을 보곤 했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깐의 잠이 들거나 잠이 들지 않아도 기운이 충전되곤 했다.
점심먹고 나니 한쪽으로 세우기 작업을 시작했다.
참깨 벤 고랑의 비닐을 대여섯 이랑을 벗겼다. 그리고는 트랙터 로타리날을 돌리니 평탄작업이 되었다. 넓은 비닐을 펴고 고추말뚝을 박았다. 이어서 노끈을 팽팽하게 매었다. 양쪽으로 참깻단을 세우는 작업을 했다.
<역시 동생은 농사 프로다.>
아무렴 농사로 밥먹고 사는 녀석이 프로겠지. 꾼은 안해도 될 감탄을 곧잘 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른 농부들도 지혜롭게 잘할텐데. 꾼은 제 동생 하는 일이 제일 멋져 보이는 모양이다. 해질 무렵까지 그들이 작업한 양은 삼천평에서 조금 빠지는 것 같았다. 할머니 일꾼들이지만 작업속도는 썩 좋아보였다.
“형, 다음주에는 추석연휴잖아. 좀 일찍 와서 율무베는 거 도와주어.”
“벌써 추석 때가 되었네. 어디 내 밭에 쥐눈이콩 수확할 때가 되었는지 봐야겠는걸.”
“쥐눈이콩은 우리가 심은 메주콩 수확시기보다 훨씬 늦어. 걱정말고 일이나 도와줘.”
“그러지. 보자보자 하니까 네 형을 머슴부리듯 하는구나.”
언제나 그렇지만 꾼이 농사짓기 전에도 동생네 일을 종종 도왔었다. 어느 시기에 어떤 작업을 하는지 대략 감을 잡을 정도였다.
“아구구, 힘들어 못 일어나겠다.”
간밤에 두들겨 맞은 모양으로 온몸이 축 늘어져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중독증, 농사중독증이란 게 이런 것이었을까? 꾼은 직장에 출근하고도 피곤에 시달렸다. 다리도 아팠지만 두 팔에 힘이 없는 것처럼 노곤했다. 하긴 아침부터 해질 녘까지 밭에서 예초기들고 헤맸으니 무리가 아니었다. 일생 처음 해보는 중노동이었다.
“실장, 오늘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네. 여기 구론산 한병 마시게.”
강부장이 건네 준 구론산을 꿀꺽꿀꺽 마셨다.
“아유 힘드네요. 농사일이 그렇게 힘든 줄 몰랐어요.”
“실장이 너무 열심히 농사일 하는데 그게 좀 남는 장사일까? 내 땅이 삼천평 있는데 밭 가는 것부터 수확까지 남의 품으로 전부 해결하면 남는 게 있을까?
“글쎄요. 한번 계산해 볼게요.”
꾼은 이상한 수학문제를 강부장으로부터 넘겨받았다. 농사를 내손하나 까닥하지 않고 남의 품을 사는 것만으로 해결했을 때 얼마나 남을까?
<그깟게 무슨 수학문제야?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밖에 없으니 산수문제지, 무슨 수학문제는 얼어죽을...>
“여보 굴러다니는 계산기 어디 있지?”
“갑자기 계산기는 왜 찾아요? 컴퓨터 좋아하는 양반이 하찮은 계산기는 뭐에 쓰려구요?”
집에 돌아온 꾼의 산수문제풀이 기대되시죠?
30부에 계속합니다.
첫댓글 계산 해보나마나 마이너스
ㅋㅋ 어케 그걸~~~ 작가보다 앞서 가시면 강퇴감인 거 아시죵 ㅋㅋ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