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0. 10. 7.~8.(수,목) - 음력(8. 21.~22.), 일출 06:27~일몰 18:04
●산행지: 진양기맥 3구간 졸업(쇠목재-남강댐)
●산행코스: 쇠목재-둠배기먼당-자굴산-써래봉-좌골티재-머리재/대의고개-망룡산-천황산-용당재-어옥고개/신촌재-부용사고개-먹고개/오방고개-동향고개/서낭재-굴다리-내리실고개-월명암갈림길/엄나무고개-집현산동봉(5봉)/ 장군봉-장대분맥갈림봉-부봉/ 진주집현산(4봉)-오봉삼거리(3봉)-무너미재-삼면봉/칠평산(2봉)-산청 집현산(1봉) 왕복-청현재-광제산-약샘삼거리-광제봉봉수대-광제재/덕곡고개-덕현치-놋종기먼당-용산치-서현고개-장아산-X자소나무-대통고속도로/판문고개-양마산-전망대-우약정-충혼탑-남강댐
●먹거리: 생수1.5리터, 약식2, 제과빵6, 초에너지바3, 사탕25, 토마토케찹5, 게비스콘2, 홀스1
●준비물: 우모복, 바람막이, 스틱, 충전지2, 충전짹, 헤드랜턴, 구급약, 경광점멸등, 수건, 손수건2, 휴지, 물티슈, 팔토시2, 우의, 부직반창고, 마스크3, 안대, 귀마개, 텐트, 7부매트리스, 은박매트, 예비양말, 의류(긴팔, 반팔)
●거리: 약 54.81km
●소요시간: 35.08h
●누구랑: 나홀로
●경비: 고속버스36,900, 저녁21,000, 여관25,000, 편의점9,450, 택시16,700, 칡즙6,000, 뒤풀33,000, 고속버스32,600
●날씨: 9~23, 대체로 맑음, 시원한 바람
●산행경과:
- 05:50 : 쇠목재/ 사각정쉼터, 식수, 화장실
- 05:50 : 자굴산(897m)/ 삼면봉
- 06:07 : 둠배기먼당
- 06:26 : 자굴산
- 07:12 : 좌골티재/ 팔각정
- 09:00~09:10 : 머리재/ 대의고개, 장어집, 산중모텔
- 09:47 : 망룡산(441.6m)/ 사각정자
- 10:36 : 천황산(341m)
- 11:24 : 용당재
- 12:46 : 어욱고개/신촌재
- 13:26 : 부용사고개
- 13:46 : 막고개/ 만복사
- 16:12 : 210m봉/ 집현면
- 16:34~16:50 : 내리실고개, 식수보충
- 17:51 : 집현산동봉(549m)/ 장군봉
- 18:?? : 장대분맥갈림봉
- 18:16~18:30 : 부봉(548m)/ 팔각정, 산불초소
- 18:37 : 오봉삼거리/ 사각정자
- 19:02~06:11 : 칠평산(565m)/ 삼면봉
- 19:15~06:00 : 산청 집현산(577m)/ 전망대
- 06:46 : 청현재
- 07:02 : 326.9m봉
- 07:12 : 사각정
- 08:07 : 광제산(347m)
- 08:10~08:36 : 약샘
- 08:52~09:00 : 광제봉 봉수대, 산불초소
- 09:27 : 광제재 /덕곡고개
- 09:42 : 덕곡마을갈림길/ 정자
- 09:48 : 덕현치
- 09:59 : 299.5m봉/ 스파랜드갈림길
- 10:11 : 임도
- 10:52 : 놋종기먼당/ 돌탑
- 11:24~11:44 : 용산치(칡즙, 커피, 구운계란)
- 12:21 : 서현치
- 13:10 : 장아산(200m)
- 14:10 : X자 소나무
- 14:20 : 판문고개
- 15:35 : 양마산(171m)
- 15:42 : 팔각정
- 16:26 : 우약정
- 16:40 : 충혼탑/ 버스 종점
- 16:52 : 종착점(남강댐 버스 정류소)
- - - - - - - - - - - - - - - - - - - - - - -
* 금북기맥: 129.4km (백월산~안흥진)
* 금남기맥: 107.6km (싸리봉~구드레)
* 한강기맥: 167km (두로봉~두물머리)
* 진양기맥: 156.6km (남덕유산~진양호 남강댐)
* 영산기맥: 159.5km (새재봉~유달산 다순금)
* 땅끝기맥: 123km (바람봉~땅끝마을 토말)
- 두심삼거리~ 남강댐 91.8km
- 쇠목재~내리실고개 23.8km
-. 쇠목재~대의고개/머리재 7.49km
- 대의고개/머리재~용산치 35.1km
-. 대의고개/머리재~내리실고개 16.4km
-. 내리실고개~용산치 18.7km
-. 대의고개~용당재 6.6km
-. 용당재~내리실재 9.8km
-. 막고개~내리실재 4.4km
- 내리실재~진양호 29.37km
-. 청현재~남강댐 20.8km 8시간
-. 내리실재~용산치 18.7km
-. 내리실재~청현재 8.05km
-. 용산치~남강댐 10.89km
- - - - - - - - - - - - - - - - - - - - - - -
* 사전정보(식수보충지)
- 합천휴랜드: 055-934-0097, 찜질방 안함
- 의령유황사우나: 055-574-1600, 찜질방 안함
- 쇠목재: 식수, 사각정, 간이화장실
- 자굴산: 금지샘, 절터샘(200m, 식수)
- 좌골티재: 팔각정
- 대의고개: 쉼터, 화장실, 장어집: (11~21시, 010-9799-2442), 아침 돌솥 사전 예약
- 삼가택시: 055-933-5637, 055-932-4001, 삼가면~쇠목재18,900
- 의령택시: 055-572-2323, 의령읍~쇠목재16,700
- 대의택시: 055-572-2400, 대의면~쇠목재17,000
- 대의고개: 대의고개, 화장실, 쉼터
- 망룡산 내림: 배과수원, 사각정자
- 막고개: 인가, 절(만복사), 식수
- 내리실고개: 마을회관 소교량 수도시설
- 월명암: 0.1km, 식수보충, 비구니절
- 진주 집현산/ 부봉: 정상 아래 팔각정, 산불감시초소
- 오봉삼거리: 사각정자
- 산청 집현산: 칠평산삼면봉에서 왕복1~1.2km
- 도치샘: 칠평산~산청 집현산 사이(200m 아래)
- 청현재 이후 임도길 옆 280m봉 정자
- 약샘 삼거리: 광제산 봉수대 직전(0.2km)
- 광제산 봉수대: 산불감시초소 쪽으로 가면 안되고, 우틀하여 명석면 방면으로 기맥길
- 덕곡마을갈림길 정자
- 용산치/오미치: 간이매점(010-2592-1005, 칡즙, 구운 계란), 수도시설, 우측 갓길 지하도
- 양마산: 팔각정
- 진양호공원 입구: 시내버스 종점(120번, 250번)
* 서울에서 쇠목재 가는길
- 서울남부터미널~합천터미널, 07:50, 15:30, 4h, 38,900~42,100
- 동서울~의령터미널 13, 16:30, 4.50h, 33,200~36,900
- 합천~부산(삼가) 07시, 0.20h, 2,400
- 삼가~쇠목재 택시18,900
- 대의~쇠목재 택시17,000
- 의령~대의 버스17, 17:30, 18:20, 20, 16km
* 서울에서 머리재 가는 길
- 합천터미널~삼가터미널에서 신전리로 택시
- 의령터미널~대의면에서 대사마을로 택시
* 대의고개/머리재~서울 올라오는 길
- 다사터널위 대의고개~삼가터미널, 택시15,000
- 합천시외버스터미널~남서울, 13, 15:30, 17시, 42,100, 4.20h
- 의령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 10:10, 15:30, 055-573-2112
* 진양호에서 진주시내 나가는 길
- 진양호~시내: 120번, 5~10분 간격
- 진양호~고속터미널: 250번, 0.25h
* 진주에서 서울 올라오는 길
- 진주고속터미널~동서울: 18:40, 3.30h, 32,600
- 진주고속터미널~강남터미널:
- 진주시외버스터미널~서울 남부: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진양 졸업하러 내려왔습니다.
당초 합천 휴랜든 찜질방을 이용할 계획이었으나 코비나로 인해 찜질방을 운영하지 않아, 기왕 내려가서 잘거면 한번도 안 가본 의령으로 가기로 급히 계획을 바꿨습니다. 쇠목재에서 해뜨기 전에 출발해 자굴산에서 일출을 감상했네요. 동서울에서 의령행 버스가 현풍과 신반 그리고 의령군을 휘저으며 망우당 곽재우장군 생가도 지나더군요. 일찍 출발한 덕에 집현산 동봉에서 일몰도 감상하고, 집현산 정상 데크에서 비박하며 일출도 감상했습니다. 18,000원 주고 구입한 1인용텐트에 얇은 우모복을 입고, 은박매트를 덮고 잤지만 춥지않았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산신령이 거처하는 산이라 해도 일곱 평이면 족하다 하여 집현산을 칠평산이라고도 한답니다.
진양기맥을 3구간으로 졸업하며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이른바 물줄기파의 허실에 대하여 명쾌하게 정리가 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산과계곡대선배님처럼 강줄기를 따라가면 당연히 합수점에 이르는 것을 굳이 산줄기를 억지로 합수점에 끌어당기는 산자분수령의 확장오류를 가지고 이제까지 산꾼들에게 혼란을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춘천지맥의 마지막도, 앵자지맥의 마지막도 산줄기가 주맥이고 물줄기는 추가적인 요소입니다. 합수점을 찾아 억지로 산줄기를 변경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진양기맥도 이와 마찬가지로 주맥은 진양호이고, 물줄기의 합수점은 따로 우봉지맥으로 마무리 하면 되는 것이지요.
목디스크로 인해 2구간까지만 해도 왼손으로 스틱 두개를 들지 못했는데 많이 나아졌습니다. 진양기맥 마지막 3구간은 시간에 여유가 있어 등로를 가로막는 나무도 치우고, 갈림길에선 바닥에 떨어져 있는 띠지도 다시 걸어두고, 띠지가 가려져있는 갈림길은 전지작업도 하며 여유있게 진행했습니다. 한편으론 얼굴에 달라붙는 거미줄로 세수를 하며, 미친년 머리 끄댕이 껌붙은 맹키로 머리에 붙은 거미줄을 떼어내느라 애를 먹은 진양 이었습니다.^^ 다음 기맥은 단풍철을 맞아 내장산국립공원 순창새재에서 입암산으로 출발하는 영산기맥으로 향합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산청군
경상남도 서북부에 있는 군으로 국립공원, 지리산과 황매산 등 높은 산으로 이루어진 산간지역으로 경작지는 부족하나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산청군은 조선시대의 산청현과 단성현 지역이 합하여 이루어진 군이다. 옛 산청현은 본래 신라의 지품천현(知品川縣)으로서 757년(경덕왕 16)에 산음현으로 이름이 바뀌어 궐성군(闕城郡:단성)의 영현이 되었다. 고려시대인 1018년(현종 9)에 합주(陜州:합천)의 속현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에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인 1413년에 산음현이 되었으며, 1767년(영조 43)에 고을 이름을 산청으로 고쳐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별호는 산양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 진주부 산청군, 1896년에 경상남도 산청군이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에 의해 진주의 두입지였던 파지산면·백곡면·금만면·사월면·삼장면·시천면이 산청에 편입되어 면적이 크게 넓어졌다. 1914년의 군면 폐합 때 생림면·초곡면·고읍면·모호면을 생초면으로, 서하면·서상면·금석면을 금서면으로, 군내면·월동면을 군월면으로, 지곡면·수곡면을 지수면으로, 차현면·황산면을 차황면으로, 오곡면·부곡면을 오부면으로, 삼장면과 시천면은 그대로 면의 이름을 유지했다. 이때 단성군(丹城郡)을 폐지하여 단성의 현내면·원당면과 산청군의 사월면·파지면·금만면·백곡면을 합하여 단성면으로, 단성의 오동면·도산면을 도산면으로, 신등면·법물면을 신등면으로 통합하고, 단성의 생비량면과 북동면은 그대로 합속함으로써 산청군의 영역이 더욱 확장되었다. 1918년 군월면·지수면을 합하여 산청면으로, 1942년 북동면을 신안면으로 개칭하고, 1979년에는 산청면이 읍으로 승격했다. 군의 서쪽에 솟은 천왕봉(1,915m)을 기점으로 하는 지리산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북쪽에는 백운산의 지봉인 황매산(1,108m)·송의산(539m)이 있다. 군의 중앙에는 웅석봉(1,099m)과 둔철산(812m)이 솟아 있다. 이들 산 사이를 남강의 지류가 흐르면서 계곡 양안에 좁은 평야를 이룬다. 경호강이 군의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류하며, 지리산에서 발원하는 덕천강과 황매산에서 발원하는 양천강·사정천이 합류하여 남강으로 흘러든다. 경호강을 끼고 진주-함양을 연결하는 국도와 대전-진주간 고속도로(공사중)가 지나며, 의령에서 시천면 지리산까지 연결되는 국도와 신안면에서 교차한다. 지리산국립공원이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 지역을 찾고 있다. 시천면 중산리를 경유하는 지리산 등반 코스는 하동군 하동읍·화계면과 함양군 마천면을 각각 경유하는 코스와 함께 지리산 정상 등반의 3대 코스로 알려져 있다.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중산리계곡에는 법천폭포·망바위·문창대·법계사 등 많은 명소가 있다.
* 진주시
경상남도 남서부에 있는 시로 1995년 진양군과 진주시가 통합되어 도농통합시를 이루었다. 역사·문화·예술·교육의 도시이자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거점 도시이며, 자연적·역사적 관광자원이 풍부한 관광도시이다. 행정구역은 문산읍·내동면·정촌면·금곡면·진성면·일반성면·이반성면·사봉면·지수면·대곡면·금산면·집현면·미천면·명석면·대평면·수곡면·천전동·성북동·중앙동·상봉동·상대1동·상대2동·하대1동·하대2동·상평동·초장동·평거동·신안동·이현동·판문동·가호동·충무공동 등 1개읍 15개면 15개동이 있다. 남강 유역의 넓은 충적지에 논 농사가 이루어지며, 주로 쌀과 감자가 생산된다. 진주성을 비롯하여 촉석루·창렬사·호국사 등의 문화유적이 많다. 진양호 일대는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삼한시대에 소국인 고순시국이 이곳에 비정되고 있으며, 이어 가야의 영역에 포함되었다가 신라의 세력권에 들어 거타주가 설치되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685년(신문왕 5)에 청주로 고치고 총관을 두었다. 757년(경덕왕 16)에는 9주의 하나인 강주도독부가 되어 1주, 11군, 31현을 관할하는 대읍이 되었다가 혜공왕 때 다시 청주로 바뀌었다. 고려초에 강주(〈대동지지〉에는 진주라고 기록함)로 개칭했으며,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을 둘 때 진주목이 되었다. 995년에는 정해군이라 하고 절도사를 두어 산남도에 속하게 했다. 1012년(현종 3)에 안무사로 고쳤다가 1018년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 이때 강성군(단성)·하동군을 속군으로, 사주현·악양현·영선현·진해현·곤명현·반성현·의령현을 속현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1310년(충선왕 2)에 진주로 강등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다시 진주목으로 회복되었다. 조선초인 1392년(태조 1)에 진양대도호부가 되었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에서 일본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진주가 정치적·경제적·행정적인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요지임이 확인됨에 따라 1603년(선조 36)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영이 창원에서 진주로 옮겨왔다. 진주의 별호는 진강·청주·진산이었다. 1895년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진주부 진주군, 1896년에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의 진주군이 되어 경상남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1906년 월경지 정리 때 파지산면 등 6개면을 산청군에, 북평면 등 7개면을 하동군에, 문선면 등 5개면을 고성군에, 양전면을 진해군에, 상봉면 등 3개면을 함안군에, 적량면 등 2개면을 남해군에, 삼천포를 사천에 이관함으로써 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 1925년 이곳에 있던 경상남도 도청이 부산으로 이전되고 부산의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진주는 예전의 지위와 위세를 잃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경상남도 서부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계속하면서 1931년에 진주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39년에 도동면·거평면을 편입하여 진주읍이 부로 승격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다. 1949년에 부를 시로 고침에 따라 진주시가 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던 진양군과 중심도시기능을 담당해왔던 진주시가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형태의 도농통합시인 진주시가 되었다. 백두대간의 진양기맥이 시의 북부와 서부에 뻗어 있고 동남부에는 낙남정맥이 뻗어 있으나 험준한 산지는 없고 대부분 5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북·서부에는 천황산(364m)·망룡산(望龍山 : 442m)·검무봉(劍舞峰 : 280m) 등이, 낙남정맥이 뻗어 있는 동남부에는 오봉산(五峰山 : 525m)·영봉산(靈鳳山 : 395m)·보잠산(寶岑山 : 439m)·봉대산(鳳臺山 : 409m) 등이 솟아 시계를 이루고 있다. 시의 중앙에는 월아산(月牙山 : 471m)·장군대산(將軍臺山 : 482m) 등이 있다. 주요하천으로는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이 진양호를 이룬 뒤 시의 중앙을 서쪽에서 북동쪽으로 곡류하여 낙동강에 유입되며, 덕천강이 하동군과의 경계를 따라 남동류하여 진양호로 유입된다. 그밖에 나불천·영천강·정수천·향양천 등이 남강으로 유입되며, 남강 유역에는 고도 20~30m에 대상의 범람원으로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분포한다. 남서부에는 홍수조절과 관개용수 공급 등을 위해 1970년대에 건설된 남강댐과 인공호수인 진양호가 있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쇠목재(725m) → (1.2km) → 자굴산(自堀山/897m) → (2.0km) → 좟골티재(455m) → (4.1km) → 머리재(260m)
머리재(미리재/210m) → (1.7km) → 망룡산(望龍山/442m) → (2.0km) → 천황산(天皇山/341m) → (1.2km) → 방갓산(381m) → (1.7km) → 용담재(250m) → (5.4km) → 먹고개(1007지방도로) → (3.3km) → 서낭재(130m) → (1.1km) → 내리실고개(33번국도/120m) → (2.6km) → 임도(林道) → (4.6km) → 집현산(集賢山/572m) → (1.7km) → 청현재(晴峴峙/千古峴) → (3.2km) → 광제봉(廣濟峰/347m) → (0.8km) → 봉화대(烽火臺/420m) → (5.8km) → 용산치(龍山峙/3번국도/76.6m)
광제봉(廣濟峰/347m) → (0.8km) → 봉화대(烽火臺/420m) → (5.8km) → 용산치(龍山峙/3번국도/76.6m) → (3.6km) → 장아산(200m) → (1.8km) →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정자) → (3.2km) → 양마산(팔각정/157m) → (1.6km) → 남강댐(南江dam)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전날 의령읍에 막차로 도착하니 밥먹을 데가 없네요. 전통시장을 지나 군청앞에 돼지사랑국밥집 한 군데가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침은 안 한다기에 편의점에서 도시락 까먹고 택시로~
♤ 쇠목재(725m)/ 식수, 화장실
생태이동로가 있는데 사람은 통과를 안 시킨다. 화장실과 쉼터가 있고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버스를 세워두고 하던 간이매점은 사라졌다. 자굴산은 궁유의 한우산과 가례의 응봉산, 용덕의 신덕산과 이어져 하나의 산맥을 이루고 있다. 의령을 감싸고 있는 이 거대한 산악 전체의 형상이 마치 황소를 닮았다고 한다. 자굴산의 우람한 덩치가 황소의 머리, 동남으로 길게 뻗은 한우산과 응봉산의 산줄기가 몸통이며 신덕산이 엉덩이 부분에 해당된다. 자굴산과 한우산을 연결하며 이 고개의 잘록한 모양새가 마치 소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쇠목재로 불리고 있다. 쇠목재 아래 갑을마을의 옛 촌명은 '쇠목', '쇠목촌' 이었다.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모의마을에서 가례면 갑을리 갑을마을을 이어주며 옛 사람들의 왕래가 잦았던 고갯길에 지금은 1013번 지방도가 지난다.
쇠목재가 동쪽으로 의령군 의령읍으로 나가는 가례면에서 서쪽으로 합천 삼가로 나가는 대의면 신전리로 넘어다니는 고개입니다. 기맥의 서쪽에 해당하는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의 경제생활 반경은 합천의 남쪽 삼가면에 대고 있습니다.
♤ 대의면
경남 의령군 대의면은 조선시대 대곡과 모아로 나누어진 방리(지금의 읍면에 해당되는 행정구역)로서 대곡은 원래 한실로 모아는 모오골로 불러온 지역이었고 한자 표기를 하면서 한실은 대곡으로 모오는 모아로 적게 되었는데 모아란 말이 창(독음)이나 훈(뜻)으로도 좋지않다 해서 모의로 고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지역도 고종 43년(1906년 광무10년) 칙령제49호 지방구역 정리건에 따라서 대곡과 모의가 독립된 행정구역이었으나 그 뒤 일제강점기인 1913년(대정 2년) 총독부령 제111호, 도의 관할구역과 부군의 명칭 및 위치관할구역조정에 따라서 두 지역이 통합되고 명칭도 대곡의 대자와 모의의 의자를 따서 대의로 정하게 되었다. 그 뒤 1989년 1월 1일부로 합천군 삼가면 외토지역 일부(25가구)가 대의면 관할구역에 편입되었는데, 대의면은 북으로 합천과 서쪽으로는 산청과 그리고 남동으로는 진주지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계단으로 둠배기먼당으로 올라가다 먼저 팔각정을 하나 만나고...
둠배기먼당에 있는 쉼터입니다. 겨울에는 바람막도 설치해 놓더군요.
둠배기먼당이라.... 먼당은 만댕이/먼댕이란 뜻의 사투리로 봉우리를 의미한다고도 하고요.
넓은 마당을 갖추고 높운 곳에 위치한 장소를 만댕이라 하는것 같습니다.
자굴산 올라가며 바라본 한우산입니다. 중앙 맨 뒤에 배경은 황매산입니다.
♤ 둠배기먼당
저번 구간 산성산에서 한우산으로 큰재만당을 넘어왔습니다. 그리고 또 진양호가 보이는 지점에 놋종기먼당도 있네요. 먼당이란 높은 곳에 위치한 평평한 부지에 전망이 좋은 곳입니다.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마을입니다. 조은산님산행기를 보니 세개의 마을로 이루어졌다고 하시더군요.
자굴산에서 동쪽 멀리 해가 뜨는 방향은 비슬지맥쪽의 화왕산이네요.
마산쪽이니깐... 저 멀리로는 여항산, 광려산, 무학산이 있답니다.
자굴산에서 지리산, 황매산 뒤에 덕유산, 그리고 가야산까지 조망이 막힘이 없네요.
대삼각점입니다. 자굴산이 의령의 진산인데 대삼각점 도엽명은 합천 삼가로 되어 있습니다.^^
자굴산의 '자(闍)'는 성문의 망대란 뜻이고, '굴(崛)'은 우뚝 솟아 높다는 뜻이라고 하니 우뚝하게 솟구친 망대에서의 조망은 두 말 할 필요가 없겠죠.
♤ 자굴산(闍崛山, 897m)/ 삼면봉(대의면, 가례면→칠곡면)/ 의령의 진산/ 1등삼각점(삼가11)
의령의 자굴산(闍崛山)은 고을의 주산이요. 진산이면서 정기 맑은 영산이자 이름난 명산이다. 홑산이지만 부드러운 산세에 기암괴석이 많은,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의 아름다운 산이다. 30만내외 군민의 올곧은 기질과 늠름한 기상에 넉넉한 심성 등은 모두 이 산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머니의 품같이 느껴지는 산이라서 인심 좋고 살기 좋은 고장일 뿐 아니라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인물이 많이 배출된 전통 반향(班鄕)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산이름 한자의 “자(闍)”는 성문의 망대[성대(城臺)]의 뜻이고 “굴(崛)”은 우뚝 솟아 높다는 뜻이다. 자굴산(自堀山/897m)은 의령군의 진산으로 북서쪽 비탈은 경사가 급해 합천군 쪽에서 보면 마치 병풍을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의령군 쪽에서 보면 산세가 완만하다. 좌굴산이라고도 한다. 산중턱에는 옛날 신선이 놀고 갔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강선암과 갑을사지(甲乙寺址)·보리사지·양천사지 등의 사찰 터가 남아 있다.
강선암 옆에 깍아지른 듯한 절벽 밑에 약 3m 깊이의 동굴과 천연수가 고여있는 금지샘이라는 천연동굴샘이 있다. 금지샘에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가 이곳에 침입하여 말에게 물을 먹이려고 하자 물이 갑자기 말라버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또 조선시대 남명 조식이 그 경관에 홀려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노닐었다는 명경대도 있다. 등산로는 의령군 가례면 갑을리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대의면 신전리에서 시작하는 코스, 칠곡면 내조리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있다. 금지샘으로 오르는 코스에는 급경사지 암봉 사이로 밧줄이 설치된 길이 있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팔방으로 트인 전망과 함께 지리산이 아련하며 천왕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또 쇠말(철마) 댓 마리를 모셨던 것을 본 사람이 있고 그 말머리가 향하는 쪽의 마을에 재앙이 온다는 미신이 있어 기우제를 지내고나면 서로 몰래 늦게 남았다가 쇠말의 머리를 딴 곳으로 돌려놓느라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자굴산은 양의 숫산인 합천의 황매산에 대응하는 음의 암산이라 한다. 그 때문에 양의 상징인 말을 정상에 모심으로써 음기와 조화를 이루게 했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재미있는 사실을 신선대 옆의 금지샘에서도 찾을 수 있다. 금지샘은 자굴산의 무속신앙 일번지로 양바위 사이 굴이 음핵까지 갖춘 틀리없는 여자의 음부를 닮았다. 명주실 세 꾸리가 풀려 내려간 깊이라느니 여기에 불을 피웠더니 연기가 남강의 솥바위로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이 샘은 지리산의 천왕봉을 곧바로 올려다보는 자리에 있다. 기묘한 것은 금지샘 건너 독립투사 전상무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암벽 아래 넓은 풀밭 평지 가운데에 일부러 심은 듯한 매우 오래된 큰 참나무 한 그루가 서있어서 마치 치마폭처럼 부끄러운 금지샘을 가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천왕봉에서 금지샘을 직접 들여다 볼 수는 없게 되어 있다. 더구나 건너에는 남자의 양물을 상징하는 송곳바위도 있어서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절골 막바지의 써래봉 바람덤 아래의 절터 일대의 짙은 숲과 그 사이에 솟아 있는 바위봉우리들과 신선대와 금지샘 일대의 오묘한 경관과 시원한 조망을 가장 좋아한다. 베틀바위에서 건너다보는 홑할미너덜과 절터 신선대 일대의 조망도 일품이다. 무당들의 기도터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강선암도 그 크기와 아래로 패여 들어간 기이한 모양으로 사람들이 잘 찾는 곳이라 한다. 특히 비가 올 때는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수막을 이루어 그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신기하다.
좌굴티재로 내려서니 명경대와 관련하여 남명숲길을 만들었습니다. 조만간 야자매트도 깔려는듯...
청학동 밑에 회남재도 있는데,,, 하동, 산청, 함안, 합천, 진주, 의령이 남명 조식선생의 주활동반경(operating area)이었나 봅니다.
자굴산입구 자굴티재 정자입니다.
2구간을 여기까지 내려와서 끊었어야 했는데 구불구불 산꼭대기 쇠목재에서 끊었네요. ㅋ~
달성서가 묘역을 지나 만나는 팔각정 앞 2차선 도로가 좌골티재이다. 자굴산으로 오르는 재로 자굴산을 좌굴산이라고도 한다 하니....
♤ 좌골티재(455m)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에서 칠곡면 내조리를 잇는 1013번 지방도가 지난다. 팔각정과 자굴산 입구를 알리는 표지석이 있고 건너편 절개지 철망에 준희님은 좌골티재 안내표지가 있다. 좌골티재 물탱크 철망 옆에서 약간 빡시게 30분 500.9m봉으로 오른다.
머리재로 내려서는 427m봉입니다. 여기까지 오지 않고 산북리 죽공마을로 내려서서 도로따라 대의고개로 올라가던데 낮이니깐 엉터리 트랙도 수정하며, 다른 트랙으로 갈아도 타며 원기맥길에 충실하게 찾아갑니다.
♤ 산곡마을
산북리는 경남 의령군 칠곡면에 있는 마을로서 망룡산과 자굴산 자락으로 이루어진 침식분지 안에 위치하며 의룡천과 내조천 사이에 있는데 대부분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골짜기 북쪽이 되므로 산북 또는 산북동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운곡, 구기, 양촌, 죽공 등이 있는데 운곡은 죽공 동쪽에 있는 마을로 구름이 많이 낀다하여 구름말 또는 굼말, 운곡이라 하고 구기는 죽공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오래 된 터라 하여 묵은터 또는 구기라 한다. 양촌은 죽공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에 위치한다 하여 양지촌 또는 양촌이라 하고 죽공은 산북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대갱이라고도 하였다.
장어집에서 운영하는 대형버스도 세워져 있네요.
주인이 가게에 딸린 건물에서 거주한다며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하면 아침밥도 돌솥이 가능하고 다소 융통성이 있답니다.
진양기맥 진행하시는 분들께는 요기를 챙기고 갈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 될것 같습니다.^^
♤ 머리재(260m)/ 대의고개/ 미리재/ 휴게소
대의고개(머리재, 한티재, 큰재, 대현)는 경남 의령군 대의면 다사리와 의령군 칠곡면 산북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자굴산의 남동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남쪽으로 망룡산이 있는데 지명은 머리, 마루(산마루), 높다라는 뜻으로 험하고 가파르면서도 외진 고갯길이라 그 재를 넘다가 돈도 털리고 죽임을 당하는 일이 생기다보니 머리가 잘리기 쉬운 잿길이라고 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이 일대에 역참인 대현원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어느 지역인지 확인이 어렵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대현은 현 서쪽 30리에 있다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하며 여지도서의 의령에 자굴산에서 뻗어 나온다라는 내용이 있으며 대동지지의 의령에는 대현은 서북 30리의 삼가 경계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에는 대현 한틔지라고 표기도어 있으며 조선지형도에도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의령군 대의면 다사리에서 칠곡면 산북리로 넘어가는 20번국도가 지나가며 대의고개쉼터 휴게소와 건너편에는 주유소와 망경휴게소가 있다. 다사터널이 뚫리면서 휴게소가 폐업했다가 최근 민물장어집이 개업했다.
대의재에서 15분 가파르게 올르면 kt철탑이 나오고요, 이후 평탄한 임도길을 걸어 망룡산 KBS송신소에 도착합니다.
망룡산 사각정자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배나무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 우측으로 배밭을 횡단하여 직진으로 진행합니다. 의령여씨문중 묘소가 잘 조성되어 있던데 그분의 후손이 아닐까 하며 감사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양심적으로 떨어진 배를 주워먹을렸는데 상한 냄새가 나서 미안하지만 배하나 따먹었습니다. ㅋ
한우산과 자굴산 사이 쇠목재가 보이는데요. 자굴산에서 기맥은 곧바로 서쪽으로 내리는데 저렇게 남동쪽으로 길게 능선이 이어집니다...
♤ 망룡산(望龍山/441.6m)/ 삼면봉(의령군 대의면, 칠곡면 → 진주시 미천면)/ 망왕산
경남 진주시(晋州市)의 미천면 상미리 대곡마을과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 산남마을 경계에 있고 이 일대 골짜기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산의 동쪽은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 산남마을이고, 서쪽은 의령군 대의면 천곡리 천곡마을이며, 남쪽은 망룡산과 천황산이 만들어 놓은 큰 골짜기이다. 자굴산 줄기가 동남쪽으로 뻗어오다가 머릿재에 이르고, 그 동남쪽 줄기에서 주봉이 형성되었다. 망룡산 주봉의 동남쪽에는 천황산(364m)이 위치하고 있다. 천황산이 남쪽으로 이어져 집현산이 되고, 집현산 줄기에서 진주의 진산 비봉산이 형성되었다. 주봉에는 한국방송공사 M/W중계소가 들어서 있다. 망룡산에 관한 조선시대 사료는 보이지 않으나『조선지지자료』(의령)에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조선지형도』(삼가)에 망룡산이 표기되어 있다. 망룡산의 동쪽의 칠곡면 산남리 산남마을은 원래 용동(龍洞)으로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어르신들은 행정 지명인 산남이 아닌 용동으로 부른다고 한다. 망룡산에는 지명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온다. 망룡산 자락에 '미리섶'이라는 천연샘이 있었는데, 물이 맑고 수량도 풍부하여 산북 앞들의 논물로도 넉넉했다. 여기에 살던 큰 용이 어느 날 큰비가 내리자 솟구쳐 오르다가 잠시 망룡산에 머물렀는데, 뇌성벽력과 함께 다시 승천하였다고 한다. 이후 샘물은 더 맑고 수량도 많아져서 식수만이 아니라 농경지 관개용수로 이용하였다고 전한다. 용천(龍泉), 용동 지명이 생겨나고, 그 '미리섶'도 미리샘으로 불렀다고 전해 온다.
방갓산이라고 뱃지가 뜨고, 지도를 보니 천황산이 한참 떨어져 있어 거기까지 다녀올려다 말았습니다. 여기 천황산에서 우틀하여 9시 방향으로 진주시로 진입...
♤ 천황산(天皇山/341m)/ 삼면봉(의령군 칠곡면, 진주시 미천면 → 대곡면)
경남 의령군 칠곡면 산남리에 위치한 산(山)으로 진양기맥의 능선 망룡산을 거쳐 용당재로 가는 길목에 설매고개 갈림길인 천황산(341m)이다. 입구에 우회길이 있어 천황산을 놓치기 쉽다.
♤ 의령 대의면 천곡리
천곡리는 경남 의령군 대의면에 있는 마을로서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작은 천이 흐르고 천곡지가 있다. 좋은 샘이 있으므로 새미실 또는 천곡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매골, 송림 등이 있다.
♤ 진주 미천면 상미리
상미리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에 있는 미곡천 남쪽에 위치하여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로서 자연마을로는 항골, 아랫담, 우목골, 웃담, 터밭골 등이 있다. 항골은 상미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로서 큰 골짜기에 위치하며 임란 때 농은 선생이 주민을 모아 왜병을 격멸하자고 결의하였다고 하며 이때부터 항골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맥은 여기 용당재에서 내리실고개 직전 210m봉까지 진주시 미천면을 통과합니다..
♤ 용당재(250m)/ 용당고개/ 산지곡/ 서남재
진주시 미천면 상미리 한골 남쪽에서 대곡면(大谷面) 용암리(龍岩里) 용당동으로 넘어가는 재(峙)로 작은 돌무덤이 있다. 작은 사거리인 셈이다. 대곡면 용암리의 자연마을인 용당은 용암 서쪽에 있는 땅으로 옛날 용이 살고 있었다 하여 용당, 용댕이라고 한다. 용당골은 용암 서남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골 안에 채정승묘가 있으며 묘에 있던 석물을 없애버려 후손이 서울에서 말을 타고와서 묘를 찾지 못하고 그 밑에서 절만 하고 돌아갔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용당고개는 용암에서 북쪽 상미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붓으로 쳐서 산이 갈라졌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와 사연을 품었던 재였으리니...
자굴산이 높게 보입니다.
90살 장수하신 분의 묘를 지나 어욱고개로 내려서니 왼편으로도 잘 조성된 무덤이 보이네요.
가야할 방향의 높은 산으로 집현산으로 짐작되었습니다. 밤나무단지를 지나는데 경운기가 산위를 질주하길래 인사를 드리니 밤나무농장 주인이래요. 한참 이바구를 나눴습니다.
♤ 어옥고개/ 신촌재
어욱고개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 미곡리 신촌마을과 어옥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난다. 어옥리 사람들은 어옥고개라고 부르고, 미곡리 사람들은 신촌재라 부른다.
꽤 넓은 밤나무단지를 지나는 능선으로 우측으로는 15번 지방도가 지나는 진주시 미천면 미곡리 신촌마을이 있고 마을로 미곡천이 흐르며 대부분 평지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좌측으로 어옥저수지로 내려가는 어옥리가 있어 어옥고개 또는 신촌재라 불린다. 고개마루 주위에 성황당의 흔적인 듯한 돌멩이들과 거목 한 그루가 보인다.
임도로 바로 내려서면 이 초소를 못 보는 것이고....
여기도 좌측에 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부용사고개 도착하기 전에 우측으로 마을이 보이고, 감나무 많은 곳에서 대봉 홍시도 하나 따먹었습니다.^^
♤ 부용사고개
210m봉 산불감시초소 지나고 좌측 미곡리와 우측 오방리를 연결해주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인근에 부용사란 절이 있어 부용사고개로도 불린다. 여기서 찐빵을 두어개 넘어야 먹고개가 나온다.
만복사 절은 문이 닫혔고, 좌측 옛 주유소 뒤편 출입문에 목공예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마당에 밥값하는 개가 묶여있는 걸로 봐서 사람이 거주하나 봅니다.
가파른 절개지 사면을 치고 오르니 이런 컨테이너 막사가 보이고 집 앞에 수도가 있네요.
여기서 곧바로 가로등이 설치된(수도꼭지도 있음) 임도와 만나는데 우측 임도를 따르지 말고 직진으로 올라서야 편합니다.
먹고개에서 동향고개까지 잡목이 심한 지역을 지나야 한다고 해서 겁을 조금 먹었는데 의외로 등로가 잘 다듬어져 있었습니다.
♤ 먹고개/ 막고개/ 사십재/ 마앙골/ 오방고개/ 1007번 2차선 지방도로/ 폐 주유소와 매점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와 오방리를 연결하는 100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개로 대곡면 설매리 상촌마을에서 미천면 미곡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전에 도둑이 들끊어 40명 이상이 모여야 고개를 넘었다 한다. 내리실고개를 넘는 새로운 33번 4차선 도로가 생겨 통행하는 차량이 줄었다. 폐주유소와 휴게소의 간판은 '만복사'라고 하는 사찰 간판이 걸려있다. 기맥은 주유소 건물을 지나 휴게소 건물 오른쪽 벌목지 가파른 오르막이다.
밤나무가 어찌나 많은지요. 밤을 주울려니 도저히 진도가 나갈성 싶지 않았습니다. 파란 물탱크가 보이는 이 지점에서 알바좀 했습니다. 100도로 좌틀하여 임도를 따랐어야 했는데 저 물탱트 옆의 칡넝쿨과 억새를 헤치며 아래로 내려섰네요.
염소농장 사장님이 포크레인으로 산을 경작하고 계시길래 여차저차하여 잘못 내려왔고, 물탱크로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농장안으로 통과하면 안되겠습니까? 하니 열고 나갈 수 있다며 그리 하랍니다.
파란물탱크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내리니 동향고개입니다. 저 뒤에 만남의동산 비석이 보이는 지점으로 올라서서 곧바로 우틀하는 임도를 따르면 납골당 커다란 무덤이 나옵니다.
두준농장과 송암농장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동향고개에 도착한다. 도로 우측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건너편에 재령이씨문중 "만남의동산"이란 빗돌이 보인다. 좌측 양회임도(시멘트도로)를 타고 오르면 다시 갈림길삼거리가 나오고 거기서 우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오른다.
♤ 동향고개/ 서낭재(130m)
경남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와 향양리를 이어주는 2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서낭재(한골짝)는 옛날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 동향마을에서 안간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었다. 안간리와 향양리의 경계지점이다. 도로 확장으로 인해 서낭당 자리는 흔적이 없고 큰 저수지(동향저수지)가 축조되었다.
기맥길은 내리실 고개 직전 210m봉에서 집현면을 만나, 미천면과 집현면 면계를 타고 집현산의 동봉에 이르고, 이후 진주시 집현산까지 진주시 집현면과 산청군 생비량면의 경계를 따릅니다.
210m봉에서 내리실고개로 내려서며 우측 멀리 산성산과 한우산이 보입니다.
내리실고개로 내려서는 막바지 길이 만만치가 않군요. 도로 경사면 철계단을 타고 내려선 중간지대에서 좌측으로 가 계단으로 내려섭니다. 이후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지하도를 통과해야 하지만 맘이 급한 관계로 무단횡단을 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버스 정류소 안에 열명은 너끈히 들어가 커피 한잔 할 수 있겠습니다.^^
♤ 내리실고개(33번국도, 120m)
내리실고개는 진주시 미천면 안간리에 있는 내리실마을로 가는 고개로 현재는 진주와 합천을 이어주는 33번국도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있다. 내리실마을은 집현면 정수리와 경계마을로 내리실고개는 두 마을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이다. 진주 시내버스 종점 회차지가 있다. 내리실 경로당을 지나 소교량 한쪽에 수도가 있다.
♤ 안간마을
안간리는 경남 진주시 미천면에 속한 법정리로서 조선시대에 안간역이 있었다고 하여 안간 또는 역말리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안간면 안간동, 미곡동, 효자동의 각 일부로서 안간리라 하였다. 안간리는 서쪽의 산청군 집현산(577m)에서 이어지는 산지가 동쪽으로 이어지는 서고동저의 지세이며 남쪽과 북쪽은 산지로 그 가운데에 계곡선을 따라 안간소류지와 소규모 하천이 미곡리 방향인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동쪽은 미곡리와 서쪽은 산청군 신안면과 남쪽은 집현면 정수리와 그리고 북쪽은 효자리와 접하고 있으며 국도 33호선이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안간리는 북동, 내인, 임곡의 3개 행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 북동과 내인은 국도 33호선 좌우에 위치하여 미천우체국과 중부농협 안간지소 등이 입지하고 있으며 임곡은 서쪽의 집현산 자락에 있다.
내리실마을에서 동봉으로 오르는 기맥 줄기는 시멘트 임도 좌측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등성이라 방향이 어슷비슷하여 내리실고개에서 민가 우측으로 나있는 월명암 진출입로인 시멘트 포장도로 임도길을 따르는데, 내리실고개에서 월명암가는 콘크리트 임도가 어쩐지 맘에 걸리시다면 마루금 바로 아래 임도가 있으니 임도를 따르면 어쩔런지요. 버스정류소에서 안길로 들어서서 경로당 이르기 전에 좌측 임도, 오른쪽 콘크리트 도로입니다. 여기 이정표에서 만나게 됩니다.
집현산 동봉/ 장군봉의 전경입니다. 돌담 안으로 양쪽에 정상석이 두개 있고, 가운데는 정안수를 올려놓고 정성을 기원하는 제단이 있습니다.
♤ 집현산 동봉(549m)/ 장군봉/ 삼면봉(진주시 미천면, 집현면 → 산청군 생비량면)
동봉/장군봉은 동봉갈림삼거리에서 정상까지 약 20m 다녀와야 한다. 정상에는 낮은 돌담을 둥굴게 쌓은 제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주위에 수백년 된 듯한 우람한 낙락장송 세 그루가 서 있다. 동봉에서 부봉까지의 거리는 1.4km이다. 동봉 아래에 자리한 작은 규모에 고즈넉한 월명암 인법당에는 보물 제1686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복장 발원문이 봉안되어 있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12년 상원 현진 비구를 수화승으로, 학문, 명은, 의능, 태훈 네명의 조각승을 이끌고 제작한 불상이다.
동봉에 서서 지리산 옆으로 지는 함지를 감상합니다.
산청 집현산 정상 뒤로 해는 꼴딱 넘어가고~
♤ 산청군 생비량면(生比良面)
생비량면은 경남 산청군(山淸郡) 동부에 있는 면으로 서쪽으로는 신안면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갈미봉을 경계로 신등면과 접하며 남쪽으로는 칠현산을 경계로 진주시와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의령군과 진주시 등과 연접하는 서부 경남의 교통 중심지 중의 하나이다. 1914년 옛 단성군의 생비량면과 도산면의 일부를 합병하였고 삼가군 아곡면 일부를 통합하여 생비량면이 되었다. 생비량면의 명칭 유래는 옛날에 생비량면의 가계리와 화현리 사이에 사찰이 있었는데 그 절의 주지스님이 비량(比良) 이었다. 비량스님은 넓은 자비심으로 주위의 존경을 받아왔는데, 갑자기 절을 떠나게 되자 주민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애원을 하며 붙들었으나 스님은 떠나더라도 영원히 남아 있다는 뜻에서 고을 이름을 생(生)자를 붙여 생비량이 되었다 한다. 집현산(572m)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500m 이하의 산지로 완경사를 이루며, 봉황산(236m), 갈미봉(363m) 등이 솟아 있다. 남강의 지류인 양천강이 면내를 곡류하여 서쪽으로 흐르며, 도리, 도전리 일대에 충적지가 발달한다. 도전리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불상군(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9호)이 있다. 현재 교통망이 잘 정비되어 있어 동서로는 지리산국립공원입구-창녕을 잇는국도 20호선과 남북으로 진주-합천을 잇는 국도 33호선이 지나며 부산, 마산 등으로 1시간 이내로 진입할 수 있는 지역이다.
웅석사 갈림길도 지납니다.
진주 집현산 가기 전에 장대분맥 갈림지점이 어디일까 의식하고 갔지만 정확한 지점은 알 수 없었고 처음 사진의 표지기가 많이 걸린 지점에서 좌측이 능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 진양기맥 장대분맥이란
진양기맥에서 대표적인 네개의 분맥(월현, 갈미, 미타, 장대)이 갈라지는데, 천황산 지나 진주집현산 조금 못 미치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장대분맥은 탑고개, 206.2봉, 장대산(200m), 북지재, 170.9봉, 말띠고개, 비봉산(142m), 선학산137m)을 지나 남강으로 맥을 다하는 길이 21.6km(신산경표) 진주 지역의 마루금으로, 좌측은 정수천으로 우측은 나불천으로 흘러드는 지류를 흐르게 한다.
집현산 부봉이라고도 불리는 진주 집현산입니다. 팔각정 바닥을 어찌나 깨끗하게 닦았는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던데 바람이 세서 비박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정상에 남서쪽을 보고 무덤이 한기 자리하네요. 지관이 무덤을 잡을 때 바라보이는 방향도 중요하지만 산의 맥도 중요하게 봅니다. 산이 흐르는 맥을 거슬려 앉힐 수는 없거든요.
서진주쪽이고 저 멀리 우측의 산이 사천의 와룡산으로 짐작됩니다.
EENT 지리산의 모습입니다. 우측이 웅석봉이고 웅석지맥의 달뜨기능선이 환하게 보입니다.
♤ 진주시 집현산(548m)/ 집현산 부봉/ 산청군-진주시 경계/ 삼면봉(집현면, 신안면 → 명석면)
임진왜란의 아픔을 간직한 산이라 진주시에서 주산으로 꼽는 산이다. 집현산은 진주시의 명석면·집현면·미천면, 산청군 신안면·생비량면에 걸쳐 있으며 주봉(577m)은 산청군 신안면에 있다. 밋밋한 봉우리에는 '集賢亭(집현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으며, 커다란 정상 빗돌과 교자상 서너 개를 합친 크기의 거뭇한 상석형태의 제단석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리고 한구석에는 산불초소도 보이고 집현산 등산안내도까지 빠짐없이 세워져 있다.
역사적으로는 동학혁명과 임진왜란의 아픔을 간직한 산이기도 하다. 집현산은 임진왜란 당시 집현산 청고개에 군사들이 집결해 진주성 탈환을 위해 왜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임진년 10월 9일 김준민장군이 이끄는 500여 군사가 진주성을 구원하기 위해 진군하는 길에 집현산 자락 청고개에 이르렀다. 장사진을 이룬 군사가 이동하다 보니 뜻밖에 청현, 오동, 정태, 단성 일대에 왜적이 마을마다 분탕질하고 불을 질러 연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이에 김준민 장군이 앞장서 죽림 밖으로 뛰어나가 아래위로 적을 휩쓸었다. 또한 군관 윤경남 등이 장수가 적중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음을 외치면서 뛰어드니 500여 군사가 일시에 함성을 지르고 돌진했다. 적이 허물어져 달아나다가 우리 군사와 강을 사이에 두고 격전을 벌였는데 때마침 승군 의병장 신열이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합세하자 적이 청고개를 넘어서 달아났다. 이어서 김준민장군은 단성 쪽으로 행해 거기서 분탕질하는 적을 쫓고 창고에서 불타고 있는 곡식을 구했는데, 그 양이 600여 석이나 되었다는 데서 적지골이란 이름이 있다.
집현산 3봉(526m봉)에 있는 사각정자입니다. 오봉삼거리입니다.
3봉에서 내려서서 다시 2봉 칠평산으로 올라가는 지점이 무너미재인데 여기서 생비량면 현동마을(3.5km)로 내려가는 길이 있네요.
밤에 본 칠평산/ 집현산2봉입니다.
아침에 다시 들른 칠평산입니다.
♤ 집현산(集賢山, 565m)/ 칠평산(七坪山)/ 삼면봉(명석면, 생비량면 → 신안면)
경남 진주시(晋州市)의 집현면 정평리에 위치한 산으로 그리 높지않고 기암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진주시에서는 제일 높은 산이고 조망이 시원하고 산세가 제법 웅장하며, 엄장한 노송 두 그루가 위세등등하게 우뚝 서 있으며 그 곁에는 커다란 돌탑도 한 기 세워져 있다. 명석면(남)과 신안면(서) 그리고 생비량면(북,동)의 세 개의 면의 경계를 이루는 봉우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우측(북)의 산길을 0.5km쯤 따르면 집현산의 정상에 오를 수가 있는 길이다. 완만한 내리받이 산길을 따르면 도치샘(우측)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을 지나가게 되고, 완만한 오르막을 올려치고 슬그머니 내려섰다가 다시 한 번 오르면 해발577m의 산청군 소재 집현산 정상이다. 명석면뿐만 아니라, 여러 군(郡)과 면(面)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진산(鎭山)이다. 상여바위, 까마귀등 같은 괴암의 봉우리가 있으며 금을 채광한 금굴도 여러군데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진주목과 단성현의 경계에 있다고 하였으며, 『진양지』에는 진주의 산으로 수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에 "집현산은 주(州) 북쪽 40리에 있다. 단성현 편에도 나온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진양지』에 "집현산은 주의 북쪽 40리에 있다. 덕유산(德裕山)의 일맥(一脈)이 동쪽으로 달려와서 자굴산(闍崛山)이 되고 자굴산의 한 가닥이 서쪽으로 구부려 와서 이 산이 되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집현산은 현자들이 모이는 산이라고 하여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 일설에 의하면 산신령이 거처하는 산이라고 해도 7평이면 족하다고 하여 칠평산(七坪山)이라고도 한다.
칠평산에서 산청에 있는 집현산 정상(577m봉)으로 향하는 중간에 도치샘이 있답니다.
정상 데크에서 막영지를 구축 중입니다.^^
18,000원에 구입한 1인용텐트인데 두명이 누울 수도 있겠더군요. 가벼운 우모복을 입고 은박 매트를 덥고 잤습니다. 그런데 상당부 환풍구로 찬공기가 많이 들어오는것 같아 손수건으로 덮었더니 텐트 내부 온도는 올라가지만 내면에 결로현상이 생기는군요. 동계에는 위에다 덮어 씌우는 플라이텐트를 추가로 가져가야 할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는 해뜨기 직전 EMNT입니다.
칠평산삼면봉에서 산청 집현산 정상까지는 왕복 1~1.2km이고, 기맥길은 삼면봉으로 되돌아와 광제봉수대방향으로 내려서야 합니다.
♤ 집현산 정상(577m)/ 산청군
산청 집현산 정상에서는 북서쪽으로 지리산 천왕봉과 웅석봉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의령 자굴산과 한우산이 선명하다.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서로 얽혀있는 정상(577m)에는 삼각점과 데크전망대가 마련되어 있다. 맞은편으로 직진을 하고 있는 산길은 생비량면의 현동마을과 대둔마을 방면이 된다.
집현산은 500m 이상 봉우리 일곱 개로 구성되어 칠봉산이라고도 불린다. 순서대로 1봉(577m, 집현산 정상, 나무데크), 2봉(563m, 칠평산/돌탑/ 삼면봉), 3봉(526m, 오봉삼거리/ 사각정자), 4봉(548m, 진주 집현산/부봉/ 팔각정자/ 삼면봉), 5봉(549m, 장군봉/동봉/ 삼면봉), 6봉(530m, 구시봉), 7봉(530m, 까치봉)...
신안면 종돈장 돼지축사 방향입니다.
♤ 청현고개(晴峴峙, 千古峴)/ 천고재/ 천고개/ 청고개
청현고개(晴峴峙)는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서 산청군 신안면 청현리를 잇는 고개이다. 진주시 소개에 따르면 천고재(千古峴)는 신기리에서 산청군 신안면 청현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일명 청현재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후미지고 산적들이 많아 천명이 모여야 왕래하였다고 한다. 산청군 소개에는 청현마을에서 명석면으로 넘어가는 집현산 능선을 청고개라 하며 옛날에는 이곳이 진주로 통하는 대로였으므로 하루에 천명이 넘는다 하여 천고개라 하였단다. 밋밋한 언덕배기 시멘트도로이다.
♤ 청현리(晴峴里)
청현리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동쪽으로는 집현산 등의 산지가 펼쳐져 있으며 양천강이 흘르는 서쪽으로는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다. 두무산에서 북동쪽으로 뻗어 나온 산줄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산간 마을이다. 비교적 낮은 고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대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청현, 오전, 신기마을 등이 있다. 청현 마을은 개티, 구현이라고도 불리며 개티고개 밑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전마을은 오동 나무가 많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신기마을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불리워진 이름이다. 청현소류지와 동지골소류지가 있다. 조선 숙종때 건립된 청곡서원이 있다.
이제 산청군 신안면과의 경계를 벗어나 온전하게 진주시 명석면으로 접어듭니다.
♤ 324.1m봉
진주시와 산청군 경계를 타고가다 청현고개 직후 324.1m봉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주시 명석면으로 진입합니다.
임도와 만나고 우측 산으로 올랐다 다시 임도를 만나고를 반복합니다. 임도에 차가 많이 세워져 있는데, 송이버섯 끝물을 보려는 채취꾼들 차량입니다.
그냥 임도만 따른다면 만나보지 못하는 정자입니다.
광제산 정상에는 돌맹이로 담을 둘러친 묵묘가 한기 있네요. 명당터라면 후손이 잘 되어 묵묘가 되지 않았으련만...
♤ 광제봉(廣濟峰, 347m)/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
경남 진주시의 명석면 외율리에 위치한 산이다. 광제산은 명석면 외율리·덕곡리·계원리·신기리에 걸쳐 있다. 동쪽으로 집현산이 있고, 남쪽으로 숙호산이 있다. 광제산 줄기가 남쪽으로 뻗어 내리면서 진주 서부지역 판문동·평거동·신안동·이현동 일대를 감싼다. 광제봉 남쪽으로는 명석면 덕곡리 토장동에서 외율리로 넘나드는 광제재(廣濟峴)가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진주)에 "광제산 봉수(廣濟山烽燧)는 주로부터 북쪽 31리에 있다. 남쪽으로 망진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단성 입암산(笠巖山)에 응한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현재 광제산 봉수대(도 기념물 제158호)의 화구(火口)와 석축의 일부 흔적이 남아 있다. 덕곡리 성지는 광제봉에 있는데, 덕곡리와 신기리의 경계를 이룬다. 성은 둘레가 약 150m의 석축성이지만 대부분 무너져 그 흔적만 확인할 수 있다. 봉화대 밑에는 일제강점기 금을 캤던 굴이 10여개 정도 있다고 한다.
♤ 샘터
광제산과 광제봉봉수대 중간에 있는 약샘삼거리입니다. 누군가 약에다 뺑끼칠을 해놨어요. 200m 다녀오기가 너무 가팔라 물에 여유가 있다면 그냥 지나가는게 낫겠다는 생각입니다. 물줄기도 가늘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바로 앞에 집현산과 우측 멀리 산성산-한우산-자굴산의 라인이 보입니다.
드뎌 진양호가 보입니다. 뒤쪽 하늘금 어디께 낙남정맥도 흘러가겠지요.
지리산 방향입니다. 저 도심지가 단성, 원지쪽입니다.
지나온 광제산 너머로 멀리 황매산도 보입니다.
봉수대와 조망을 두루두루 둘러보셨으면,,, 산불감시초소 방향으로 가면 안되고요. 처음 올라온 곳에서 우틀하여 명석면 표지판 내리막길로 내려서야 합니다.
♤ 광제산(廣濟山, 420m) 봉수대
진주시 명석면 덕무리에 소재한다. 광제산 높은 봉우리에 설치된 군사 통신 시설의 하나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하던 봉수대이다. 남해안으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하여 그 정세를 중앙에 전달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한 중요한 통신 수단이었다. 조선 세종조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 남산에서 동래선인 직봉(直烽)을 보조하는 간봉(間烽)으로 남으로는 망진산(望晉山), 북으로는 단성의 입암산(笠岩山) 봉수와 상응하였다. 현재는 화구와 봉수대의 석축 일부 등 흔적만 남아 있다. 통신문명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1997년 1월 30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58호로 지정되었다.
진주의 또다른 봉수대 망진산보다는 한참 뒤에 복원한 모양인데 복원내력에 대한 설명은 없네요.
봉화대 답게 사방팔방으로 전망이 좋습니다. 북쪽 집현산에서 12시 방향 황매산에서 시계 반대방향으로 둔철산(812m), 웅석봉(1,099m), 지리산 천왕봉(1,950m), 사천 와룡산(801.4m), 진주시내, 월아산(470m), 방어산(532m), 괘방산(451m), 오봉산(525m), 자굴산 등이 파노라마로 펼쳐집니다.
♤ 봉화대(烽火臺) 봉수(烽燧)
봉수는 전근대시대에 변경의 급보를 전달하는 동시에 해당 지역의 영진(營鎭)에도 알려 적의 침략에 대비했던 통신제도로서 민간통신으로는 활용되지 못했고 단지 군사통신으로만 사용되었다. 봉수제의 유래는 오래된 듯하며, 중국에서는 25~27년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에 이미 상당히 정비된 봉수제도가 있었고, 한국에서도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봉화(烽火)·봉산성(烽山城) 등의 기록이 보여 삼국시대부터 있어온 것으로 짐작되나 확실한 것은 고려 의종(毅宗) 이후부터이다. 그 후 조선 세종 때에 이르러 4군 6진의 개척과 함께 봉수제는 크게 정비되고 발전된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봉수조직은 중앙 병조 소속의 무비사(武備司)와 지방 영진 관할하의 봉수대(烽燧隊)로 편성되어 있었다. 영진에는 장(將)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영에는 관찰사·병사·수사가, 진에는 수령이 겸임하여 직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봉수대는 경봉수(京烽燧: 목멱산 봉수), 내지봉수(內地烽燧), 연변봉수(沿邊烽燧)의 3가지로 조직되어 있었고, 각 봉수대는 오장(伍長: 경봉수는 五員)과 봉수군(烽燧軍)을 배치했다.
- 봉수군(烽燧軍)
봉수조직의 최하층에 속했던 봉수군은 봉수대 위에 기거하면서 관찰·신호·전령 등을 맡았다. 이들은 신분상으로는 양인이었지만 국역부담에 있어서는 천인의 역에 종사하는 신량역천인(身良役賤人)으로 부근민(附近民) 가운데 차정함이 원칙이었다. 오장 또는 오원은 봉수군을 지휘·감독하며 봉수대의 근무상황을 수령에게 보고하고, 수령은 이를 받아 유사시에는 즉시, 무사시에는 월말마다 관찰사에게 보고하는 한편 매계월(每季月: 3, 6, 9月)마다 병조에 보고했다. 봉수가 끊어졌을 경우에 수령은 곧 그 사유를 병조에 보고해야 되는데 봉수의 양호 여부는 수령의 공과(功過)에 직결되었다. 경봉수에서는 변방으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병조에 보고하며, 병조는 승정원에 보고하여 국왕에게 알렸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을 사용하여 횃불의 숫자에 따라 소식을 알렸는데 세종대에는 5구분법으로 체계화되었다. 1419년(세종1년)에 해상과 육상을 구별하여 평소와 다름이 없으면 1개의 홰를 올리고, 해안지방의 경우 왜적이 해상에 나타나면 2개의 홰, 해안에 가까이 오면 3개의 홰, 왜적이 상륙할 때는 5개의 홰를 올렸다. 육지의 경우 적이 국경 밖에 나타나면 2개의 홰,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개의 홰, 국경을 침범하면 4개의 홰, 우리 군사와 접전하면 5개의 홰를 올리도록 했다. 그러나 만일 적이 침입했을 때 안개·구름·비바람으로 인하여 봉수가 전달되지 않을 경우에는 화포(火砲)나 각성(角聲) 또는 기(旗)로써 알리거나 봉수군이 직접 달려가서 알리도록 했다.『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전국의 봉수망은 5대 기간선로로 구성되었으며, 전국의 봉수대는 총 610개소였는데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제주목의 63개소가 더 있었다.
♤ 진주(晋州)의 봉수(烽燧)
진주(晋州)에는 망진산에 있는 망진산 봉수와 명석면 광제산에 있는 광제산 봉수가 있었다고 하는데, 광제산 봉수는 그 흔적만 약간 남아있고, 망진산 봉수도 1996년 8월 14일에 복원되었다. 망진산 봉수대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봉수대로서 진주 8경중 제 5경에 속한다. 고종 32년인 1895년 폐지되기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우리나라의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5개 직봉노선 가운데 동래 다대포진에서 목멱산(현 서울 남산)에 이르는 제2노선의 보조노선으로서 남해 금산과 사천 안점의 봉수를 받아 광제산 봉수대로 이어주는 곳이었다. 이러한 망진산 봉수대는 1894년 동학농민항쟁과 1919년 3·1만세운동 당시에도 사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 때 훼손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진주문화사랑모임 등 민간단체가 중심이 되어 복원했다. 광제산 봉수대는 역시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동래에서 서울 목멱산 중앙봉수에 이르는 봉화선로를 연결하고 있었다. 이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망진산 봉수대와 북쪽으로는 단성의 입암산 봉수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현재는 봉수대 일부의 흔적만 남아있다.
광제산봉수대에서 내려서서 처음 만나는 광제재 임도인데 덕곡고개라고 적혀 있습니다.
광제재에서 올라서서 덕곡마을 갈림길에 있는 사각정자이고, 기맥길은 여기서 우틀하여 내립니다.
♤ 광제재(廣濟峙, 222m)/ 덕곡고개/ 임도
우측 외율마을과 좌측 덕곡리 덕곡마을을 잇는 고개로 주민들은 이고개를 광제재라 부른다. 외율마을만 시멘트 포장길이다. 산청군 단성면의 정기시장을 드나들던 고개라 해서 '단성장길'이라고도 불렸다 한다.
여기가 덕현치 맞죠? 신형 임도입니다. 저쪽 계단으로 올라서야 하고요. 우측은 시멘트도로....
스파랜드갈림길입니다. 무심코 임도를 따라 직진하면 알바이고 이 봉우리에서 90도 우틀합니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임도를 건넙니다.
♤ 명석(鳴石)
진주시 명석면(鳴石面)의 유래가 된 자웅석(雌雄石)으로 광제산 동쪽 자락의 신기리 동전마을에 있다. '보국충석'으로도 불리는 명석은 고려 말 집현산의 돌 한 쌍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진주성을 정비할 때 성벽의 굄돌이라도 되겠다며 산비탈을 굴러 길을 나섰다가 도중에 축성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는 전설을 품었다.
놋종기먼당의 돌탑과 정상석 전경입니다.
진양호가 내려다 보입니다.
♤ 놋종기 먼당(265m)
'놋종기'는 놋쇠로 만든 간장이나 고추장 따위를 담는 종발보다 작은 그릇을 일컫는 말인데 놋종기 먼당의 유래는 천지개벽 시에 온 세상이 물에 잠기고 놋종기 만큼 남은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아래 중턱에는 청춘남녀가 사랑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있는 사랑바위가 있다고 한다. 정상에는 정상석과 돌탑이 있고 조망이 좋아 3번국도의 교량이 진양호에 걸쳐있는 진양호가 내려다 보인다. 안부를 지나 오르면 상수원보호구역을 표시한 듯한 또 다른 시멘 구조물을 세워둔 곳을 지나 올라선다.
용산치로 가면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멀리 광제산봉수대가 보입니다.
진양호를 지나는 대진교입니다. 저 보이는 마을이름이 뭐랬더라...
♤ 명석면 오미리(五美里)
오미리는 자연마을 단위로 개편되면서 시목과 오미로 분리되었다. 예전에 네거리라 많이 불렀으니, 그것은 걸어다닐 때에도 도내고개를 넘어 함양, 산청 가는 길과, 시목 석티고개를 넘어 덕산으로 가는 길과, 서재, 가화를 걸쳐 사천만으로 가는 길과, 진주로 가는 네 갈래길이 교차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이곳이 명석면에서 제일 번잡한 곳이었으니 따라서, 길손들이 쉬어가는 주막도 많았다고 한다. 지금의 경찰 지서인 주재소(駐在所)가 일제때에 여기에 있었으니 얼마나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오미(五美)라는 지명은 마을 서쪽에 가재가 춤을 추는 오무형(聱舞形)의 명산이 있어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본 마을 아래에 있는 원전(院田)은 예전에 원전이 있었다하여 부르게 된 지명이며, 동남쪽에 있는 회병실은 군사를 후퇴시킨다는 뜻이며, 애기내(牙旗內)는 장군기를 꽂은 곳이라는 뜻이니 이 두 지명은 시목 서북쪽에 있는 장군대좌(將軍大座)를 따라 붙혀진 이름이다.
차가 없을 때 상단통과로 무단횡단 했습니다. 곧바로 올라서는 들입구인데 용산치 간이매점을 그냥 지나칠 순 없겠더군요.
커피도 한잔 마시고, 칡즙도 두잔 마십니다. 코비나로 음식을 팔 수 없어서 계란은 없다네요. 할 수 없이 배낭에 빵을 꺼내 요기를 합니다.
♤ 용산치(龍山峙, 76.6m)/ 3번국도
용산치는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에서 용산리로 넘어가는 3번 국도이다. 용산(龍山)은 문자 그대로 용이 지나간 산이라 하여 부르게 된 지명이다. 오랜 옛날 지금의 못안에 큰 못이 있었는데,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목이 마르니 그 곳에 살던 용이 꿈틀거리며 뒷산으로 기어 올라가 등천(登天)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용이 지나간 자리에는 산이 뭉개진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으며, 못안이란 마을의 이름도 여기에서 생겼다고 한다. 해발 고도 200m 내외의 낮은 산지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형국으로, 용산리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여 두 줄기의 하천이 흐르면서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은 관지리, 서쪽은 가화리, 오미리, 남쪽은 우수리, 북쪽은 외율리, 덕골리와 각각 접하고 있다. 남서쪽으로 3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1006번 지방도가 동쪽으로 관통하고 있다.
* 1950년 7월 전후로 경남 진주시 명석면 일대에서는 육군 특무대 부대원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이루어졌다. 민간인 학살의 발단 경위와 경과 등에 대해서는 정확한 조사가 미흡하여, 당시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몇몇 증언들에 의해 사건의 참상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당시 진주시 명석면 소재 지역별 보도연맹원들이 학살된 장소와 인원수를 추정해보면, 우수리 송고 콩밭골 1백여 명, 우수리 갓골 내 밀밭골 43명, 관지리 삭평 건너 닭족골 50여 명, 관지리 신촌 앞 화령골 1백여 명, 용산리와 오미리 고개 수백 명 등이었다.
장아산은 어딘지 모르고 지나쳐 버렸어요.ㅠㅠ 직전에 송전탑까지는 의식을 했고, 다음이 장아산이다 생각했는데....
사실 장아산보다 더 높은 봉우리도 옆에 많이 있는데,,, 장아산이 어떤 뒷배가 있길래 산이름을 얻었을까요?^^
♤ 장아산(200m)/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우수리
경남 진주시 명석면의 덕곡리 용산리 우수리를 동쪽으로 두고, 오미리와 가화리 그리고 대평면 신풍리를 서쪽 접경으로 하는 날등길 따라 남하해서 진양호에 손 담그는 진양기맥 157km의 마지막 구간에 있는 해발 200m대의 유일한 산이지만 아무런 표시도 없는 칡덩굴 무성한 야산에 불과하다. 여기까지 흘러온 남강은 함안군 대산면 장암리에서 황강물과 만난다.
장아산을 그냥 지나치고 만난 봉우리에서 바라본 좌측 집현산과 우측 한우산-자굴산입니다.
육안으로는 집현산 좌측에 광제산봉수대도 식별이 잘 되었는데 사진상으로는 어렵네요.
지리산입니다.
진양호도 계속 보입니다.
진양호 건너편으로 웅석지맥의 끝지점 귀곡동 꽃동실(까꼬실마을)이 보인다니 살펴보긴 하는데...
진주강씨 백사공파 25세손 후손묘역이랍니다. 차가 올라오게 임도가 닦여 있어요. 묘지기와 싸움이 잦았는지 저 뒷봉우리를 우회하는 길이 있더군요.
바로 앞에 이렇게 X자 소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직진하여 판문고개로 내려서는 것이죠...
대통고속도로 옆으로 판문고개 도로에 내려섭니다.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지하통로... 암거라고 하네요.
♤ 판문고개/ 대통고속도로
가화리 삼백골, 늑시골과 널문마을을 이어주는 고개로 20번 도로가 지나고 있다. 판문고개에서 마루금은 고개를 넘어야 하지만 통영-대전간 중부고속도로 개설로 인해 도로 좌측으로 내려서서 암거(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해 우회하여 우측으로 밭길을 올라 맥길로 복귀한다.
진양호 물가가 가까워 옵니다.
이 표지판이 있는 곳이 양마산입니다. 팔각정 300m 전이군요.
이 정자를 지나 진양호 물가 옆으로 바싹 다가서서 걸어갑니다.
♤ 양마산(163m)/ 판문동/ 팔각정자
양마산은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진양호반을 따라 맑고 수려한 풍광을 지닌 서부경남의 유일한 호수 사이길을 걷는 코스로 지리산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시원하게 트인 전망과 아침에 피어나는 호반의 물안개와 황홀한 저녁노을이 여행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진양호의 진정한 매력이 숨겨진 보석같은 곳이다. 호반도시의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간직한 진양호는 호수로서는 드물게 맑은 물, 절벽과 조화된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 또한 그만이다. 양미산은 이곳 진양호를 따라 부드러운 흙길로 이어진 진양호반과 편백나무숲, 소나무숲이 어우러진 진정한 매력이 숨겨진 진주시 최고의 트래킹 코스이다. 양마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서부 경남의 대표 트래킹 코스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진양호공원, 휴게전망대, 봄 벚꽃터널, 경남유일의 동물원, 물문화관, 어린이교통공원, 진양호 일주도로 등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호반전망대 이르기 전에 지리산 남부능선, 남쪽으로 흐르는 낙남정맥의 정맥능선을 잡아봤어요.
호반전망대에서 바라본 중앙의 집현산과 좌측 광제산봉수대입니다.
여긴 어느 방향이었더라?? 자세히 보니 좌측이 산성산-한우산-자굴산 라인입니다.^^ 저 아래가 서진주IC래요.
남강댐입니다. 저쪽 태실봉이 있겠고 사천으로 넘어가는 가화천이 있겠지요. 마침 뒤쪽으로 사천 와룡산이 보이네요.
호반전망대 정면의 건너편에 보이는 귀곡동 까꼬실 마을이 웅석지맥의 끝지점입니다.
수몰민들을 진주로 실어나르는 왕복선 배가 있긴 하더군요.
“까꼬실”이란 마을 이름은 각구(角口)라는 한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을 지형이 새 또는 나발 주둥이 형상을 닮아 이같이 불렸답니다.
진양호 상단부입니다.
남덕유산 아래 참샘에서 발원한 남강이 임천강과 덕천 그리고 경호강을 받아들이며 이렇게 커졌습니다.
♤ 호반전망대에서 기맥 등로는 동물원쪽으로 가야하지만 일년계단을 내려와 우약정을 구경하고 종착지인 선착장에 도착한다.
수돗가 옆으로 남인수동상이 있다는데 남인수 고향이 진주인가 보죠?
수돗가 옆에 우약정으로 올라서는 우측편으로 매점도 있습니다.
♤ 우약정
우리교유의 건축양식을 본따 지은 우약정은 진주시 대곡면 출신 재일교포 하경완 선생이 1974년 건립하여 진주시에 기증한 것으로 고국을 그리는 애절한 망향의 심정으로 여기 푸른 물이 넘실거리는 진양호에 선친의 자를 따서 우약정으로 이름을 짓게 되었다.
버스 종점에 수몰민 망향비가 세워져 있고, 진양호 건너 수몰지인 귀곡동을 건너다니는 배입니다.
진양호에 신발과 스틱을 담그는 것으로 진양기맥을 마칩니다.^^
버스 종점 옆에 충혼탑과 참전용사기념비가 있더군요.
진양호 공원 출입문입니다. 좌측이 버스종점....
♤ 진양호(晋陽湖)/ 경남 진주시 판문동 일대 경호강,덕천강 합류지점
경남 진주시 판문동·귀곡동·대평면·내동면과 사천시 곤명면에 걸쳐 있는 인공호수이다. 진양호는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유역면적 2,285㎢, 저수량 1억 3,600만톤으로 7년 6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1970년 7월에 준공되었으나 현재는 저수량 3억 1,000만톤 규모의 댐 보강공사가 1999년 10월로 완공되었다. 기타 부대시설을 포함한 전체 보강 사업 준공도 2000년 12월 완공되었다.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 인공호이다. 이로써 홍수조절과 생활 및 공업용수 공급은 물론 연간발전량은 4,000만kw에서 4,130만kw로 늘어났다. 46m의 계획 홍수위에서 만수 면적과 총 저수 용량은 각각 29.4㎢와 3억 9200만㎥이며, 홍수조절 능력은 2억7천만㎥이다. 남강댐의 유역면적은 2,293.42㎢이며 유역 둘레는 328.01㎞이다. 계획 홍수량 초당 1만 570㎥를 사천만 방류와 저수지 조절에 의하여 남강 본류에는 2,000㎥ 이하만 방류함으로써, 남강 하류 연안 토지 5만ha에 대한 홍수의 피해를 줄이고, 남강 하류의 7,500ha와 낙동강 하류의 2,300ha 농경지에 연간 6천만㎥의 관개용수는 물론 진주시와 사천의 상수도 용수로 각각 하루 10만여㎥를 공급하게 되었다. 주요 시설물로는 남강댐으로서 초당 1만 570㎥의 계획 홍수량을 조절, 방류하기 위하여 문비 6문을 보유하는 여수로 시설과 홍수 때 사천만으로 방류를 위한 문비 10문을 보유하는 제수언 시설, 연장 11㎞에 달하는 방수로 시설, 시설 용량 1만4천kw의 발전소 시설이 있다. 주변에는 물홍보 전시관, 선착장을 비롯하여 동물원, 어린이 동산, 호텔, 여관, 식당 등 위락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진 관광 명소의 하나인 이곳은 수려한 호반과 주위에 각종 위락 시설 및 낚시터를 갖추고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 든다. 주변에 약 2,000그루의 벚나무가 심어져 있어 봄 벚꽃 놀이가 펼쳐지고, 유람선ㆍ진주 민속박물관ㆍ전망탑ㆍ팔각정 등이 호수 유원지의 기능을 다하고 있다. 호수 주변 방풍림과 5개의 섬이 잘 어우러져 자연경관 또한 빼어나다. 남강댐 유역을 중심으로 52.623㎢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진양호상수원보호구역은 28.065㎢에 이른다. 진양호 하류에는 진주성과 촉석루가 있으며,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을 기리는 유등축제가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충혼탑을 보고 조금 더 걸어내려와 남강댐 아래 버스정류소에서 끝을 맺습니다.
♤ 남강댐(南江dam)/ 경남 진주시 판문동에 있는 낙동강 지류인 남강을 가로지른 댐
댐 우안은 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삼계리에 속한다. 1920∼1930년대에 실시한 낙동강개수계획의 일환으로 남강 홍수량의 사천만 방류계획을 성안하여 홍수조절을 위한 단일 목적으로 1939년에 착공하였으나 방수로에 토석 약 200만㎥를 굴착하고 중단되었다. 1949년에 재착공하였으나 댐코어 시공 도중 또다시 중단되었다. 그 뒤 홍수조절 외에 관개용수·상수도용수 공급 및 발전을 포함하는 다목적댐사업으로 계획을 조정하여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사업으로, 1962년 5월 제3차로 착공하여 1970년 7월 완공하였다. 낙동강 수계 최초의 다목적댐으로 높이 21m, 길이 975m, 부피 82만 5000㎥의 중심코어형 필댐(fill dam)이다. 상류 표면 경사는 1:2에서 1:2.2, 하류 표면 경사는 1:1.8에서 1:2 구배를 이룬다. 댐 우안은 길이 68.5m의 여수로구간 및 길이 30m의 발전소구간이 콘크리트댐으로 이어진다. 댐 마루는 해발 42m, 계획 홍수위는 해발 39.5m로 2.5m의 여유고를 보유하고 있다. 댐 지점의 유역면적은 2,285㎢, 댐에 의하여 형성되는 저수지는 진주시를 위시하여 경상남도 내 3군 9개 면에 걸쳐 있으며, 39.5m의 계획 홍수위에서 만수 면적과 총 저수용량은 각각 29.4㎢와 1억 8900만㎥이다. 이 댐은 계획 홍수량 초당 1만 570㎥를 사천만 방류와 저수지 조절에 의하여 남강 본류에 2,000㎥ 이하만을 방류함으로써, 남강 하류 연안 토지 5만㏊에 대한 홍수의 피해를 줄이고, 남강 하류의 7,500㏊와 낙동강 하류의 2,300㏊ 농경지에 연간 6천만㎥의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또한, 진주시와 사천 지구의 상수도 용수로 각각 하루 10만여㎥를 공급하며 최대 출력 1만 2600㎾의 전력과 연간 43Gwh의 발전량을 공급한다. 댐의 주요 시설물은 본댐 외에 초당 1만 570㎥의 계획 홍수량을 조절, 방류하기 위하여 문비 6문을 보유하는 여수로 시설과 홍수 때 사천만 방류를 위한 문비 10문을 보유하는 제수언 시설(制水堰施設), 연장 11㎞에 달하는 방수로 시설, 시설 용량 1만 2600㎾의 발전소 시설이 있다.
의령을 지나 진주로 진입하여 산청군 아래 진주시와 경계에 붙었다가 명석면에서 다시 진주로 진입합니다.
집현산은 보통 산청군 생비량면 현동마을에서 일곱개의 봉우리를 종주하더군요.
1구간 73.3km, 2구간 54.92km, 3구간 54.81km로 진양기맥 실거리 183.03km로 졸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김정호가 대동여지도 만들때도 이렇게 세밀하게 조사하고 관찰하지 않았습니다....
1000년뒤에 이 산행기는 국보급 보물이 될 것이니 책으로 출판하여 잘 보관하시기 바랍니다.
도깨비선배님!
불쑥 나타나서 너무 띄워주시니 불안불안 좌불안석입니다.^^
더 잘 하라는 격려로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거리 진양기맥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진양호가 너무나도 멋지고 푸른물이 인상이 깊었던 추억이 되살아납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선배님!
저도 그 지점에서 인증했습니다.^^
멋진 진양길이었고 그 덕분에 안의면, 거창읍, 합천읍, 의령읍, 집현산과 인연도 맺었네요. 감사합니다.^^
세번에 걸쳐 진양기맥을 마무리하셨네요.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자굴산 부터 수많은 봉우리와 재를 넘나들면서 날머리 진양호에 이른 감회가 느껴집니다.
비박텐트로 야영하는 모습도 보기에 좋습니다.
다음은 영산길로 드신다고요?..
진행하시는 산길마다 멋진 추억의 여정 기대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방장님!^^
처음엔 대의면까지 들어가면 쇠목재가 더 가까울거라 생각했는데 의령에서 직접 가는게 더 나았습니다.^^
부산에서 합천가는 직행은 의령읍-대의면-삼가터미널을 걸쳐 합천으로 가더군요.
의령읍~대의면 16km, 택시18,000원, 대의면~쇠목재 택시16,000원 인데 의령읍~쇠목재 택시18,000원 나오네요.^^
의령에서 밥을 먹으며 대의면 택시를 불렀다가 급히 다시 전화애서 안 오셔도 될것 같다고 의령에서 자고 곧바로 쇠목재로 출발하겠다고 했더니 나이 드신 분이라 그게 낫다며 이해를 해주시네요.^^
목디스크에 혼자서 그 먼거리를 ...거기에 어마한 방대한 자료를 수합하고 ..진짜 산 하나 가는 일행보다
더 자세히 언급해 놓으셨네요.
대단합니다.
건강은 본인이 챙기셔야할듯 빨리 목디스크나 낫도록 조치하시기를...
저는 10여년째 목디스크로 계속 저림을 느끼며 버텨내는데요..
이젠 이것도 내 몸의 일부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아무튼 건강유의하시고 즐거운 날이 계속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부케님!
오늘 작년에 치료받은 것까지 2년치 보험청구했는데 할인 받아서 납입한 총액이 370만원이 약간 넘네요.
목디스크는 첨부터 주사치룔 받는건데 첨단공포증 때문에 엄살떠느라 괜히 통증 기간만 연장시켰습니다.^^
어깨만 뻐근하지 않으면 다음 구간엔 침낭 가져갈려구요.
앞으로 2주 정도 더 치료받으면 완쾌될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일 중요한건 몸입니다
빨리 완쾌하셔서 즐거운 산행 계속 편안히 이어가시기를 응원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부케님! 거듭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낮은 자세로 원장님 진료받으러 병원 나와 있습니다. ㅋ~
병원 근처엔 얼씬도 안 할줄 알았는데 장담이 되고 말았습니다. 생각외로 근접해 지내네요.^^
제가 일이바쁘다고 대충보고. 다시한번보고 뎃글단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양기맥 졸업하심을 축하드림니다.
부뜰이운영자님!
영산을 언제 들어갈지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검곡치에서 삼면봉 올라서지 않고 임도를 따르면 수량동고개/들독재까지 편하네요.
중간중간 잡목과 넝쿨로 진행이 힘든 데가 보입니다.
단풍구경하며 적시에 맞춰 2구간 계획잡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