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치유
(20101029 연중제30주간 금. 루카 14,1-6)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1-6
1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2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3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6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대구 상동성당에서 90여분의 신자들이
특별한 휴가로 이곳을 방문한다.
청간정콘도에서 숙박을 하고,
양양 성글라라 봉쇄관상 수도원에서 미사를 드리고,
원통 글라렛재가복지센터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이곳 식구들과 함께 한다.
이분들의 이 특별한 휴가, 1박2일 동안
하느님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보여주고 싶다.
자연은 참 아름답다.
특히 요즘 설악산의 단풍 빛에 물든 동해바다가 무척 아름답다.
그러나 그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사람이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 가운데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은
관상수도자들이다.
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이들은 늘 주님께 자비를 청하며,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기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밀레의 ‘만종’ 그림에서
저문 들녘, 삼종기도를 바치는 농부들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처럼.
또한 이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청빈, 정결, 순명, 복음삼덕의 서원의 삶을 통해
천상 하느님 나라의 비유로서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봉쇄된 공간에서의 삶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교도소와 같은 삶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삶이기 때문에
비록 봉쇄된 공간에서의 삶이지만 가장 자유로운 삶이다.
그들은 ‘주님과 마르타와 마리아의 만남’ 이야기(10,38-42)에서
마리아가 참 좋은 몫을 택한 것처럼
참 좋은 몫을 택한 사람들이다.
수도생활에는 마리아의 삶과 같은 봉쇄관상 수도생활이 있고,
마르타의 삶과 같은 활동 수도생활도 있다.
글라렛 원통 선교공동체는 전형적인 활동 수도생활이다.
활동 수도생활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한 모델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활동 수도자들은 자신들이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직접 삶 안에서 이웃들에게 전하는 삶을 산다.
활동 수도생활은 마르타의 삶이 보여주는 것처럼
많은 혼란과 유혹이 있는 어려운 몫이다.
그러나 이들의 삶 또한 아름다운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직접 실천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청빈, 정결, 순명의 서원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의 참된 행복과 기쁨, 평화와 자유의 삶을 살기 때문이다.
이들의 활동이 기도에 바탕을 둔 기도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삶에 꼭 필요한 것은 주님께서 다 마련해주시기에
가난할수록 더 많은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가지 형태의 수도생활의 궁극적인 모습은
봉쇄관상 수도생활이다.
활동 수도생활도 결국은 관상 수도생활을 지향한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시편의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보여 주신다.
특히 가난과 소외와 온갖 시련과 병마로 고통 중에 있는 이들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는가를 보여 주신다.(13,16)
안식일법도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13,16)
하느님의 인류 사랑은 모든 것을 우선한다.
그리스도인들, 특히 수도자 성직자들은
하느님의 이 사랑을 체험하고
하느님의 이 사랑을 전하는 사람들이다.
기도와 사랑의 삶을 통해.
성직자, 교구 사제들은 기존의 믿는 이들, 신자들에게
교회를 통해 하느님의 이 사랑을 체험하고 전하게 인도한다.
수도자들과 신자들은 하느님을 모르는 이들, 비신자들에게
하느님의 이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전하게 인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