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석공 아사달은 신라로 와서 석가탑을 쌓는 역사를 맡는다. 그의 아내 아사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마침내 서라벌로 찾아온다. 당시 여자들이 불사에 기웃거리는 것은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금기시되었다. 승려들은 아사녀에게 석가탑 그림자가 못 영지에 뜨면 남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한다.
소설에는 아사달을 연모하는 귀족의 딸 주만이 등장하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시중의 아들이 삼각관계를 형성하여 긴장감을 더한다. 게다가 아사달 자체도 멀리 있는 아내 아사녀와 가까이 있는 주만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오락가락하여 독자들의 흥미를 배가시킨다.
도저히 아사달을 만날 수 없었던 아사녀는 마침내 자살하고 만다. 아사달은 드디어 석가탑을 완성한 후 물가 바위에 아사녀를 아로새긴다.
그때 주만이 처형을 당한다. 아사달은 바위에 주만의 형상도 아로새기는데, 문득 두 얼굴이 한데 녹아서 부처님의 모습으로 변한다. 아사달은 연못에 뛰어들어 스스로 죽음의 길을 간다.
〈무영탑〉의 사당파事唐派 수령 시중은 “얼굴빛이 노리캥캥한데다가 수염도 없이 얼른 보면 고자로 속게 되”는 모습이다. 그와 대립하는 국선도파國仙徒派 지도자 유종은 “긴 수염이 은사실처럼 늘어지고 너그러운 두 뺨에 혈색도 좋”다. 시중은 “깐깐하고 앙큼스럽고” 유종은 “팔팔하고 호방하여” “정반대”이다.
이 탓에 “초기 단편에서 보여주었던 사실주의적 기법과는 거리가 멀어 마치 고대소설에서의 인물묘사처럼” “도식적으로 인물을 미추美醜로 유형화시켜 선과 악의 외형적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다”(미주1)는 비판을 받지만, 현진건은 주인공 아사달까지도 그렇게 묘사한다.
“한낱 시골뜨기 석수장이”에 불과한 아사달을 소설은 “번듯한 이맛전, 쭉 일어선 콧대, 열에 뜬 것 같은 붉은 입술, 더구나 가을 호수를 생각게 하는 맑고 깊숙한 눈자위 (중략) 이렇게 청수한 풍채와 씩씩한 품위”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주만은 약혼자가 있으면서도 그런 아사달을 보며 “다보탑의 공교롭고 아름다운 점과 석가탑의 굵고 빼어난 맛이 쩍말없이 어우러진 듯”하다고 생각한다.
그뿐이 아니다. 주만은 “이 몸은 (골품 사회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이유로) 잡히기만 하면 (화형을 당해) 연기로 사라질” 신세라면서 아사달에게 “우리는 달아나야 합니다. 어서 서라벌을 떠나야 합니다!”라고 재촉하는, 기득권을 포기할 줄 아는 언행일치 인간형이다. 두 남녀 사이에 사랑이 움틀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무영탑〉의 시간은 겉으로는 태평성대이지만 속으로는 곪아터지도록 병이 든 누란지세의 시대이다. 경술국치 전후 친일파를 암시하는(미주2) 사당파와 자주자강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국선도 세력이 치열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세 속에서, 백제에서 온 석공 아사달 ‧ 그의 아내 아사녀 ‧ 신라 최고위층의 딸 주만 ‧ 그녀의 약혼남 경신 ‧ 주만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금성 ‧ 금성의 아버지이자 사당파 수령인 시중 ‧ 주만의 아버지이자 국선도 세력의 지도자 유종 등이 사건을 이끌어간다. 그 와중에 금성이 아사달을 암살하려 드는가 하면, 약혼녀를 아사달에게 빼앗긴 경신이 오히려 그를 구해내는 일이 펼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무영탑〉의 핵심 주인공 아사달은 소설 속 최고의 이중적 인간형이다. 그는 아내와 주만 사이를 줄곧 오락가락 하다가 두 여인이 모두 죽고 난 뒤 그들을 모델로 삼은 불상을 연못가 바위에 새긴 후 물로 뛰어들어 자살한다.✧ (1938-9년 발표)
미주1 : 김치홍, 《한국 근대역사소설의 사적史的 연구》
미주2 : 현진건 〈역사소설 제문제〉(1939) : 주제는 작정되었으나 현대에 취재하기 거북한 점이 있다든지 또는 현대로는 그 주제를 살려낼 진실성을 다칠 염려가 있다든지 하는 경우 역사적 사실에서 그 주제를 다루어낼 수밖에 없다. / 〈조선혼과 현대정신의 파악〉(1926) : 작품상의 무대가 현대라고 하여 더 현실적이고, 과거라고 비현실적인 관념은 도무지 성립이 되지 않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