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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occer cosmos 원문보기 글쓴이: 김기호
한국 축구계의 우상과 미신 시리즈 3
축구 재능(운동 적성)이 뛰어나야 성공할 수 있다 ?
작성자 : 김 기 호
축구 카페 http://cafe.daum.net/soccos
축구 현장에서 당자자로 참여하고 있는 감독 코치, 선수 자신 그리고 선수 학부모들 중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런 판단은 옳은 것일까?
여기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 보자.
물론 이 글은 글쓴 이의 주관적 의지가 많이 들어 있기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그렇다'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객관성이 부족할 수도 있다.거기다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억지 사례나 이론을 편협하게 차용했을 개연성도 있다.
이 점을 고려(감안)하여 읽어주기 바라며, 기대하기로는 이 글이 선수, 학부모, 감독 코치, 축구 관련 저널리스트,
축구매니아들의 축구에 대한 인식의 고양과 증폭 확산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선수 자신이 이 글을 읽고 --- 부모가 이 글을 출력하여 읽도록 선수에게 전해주세요 ---
' 나는 나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재능보다 나의 노력이 성공을 결정한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지기를 열망한다.
먼저, 몇몇 사례를 살펴볼까요?
게르트 뮐러 ?
뮌헨의 TSV 클럽의 감독은 게르트 뮐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 너는 축구로 성공하기 힘들 것 같으니,아예 다른 일을 찾아 보는 것이 더 낳을 것이다. "
그 당시 게르트 뮐러는 하루 열 두 시간씩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 11년이 지난 1974년, 땅딸막하고 숏다리의 이 선수는 결승골로 1974 뮌헨 월드컵 우승을 이루어 내었다.
분데스리가와 독일 국가 대표팀에서 이 선수보다 더 많은 골을 넣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축구, 그 빛과 그림자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유왕무 옮김 / 예림기획 / 2002.5.13 초판 1쇄 / P 248 중에서
(2002. 8. 9. 金. 19 : 31, 이 책을 1차 읽었는데 ' 한국에 이 저자만큼 다양하고 독창적인 축구 인식을 가진 축구인이 있을까? '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지금도 그러하다.)
'등에 눈이 달렸다'는 폭격기 게르트 뮐러? 그는 어떤 선수였던가?
지금까지 독일 분데스리가 최다 득점 선수, 1974 뮌헨 월드컵 결승골의 사나이
--- 당시 토털 사카라는 새로운 경기 방식으로 맹위를 떨치던 네덜란드는 결승전에서 이 선수의 한 골에 침몰했다.
이 충격으로 당대 최고라고 불렸던 네덜란드의 요한 크루이프는 다음 대회 아르헨티나 월드 컵 직전, 월드 컵에 출전하지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호나우두가 기록을 경신하기 전까지(15골)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14골) 보유...
아시겠지요?
그런 그도 청소년 시절에는 감독에게 이런 말을 들었던 거죠.
아깝다, 빌리의 자멸
당시 뉴웰스 올드 보이스 팀에는 레오(리오넬 메시) 말고도 구스타보 아리엘 로다스나 아카 빌리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있었지만 지금의 그들은 레오와는 정반대의 상황이거나 다른 분야의 길을 걷고 있다.단지 타고 난 재능만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사실이다.
탁월한 기술을 가지고 있던 1986년생 팀의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아카 빌리는 레오와 마찬가지로 로사리오 출신이기는
하나 빈민가에서 자랐다. 그가 15살 되던 해 빌리는 뉴웰스 1군의 후보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는 16살이 되기도 전에 아르헨티나 1부 리그에서 선수로 뛸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밝은 미래를 예견했다.
현재 22살이 된 그는 슬하에 2명의 아이를 두고 있고 사람들에게 그의 존재는 완전히 잊혀졌다.
베지오 씨는 말했다.
" 빈민가의 가정에서 자란 많은 선수들에게 빌리와 같은 경우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축구로 참담한 생활을 벗어 났다가도 결국에는 자신에게 익숙한 빈민가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죠.술과 마약에 찌들어 절망을 느끼기도 합니다.
결국 교육의 차이죠."
--- 축구의 메시아 메시 / 루카 카이올리 지음 강세황 외 옮김 / 중앙생활사 / 2010.6.23 초판 1쇄 / 12,900원 / P 50 중에서
호날두 ?
그러면 호날두는 어떠했을까요?
... 내가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책가방을 소파난 침대에 집어 던진 다음 바나나 하나와 요구르트 하나를
집어 들고 요구르트 곽 위에 구멍을 내고는 축구공을 겨드랑이에 끼고 거리로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그랬다.나는 주로 거리,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가 태어난 퀸타 도 팔카오 Quinta do Falcao 거리에서 축구를 했는데,
우리 동네에는 운동장이 없었기 때문이다.나와 -- 그 당시 대여섯 살 정도 되었을 것이다 -- 친구들은 경사가 심한 곳이었지만 돌멩이 두 개를 축구공 골대 거리 만큼 늘어 놓고 골대 삼아 거리 한복판에서 축구를 했다.차가 다니는 도로였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차가 오는 지 조심해야 했다.버스가 우리의 거리 축구장으로 다가올 때마다, 버스는 잠깐 멈춰 서서 기다렸다가 우리가 골대를 치운 뒤에야 비로소 운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그러면 우리는 다시 골대를 갖다 놓고, 또 차가 오면 골대를 치우고, 이런 식으로 반복하면서 축구를 했다.이런 식의 길거리 축구는 5 ` 6년 정도, 그러니까 내가 마데이라를 떠나 리스본으로 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그것도 어머니가 소리쳐 불러서야 겨우 집으로 향했다.
---최고의 순간/호날두,마누엘라 브란다오 지음 박영민 옮김/랜덤하우스/2008.12.17 초판 1쇄/15,000원/PP58 ~59 중에서
하나 더 소개하죠.
레알 마드리드의 이케르 카시야스의 말을 들어 보자.
" 레알 마드리드에서 호날두보다 빨리 훈련장에 도착하는 선수는 없다.가끔은 ' 이 녀석이 훈련장에서 잠을 잤나 '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우리는 호날두가 언제 훈련장에 도착하는지조차 모른다. 팀원 가운데 호날두보다 일찍 훈련장에 도착하는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
호날두는 보통 예정 시간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훈련장에 도착한다.선수들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팀 훈련에서 할 수 없는 기술들을 홀로 연습한다.어렸을 때는 드리블 연습을 했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는 프리킥을 주로 연습했다.카를로스 케이로스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수석 코치는 " 전세계 모든 축구 선수들이 호날두처럼 행동한다면 세계 축구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질 것 " 이라고 말한다.
--- 우리는 왜 호날두에게 열광하는가 / SPORTS ON 2010년 10월호 P 77 중에서
그러면 마라도나는 타고 난 재능으로만 성공했을까요?
▲ 당신네 식구의 가난은 끝났소!
1960년 10월 30일, 마라도나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의 8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사 준 축구공을 끼고 잤던 마라도나는 새벽 3시에도 일어나 볼과 씨름했다.
아침 식탁에 앉을 때는 기진맥진하곤 했다.
그가 이른바 동네 축구에 몰두하고 있던 9살 때, 아르헨티나 유소년 대표팀을 지휘하고 있던 프란시스코 코로네요
트레이너에게 유년부의 한 선수가 찾아와 “내 동네 친구 좀 가르쳐 달라”고 당부했다. 마라도나를 테스트한 코로네요는 믿기
어려운 재주에 감탄을 하고 가족을 찾아가 “당신네 식구의 가난은 끝났소. 이 아이가 먹여 살릴 것이요.”라고 말한 뒤
수제자로 삼았다.
1974년 아르헨티노스 푸놀스라는 작은 축구 클럽에 첫 발을 디뎠을 때부터 그는 팀의 에이스로 대접 받았으며 2년 뒤인
16세 때는 이미 1부 리그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977년 2월 헝가리 국가 대표팀과의 경기에 아르헨티나
대표 선수로 당당히 출전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나이 16세 4개월 때의 일이다.
1부 리그에 편입되자마자 그는 2년 거푸 득점왕으로 뛰어 올랐으며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서는 최종 후보 25명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가 마지막 단계 22명의 명단에서 제외되었는데(디에고 마라도나, 빅토르 보타니스, 움베르트 브라보) 그 이유가
경험 부족 때문이었다. 세자르 루이스 메노티(Cesar Luis Menoti)감독은 특별 성명까지 내고 “머지 않아 세계 제1의 축구
선수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 킥 오프 / 김기호 지음 / 삼보출판사 / 2005.8.8 초판 1쇄 / 10,000 원 / P 77 중에서
무대를 한국 축구로 옮겨볼까요?
안익수 부산 아이파크 감독 ?
1983년 늦가을. 문일고 2학년 안익수는 맹랑했다.
어느 대학에 갈지 고민하던 또래와는 달리 그는 축구부 감독을 찾아가 "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 "며 테스트를 요구했다.
고2 때 축구를 시작한다는 건,고2 때 공부를 시작해 대학 입시를 치르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일이다.그는 " 처음 몇 년간은
볼 리프팅도 못해서 후배들에게 라면을 사줘 가며 배웠다."고 말했다.... 오전 오후 두 차례의 팀 훈련과는 별도로 새벽과
야간에도 쉬지 않고 개인 훈련을 했다.안 감독은 " 그때는 반쯤 환각 상태였다."며 껄껄 웃었다.기술과 기본기는 부족했지만
성실함으로 이를 이겨 냈다.안감독은 "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1989년 성남 일화 축구단 창단 멤버가 됐다.그보다 볼 리프팅을 잘한 고교 대학 동창 중에는 프로에 입단한 선수가 없다.
성남 일화의 리그 3연패(1993 ~ 1995)를 이끌었고 국가대표로 뽑혀 94 미국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 " 별 보고 훈련 시작, 별 보고 끝내
대학시절 반쯤 환각상태였죠 " , 중앙일보 / 2009.7.18.土.31면 / 이해준 기자
곽태휘(울산현대, 국가대표) 선수도 대구공고 2학년 때 축구를 시작, 한국 최고의 중앙수비수로 활약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어릴 때부터 타고난 재능으로 언론을 장식한 선수들이 있다.
김병수 선수?
미동초등 시절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는 당시 보는 사람들마다 축구천재라고 불렀습니다.
지고 있던 경기도 교체 순간부터는 경기를 지배하며 뒤집었죠.그렇게 잘 하니까 감독이 가만 내버려 둘리가 없겠죠?
계속 뛰고 뛰었죠.뛰고 또 뛰고 그래서 발목 인대가 늘어났어요.보통 0.6 인치만 늘어나도 심하다고 하는데 양족 발목 인대가
1인치씩이나 늘어났다고 하니 심했죠.발목 인대 수술을 하고 회복되나 싶었는데 재활훈련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도 경기에
나갔답니다.고연전(김병수는 고대 소속)에서 고려대가 지고 있었는데 김병수가 투입되었죠.
그리고 바로 역전해서 고려대가 이겼습니다.
1992년 바로세로나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될 때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은 김병수를 보고 " 50년 만에 만난 축구 천재 "라고 평했어요.그리고 1992년 1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벌어진 올림픽 최종 예선 일본전에서
김병수는 종료 직전 극적인 결승골을 넣었죠.골을 넣을 당시 김병수는 "공을 약간 빗겨 찼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몸보다
머리로 먼저 생각하고 몸까지 따라주는 천재였죠.그때 골을 넣은 김병수는 그라운드에서 뮤슨 말인가를 계속 소리질렀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선수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지금은 지방의 모 대학에서 감독으로 있지요.
세계의 쟁쟁한 선수들을 보아온 크라머 감독(독일)이 50년 만에 만난 축구 천재라고 평했던 재능이 부상으로 축구를 접어야
했던 거죠.
(참고로, 선수가 다쳐도 감독 코치는 책임져주지 않으며 책임질 수도 없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몸이니까요.
하여 선수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호해야 합니다.부상 주인데 감독이 경기하라면?
어쩔 수 없이 경기장에 들어가지만 부지런히 뛰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설렁 설렁 뛰면서 일부러 실수를 계속하세요.그럼 교체시켜주죠.
김병수 선수 사례에서 보듯이 경기는 앞으로 무수히 있지만 경기를 수행하는 선수 몸은 단 하나 뿐이죠.
우승도 예선 탈락도 다 지나 가는 과정일 뿐,
목표는 싱싱한 몸으로 프로에서 가치를 발휘하는 것이죠.)
고종수 선수?
역시 천재 중의 천재로 기대를 한몸에 받았죠.
국내 무대인 k - 리그에서(수원 삼성)는 우승도 하고 활약이 좋았죠.
월드컵에서는 딱 한 경기를 뛰었을 뿐이죠.1998 월드컵 때 네덜란드전이죠.
세계 축구의 중심 무대인 유럽에는 진출하지도 못했죠.
최성국 선수?
역시 고교 시절 초고교급으로 평가된 천재였죠.
2002 한일 월드컵 전 국가대표 외에 연습 선수로 선발되어 대표팀과 같이 연습했죠.
정조국 선수도 이 케이스였죠. 차세대 선수를 육성한다는 목적으로...
최성국 선수도 국내용이었고 아시는 그대로 '승부조작 사건'으로 축구계에서 영구제명되었죠.
이 정도로 하죠.
선수가 크게 성공하기 위해 갖추어야할 요소는무엇일까요?
물론 사람마다, 감독 코치마다 조금씩 다를 것입니다.
현재 대부분의 한국 지도자는 키 크고 주력이 빠른 선수를 선호합니다.
이게 어느 정도 타당도와 신뢰도를 가지고 있을까요?
선수는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요?
카페지기는 확고하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첫째가 근면과 열정입니다.
이 이상의, 이보다 뛰어난 재능은 없습니다.
카페지기가 이 세상 최고의 감독이라고 존경하는 존 우든 감독(前 미 ucla大 농구 감독)도 이렇게 말하죠.
세상 일이나 축구나 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부지런하면 이루어지고 열정이 있으면 목표를 달성코자 행동하게 마련이죠.
천재의 가장 뚜렷한 2대 특징이 바로 근면과 열정입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에디슨)에 동의하나요?
하나의 보기로, 어떤 사람이 아무리 지능지수가 높아도(140 이상을 특별한 지능으로 인정하고 있음)
그가 학문을 싫어한다면 결코 학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역으로 평범한 지능이지만 공부가 좋고, 그 길로 계속 가면
세월 속에서 업적을 내는 학자가 되어 있게 마련입니다.
선수는 스스로 개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둘째, 학습 능력입니다.
팀 연습 때 배운 것과 스스로 익혀야겠다고 생각한 과제를 선수 자신의 경기력으로 만드는 능력이죠.
이 역시 근면과 열정, 이 둘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셋째, 타고 난 축구 재능(운동 적성)이죠.
근면과 열정, 학습 능력보다 덜 중요한, 뒤에 있는 요소죠.
현실은?
타고난 축구 재능이 탁월해야 크게 성공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선수 자신, 선수 부모, 감독 코치, 축구전문가, 축구매니아들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축구 역사 이래 어릴 때부터 촉망받던 유망주가 성공한 경우는 생각보다 매우 낮습니다.
반대로 재능은 평범했지만 날마다 근면과 열정을 높여간 선수는 거의 다 성공했습니다.
지속적인 것이 혁신의 성공 여부를 결정합니다. 한달 열정, 1년 열정으로는 성공할 수 있을까요?
놀라운 사실은?
축구 재능이 고정된, 변화하지 않는 게 아니고 연습으로 계속 향상된다는 점이 의학계에 밝혀져 있습니다.
동시에 천부적인 재능도 연습을 게을리 하면 퇴화되죠.
무엇보다 확실한 건
평범한 선수가 근면과 열정으로,치열한 연습으로 한 계단씩 높여간 경기력은 기복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 수준 이상의 경기력을 보여 주죠.
" 공든 탑이 무너지랴 ! "라는 속담 그대로죠.
예사롭지 않은 교수학습이론인 '완전학습의 이론'에서도
성적(경기력)을 결정하는 여러 요소 중 학습 적성(타고난 축구 재능)보다
학습에 사용한 시간(개인 시간 최고로 활용)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카페지기는 축구 재능이 뛰어난 선수보다 재능이 평범해도 근면, 열정이 있는 선수를 더욱 높이 치죠.
사실 이런 선수를 성공시키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죠.
선수 재능 타령하는 감독 코치는
" 나는 선수 지도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 "라는 고백에 다름 아니죠.
정리해볼까요?
1.가장 바람직한 건 근면 열정, 학습 능력에다 천부적인 재능이 더해지는 거죠.
2. 대선수기 되는데 축구 재능보다 근면 열정, 학습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니 모든 선수는 " 저 선수의 번뜩이는 재능이 부럽다,' 니
" 나는 운동 적성이 이래서 성공하지 못할거야." 등 이런 생각은 지금부터 말끔히 청소하길 바란다.
오직 근면과 열정을 날마다 키워 가느냐,에 집중하길 바란다.
이상은 카페지기( http://cafe.daum.net/soccos )의 견해입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잘못된, 여러 오류를 가진 글일 수도 있습니다.
높은 타당도와 객관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양한 의견과 서로 다른 입장을 존중하며 생각을 전개하는 자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무엇보다 축구 재능 부족하다고 고민하는 선수에게 이런 걱정을 씻은 듯이 해결해주는 글이기를 희망합니다.
가을이 심원하게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을 만나는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힘써 페어 플레이를 하고
노력으로 날마다 행복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합니다.
"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행복하기로 마음 먹은 그순간 정말로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링컨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