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 와인이란? What is Vin de Garage(Chateau de Garage) ?
글: 백은희/독일 공인 소멜리에
2000년 한국극장가에 선보였던 ’102 달마시안’ 에서 좋은 연기로 큰 찬사를 받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영화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유(Gerard Depardieus)가 루아르(Loire) 지방에 이어 2002년 보르도의 메독(Medoc)의 와인사업에 투자함으로써, 당시 그의 이름을 스크린에서 뿐 아니라 향후 프랑스 유명 와인 생산업자 리스트에서도 발견되지 않을까 했던 염려가 이제 기정 사실화 되고 있다.
유럽의 와인 온라인 저널인 와인플러스(wine-plus)에 의하면 올해 보르도 생떼밀리옹(St.-Emilion)의 스타 와인메이커 장 뤽 뛴느뱅(Jean-Luc-Thunevin)에서 개최된 보르도 와인시음회에서 첫선을 보인 그의 2002년산 프레미어(Primeur)메독 와인 ’나의 진실(Ma Verite)’을 두고 최고의 ’차고 와인(Vin de Garage)’ 이 탄생했다고들 이구동성으로 찬탄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고 전한다. 더욱이 생산량이 겨우 5천병 밖에 미치지 못한 이 와인은 이미 병당 가격이 약 100 유로에 잠정 거래되고 있으나, 시장추이에 따라 장래 어떠한 가격 상승 곡선을 그리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한때 루아르 지방에 그가 소유한 사또 뒤 띠뉴(Chateau du Tigne) 와인이 세계적인 와인비평가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Jr.)에 의해 94포인트로 평가받아 이미 와인메이커로서 잠재력을 확인하기도 한 그는, 올해 또다시 남프랑스 랑귀독 지방의 작은 와인도시 아니안느(Aniane)에 포도원을 인수해 최고의 ’차고 와인(Vin de Garage)’을 만들어 보겠다는 포부를 밝혀 다시한번 세간의 화제를 뿌리고 있다.
하면 드빠르디유가 욕심을 냈던 ’차고 와인’이란 과연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마땅히 월드 베스트 스포츠카 페라리(Ferrari)나 포르쉐(Porsche)가 들어 앉아야 할 샤또의 차고안에 와인이 웬 말인가!
사실 어휘 그대로 받아들여 단순히 차고(Garage)에서 양조되어진 와인으로 해석한다면 일단 의미 이해에는 커다란 착오가 없을 것이다. 즉 수확된 포도를 샤또 창립 시기의 구조와 규모를 고려하여 샤또 본체에 딸린 차고 형식의 작은 건물 내에서 프레스하고 숙성시켜 생산된 대단히 적은 양의 와인을 전형적으로 차고 와인이라고 간결하게 정의할 수 있다. 차고와인은 물론 보르도나 캘리포니아의 유명 그랑크뤼급 샤또의 쎌라처럼 환상적인 조명과 일련의 부띠크 쎌라를 연상시키는 화려함과는 비교되어질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지만, 그 위상을 단지 어휘만으로 예사로이 판단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 와인 소비시장에서 현재 이 차고와인에 대한 주목과 평가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 그 현실이다. 좋은 예로 대표적인 차고와인의 원조 중 하나로 일컬어지고 생떼밀리옹 지역의 사또 까농 라 가펠리에르(Chateau Canon-la-Gaffeliere)의 오너이기도 한 독일 남부출신 귀족 스테판 그라프 폰 나이페르그(Stefan Graf von Neipperg)를 일약 보르도의 스타 와인메이커로 만든 라 몽도뜨(La Mondotte)의 경우, 시장에 출시되기도 전에 이미 이 와인을 소유하려는 일부 극렬 와인 매니아들과 와인 거래상들간에 소유 공방전의 뜨거운 타겟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품절로 인해 사실상 공식적인 유통 경로를 통한 조달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소유 공방전과 희소성은 세계 와인시장에서라 몽도뜨 와인의 파격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겼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차고 와인의 기원은 세계 와인사에서 사실상 80년대 말, 특히 90년대 초반에 이르면서 그 장르가 형성된 것이 정설이다. 특히 와인 애호가인 드빠르디유처럼 유명 영화예술인, 경제인, 스포츠인, 패션 디자이너 등 소위 사회적으로 명망과 경제력을 소유한 이들이 와인을 애호한 나머지 자신이 직접 와인메이커가 되어보고자 포도원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 직접적인 시조였다고 볼 수 있다. 본래 취미 차원에서 단지 샤또 오너의 자기성취 욕구로 허름한 창고에서 양조된 것을 자신의 개인적 이미지 레이블을 붙여 주위의 친분있는 지인들과의 파티석상에서 선보였다가 우연히 그 우수한 잠재력이 확인되어 몇 년 후 국제적인 와인품평회에서 입상과 함께 수퍼와인으로 탄생되어 지는 것이 그 전형적인 프로세스였다. 하지만 이러한 ’차고와인’ 이란 용어는 이제 전형적인 차고 개념을 탈피해 국제적으로 전통적, 역사적 요소들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 능동적인 양조철학을 바탕으로 획기적이고 우수한 품질의 와인을 만드는 소규모 신규 와이너리들을 통상적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그 사용영역이 보편화된 것이 사실이다.
유럽의 저명한 와인저널리스트인 엠. 쇠르만(M. Scheurmann)에 의하면, 만약 샤또 페트루스를 소위 컬트(Cult) 와인의 아버지로 본다면, 차고와인의 어머니로는 단연 샤또 르팽을 꼽을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70년대 말 이미 오래 전부터 비유 샤또 쎄르땅(Vieux Chateau Certan)을 소유하고 있던 띠앙퐁(Thienpont) 가문은 포도재배의 엘도라도 라고 불리우는 뽀므롤 지역에 마담 로비(Madame Laubie)의 소유였던 수령이 오래되고 단일 멜롯 품종으로 구성된 약 1헥타아르 규모의 포도원을 사들였다. 샤또 페트루스의 양조철학을 모델로 삼아 최고 와인만을 고집했던 의지로 수확된 포도는 바로 샤또 내 검은 소나무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진 한 허름한 건물(이 이미지로 인해 샤또 르팽이란 이름이 유래함)에 딸린 차고안에서 79년 첫 르팽을 탄생시켰다. 더욱이 파커가 82년산 르팽을 100포인트 만점으로 평가했을 즈음 겨우 5천병 밖에 없었던 재고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시점으로 약 1500% 가격 상승을 기록해 전설적인 르팽 신화를 창조했다.
르팽 신드롬(Syndrom)을 계기로 인식된 차고형 사또(Chateau de Garage)의 새로운 모드(Mode)의 탄생은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에 이르는 동안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일련의 자기 성취욕이란 명목 아래 특정 계층을 기준으로 와인 산업사에 새로운 자리매김을 유도하였을 뿐 아니라 현대 와인사에 새로운 스타 와인너리들을 탄생시키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 뉴 와인메이커들이 기존의 오만불순한 그랑끄뤼 샤또들의 카리스마에 도전장을 내고 이에 대항할 수 있는 우수한 와인을 만들어 보겠다는 결의는 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 준 것으로 높이 평가 되어질 수 있다.
이 중 아마도 차고에 페라리(Ferrari)와 맞바꿀 수 있는 와인을 만든 이로 쌍떼밀리용의 샤또 발랑드로(Valandraud)의 장-뤽 뛴느뱅(Jean-Luc Thunevin)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승진 누락에 대한 실의에 빠져 은행을 사퇴하고 쌍떼밀리용 시내에 작은 레스토랑과 네고시앙을 운영해오던 장-뤽은 스스로가 양조업자가 되어 보겠다는 생각으로 1989년 쎙 떼밀리용에 약 0.6ha의 작은 포도원을 매입하게 된다. 전통 와인 가문 출신이 아니고 소위 와인업계의 외인구단으로 통하는 그는 샤또 내 퇴색과 낡음이 완연한 한 헛간에서 철저한 관리하에 수확된 포도로 1991년 비로소 그의 첫 와인을 선보이게 된다. 당시 작황의 어려움과 함께 생산량이 겨우 1,500병으로 한정될 수 밖에 없었으나 출시되자마자 이미 200프랑으로 판매가격이 형성되는 이변으로 주위의 유명 샤또들의 머리를 흔들게 만들었으며 3년 뒤인 1993년 감미롭고 잘익은 검은 체리, 카시스 과일향 등으로 파커의 마음을 사로잡은(93포인트) 이 와인은 장-뤽을 일약 보르도 와인 업계의 신데렐라로 탄생시켰다.
하지만 ’차고형 샤또(Chateau de Garage)’ 와인의 명성이 과연 이 정도로 쉽게 이루어졌을리 만무하다. 그것은 바로 최적의 경영마인드와 양조 카운셀링을 조언한 플라잉 와인메이커의 역할 이외에도 그들 나름대로의 최고의 와인만을 고집했던 오너의 투철한 양조철학이 반영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우선 그들이 선정한 캐릭터가 강한 떼루아로 이루어진 약 2헥타아르 미만의 미니 포도원은 노동집약적 영농 형태를 탈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의 소수의 노동력만으로도 인텐시브한 포도 생장 관리를 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특히 의도적인 포도수확량의 리미트(Limit)의 부여는 토양으로부터 포도로 미네랄성분이 집중하도록 유도하였고 더불어 포도 수확시에도 단지 건강한 포도만을 엄선하여 직접 손으로 수확하여 고품질의 와인을 탄생시켰다. 비록 외관상으로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차고로 보이지만 그 내부에는 자연 전통을 고수한 초현대적인 양조시설을 도입, 즉 스테인레스 탱크 발효를 배제하고 자연, 전통적인 방식에 의한 참나무오크 발효 유도, 그리고 프랑스 최고 품질의 새 참나무 숙성 오크통의 사용, 물론 샤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숙성후 필터링을 생략하고 직접 병입하는 방법으로 전형적인 최고의 와인을 생산할 수 있었던 인프라(Infra)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차고와인 성공의 뒷배경이다.
복고적이지만 진보적인 양조상의 기술적 요소들 이외에도 차고와인을 세계 최고 와인리스트에 낄 수 있게 한, 즉 무명에서 일약 신데렐라로 둔갑시킨 마법사의 역할을 했던 것은 역시 정보 전달의 매개체인 저널리즘이다. 일련의 전문 저널리스트들이 의도적으로 이러한 Vin de Garage만을 발굴해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것도 더 이상의 공공연한 비밀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특성 있고 연례적인 와인 비평 행사를 통해 그 우수성을 인정받게 함은 물론 세계와인시장과 애호가들에게 이 와인의 존재를 인식시켜주는 와인 저널리스트의 숨은 역할 또한 차고와인의 빼놓을 수 없었던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와인 비평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파커의 입맛을 놀라게 할 수 있다면 이미 와인 귀족으로의 획기적인 신분 상승을 보장받은 것이라 보아도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물론 이런 블록바스터 와인에 대한 소유욕을 가진 일부 와인 매니아들의 치열한 신경전에 와인메이커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손을 들어 환호할 수 있지만 다른 한편, 이곳 보르도지역을 대표하는 와인 양조자 연합회나 주요 네고시앙들은 이러한 트렌드(Trend)에 대해 대단히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우선 무엇보다도 차고와인(Garagewine)이 와인 본연의 의미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와인은 즐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데 일련의 매니아들처럼 투자를 위한 수집대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보르도의 차고와인을 만들어내는 샤또들이 장래 소위 컬트(Cult)와인으로 발전하면서 가격 형성의 극대화는 보르도가 터무니없이 값비싼 와인만을 만든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성시킬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현재 와인의 소비추세가 긍정적인 이 시점에서 와인문화의 대중화에 깊은 저해 요소로 대두될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이런 개혁의 의지를 내세우는 차고 와이너리들이 소위 세계적인 플라잉 와인메이커들의 컨설팅에 의해 와인 맛 본연의 아이덴티(Identy)를 상실하고 획일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와인비평가 파커로부터 혁명적인 평가를 받기 위하여 그가 선호하는 다시 말하자면 대단히 집중되고 공통적으로 과일 성향이 강조된 맛(fruity)의 획일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구미를 맞추려는 이러한 와인 맛의 획일화 현상은 궁극적으로 각 와인이 갖고 있는 본질적인 맛의 특성을 간과할 뿐 만 아니라 장래 기존의 떼루아와 빈티지의 의미가 점차 상실되어질 것이라는 우려 또한 언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