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의 첫 본문은 변화산 설화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셨는데, 거기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다는 이야기이기에 학자들이 ‘변화산 설화’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설화에는 엘리야와 모세가 등장합니다. 오래 전에 살았던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그들이 율법과 선지자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곧 사라지고 예수님 홀로 남아 계십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나타내는 설화입니다.
이 본문은 마태복음 17장에도 내용의 변화 없이 거의 그대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이 설화에 대해 강해할 때 바로 이 메시지, 그러니까 율법과 선지자의 시대에서 예수님의 시대로 옮겨갔음을 알리는 것이 이 설화가 기록된 목적이므로 이 메시지의 뜻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직도 우리 한국 교회 강단에서는, 이 본문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영원한 천국에서 이렇게 변화된 모습으로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며, 먼저 와 있는 모세와 엘리야가 우리를 맞이할 것이라고 설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자의 의도와는 한참 거리가 먼 얘기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셨다는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에게 호소합니다. 자기 아들에게 말을 못하게 하는 귀신이 들려 있어서 귀신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아무데서나 아이를 거꾸러뜨리는데,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지면서 물에도 뛰어들고 불에도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내쫓아달라고 부탁했는데 내쫓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증세로 보아 아마도 뇌전증, 흔히 쓰는 말로 간질병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7장에 기록된 같은 내용의 본문에서는 ‘아이가 간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으니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예수님께 부탁하는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귀신을 꾸짖고 쫓아내시자 이 일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하고 여쭙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이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8~29절을 보겠습니다.
28 예수께서 집 안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따로 그에게 물어 보았다.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2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런 부류는 기도로 내쫓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내쫓을 수 없다."
이어서 마태복음 17장 19~20절을 보겠습니다.
19 그 때에 제자들은 따로 예수께 다가가서 물었다. "왜 우리는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까?"
20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산더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면 그대로 될 것이요, 너희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에는 간질병처럼 일종의 발작현상을 동반하는 질병은 신이 들려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신의 영역에서야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본문 속에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기도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고, 마태도 ‘믿음으로만 해결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해서 현대 의학은,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신경정신계의 이상으로 나타나는 질병이라고 진단합니다.
큰 병에 걸린 신자들 중에, 병원 치료를 거부하고 기도로 낫겠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국은 믿음으로 가고 대학은 실력으로 간다.’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 분들이 자식의 입시문제를 놓고 새벽기도도 하고 철야기도도 하지만, 대학은 열심히 기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야 갈 수 있는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풍자하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마음의 병은 기도로 고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에 찾아온 병은 병원에서 고쳐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을 착각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자신이 고난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뒤에 살아날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 말씀을 깨닫지도 못했고 예수께 묻기도 두려워했다는 기록이 이어집니다. 이 본문은 예수께서 예언하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에 만들어진 수난사화의 도입부라고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고대 그리스나 이집트의 신화에는 죽은 신이나 영웅이 부활하는 장면이 자주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 아니라,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이집트의 신 오시리스처럼 예수님도 그렇게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는 당시 예수사람들의 희망사항이 입으로 전해지고 전해지는 과정을 거쳐서 실제 일어난 일이라고 믿게 되었고 복음서에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서열을 다투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은 열 두 제자를 불러놓으시고 자신을 낮추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큰 사람이며, 어린 아이를 귀하게 여기고 돌보는 것이 예수님 자신과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면서 약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관심과 돌봄을 요청하십니다. 같은 본문을 담은 마태복음에는,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다른 무리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38~41절을 보겠습니다.
38 요한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가 그런 일을 하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39 그러나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쉬이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41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이름으로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본문에는 마가복음이 기록될 당시의 상황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서기 70년대에는 지역별로 다수의 예수공동체가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경쟁관계에 있기도 했을 것이고 견해 차이도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 마가공동체가 결정한 내용을 예수님의 입을 빌어 기록한 것이라고 진보적인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따르는 공동체라면 배척하지 말고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9장의 마지막 본문은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42~47절을 보겠습니다.
42 "또 나를 믿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그 목에 연자맷돌을 달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낫다.
43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손을 가지고 지옥으로, 그 꺼지지 않는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지체장애인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4절 없음)
45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려라. 네가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저는 발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46절 없음)
47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 차라리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
이 본문에는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을 염려하는 교회지도자들의 고뇌가 담겨있습니다. 태동된 지 얼마 안 되는 교회공동체가 구성원들 간의 갈등으로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강력한 권고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48~50절에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48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을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49 모든 사람이 다 소금에 절이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너희는 무엇으로 그 짠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너희 가운데 소금을 지니고,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서로 화목하게 지내어라.’ 이것이 이 본문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고대 사본들에는 44절과 46절이 거의 없고, 후대 사본에는 44절과 46절에 48절과 같은 본문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마가공동체가 말하는 ‘작은 사람들’ 곧 초신자들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 자들은, 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 떨어져 구더기에 파먹히게 될 터이니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는 초대교회 지도자들의 강력한 권고의 메시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