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70세 이후의 건강은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천수(평균연령)를 누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나이에 접어들면 두뇌, 오장육부, 사지, 구공 등 오감에 고장이 나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70을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逾矩)라 규정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본 70대는 여생을 즐길 수 있는 무소유의 기간으로 어떤 행위를 하여도 기본 틀에서 벗어남이 없이 자유자재로울 수 있는 기간으로 본 것 같다. 이 말씀을 할 그 당시 동양인의 평균연령이 아마도 50-60세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덤으로 살아야 하는 남은 시간을 값있게 그리고 자유스럽게 사용하라는 뜻이 그 말씀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즈음의 종심소욕은 80세 쯤 되지 않았을까? 자연생명이 20여세나 연장된 오늘 우리 노년층은 자아의 건강에 대해서 스스로 짚어보지 않으면 부모로부터 부여받은 생명을 불건강한 상태로 살아야만 하는 무의미한 삶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무직에 일생동안 종사했던 사람들은 운동의 절대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유종의미를 장식하는 노미(老美)를 유지하지 못하고 노추(老醜)의 모습으로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늘 족건(足筋) 수술차 수원으로 떠나는 계정 정창석 원장을 배둔터미날에서 전송하면서 느낀 바 있어 <退溪活人心方>을 여기에 요약하여 게재해 두게 된 것이다. 나는 계정과 함께 노년지미를 장식하다가 미련없이 훌훌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조속한 쾌유를 기원한다.
성인은 질병에 걸리기전에 미리 손을 써서 다스리고, 의사는 병이 난 연후에야 고치는 것으로 전자를 치심(治심) 또는 수양(修養)이라 하고, 후자를 약이(藥餌)라고 부른다. 병을 다스리는 치병(治病)에는 투약과 식이요법의 두 가지가 있지만 병의 근원은 한가지 밖에 없는 것이니, 그 한가지 방법이 마음을 다스리는 즉 치심(治心)인 것이다. 병을 다스리는 치병법(治病法)은 의사에게 맡기고 여기에서는 양생법(養生法)과 치심법(治心法) 그리고 도인법(導引法)에 초점을 맞추어 그 요지를 간추려 본다.
一. 養生法
1. 비장(脾)은 음악(音樂)을 좋아한다.
2. 술은 사람의 성정을 즐겁게 하여 혈맥을 잘 통하게 하나 지나치면 풍(風)을 불러들이고, 신(腎)과 장(腸)을 해친다.
3. 사람이 앉거나 누울 때 바람(風)이 있으면 피해야 하며 그냥 견디고 지내치면 후유증이 생긴다.
4. 오미(五味)를 알맛게 사용하면 심신이 상쾌해지지만 과용하면 각 장부에 손상을 초래케 한다.
5. 어떤 일이라도 쉬지 않고 장시간 계속하게 되면 심신에 장애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순간순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
6. 정신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일수록 운동량이 부족하여 당료같은 각종 현대병에 걸리기 쉽다. 혈맥이 통하도록 운동을 해야 한다.
7. 취침시 옆으로 무릎을 구부리고 자면 잠에서 깨어날 때 정신이 흩어지지 않는다. 숙면을 통해 재충전해야 한다.(펀집자주)
8. 매일 자주 머리를 빗으면 풍이 없어지고 눈이 밝아진다. 평이한 일을 하기가 더욱 어렵다.(편집자주)
9. 잠잘때 불을 켜지 말 것이며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취침시 생각이 많으면 헛꿈을 꾸게된다.(편집자주)
10.여름철일수록 음식을 끓여서 먹어야만 토사곽란을 피할 수 있다. 아이스크림을 장복하는 것은 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첨주)
11.입안에 고이는 물을 옥천(玉泉)이라 한다. 이 옥천의 맑은 물을 영근에 계속 보급하면 장생할 수 있다. <침의 중요성>
12.두손을 마주대고 뜨겁게 부벼서 27번 눈을 닦으면 눈병이 없어지고, 이마를 문지르면 얼굴에 광택이 난다.
13.앉아있을 때 양손을 넓적다리 위에 올려놓고 어깨를 좌우로 수십번식 쳐주면 혈기가 통하여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
二. 治心法
치심법에는 선교적, 도교적, 불교적, 기독교적 그리고 유교적 다양한 것이 있으나 유자(儒者)였던 이퇴계선생은 자신의 건강관리법을 경험적으로 정리해 둔 것이 있는데 이를 <퇴계활인심방>이라 한다. 이는 그의 경공부(敬工夫)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그는 마음을 신명의 집으로 그 가운데가 비어있는 것으로 인식한 것 같다. 크기는 몇치에 불과하지만 신명이 거기에 거처하면서 욕(慾)을 콘트롤하는 핵심기관이다. 따라서 마음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지만, 다음과 같이 형상화한 경우도 있다. 즉 "마음은 생각이 흩어져 어지러운 경우가 많다. 놀라거나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거나 기뻐하거나, 성을 내거니 하게 되면 하루에도 몇번식 불 같이 뜨거워 짐을 체감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신(神)이 머물지 않으면 그 신이 그 화기에 의해 좀먹게 되고, 마음에 명(明)이 머물지 않으면 그 영명(靈明)함도 사라져 버린다. 속어에 인심(人心)은 조석(朝夕)으로 변(變)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음이 백체의 주인이라는 데는 유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예컨대 범준의 심잠 말구에에 <君子存誠하야, 克念克敬이면, 天君態然하야, 百體從令하리라."하였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천군(天君)이 바로 마음인 것이다.(편집자주) 또한 거울에 비유될 수 있다고 하면서 실체가 없으면 그 상(像)도 종적을 감추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하였다. 따라서 신명이 머물수 있도록 마음자리를 잘 가꾸어야 함은 물론, 날라가버린 마음을 다시 찾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맹자는 구렇게 구방심(求放心)을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유가들은 마음 다스림의 수양공부에 매진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대개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물과 같아서 오래 고요히 있으면 그 밑까지 볼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영명(靈明)이라 한다. 마음이 고요해서 원기가 든든하게 되면 만병이 생기지 않아 오래 살 수 있겠지만, 만약 헛된 일에만 생각이 몰입되면 신(神)이 밖을 돌아 기(氣)가 안에서 혼란해짐으로써 백병이 생겨 나는 것이다. 따라서 유가들은 "勿看雜書하라, 恐分精力이니라" 하였다. 이렇게 모든 현상이 마음에서 생겨나지 않는 것이 없지만 그 마음은 외부로 내달리는 속성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퇴게선생은 "모름지기 양생을 잘 다스리게 되면 하늘이 질병을 내리지 않는 법이다" 라고 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持敬> 즉 Self Control을 건강관리의 요체를 삼았던 것 같다.
三. 導引法
1. 눈을 감고 고요한 마음으로 앉는다. 즉 생각없이(無念無想) 책상다리를 한채로 좌정한다.
2. 주먹을 살며시 쥐고 상하치아를 36번 마주치며 양손으로 머리 뒷부분을 감싼다.
3. 좌우로 천고(天鼓)를 울리는데 24번 들리도록 한다.
4. 목(天柱)를 조금 흔든다. 주먹을 쥐고 좌우의 어깨가 보이도록 목을 24번 흔든다.
5. 혀(赤龍)로 입안의 양볼을 젖는다. 즉 혀로 좌우의 볼을 고루 저어 진액이 생기도록 한다.
6. 침을 36번 씹는다. 예컨대 밥을 36번 씹으면 무른 죽이 된다.
7. 침(神水)이 입안에 가득차면 세번에 나누어 마신다. 진액을 세번에 나누어 꼴깍 소리내어 마신다.
8. 진액(龍水)을 행하면 기(虎)가 스스로 내닫는다.
9. 기를 닫고 손을 마찰시켜 열을 낸다. 코로 吸氣후 숨을 일단 멈추었다가 손의 마찰로 가열상태에서 코를 통하여 기를 내 보낸다.
10.손등으로 정문(精門)을 마찰한다. 정문이란 외신(外腎)으로서 손바닥을 합쳐 마찰한 다음 주먹을 걷우어 들인다.
11.한 입에 기득한 기를 다시 닫는다. 입안에 침이 생기도록 혀를 움직이다.
12.불이 배꼽을 태운다고 상상한다. 입과 코에 기를 닫고 불을 丹田으로 보내어 뜨겁다고 느끼면 다음 동작을 시작한다.
13.좌우로 녹로(거시기)를 돌린다. 머리를 구부리고 양어깨를 36번 흔들어 단전의 불이 쌍관을 뚫고 뇌호에 들어간다고 상상하 고 코로 맑은 공기를 받아들여 잠시 닫고 있으면 된다. 그 다음에 양다리를 곧게 편다. 그리고 양손으로 엇갈리게 허공을 때린다.
14.머리를 숙여 발을 잡는다. 두 손으로 앞을 향해 뻗은 발바닥을 13번 반복한 후 발을 모아 단정하게 앉는다.
15.진액이 되돌아 오도록 한다. 입안에 침이 생기도록 혀를 움직이다. 36번 혀를 움직여 생긴 침을 세번에 나누어 마신다.
16.불이 나듯이 온 몸을 태운다. 단전의 화기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몸을 태운다고 상상하면서 입과 코로 잠시 숨을 닫는다.
17. 기타 여러 비방이 있으나 이는 선도의 신비성에 근거한 것 같다.
四.나의 健康狀態를 되돌아보게 된다
내 나이 10세 즉 6.25가 발발하기 전까지는 조여부의 관심속에 무난히 성장한 것 같다. 할아버지 성재공이 배둔에 제중당한약방을 개설한 덕택으로 유년시절 한약을 많이 먹었고, 할아버지와 겸상한 덕택으로 18세 까지는 보리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다. 배둔 우리 약방에는 영국제 사탕과 미깡(橘)이 남아 돌았고 창고에는 중국에서 수입한 당재와 일본에서 수입한 설탕이 많이 쌓여 있었다. 이 한약재 중에 건포도 같은 즉 圓肉(양귀비가 좋아했다는 남국 남방의 과일)이 많이 보관되어 있었는데 할아버지 모르게 매일 조금식 표시나지 않을 정도로 훔쳐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오늘 이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그 때 할아버지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나는 어린 시절 보약을 먹는 것이 주효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내 기억에 비아환(肥兒丸)이라는 환약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진주고등학교를 다닐 때 우리집 가정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이 때부터 우리 형제는 고난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고(晋高에 죽헌(봉무)은 진사(晋師)에 다니면서 가정교사 생활로 숙식을 해결하였고, 신문배달과 연필을 판 수익금으로 학비를 조달할 정도였으니 그 당시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진사를 졸업한 죽헌이 청광.구만초등학교에 배치되면서 집에서 출퇴근할 수 있었던 관계로 선고 신암공은 겨우 생맥을 유지할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죽헌이 결혼하기 전까지 약 10여년 봉급을 한번도 마음대로 사용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죽헌이 받은 봉급봉투를 송두리째 아버지한테 드렸으며, 나는 서울에서 외가(박호상), 부산공소종, 성대장학회, 5.16장학회, 호적장학회 등의 도움으로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우리집의 가정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시기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이 시기에 건강을 돌아보기 보다 어떻게 하면 기아를 면하느냐가 관심사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생활을 거쳐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에 다소 안정된 생활이 유지되어 건강상태가 좋은 편이었으나 사업전선에 투신한 이후 불규칙한 생활이 연속되었고, 지나친 식색으로 건강이 최악의 상태에 있었지 않았나 생각된다. 비록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재직한 기간에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지만 과중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매일 술과 육으로 살았다. 게다가 가정적 불안정으로 치심을 할 수 없었던 기간이 장기화되었고, 퇴직직전에는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원고를 정리하기 위하여 연구실 컴퓨터 앞에서 밤샘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마음을 다스리기 보다는 과제의 수행을 위해서 나의 몸을 혹사시켰다고 생각한다. 이 기간에 만약 양생법과 치심법의 중요성을 알고 건강에 유의하였더라면 오늘처럼 이렇게 건강이 조기에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와 같이 나는 65세 공직에서 정년할 때까지 나 자신의 건강을 돌아볼 겨를도 없었스려니와 건강상 특별한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미쳐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 같다. 퇴직후 집안 일에 관심을 갖고 종사관련 자료를 뒤지다가 갑자기 시력과 청력에 문제가 있음을 감지하고 귀밝은 총자와 눈밝은 명자의 뜻을 비로소 깨치면서 "내가 벌써 불총명(不聰明)한 자가 되었구나"하고 건강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러나 고조이하 분산되어 있던 선묘를 부모님을 묘소가 있는 신박골 뒷산 한곳으로 이안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진천선영에 동주사공이하삼대의 숭모비 건립에 동참하여 번다한 일을 맡아야 했으며, 곧이어 세곳에 산재하고 있던 5대조인 부산공삼내외분(구만,거류,대가)을 송정뒷산 거류산하 갓골(冠谷)에 이안함에 5대종손으로 중추적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근자에 와서는 참의공종회를 탄생시켜 회장으로서 입향조 묘역의 성지화를 주선하게 되었다. 이렇게 종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의 건강에 마음 쓸 틈새를 얻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요즈음에 와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치아에도 문제가 생겼고 하체에도 문제가 생겨 생활자체에 불편함을 감내하고 있다. 그 중에서 나를 괴롭혔던 점은 학천숙을 비롯한 몇몇 분들이 목숨을 걸고 이회서당의 법인화 문제와 공정산선영 성역화 사업을 공개적으로 저항하였다는 점이다. 이 때 받은 스트레스는 지금도 나의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요즈음 기 법인화한 이회서당에서 홀로 앉아 뒤늦게나마 나의 건강을 돌아보면서 <心安茅屋穩이요, 欺公日日憂라>는 글귀를 되새겨 본다. 결론적으로 지금 나는 모든 욕망을 버린 무소유(無所有)의 상태에서 모처럼 동중정(動中靜)의 희열을 맛보고 있다. 마침 퇴계선생이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편집한 <退溪活人心方>을 서가에서 발견하고 그 책에 쓰여 있는대로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반복한 결과 다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여기에 이것을 게재해 두는 것이니 동익계원이나 참의공종원중에서 나의 경우처럼 그동안 건강을 돌보지 못한 분이 있으시면 한번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
첫댓글 중국 명나라 함허자(涵虛子)의 “活人心”을 퇴계선생이 필사하여 “활인심방”이라 했다 합니다. 저도 책(이퇴계의 활인심방/범우문고)을 읽기는 했는데 시은형님의 글로 다시 읽으니 더욱 공감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