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다섯, 묘혈(墓穴)을 파는 나이이다. 2017년도부터 건초염으로 고생을 했다. 삶의 질이 저하되고 마음이 저절로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난다. 내 묘혈 속엔 언제나 살모사와 유혈목이들이 우글거렸다. 몸과 마음이 함께 아프면 독기와 객기가 생긴다. 반항심이 생겨서 신께 대든다.
누군가가 나를 배려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정신병이 덤으로 따라온다. 미래는 논하기에 너무나 버겁고 무거운 사치였다. 오늘 하루를 견뎌야 하는 아픔으로도 난 삶의 의무를 충실히 해낸 것이다. 신의 음성은 남루하고 싸구려 동정으로 밖에 안 들린다. 나 자신이 신들린 자였므로 방울뱀 소리 같은 요령만 흔들면 된다.
꽃이 보이지 않는다. 꽃이 향기롭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 속에 나는 들어앉는다. 나는 눕는다. 또 꽃이 향기롭다. 꽃은 보이지 않는다. 향기가 만개한다. 나는 잊어버리고 재차 거기 묘혈을 판다. 묘혈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묘혈로 나는 꽃을 깜빡 잊어버리고 들어간다. 나는 정말 눕는다. 아아. 꽃이 또 향기롭다. 보이지도 않는 꽃이―보이지도 않는 꽃이. 이상, 절벽(絶壁)
출처: 나무위키
나의 사랑 시인"이상"의 시가 있어서 그리고 나의 좋은 이웃이 있어서 하루가 견딜만했다. 요즘 내가 빠져서 지내는 일들은 블로그 이웃들의 소식을 듣고 답하는 것이다. 기적의 하루를 살아냈다. 이 나이엔 무언가에 미치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두 달째 다니는 음치클리닉에서 2곡을 배웠다.
호흡법부터 다시 배운다. 55년을 숨 쉬었으나 제대로 숨쉬기는 처음 배웠다. 공기를 코로 깊이 마시고 복어처럼 폐를 빵빵하게 부풀린다. 입으로 다시 숨을 뱉는다. 내 노래는 아직 저주에 걸린 고라니의 몸 부림이다. 그래도 열심히 가는 중이다. 난 시작하면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익숙한 모든 것들에 지쳐가는 일상 속에 새로운 것들도 두려운 나이이다. 수레바퀴를 벗어나려는 묘안을 묘혈 안에서 생각해 본다.
새로운 이웃이 411호에 둥지를 틀었다. 핑크빛 선물을 주었다. 물티슈와 쓰레기봉투와 달달한 손 편지를 문고리에 걸어두었다. 살면서 겪는 기적들 중 하나를 오늘 겪었다. 나도 그의 좋은 이웃이고 싶다. 화장지 30롤을 갖다주었다.
요즘 내가 빠져 지내는 블로그 이웃들도 진짜 이웃과 같다. 가상이지만 현실이다. 음치 클리닉도 블로그 보고 선택했고 피자도 병원도 맛집도 다 블로그 읽어보고 간다.
쉰다섯 여대생의 꿀같은 방학이다. 모든 일과를 이 달달한 시간에 기록한다.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엔 좋은 이웃들이 있어서 고맙다. 그런데 아파트 앞 공사장은 4년간 나를 괴롭히고 롤 케이크 하나 안 갖다 준다. 인정머리 없는 자들!
얼마 만에 받아보는 손 편지인지? 문명이 아무리 발달해도 손 편지의 맛은 능소화로 담근 꽃술 같다. 엉킨 마음을 풀어주는 글자들! 난 오늘 하루, 파티에 다녀온 것이다. 이 달콤한 유혹을 가두고 싶어서 서둘러서 자판을 두드린다. 비관적인 모든 것들이 달관을 향해 달려간다. 서두르고 싶은 유혹이 나를 채찍질한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