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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단어 | 당서 석음 | 당서 원문 | 반절 | 읽기 | 비고 |
1 | 高麗 | 권 1 | 권2 본기 2 | 下 呂支切 | 呂+支의 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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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高麗 | 권 1 | 권3 본기 3 | 下 力支切 | 力+支의 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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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高麗 | 권 3 | 권21 예악지 11 | 下 力知切 | 力+知의 반절 | 魚麗=高麗 |
4 | 高麗 | 권 4 | 권33 천문지 23 | 下 力知切 | 力+知의 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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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高麗 | 권 5 | 권43하 지리지 33하 | 下 隣知切 | 隣+知의 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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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高麗 | 권 23 | 권219 열전 144 | 下 隣之切 | 隣+之의 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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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高麗 | 권 24 | 권220 열전 145 | 下 隣知切 | 隣+知의 반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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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서』에서는 나라이름을 高句麗라고 쓰지 않고 高麗라고만 썼는데, 당나라 후기 때는 이미 나라 이름을 高麗로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지만 ‘고(高)’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소릿값에 대한 주는 두 번째 글자인 아래글자(下), 곧 ‘麗’자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달고 있다. 주는 주로 ‘下 呂支切’ ‘下 力知切’ ‘下 鄰之切’ 정리번호만 3번만 ‘魚麗 (下力知切陣名 下高麗音同)’라고 해서 高麗를 高麗라고 읽지 않고 ‘고리’라고 읽는 것처럼 魚麗도 ‘어리’로 읽어야 한다는 예를 든 것이다.
이라고 달려 있는데, ‘하(下)’는 高麗 두 글자 가운데 아래 글자인 ‘麗’자에 대한 읽는 법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마지막 ‘절(切)’자는 앞에 나온 두자의 반절음(反切音)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림 신당서 「당서석음(唐書釋音)」
2) 자치통감에 나타난 高麗의 소릿값 읽기
자치통감은 중국 송(宋)나라 사마광(司馬光)이 1065~1084(19년간)년 편찬한 편년체의 사서이다. 약칭 통감이라고 하는데 기원전 403년 주나라 때부터 959년 후주(後周)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다룬 사서이다. 이 자치통감의 내용에 대해 원나라의 호삼성(胡三省)이 소릿값에 대한 주(音注)를 달아 놓았다. 이런 고유명사는 본래 한자가 아닌 외국어이기 때문에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하나하나 읽는 법을 덧붙인 것이다.
『자치통감』에 고구리(高句麗)와 고리(高麗)에 소릿값을 단 기사는 모두 62개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5개의 기사에서는 한 기사에 2번 소릿값 주를 달고, 1개 기사에는 무려 3번에 걸쳐 소릿값에 대한 주를 달고 있다. 『자치통감』에는 고구리(高句麗), 고구리(高句驪), 구리(句麗), 고리(高麗) 같은 나라 이름에 69번이나 주를 달아 그 소릿값을 표시하고 있다. 자세한 표는 서길수,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 고구려연구회 『고구려연구』(27), 2007, 73~75쪽을 볼 것.
『자치통감』이 이처럼 수많은 주를 단 것은 ‘麗’ 나 ‘驪’음을 ‘례(한국의 려)’로 읽지 말고 반드시 ‘리’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외국어 표기법을 정확하게 지시한 것이다. 주로 力支翻, 力知翻 같은 반절법을 썼다. 여기서 번(翻)이란 절(切)과 같이 쓰인 것이다.
4) 왕건이 세운 高麗도 ‘고리’라고 읽어야 한다.
그렇다면 왕건(王建)이 세운 高麗는 ‘고려’라고 읽을 것인가? ‘고리’라고 읽을 것인가? 신라 말에 분열된 한반도를 다시 통일하여 세운 왕조(918∼1392)는 475년간 존속했고, 앞에서 보았듯이 북쪽의 「고려공화국」은 물론이고 해외 동포인 박진욱 교수, 한국의 박현채 교수 등이 이 ‘고려(高麗)’를 통일 코리아의 국호로 제안하였다. 고려는 나라이름을 새로 지은 것이 아니라 ‘고구려=고리’를 계승한 것이기 때문에 ‘고구리=고리’와 똑같이 ‘고리’라고 읽었다. 그것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뚜렷하게 나온다.
용비어천가는 1445년(세종 27) 4월에 편찬되어 1447년(세종 29) 5월에 간행된 가사로, 조선왕조의 창업을 기리는 노래다. 모두 125장에 달하는 서사시로서, 한글로 엮어진 책으로는 한국 최초의 것이고, 왕명에 따라, 당시 새로 만든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권제(權踶) 등이 짓고,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이개(李塏) 등이 주석을 달았기 때문에 그 권위에 대해서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이런 학자들은 모두 훈민정음을 만드는데 직간접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음운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용비어천가 제6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麗運이 衰거든 나라 맛시릴 東海ㅅ 져재 니 麗 音离 高麗也 太祖 姓王氏 名建 …
(高)麗의 운(運)이 다 되었으므로 나라를 맡으시려 할 때, 동해(東海) (물)가가 저자 같으니 [麗(자의) 소리는 리(离)이니, 고리(高麗)를 말한다. 태조의 성은 왕씨이고 이름은 건(建)이다. … ]
麗音离 그림 용비어천가 제5장
용비어천가는 한글로 엮어진 최초의 책이다. 조선 건국의 유래가 오래 되었다는 것과 조상들의 성덕이 높다는 것을 찬양하는 책이고, 태조의 창업이 천명에 따른 것임을 밝혀, 후세의 왕들이 그대로 지킬 것을 경계하고 영원한 번영을 비는 뜻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이런 책에 쓸데없는 문구나 개인적인 의견은 단 한 자도 들어갈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高麗=고리’로 읽으라고 특별히 주를 단 것은 당시 ‘고리(高麗)’를 고려(高麗)로 부르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용비어천가가 나온 것은 1392년 고리(高麗)가 멸망하고 53년이 지난 1445년의 일이다. 조선이 건국된 초기에는 ‘고리’라는 말을 꺼내는 것을 크게 터부시했기 때문에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백성들의 머리에서 빠르게 지워져 갔을 것이다. 그리고 나오는 책에는 모두 한자로 高麗라고 쓰게 될 것이고, 이때 麗자를 평성인 ‘리’로 읽지 않고 거성인 ‘려’로 읽어버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향은 일반 백성들보다도 글을 읽는 지식인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비어천가에서 이 점을 우려해 나라이름 高麗의 ‘麗자는 리(离)로 읽어라(麗音离)’고 특별히 주를 단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서길수,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音價)에 관한 연구」, 고구려연구회 『고구려연구』(27), 2007, 참조.
2. 고구리(高句麗)가 나라이름을 고리(高麗)로 바꾼 시기
고구리(高句麗)의 나라이름을 고리(高麗)라고도 불렀다는 것은 이미 많이 논의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고구리(高句麗)는 추모(주몽)가 삼국시대(BC 37년 ~ AD668년) 세운 나라이고, 고리(高麗)는 왕건(王建)이 세운 왕조(918∼1392)라고 아는 사람이 많으며, 어떤 사람은 “고리(高麗)는 고구리(高句麗)에서 ‘句’자를 빼고 줄여서 부른 이름이다”고 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이 점을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 다시 말해 고구리(高句麗) 때 이미 고리(高麗)라는 국호를 썼고, 나중에 왕건의 高麗(918∼1392)는 그 이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것이다.
중국 정사에서「동이전」에 고구리(高句麗)와 고리(高麗)에 대한 국호를 살펴보면 3세기와 5~6세기에 편찬된 후한서, 삼국지, 송서, 양서, 위서에서는 高句麗傳이라 했고, 그 뒤 편찬된 남제서, 주서, 수서, 남사, 북사, 구당서, 신당서 등에는 모두 高麗傳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물론 열전에서 고구리전(高句麗傳)이라고 제목을 붙인 성서, 양서, 위서에서 본문에서는 고리(高麗)라는 국호가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정사를 한 번이라도 본 학자들은 고구리(高句麗) 때 이미 고리(高麗)라는 이름을 썼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표 2> 중국 정사에 기록된 高句麗傳과 高麗傳
편찬연대 | 서명 | 편찬자 | 시대 | 高句麗ㆍ高麗傳 |
5세기 중 | 후한서 | 劉宋 范曄 | BC107~AD169 | 高句麗ㆍ句麗 |
3세기 말 | 삼국지 | 晋 陳壽 | 國初~244 | 高句麗 |
7세기 중 | 晋書 | 당 房玄齡 등 | 265~418 | 없음 |
5세기 말 | 송서 | 梁 沈約 | 413~476 | 高句麗國 |
6세기 초 | 남제서 | 양 蕭子顯 | 463~496 | 高麗 |
7세기 초 | 양서 | 당 姚思廉 | 동명~548 | 高句麗 |
6세기 중 | 위서 | 북제 魏收 | 주몽~550 | 高句麗 |
7세기 중 | 주서 | 당 令狐德棻 등 | 주몽~577 | 高麗 |
7세기 중 | 수서 | 당 魏徵 등 | 주몽~616 | 高麗 |
7세기 중 | 남사 | 당 李延壽 | 413~548 | 高麗 |
7세기 중 | 북사 | 당 李延壽 | 주몽~616 | 高麗 |
10세기 초 | 구당서 | 후진 劉昫 | 619~700 | 高麗 |
11세기 중 | 신당서 | 송 歐陽修ㆍ宋祁 | 618~9세기 초 | 高麗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 고구리(高句麗)가 나라이름을 고리(高麗)로 바꾸었느냐 하는 시기의 문제이다. 이 논문의 주된 목적은 고구리(高句麗)와 고리(高麗)를 읽는 소릿값의 문제이지만 高句麗가 高句麗와 高麗라는 두 가지 나라이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고, 소릿값 읽는 법도 이 두 가지 나라이름에 함께 적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꽤 많은 학자들이 이 문제를 다루었다. 그 가운데 국내외 학자 7명의 주장을 표로 만들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3> 高句麗 나라이름 바꾼 해에 대한 학설
정리번호 | 지은이 | 연대 | 평양 천도 관련 |
1 | 이병도 | 수ㆍ당이후(581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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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김진희 | 5세기 이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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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정구복 | 장수왕 10년대(423년~ ) | 평양 천도와 관련 있다. |
4 | 金毓黻 | 56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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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李殿福 | 52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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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孫進己 | 423년 | 평양 천도와 관련 있다. |
7 | 楊保隆 | 398년~413년 | 평양 천도와 관련 없다. |
<표 3>에서 500년 이후의 설을 주장한 이병도, 김육불, 이전복의 주장은 연구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있지만, 내용을 볼 때는 그다지 가치가 없다. 결국 김진희, 정구복, 손진기, 양보융 네 주장으로 좁혀진다.
423년 高麗國이 사신을 보내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으로, 바로 3년 전의 기록과 극적인 대조를 보여주기 때문에 변천의 기점으로 잡기 좋은 자료이다. 이 기록의 3년 전 기록을 먼저 보면 다음과 같다.
『송서』 420년(장수왕 8년) : 永初元年七月 甲辰 征東將軍高句驪王高璉 進號征東大將軍
(정동장군 高句驪王 고련(高璉)을 정동대장군으로 호를 높여주었다) 『宋書』 권3 武帝 하
『송서』 423년(장수왕 11년) : 景平元年三月 是月高麗國遣使朝貢 『宋書』 권3 武帝 하
그리고 3년 이후 本紀 기록은 모두 ‘고리(高麗)’라고 기록하고 있다.
장수왕 11년(423) 3월 壬寅 高麗國遣使朝貢(宋書 권4 本紀 제4 少帝)
장수왕 24년(436) 6월 高麗國 武都王遣使獻方物(宋書 권5 本紀 제5 文帝)
장수왕 43년(455) 11월 辛亥 高麗國 遣使獻方物(宋書 권6 本紀 제6 孝武帝)
장수왕 49년(461) 7월 丁卯 高麗國 遣使獻方物(宋書 권6 本紀 제6 孝武帝)
장수왕 51년(463) 7월 乙亥 征東大將軍高麗王高璉進號車騎大將軍(宋書 권6 本紀 제6 孝武帝)
장수왕 57년(469) 11월 己巳 高麗國 遣使獻方物(宋書 권8 本紀 제8 明帝)
장수왕 66년(478) 12월 戊子 高麗國 遣使獻方物(宋書 권10 本紀 제10 順帝)
여기 보면 알 수 있듯이 송나라는 처음 나라를 세운 뒤 관례적으로 고구리(高句驪)라는 표현을 쓴 뒤, 장수왕 11년(423) 이후는 단 한 번도 고구리(高句驪)를 쓰지 않고 고리(高麗)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구리(高句麗)를 고리(高麗)로 바꾸어 쓴 것은 423년 전후라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런 면에서 약간 모호한 면이 있지만 정구복의 설과 손진기의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할 수 있으며, 필자도 그 설을 지지하고자 한다.
3. ‘고리’의 로마자 이름 ‘Kori’
1) 고리의 로마자 결정의 의의
사람의 이름이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이듯이, 나라이름도 .다른 나라와 구별하기 위해서 부르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잘 나타내기 위해서 쓰이는 동시에 다른 나라에서 부르기 쉽고 좋은 인상을 주는 이름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미 1,000년 이상 외국에도 우리를 부르던 이름과도 크게 차이가 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나라이름의 브랜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결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우리가 나라이름을 로마자로 결정하여 함께 발표한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다. 1897년 조선의 고종은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광무라는 연호를 발표하였다. 조선정부는 이 결정들을 서울에 주재하는 각국 공사관에 한문 문서로 전달했다. 이에 각국 공사관은 공문을 받았다는 답신을 보냈다.
미 국 : Korea, Kwang Mu Taihan
영 국 : Corea, Kuang Mu, Daihan
프랑스 : Empereur de Corée, Koang Mou, Corée.
독 일 : Korea, Taihan
러시아 : Korea.
나라 이름이 Korea, Corea, Corée처럼 미국, 영국, 프랑스가 모두 다르고, 연호도 Kwang Mu, Kuang Mu, Koang Moufh로 다르며, 대한도 Taihan Daihan으로 세 나라가 모두 다르다. 그렇다면 각국의 답신에서 우리나라 표기가 달랐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당시 새로운 정부가 국호를 ‘대한’으로 바꾸면서 국제적으로 로마자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인동, 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 꼬레아, 코리아, 책과함께, 2008, 210쪽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고구리(高句麗)ㆍ고리(高麗)’는 한문문화권에서 ‘高句麗ㆍ高麗’를 외국인들이 어떻게 읽었느냐를 가지고 논의해야 했고, ‘CoreaㆍKorea’는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고리’를 어떻게 읽었느냐는 문제를 가지고 어떤 것이 맞는지 토론하고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이 그때 들은 것을 자기 글자로 쓰면서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쓴 것을 가지고 우리는 그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좋다고 고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다시는 그렇게 구차스럽게 논의할 필요가 없다. 그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떻게 읽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말로는 무엇, 한자로는 무엇, 로마자로는 무엇이라고 결정해서 당당하게 내세워 우리는 물론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대로 쓰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발표하면 그것이 가장 정확한 것이고, 모두들 그 표기법을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외적으로 당당하게 우리나라 이름을 로마자로 제시하는 첫 번째 자주적 선포가 될 것이며, 우리는 다시는 그들의 발음이나 해석을 가지고 우리 것을 비추어보는 딱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라이름이란 우리말이건 외국어이건 그 자체가 우리 겨레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갱이고, 한 번 만들면 자손만대 영원히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충분히 논의해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다.
2) 고리의 로마자 표기 KoriㆍCoriㆍGori
‘고리’를 로마자로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은 KoriㆍCoriㆍGori 같은 3가지가 있다. 이 3가지 가운데 Kori와 Cori의 첫 소리는 똑같은 [k]음이고, Gori는 [g]음이다. 로마자는 본디 라틴어를 표기하던 문자로서 음소 [k]를 표기하는 문자가 C/K/Q의 세 가지인 것이 특성이다. 그래서 라틴어의 직계 후손이라 할 수 있는 로망스 계열 언어들은 [k]음소를 C로, 그 외의 유럽 언어들은 K로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KoriㆍCori는 첫 글자가 다르지만 발음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러나 Gori의 [g]음은 앞의 두 음과 다르다. KoriㆍCori의 [k]음은 안울림소리(無聲音)이고, Gori의 [g]음은 울림소리(有聲音)다. [g]같은 울림소리란 한자의 유성음(有聲音)을 말하는 것으로 소리 날 때 목에 있는 성대(聲帶)가 울려서 나는 소리다. 소리 낼 때 목에 손가락을 대보면 성대가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울림소리’라고 한다. [k]같은 안울림소리란 한자의 무성음(無聲音)을 말하는 것으로 성대가 울리지 않고 나기 때문에 안울림소리(無聲音)이라고 한다. 이 같은 법칙은 아래 표에서 보듯이 b/p d/t g/k v/f z/s는 입모양은 같으면서 성대를 울리느냐 안 울리느냐에 따라 글자가 달라지는 것이다.
울림소리(有聲音) | b | d | g | v | z | ð | ʒ | ʤ |
안울림소리(無聲音) | p | t | k | f | s | Ɵ | ʃ | ʧ |
한국 사람들은 우리말의 파열음 계열(ㄱ, ㄷ, ㅂ)과 마찰음 계열(ㅅ, ㅆ, ㅎ), 그리고 파찰음 계열(ㅈ, ㅊ) 등이 모두 안울림소리(無聲音)고, 자음이 첫소리에서 울림소리(有聲音) 글자는 비음과 유음으로 ㄴ, ㅁ, ㅇ, ㄹ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b, d, g, v, z 같은 울림소리(유성음)는 특별히 훈련하지 않으면 제대로 발음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발음하지 못한 소리는 알아듣지 못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고리’의 ‘고’는 안울림소리인 ‘Ko’나 ‘Co’에 가깝고, 목청이 떨리는 ‘Go’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 ‘G’보다는 ‘K’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글(正音)의 특질 가운데 하나가 자질문자(資質文字, feature system)라는 것이다. 자질 문자라고 하는 것은 몇 개의 특징적인 자질들을 나타내기 위해 획을 더해 주거나 같은 자음을 반복하거나 하는 규칙성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보기를 들면 예사소리(平音) [ㄱ]에다 획을 하나 더해 거센소리(有氣音) [ㅋ]을 만들어 내고, 예사소리(平音) [ㄱ]을 겹쳐서 된소리(硬音) [ㄲ]을 내는 것이다. 97년 10월1일 유네스코는 우리나라의 글인 훈민정음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했다. 언어 연구학으로 세계 최고인 영국 옥스퍼드의 언어학 대학에서는 세계 모든 문자순위를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진열해 놓았는데 한글은 자랑스러운 1위를 차지했다. 또 프랑스에서 개최된 세계 언어학자 학술회의에서도 한국어를 세계 공용문자로 쓰면 좋겠다는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더욱이 1986년도에 영국 리스대학의 음성언어학과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교수는 한글이 발음기관을 상형하여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하여 음성학적으로 동일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가장 체계적인 문자라고 평가했다. 샘슨 교수는 한글을 표음문자이지만 새로운 차원의 자질문자(feature system)로 분류했다. 샘슨 교수의 이 같은 분류방법은 세계 최초의 일이며, 한글이 세계 유일의 자질문자로서 가장 우수한 문자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말소리(음성)는 여러 개의 자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먼저 [ㄱ]과 [ㅋ]의 자질을 보면 다음과 같다.
[ㄱ] : 연구개음자질, 파열음자질
[ㅋ] : 연구개음자질, 파열음자질, 유기음자질
이 두 개 음의 자질 차이는 [ㅋ]에 유기음자질이 더 들어 있다는 것을 빼놓고는 차이가 없다. 이것이 ‘고리’와 ‘코리’의 차이다. 우리가 ‘Kori’를 ‘고리’라고 읽을 때 유럽 사람들이 ‘코리’라고 읽는 것은 바로 유기음자질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음은 분명히 성대가 울리지 않는 안울림소리(무성음)이다. 울림소리(有聲音)인 ‘Gori’와는 발음기관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문제는 현재 한국의 로마자 표기법에 [ㄱ=g], [ㅋ=k]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표기법을 따르면 ‘Gori’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기법은 ‘한글 로마자표기법 개정(제211호, 1999.12.02.)으로 최근에야 바뀐 것이다. 그 이전에는 [ㄱ=k]였기 때문에 당연히 ’고리=Kori’가 되고, 북쪽에서는 지금도 ㄱ=k로 되어 있어 Kori가 된다. 1999년의 로마자표기법은 많은 혼란을 주었다. 1999년 이전에는 ‘고구려=Koguryo’였다. 그런데 수많은 반대를 무릅쓰고 50년 동안 4번이나 바뀐 새로운 로마자표기법에 따라 ‘Koguryo=Goguryeo’가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 연구단체인 고구려연구회나 당시 존재했던 고구려연구재단 같은 기관들은 모두 새로은 Goguryeo를 쓰지 않고 Koguryo를 계속 썼다. 고구려를 세계유산으로 신청할 때는 중국마저도 Koguryo를 썼다. 그런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Goguryeo라고 씀으로 해서 Koguryo라고 쓴 모든 지난날의 자료들이 중국 것이 되어버리는 문제까지 생겼다. 소리 나는 대로 읽는다는 지난날의 원칙을 버리고 한글식으로 짜 맞추는 새로운 표기법에서 [ㄱ=g], [ㅋ=k]이라고 못 박으므로 해서 ㄱ=울림소리(유성음)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로마자표기법과는 다르지만 글쓴이는 ‘고리=Kori’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① 언어학적으로 [ㄱ]은 울림소리(유성음)인 [g]보다는 안울림소리(무성음)인 [k]에 더 가깝다.
② 이상태가 분석한 서양 고지도에 표기된 이름을 보더라도 모두 C나 K를 썼고 G를 쓴 경우는 없다. 그것은 당시 나라이름을 표기 하는 저자들이 초성을 울림소리인 G보다는 안울림소리인 C나 K로 들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유럽 지도에 표기된 우리나라 로마자 이름 212개 가운데 [g]음을 가진 G로 시작되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고, 모두 [k]음을 가진 C나 K로 시작되는 이름들이었다. 이상태, 「서양 고지도에 표기된 우리나라 국호」, 역사비평 (65), 2003.11, 374쪽.
③ ‘Cori’보다 ‘Kori’를 제안하는 것은 C는 [k]음 외에도 [s]나 [ts] 등의 소리를 나타내는 데 쓰이게 된다. 이에 비해 k는 거의 전적으로 [k] 소릿값만을 가진다. 전 세계가 어떤 글자를 읽을 때는 그 글자의 발음기호를 참고한다. 이때 C는 [s]나 [ts]의 발음기호가 나오지만 K는 언제나 [k]만 나오기 때문에 달리 읽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따라서 로마자로 표기되는 언어 중에서 한국을 K-로 표기하는 국가(언어)가 C-로 표기하는 국가(언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 KOREA/COREA 영문 표기 논쟁 Alternate Names or Name Variants for Republic of Korea
<표 4> 세계 각국의 코리아 국호 철자
로망스어 | 게르만어 | 슬라브어 |
Corée(프랑스어) Corea(스페인어) Coreia(본토 포르투갈어) Coréia(브라질 포르투갈어) Corea(이탈리아어) Coreea(루마니아어) Corea(라틴어) Corea(카탈루냐어) Corea(로만슈어) Corèa(오크어) Corea(갈리시아어) Corê(프랑코 프로방스어) Coraée(노르망디어) Corêye(왈론어) | Korea(영어) Korea(독일어) Korea(네덜란드어) Korea(프리지아어) Kórea(아이슬란드어) Korea(룩셈부르크어) Korea(저지 독일어) Korea(스코트어) Korea(아프리칸스어) Korea(페로어) Korea(알자스어) Korea(림뷔르흐어) | Корея(러시아어) Корея(우크라이나어) Карэя(벨라루스어) Korea(폴란드어) Koreja(세르비아어) Korea(체코어) Koreja(슬로베니아어 · 크로아티아어 · 보스니아어) Kórea(슬로바키아어) Kòreja(카슈브어) Koreja(하소르브어) Koreja(상소르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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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실용적인 측면에서 ‘Kori’는 나라이름을 줄여 쓰는 약호 KR을 그대로 쓸 수 있지만 CR이나 GR로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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