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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 슈워제네거 [Arnold Schwarzenegger ]
생년월일 : 1947. 7.30
출신지 : 오스트리아
학 력 : 위스콘신대학교 경영학, 국제경영학
신 체 : 188cm
가 족 : 배우자 마리아 슈라이버
소 속 : 미국 캘리포니아주 주지사
보디빌딩 세계 챔피언 및 역대 최다 타이틀 석권기록보유
데 뷔 :1970년 뉴욕의 헤라클레스로 데뷔
1982출연작 코난으로 국내 첫 개봉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세계적인 스타
1988년, 90년, 91년 3차례 퀴글리지 선정 헐리웃 머니메니킹 스타 1위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4대 악조건을 극복하고 최고 개런티를 받는 배우가 된 정말로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그가 헐리웃 영화에 진출하자 '저렇게 연기 못하고, 저렇게 이름이 괴상하고
저렇게 발음이 안 좋고, 저렇게 잘 생기지 못한 배우가 어떻게 성공할까?'라는
비아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몇년뒤에 헐리웃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배우가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우리나라에 '코난'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배우지만 실제로는 훨씬
일찍 연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코난보다 12년이나 먼저 제작된 '뉴욕의 헤라클레스'라는
TV용 영화에 1970년에 출연했으니까요. 물론 사실 이 영화는 보디빌딩 스타인 그를
재미삼아 출연시킨 습작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 '스테이 헝그리'등 몇 편의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부업'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메이저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배우'로서의 도전을 시작한 것이
사실상 '코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내에 코난이 개봉하면서 신예급 배우로
그를 홍보했는데 당시 저는 갸우뚱 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훨씬 이전부터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명성을 들어서 알고 있었으니 '신예'라고 생각할 수 없었죠.
그는 60년대 후반이후 전성기를 맞이하여 70년대 최고의 보디빌더였습니다. 아무도
그의 아성에 도전할 선수는 없었습니다. 미스터 틴에이저 아메리카, 미스터 아메리카를
거쳐서 미스터 월드, 미스터 올림피아, 미스터 유니버스 등 최고권위의 보디빌딩 대회를
밥먹듯 석권하고 70년대 중반을 넘어서자 은퇴했다가 1980년 복귀하여 출전한 대회에서도
우승을 차지하는 등, 신화적 존재였습니다.
유년기 때 이미 그의 명성을 익히 들어서 '은퇴한 노장보디빌더'로 생각했었는데, 그가
영화에 출연한다고 하니 웬 퇴물이 새삼스레 영화에 출연하는가 하는 의아심이 생길만 하죠.
하지만 1982년, 보디빌더로서는 전성기가 지난 고참급인 35세의 나이는 영화에서는 한창
전성기를 누릴 나이였습니다. 그가 워낙 일찍 보디빌더로서 성공을 해서 꽤 젊은 나이에
온갖 대회를 석권했던 것이죠. 저는 그 당시 은퇴한 보디빌더라서 노익장으로 알았습니다.
발음이 안좋고 연기가 어색한 그는 터미네이터에서의 '인조인간 로보트'역을 적역으로 잘
해냈습니다. 오히려 연기를 못하고 발음이 어색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할까요? 터미네이터
역할에 이만큼 어울리는 배우가 어디있겠습니까?
터미네이터는 그의 배우 1기 성공을 시켜준 작품으로 국내에서 더욱 인기를 모았습니다.
'코만도' '프레데터'같은 영화도 국내에서 훨씬 더 인기를 모은 그의 영화였습니다.
터미네이터 이후 본격적인 '메이저 액션주연배우'가 된 그는 1988년 '트윈스'와 '토탈리콜'을 그는 90년대도 풍족하게 보낸 배우였습니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 '솔드 아웃' '주니어'등 그의 내리막길은 '엔드 오브 데이즈'와 '6번째 날'이 모두 흥행에 실패한 9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게도 '인생 제 3막'의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자리에 올랐으니까요. 참 대단한 인생이죠. '보디빌딩계의 신화' '헐리웃의 최고 개런티의 흥행배우' '캘리포니아 주지사' 이런 '사회적인 성공'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팬티만 입고 근육자랑을 하는 '미련한 운동선수'가 어느덧 그도 환갑이 넘어선 노익장이 되었습니다. 이제 예전과 같은 근육질 몸매도 아니고, ps1 : 민주당의 대통령이었던 '케네디가'와 결혼한 그가 어떻게 열혈공화당 지지자가 되었을까요? ps2 : 저는 처음에 두얼굴의 사나이의 헐크역의 '루 페리노'가 최고의 보디빌더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루 페리노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에 비교할 바 안되는 보디빌더였더군요. 물론 그도 미스터 유니버스를 2번이나 제패한 대단한 보디빌더지만. 1947년 7월 30일 오스트리아 그라츠(Graz, Austria) 출생. 경찰서장의 아들로 태어나, 병약한 몸을 스포츠로 달련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 15세 때 보디 빌딩을 하면서 진로가 결정되었다. 18세 때 병역을 담당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군에 입대하여 20세 때 퇴역, 곧이어 미스터 유니버스의 타이틀을 획득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UCLA에서 심리학을, 비스콘신 대학에서 경영학과 국제 경영학을 이수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보디 빌딩 정상의 자리를 계속 유지, 미스터 유니버스에 5회,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7회에 걸쳐 정상을 차지하는 등 보디 빌딩계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디 로렌티스의 아들)의 눈에 들어 존 밀리어스 감독의 <코난>에 픽업돼 세인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 후에도 슈왈츠네거는 <디스트로이어>, <레드 소냐> 등 고전 액션 영화의 단골 배우로 출연했는데, 그가 정작 인기를 한 몸에 모으기 시작한 것은 제임스 카메론의 <터미네이터>. 그는 이 영화에서 고전 액션 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하드 보일드 액션 영화에도 적격임을 증명해 보였다. 퇴역 특공대원로 나온 <코만도>, 형사 영화인 <고릴라>, 이색 전투 영화인 존 맥티어난의 <프레데터> 등으로 흔들리지 않는 정상의 위치를 쌓아나갔다. 이후 편당 6백만달러의 개런티를 받는 특급 배우가 된 슈왈츠네거는 무뚝뚝한 이미지를 변화시키기 위해 아이반 라이트먼 감독의 <트윈스>, <유치원으로 간 사나이> 등에 출연해 코미디에도 재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90년에는 폴 버호벤 감독의 <토탈 리콜>에서 리콜 여행자로 나와 SF영화 배우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는데, 91년의 <터미네이터 2>에서는 천 만달러가 넘는 개런티를 받아 최초의 천만달러 배우가 되었다. 존 F.케네디의 누이인 유니스 케네디 슈라이버의 딸이다. 케네디 가(家)가 전통적으로 민주당 계보인 반면,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골수 공화당파로 유명한 정치 배우다. 92년에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선거운동에 참여하고 백악관 체육담당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각종 정치적인 활동을 통해 야심을 보이기도 했는데, 드디어 2003년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1947년 유럽의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그는 꾸준한 보디빌딩 덕택으로 미스터 유니버스와 미스터 올림피아에 출전하여 수상하였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몇 편의 액션 영화와 TV에 출연하지만 그다지 빛을 보지 못했다. 1970년 데뷔한 이래 12년이 흐른 1982년에서야 <코난>시리즈의 성공으로 액션 스타로서 자리매김한다. 1985년 <코만도>에서는 '존 매트릭스'를 연기하였다. 그는 영화 출연시, 기본적으로 갖추어진 몸에 근육 강화제를 사용하여 근육이 드러나는 런닝 셔츠 차림에 몸에는 수류탄을 두르고 보기에도 무거운 기관총으로 무장을 하고 다녔다. 이후, 출연한 <프레데터>, <토탈리콜> 등의 영화들이 높은 흥행률을 기록하면서 그는 절대적 액션 히어로로 등극한다. <유치원에 간 사나이>, <쥬니어>, <솔드 아웃> 등 그가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은 대체로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며 <트루 라이즈>에서는 고감도 액션 연기와 동시에 코믹 연기를 병행 함으로서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의 그의 대표적인 출연작으로는 <터미네이터 2>, <트루 라이즈> , <솔드 아웃>, <배트맨 앤 로빈> 등을 꼽을 수 있다. 배우로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는 <마지막 액션 히어로>, <6번째 날> 등의 작품 제작에도 참여하여 제작자로서의 변화를 꾀하기도 하였고, 케네디 가문 출신인 부인 마리아의 영향으로 정치 활동도 병행하여 2003년에는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기도 하였다.
거치면서 비로소 '최고개런티의 블록버스터 스타'가 되었습니다. '람보류'의 액션영화류인
'코만도' '프레데터' '런닝맨' '고릴라'등 힘쓰는 때려부수는 영화만 출연하던 그는 '트윈스'에서
본격 코미디연기를 시도했고, '고스터 바스터즈'를 연출한 귀재 '아이반 라이트만'의 그 영화는
무려 1억불이 넘는 미국내 흥행을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변신에 성공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그 해 퀴글리지 선정 '헐리웃 머니메이킹 스타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88년, 90년, 91년 3번이나 정상에 올라, 최고 인기와 흥행배우로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간간이 출연하는 코미디영화에서 나름 '연기'를 선보였고, 토탈리콜, 터미네이터2로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라스트 액션 히어로 등 실패작도 있었지만, '트루 라이즈'
'이레이저' '배트맨과 로빈'등이 모두 1억달러 이상의 흥행을 거두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50대가 된 그가 액션영화에서 더 이상 큰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는 그렇게
약 15년의 전성기를 마치며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물론 2003년 터미네이터 3편에서
50대 중반이라고 믿기 어려운 젊음과 체력을 과시하여 2편보다는 못하지만 다시금 최고개런티와
흥행성공을 하기도 했습니다. 실질적으로 그 작품이 그의 마지막 주연작품이고, 이후 몇편의
영화에 특별출연하기는 했지만, 배우로서의 활동는 접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시장'과 맞먹는 벼슬입니다. 소위 '대통령되는 자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물론 그가 대통령이 될 수는 없습니다. 미국 헌법을 고치기 전에는. 그는 오스트리아 태생으로
소년시절 미국으로 건너와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성공신화입니다. 미국태생이 아닌 그가
대권에 출마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캘리포니아주지사'라는 대단한 영향력있는 자리에
오른 성공한 정치인이었습니다.
스포츠, 영화, 정치에서 모두 '만루홈런'을 기록한 보기 드문 인물입니다. 이게 무슨 복일까요?
아닌 나름대로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고, 그래서 30대 후반이 되어서 미국의 대표적
명문가인 케네디가의 미모의 여성인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리스트 액션 히어로를 보면 그의 부인의 지적인 미모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1986년에
결혼하여 4자녀를 두고 금술좋게 살아가는 헐리웃의 모범 부부이기도 합니다.(헐리웃에 평생
이혼안하고 사는 배우가 몇명이나 있을까요? 찰톤 헤스톤을 비롯해서 손꼽을 정도입니다.)
액션배우를 할 만한 체력이나 젊음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생 3막을 성공한 그것도
어영부영 성공이 아닌 '최정상'에 3분야에서 오른 그의 경력은 두고 두고 20세기의 전설적
인물로 자리매김을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입니다. 누가 지금 그를
'오스트리아인'으로 인식할까요?
75년 <청춘의 선택>으로 본격 영화에 데뷔, 그의 뛰어난 육체미에 반한 라파엘 로렌티스(왕년의 명제작자 디노
이후 그는 <람보> 시리즈로 정상을 달리던 실베스타 스탤론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명 액션 스타가 되었는데,
86년 4월에 TV 앵커우먼이자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하여 큰 화제를 모았는데, 마리아 슈라이버는 전대통령
89년 12월 여아를 출산했다. 대실패작 <마지막 액션 히어로>에서 영화 사상 최고의 캐런티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1984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터미네이터>에 출연하여 무표정한 사이보그 킬러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1988년 <트윈스>의 대성공으로 인해 이후 꾸준히 코미디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6번째 날 >,<콜래트럴 데미지>,<터미네이터 3>에 출연하며 여전히 흥행성 높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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