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생기2
1947년 7월 12일
아직 한여름이라
마당가 모닥불 옆에는 저녁으로 먹다남은 옥수수와 찐감자가
그냥 널러 있고 그 옆에는 검둥이란놈이 어슬렁 거리며
주둥이를 땅에끌면서 코를 대고 킁킁 거리는 산골의 초저녂
산막(시제를 지내주고 묘를 관리하기 위하여 지은 집)의
구조가 마당에서 한길이나 되는 봉당에 올라가면
밥상보다 쬐끔 더큰 마루바닥이고 안방을 지나 쪽문을 열면
어둑 컴컴한 윗방에서 열일곱 울엄마는 자리 를 쥐어 뜻으며
벼름박에 머리를 대고 진통을 호소 하고,있었지만
누구하나 달갑게 보듬어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아 (소주며느리) 한테 가보라는 증조할아버지의 호통에
그제서야 증조 할머니가 뒷방에 들어가
아들이라는 소리를 지르고 난 다음에야
심술이 뚝뚝 떨어지는 울 할머니가 탯줄을 가르고...
그날도 아직 보름에 못미치는 달빛이 굴둑을 비켜
쪽문 사이로 한여인의 한많은 일생을 예견 하엿으리라
우리 할머니 말씀에의하면 저녁먹고 미투리 (짚신의 일종)
잘 삼는 사람은 한짝 정도은 삼는 시간에 태여낫다고 하니
사주 보러 다니는 사람이 그시간이 술(戌시)시 란다
검둥이란 놈이 영물이인지라
밥챙겨주는 사람이 보이지아니하니 저도 굶었지만
주인 여자인지 하인 여자인지 배고픈것은 저와 갇겠구나....
괜히 먼산을 바라보고 컹컹대는 소리를 들으며
며느린인지 하인이지 울엄마는 진통이 계속 되는 동안에도
위로는 상할아버지 (나의 증조부)아래로는 젖떨어진 사촌 시동생(
(나의 5촌 아저씨)까지 챙기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자기 입에 들어갈것은
솥밑에 붙은 따다 남은 누룽지를 물에 붉워서 말못하는 누렁이와
나누면서 보리밥 한번 배채우는 것이 평생에 소원이셧단다
몰락한 양반집 (그당시는 상놈집 시제를모시고 땅을부치엿으니)
오대 종손으로 태여 나기는 햇지만
울멈마의 기반이 워낙 야한지라
민며느리로 들어온 울 엄니는 몇번인가 쫗겨나기도했고
언제가는 새장가를 들여겟다는 울 할머니의 눈밖에 있썻으니
처음에는 손주가 뭐 그리 귀엽기나 하였겟는가
그래도 우리 할아버지는 우리집 장손 오대 종손 을 입에 달고 사셧으니
나는 내 어릴적 이름이 종손인줄 알면선 자랏고
내가 세살인가 되던해에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우리 엄니와 아버지는 상을 치루기 위하여
마당에 물 떠놓고 약식으로 행례를 치루고 ....
그때부터울엄니는 조금씩 이가(李家) 내 귀신이
되겟노라고 마음은 먹엇지만 어린것만 없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
이내 잊어버리고 호미 자락이 다닳도록 일만 하시다가.............
가신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촌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