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한국 소설 보다 외국 소설을, 또 창작소설 보다는 명작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소설을 꼽으라면 ‘데미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독일인의 사랑’ 등 이런 책들을 꼽는다. 그러나 지금 내가 쓸 작품은 위의 것들과 다른 종류이다.
고2때, 나는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심윤경의 ‘나... ...의 아름다운... ... 정원’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많은 책들 중에서 제일 공감이 가는 소설로 나에게 전혀 다른 감흥을 주었다.
나의 어렸을 적 모습과 주인공인 ‘한동구’라는 아이의 모습은 정말로 같다. 아니, 모습보다는 주위환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태어난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 고모 세분, 그리고 아빠와 11살 나이차이가 나는 삼촌이 계시는 대가족이었다. 나의 아빠께서 5형제 중 첫째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런 아빠와 결혼한 엄마의 시집살이는 정말 힘들었었다. 나도 소설속의 동구처럼 엄마가 너무나도 불쌍했었다. 그러나 아빠는 절대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태어나고 1년 뒤 나에게는 남동생이라는 존재가 생겼다. 그 녀석은 머리가 비상하고, 생긴 것도 잘생겨서 어른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이 나를 미워한 것은 아니였으니 동구보다 나의 삶이 더 나았을 것이다. 나의 동생 또한 ‘영주’처럼 세살 때 자기 혼자 글을 습득하였다. 나도 그런 내 동생이 참 신기했었다. 그러나 동구와 영주와 달리 우리는 연년생이라서 그런지 싸운 기억밖에 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자였다. 3층집에 살아서 1층과 2층에 있는 6채의 집들을 세내 주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무렵, 아빠의 회사가 부도가 나고 할아버지가 공장장이셨던 직업을 관두시는 바람에 우리 집의 형편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이다. 그때는 엄마와 싸우시는 할머니가 너무나 미웠고, 그런 엄마와도 싸우는 아빠가 너무 미웠다. 또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동생도 얄미웠었고, 그렇게 잘 가던 백화점도 왜 이제 자주 안 가게 되었는지도 너무 궁금했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떠올려 보면 모든 것이 가족을 사랑으로 이해하지 않으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의 작가도 생각했듯이 나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가족간의 이해와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구는 그 어린 나이에도 할머니와 아버지를 따뜻하게 보듬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나를 놀라게 했다. 표현을 하는 데는 서툴지만 내면속의 마음은 누구보다도 깊고 넒은 바다 같은 소년이었던 것이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해하는 폭이 커지는 것 같다. 중학교 2학년 때, 엄마와 할머니의 싸움이 일어났었는데 나는 그때 나도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어른들의 싸움에 끼어들고 말았다. 가족들이 서로 화해를 했을 때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와 엄마가 싸운다고 해서 누구 편을 드는 것은 잘못된 일이야. 싸움은 서로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일어나는 거란다. 그게 바로 가족이라고 아빠는 생각해”라고 말해 주셨다. 그 당시 나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이 책은 나를 많이 성숙하도록 도와주었다. 또 머리가 좋다는 이유로 가족들의 기대를 받았던 동생의 말 못할 고민도, 어느 날 우연히 읽게 됐던 아빠의 눈물 젖은 일기장도 이제는 이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장이 아닐까 라고 난 생각한다.
나는 항상 커가는 것이, 그리고 세상을 알게 되는 것이 너무 슬프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나의 유년시절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계엄령이 내려져도, 정권이 바뀌는 혼탁한 시기여도 탱크를 보며 좋아라 할 수 있는 그런 동구의 순수함이 부러웠다.
사람들은 항상 너무 힘들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난 나중에는 참 즐겁고 행복했었던 때라고 추억하곤 한다. 이 책속에서는 여기저기서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의 상황이 많이 묘사되고 있다. 내가 태어난 해는 1986년이라 그런지, 나에게는 정말 딴 세상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난 책을 읽으며 종종 아빠께 여쭈어 보았고 아빠는 경험을 살려 자세히 얘기해 주셨다. 그러면서 그때를 추억하시는 듯 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정원 속에 멈추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세대가 다르면 그 정원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윗세대 어른들의 역동적이고 정의로웠던 추억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정원은 내가 어렸을 때, 10년 넘게 살던 그 삼층집이다. 또 가장 최근의 정원은 올해 나를 행복하게 했던 대학입학이다. 내가 윗세대의 추억을 모르는 것처럼 나의 아랫세대 사람들도 우리의 추억을 직접 알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이런 작품이 계속 나와 내가 느꼈던 것처럼 잘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 메말라가고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에게 옛 추억과 성장과정을 돌이켜 볼 시간을 제공해준 이 책에게 정말 감사하다. 이런 글을 쓰는 계기로 더 성장할 수 있었고, 세상을 이해와 사랑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가진 것 같아 더 기쁘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