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무렵, 토마스가 다시 데이케어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토마스는 토들러 룸(Toddler Room)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실망한 채 결국 그만두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이어졌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던 토마스가 왜 그랬을까 내심 의아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시내에 있는 프랑스 베이커리에서 커피를 마시고 나오다가 아침 식사용 빵을 사러 온 토마스와 부모님을 우연히 만났다. 알고 보니 토마스네 가족은 내가 주말마다 즐겨 찾는 그 베이커리 앞 콘도에 살고 있었다. 우리 집도 근처 하우스였으니, 우리는 바로 이웃사촌이었던 셈이다. 토마스는 나를 보더니 수줍게 웃으며 "조이!" 하고 내 이름을 불렀다. 반가운 마음에 나는 토마스를 품에 꼭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해 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가끔 이 베이커리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헤어졌다.
나는 토마스 어머니에게 왜 데이케어를 그만두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영아반과 달랐던 새로운 환경이, 늘 에너지가 넘치고 영리했던 토마스에게 만족스러운 즐거움을 주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고 그저 짐작할 뿐이었다. 토마스 어머니는 교육에 관심이 많고 대학에서 일하시는 분이니, 분명 그만한 이유와 깊은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다음으로 토마스를 만난 것은 이듬해 8월쯤이었다. 우리는 신기하게도 또다시 그 제과점 앞에서 마주쳤다. 그사이 부쩍 자란 토마스는 의젓하고 잘생긴 얼굴에 키도 훌쩍 커서 이제는 제법 큰 아이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너무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토마스!” 하고 크게 불렀다. 하지만 토마스는 나를 잊어버렸는지 조금 놀란 눈으로 그저 쳐다만 보았다. 헤어진 지 거의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으니, 흘러간 시간만큼 아기에게는 기억이 희미해질 만도 했다.
내심 아쉬워하는 나를 보며 토마스 어머니가 아이의 기억을 조심스레 상기시켜 주었다. "토마스, 조이 선생님이잖아. 'I have joy, joy, joy, joy down in my heart' 부를 때 그 조이 선생님 기억하지?" 어머니의 말에 토마스는 그 노래는 기억하는 듯 반응했지만, 눈앞의 내 모습은 여전히 어색해 보였다.
토마스 어머니는 곧 시부모님이 계시는 빅토리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전했다. 언젠가 할리팩스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아마 몇 년은 걸릴 것 같다고 덧붙이셨다.
'사랑스러운 토마스,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지내고 멋지게 자라나렴.'
비록 몇 년 뒤 이곳에서 다시 만나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스쳐 지나갈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너는 몰라볼 정도로 눈부시게 자라 있을 것이고, 우리가 함께 웃었던 너의 18개월 아기 때의 기억은 너의 깊은 무의식 속으로 조용히 묻힐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