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하루에 30분 운동
국민생활체육 동해시 파크골프연합회
수신 : 동해시파크골프 동호회원
참조 :
제목 : 2014. 8월. 월회의 통보의건
1.국민생활체육 동해시파크골프 연합회 발전을 위하여 항상 노력하시 는 연합회 동호인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아래와 같이 8월 월 회의를 하고자 하오니 참석하시여 좋은 안건과 즐거운 시간 되시 기를 바랍니다.
~ 아 레 ~
회의일시 : 2014 . 8 . 29. 18시30분 (오후6시30분)
회의장소 :천곡동 박정형,이승재내과옆 로터리 매운순대가(033-533-5945)
월회의비 : 20.000원
월회비 입금구좌번호 농협 302-0783-7780-61 파크골프연합회 전영규
(통보드림니다)
* 동해시파크골프 연합회 신규 회원 입회 시는 회원 자격 등록비
(입회비) 20십만 원을 본회에 지불하고 입회하기로 이사회의 에서 의결 되였습을 통보합니다, (시행은 2015,1,1부터 한다.)
단. 월회비 3회 이상 체납 시는 회원자격이 없어집니다.
첨부: 효봉 스님이야기
국민생활체육 동해시 파크골프연합회장
사무장 강 영 주 010-3466-1348 회장 전영규 010-3365-7167
시행 (2014 .8. 21. 20.) 우 240-050 동해시 묵호시장길7-6
대표전화 033-531-7167 e. mail : gha222@hanmail.net
효봉(曉峰1888-1966). 스님이야기
효봉(曉峰). 스님은 1888년 5월 28일 평안남도 양덕군 쌍룡면 반성리 금성동에서 태어났다. 수안遂安 이 씨 병억炳億을 아버지로, 김 씨를 어머니로 5형제 중에서3남으로 출생, 이름을 찬형燦亨이라고 했다. 평양고보를 졸업한 뒤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 스물여섯 살에 졸업하고 귀국한 뒤 서른여섯 살 때까지 10년간(1913~1923) 법조계에 투신했다.
서울과 함흥 등지의 지방법원으로, 평양의 고등법원에서 법관으로 종사.1923년 나이 서른여섯 살 때, 법조계에 몸을 담은 지 10년째 되던 해 판사 이찬형은 최초로 내린 사형선고를 앞에 두고서, 몇 날 몇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면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회의하고 인간사 구조에 대해서 고뇌한다.
헌데 어느 날 이찬형 판사는 우리나라 독립투사에게 사형을 내려야 하는 처지에 빠졌다. 그는 죽음을 선고하면서 조국의 독립투사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 그는 "조국과 겨레를 위해 자신을 바친 애국자에게 내가 지금 사형선고를 내리다니…….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그는 이날 퇴근 후 부인과 자식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지 않고 곧바로 방랑길로 행했다. 입던 양복 1벌을 팔아 엿장수 좌판을 사서 전국을 유랑하며 때론 품팔이로 전전했다고 한다.
이찬형은 3년여 방랑 끝에 1925년경에 금강산에 들어가 당시 고승을 만나서 중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참회의 장자불와, 용맹정진에 돌입해서 석 달간 눕지 않았다.
엉덩이에서 진물이 터져 나와 구들방과 살갗이 붙어서 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토굴 속에 들어가 1년여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람이 바로 훗날 '효봉' 스님으로 알려진 분이다.
일제 강점기에 총독부 치하의 검사나 판사를 지냈다고 해서 모두 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못 배우고 들짐승처럼 살았던 우리 백성들도 총칼을 들고 일제와 싸웠고 어린 나이의 류관순도 비폭력 저항을 하다가 모질게 고문당하고 옥중에서 숨졌다. 처녀의 몸이었다.
하물며 사내대장부요 집안을 따지면 사대부집안 출신이라면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제'인지 뭔지 최소한의 금도가 요구된 시대 상황이었다. 여염집 아줌마들도(평범한 가정부인) 쌀 한줌을 아꼈다가 독립군의 군자금에 보태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언젠가 어릴 적부터 수재라고 잘나갔던 고 이항령(전 홍익대총장)씨가 자신의 일제강점기 군수 재임 사실을 고백하면서 민족 앞에 수차례 참회의 글을 올렸던 적이 있었다.
과거의 허물을 캐자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참회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잘한 것처럼 뻔뻔한 태도, 즉 이문열 식의 사이비 역사관인 "일제 때 친일하지 않으면 다 죽어야 했다"는 궤변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를 생각하는 집안이라면 이처럼 조국과 겨레의 역사에 흠결이 있으면 나서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국가 최고지도자가 되려면 그 의무와 과정을 생략하지 않은 집안과 인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호회 전 영 규 옮김
첫댓글 소중한 글 올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