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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답사 회원 지승스님이 주지로 있는 조계종 법주사 말사 가산사에서 '단군제'가 있습니다.
8일(토) 오후 6시부터 다음날 까지 막걸리 파티도 함께 진행됩니다. 절에서 뭔 막걸리냐고?
지승 스님 말씀 "물속에 불이 들어있는게 술이라는 물건이다. 그 불을 조잡하게 확 싸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사람도 있다."
우리 고조선 회원들은 후자에 속하지요. 불 조절 잘하면 술은 명약이고 환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가실 분은 목요일까지 메일이나 휴대폰 문자 넣어 주세요.
<가산사 단군제>
장소: 가산사(대한 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
시간: 오후 6시부터 다음날까지
주소: 충북 옥천군 안내면 답양리 542번지
전화: 043-732-6755
고조선 유적 답사회원으로 2016년 파림좌기 답사를 함께 하신 지승스님께서 주최하는 ‘단군제’가 열립니다. 지승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장이신 자승스님과 도반입니다.
국내 유일하게 사찰에서 개최되는 ‘단군제’로서 옥천군의 문화행사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6권의 역사서를 쓰기도 한 지승스님에 의해 시작된 ‘단군제’는 국조 단군임금을 생각하는 수백 명의 관심 있는 분들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종교, 예능, 역사, 노래패들의 공연이 이어지며 흥겨운 막걸리 파티가 이어집니다. 회원여러분들께서는 단군제에 참여하셔서 민족의 얼을 생각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인터넷에 가산사를 치면 유물과 역사가 나옵니다. 의병운동의 발상지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산>에 지승스님 인터뷰 기사가 나와 함께 보내드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고조선 답사 회원 지승스님이 주지로 있는 조계종 법주사 말사 가산사에서 '단군제'가 있습니다. 가무단과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막걸리 연회가 벌어집니다.
절에서 웬 말걸리냐고?
지승 스님 말씀 "물속에 불이 들어있는게 술이라는 물건이다. 그 불을 조잡하게 확 싸 지르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사람도 있다."
우리 고조선 회원들은 후자에 속하지요. 불 조절 잘하면 술은 명약이고 환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함께 가실 분은 목요일까지 메일이나 휴대폰 문자 넣어 주세요. 김남석 총무 pro630@hanmail.net
안동립 고조선유적답사회 회장
김남석 고조선유적답사회 총무
2016년 10월 2일
외지고 적막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 가산사의 주지 지승스님은 단군사상에 매료돼 단군공부로 수행을 대신하다시피 했다. 단군 스토리를 신화가 아닌 사실적 역사로 고쳐서 봐야한다고 웅변한다. 그는 못 말릴 애주가이기도.
아예 사람의 살갗을 구을 기세로 따갑게 쏟아지는 뙤약볕. 등골로 땀이 흐른다. 올여름 폭염은 유난해서 이미 진기록 여럿을 등기했다. 열 받은 몸으로 열나게 피서를 꾀하느라, 애먼 사람들만 주야로 생고생이다. 가산사(佳山寺)를 에두른 숲으로 들어서자 비로소 땀이 식는다. 주지 지승스님(68)이 푸짐한 몸을 묵직하게 움직여 앞장 서 숲길을 걷더니, 모롱이 그늘 속에 세워진 정자로 올라선다.
널찍한 정자 사방에서 솔바람이 불어와 시원하다. 지승스님에 따르면 명당에 자리 잡은 정자다.
널찍한 정자 마룻바닥 한쪽엔 닷 되들이 양은 주전자가 놓여있다. 달빛 휘영청 숲으로 들이쳤나? 지승스님은 간밤에 동무들과 양은 주전자를 돌리기를 거듭했던 모양이다. 주전자 안에선 물론 막걸리가 찰랑거렸다. 나는 자주 암자를 돌아다니며 스님네들과 일쑤 곡차를 마시곤 했다. 말술을 들이붓고도 시종을 일관해서 새벽처럼 말짱했던, 수행의 진도에 따라 음주 내공도 덩달아 비약하는 경지를 보여 준, 남도의 어떤 스님과의 추억은 세월 따라 발효해 향으로 감돈다. 물속에 불이 들어있는 게 술이라는 물건이다. 그 불을 조잡하게 확 싸지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 사람도 있다. 참신하게 마셔 마음의 온도에 이바지하는 바가 있다면, 회사원이건 농부이건 승려이건, 누가 마신들 독(毒)이 될 까닭이 없으렷다. 지승스님은 못 말릴 애주가다.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 작가 이윤기(2010년 작고)와 어울려 술이라는 걸 처음 마셨어요. 어라, 세상에 이런 좋은 음식이 다 있구나, 그런 감동이 밀려들더라고. 대체 술이라는 걸 누가 만들었지? 그 사람을 찾아내 제사를 지내줘야겠다, 그런 생각도 했었소. 해서, 문헌을 통해 술의 기원을 파헤쳐 봤더니 제6세 단군 달문왕검의 신하 마서자(麻西子)가 만들었더라고. 제가 말이죠, 지금까지 35회째 단군제(檀君祭) 행사를 주도해 치렀어요. 우리 민족의 상고사를 상기시키고 단군을 기리기 위한 축제이지만, 술의 비조(鼻祖) 마서자의 제사를 궁리하다가 발전한 착상이었어요.”
술을 즐기지만, 그건 한 줌의 여흥일 뿐, 지승스님의 본업은 당연히 수행이다. 뭐든 필이 꽂히면 들입다 파는 성정이라서, 법랍(法臘;중이 된 뒤로부터 치는 나이) 40세에 이른 지금까지 그는 불가의 여러 종목들을 골똘히 섭렵했다. 경전을 몸에 적셔 화통하게 꿴다거나, 방석 위에 뭉쳐 앉아 화두를 탄다거나, 염불을 식량처럼 입에 달고 산다거나, 산에 사는 사람이 할 만한 짓이란 짓은 대충 다해본 눈치다. 그러고서도 남아돌아가는 이채(異彩)가 있으니 그는 역사를 연구하는 승려인 것이다.
역사 중에서도 상고사, 즉 단군조선의 역사를 과녁으로 삼았다. 그러기를 35년. 그의 발은 이미 오래 전에 몽골이며 바이칼이며 만주를 무른 메주 밟듯 누비고 돌아다녔다. 이 양반이 과연 중물이 든 사람인지, 단군물이 든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을 지경으로 단군과 단군시대, 또는 단군 이전 시대에 해박하다. 관련 저서만도 여섯 종. 한마디로 상고사에 흠뻑 미쳐 살았다. 다시 얘기를 들어볼까?
“단군은 신화적 존재가 아닙니다. 실존했던 인물이니까. ‘단군 신화’를 사실적인 ‘단군 역사’로 고쳐 바라봐야 합니다. 고려의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단군을 신화적으로 기록한 건 순전히 중국인들의 입장에 섰기 때문이오. 단군은 ‘홍익인간’, 또는 ‘홍익인세(弘益人世)’를 건국이념으로 삼아 배달국을 세웠어요. 이 홍익 정신에 의하면 짐승이건 식물이건, 만물 모두가 사람이 혈육처럼 간수해야 할 살림살이입니다. 이처럼 웅장한 사상이 세계의 어디에 또 있단 말이오? 우리 민족이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는 걸 똑똑히 알아야합니다.”
“그토록 위대한 민족이 왜 그토록 수많은 수난을 당했을까? 외세에 무기력하게 당하고, 내부의 파란에 허덕이고, 비극적 역사가 많았어요.”
“유교를 받아들이면서부터 우리가 쪼그라들었습니다. 성리학 때문에 망했다고. 일테면, 사람을 양반과 상민으로 나누어 취급하다니, 이런 패륜이 어디 있나? 진정한 도덕과 윤리를 결여한 유교적 계급구조를 기반으로 날뛴 위정자들이 민중을 힘 있게 끌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소.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을 되살려야만 해요.”
“개인주의와 물신주의가 판치는 현대 사회에서 단군의 정신을 무슨 수로 되살리죠?”
“그 문제에 관해서는 저 역시 망망대해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듯이 막막해요. 그러나 우선은 민족적 자긍심을 확고하게 가져야 합니다. 또, 옛사람들의 ‘큰 정신’을 배워야 해요. 옛날 사람들은 ‘비가 온다’고 하지 않고, ‘비가 오신다’고 했어요. 나무 한 그루를 베더라도 미리 ‘톱 들어가요!’하고 외쳤어요. 큰 사람의 행동이라는 게 본래 어수룩하면서도 이웃을 향해 열려있는 법이라. 그게 홍익인세고 말이오. 우리의 핏속에 단군의 정신이 흐르고 있었던 거요. 그게 민족의 뿌리이자 혼이라는 거요.”
“가문의 뿌리든 민족혼이든, 근본의 우량 혈통을 내세워 강조하다보면 수구적 봉건윤리나 국가주의로 흐를 수도 있지 않을까? 정색을 하고 돌아앉는 사람이 많을 걸요?”
“홍익인간 정신은 오직 우리 민족에게만 있는 놀라운 이념입니다. 그 위대한 역사와 전통을 지켜내지 못한 걸 각성해서 이제라도 옳게 살아야한다는 얘기에 무슨 결함이 있을꼬.”
지승스님은 단군역사를 ‘신화’로 가늠해 왜곡하는 현실이 끔찍하다. 단군이나 홍익인간 정신을 골동품 취급하는 세태에 울화를 느낀다. 그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썩 나서서 단군제를 창립하고 주도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원효를 꼭 집어 홍익인간의 모델로 친다. 박통을 탕탕 두드리며 춤추고 노래했던 원효는 일체에서 벗어나 자유로웠다. 후련한 무애행(無碍行)을 일관하며 왕실과 귀족 중심의 신라 불교를 밑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저자의 백성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런 원효의 행장이 바로 보살행이자 홍익인세의 구현이라는 게 지승스님의 생각이다.
가산사 뒷산 기슭 당산나무 아래엔 단군 제단이 조성되었다. 단군제 행사 때엔 이곳에서 제를 올린 뒤, 제단 아래 공터에서 사오백 명의 참여자들이 밤새워 음식과 술과 춤을 즐긴다.
단군제는 신바람 나는 축제다.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과 일요일 양일간에 펼쳐진다. 가산사 뒷산 언덕배기 당산나무 아래 제단에서 무당들이 거하게 제를 올리는 것을 시작으로, 풍물패의 공연이 이어지며, 전국에서 우르르 몰려든 사오백 명의 참가자들이 밤을 새워 음식과 술과 춤을 흐벅지게 즐긴다. 산간 오지 절집에서 벌어지는 이 희귀하고도 진귀한 제전은 옥천군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떠올랐다.
정자로 흘러드는 솔향이 청신하다. 굽고 달구기를 업무로 삼은 뙤약볕은 여전히 기승이지만, 그건 숲 안의 일이 아니다. 단군에 홀린 사람이 양은 주전자를 기울여 막걸리를 따라준다. 그가 쓰는 말은 혹은 투박하거나 혹은 번뜩이지만, 낯빛도 음성도 주로 온유하다. 젊어 한때는 소설가를 꿈으로 삼았더랬다.
“왜 중이 됐느냐. 원체 가난했기에 목으로 뭘 집어넣을 길이 없더라고. 그래서 절에서 밥 얻어먹으려고 출가를 했어요. 한때는 소설이라는 걸 써봤어요. 그런데, 승려들이 쓴 기존의 소설들을 읽어보자니 얼굴이 화끈거리더라고. 금세 흥미를 잃고 포기했던 겁니다. 그렇게 문학을 포기하고 경전 공부에 매달렸는데, 불경이라는 게 죄다 문학이더라고. 중들처럼 말을 잘하는 사람이 드문 이유가 뭐냐 하면, 중들이 경전으로 문학을 한 꼴이라 그래요. 저 역시 예외가 아니라서 경전으로 문학수업을 했던 셈이었어요. 그걸 밑천으로 상고사 관련 책들을 써냈습니다.”
“절집 생활은 생리에 맞았나요? 달아나고 싶진 않았어요? 뭐에 매이는 기질이 아닌 것 같아서.”
“제가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것 하나가 중이 될 생각을 했다는 겁니다. 술도 마시고, 단군제도 하고, 남들이 보면 저 중이 왜 저러나, 의심을 하기 십상이지만, 사실 저는 처음엔 계율을 삼엄하게 지켰어요. 지금은 계율에 얽매이지 않은 채 그저 비승비속(非僧非俗)으로 살지만 말이오. 여하튼 절집 생활이 적성에 맞아요. 새벽에 일어나는 게 체질에 맞고, 간소한 음식을 남김없이 먹어야하는 바루공양도 성격에 맞아요. 그 무엇보다 나 자신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럽더라고.”
가산사의 중심 전각인 극락전 정경이다.
“가산사는 작은 절처럼 보이지만 유서가 깊어요.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대거 봉기한 절이잖아요.”
“아하, 가산사 승병 얘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가산사는 영규대사와 중봉 조헌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습니다. 이 두 분은 승병과 의병을 끌어 모아 가산사에서 훈련을 시켜 왜놈들과 전투를 치렀어요. 의병 8백여 명이 끝내는 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하고 말았어요. 상당수는 시신조차 수습되질 못한 채 까마귀밥이 되고 말았더라고. 현재 금산에 금산칠백의총이라는 게 있지만, 가산사에서 들고 일어 선 승병과 의병 8백 명을 추가해 ‘일천오백총’을 새롭게 조성하는 게 국가가 할 일입니다. 이런 안을 국회에 청원했으나 막판에 파기되길 거듭하더라고. 이 말을 꼭 해주쇼. 대한민국 국회가 시방 뭐하는 겁니까? 왜놈들과 싸운 순국선열을 이렇게 외면해도 되는가?”
“권력을 틀어쥐고, 그저 제 잇속 챙기기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국회의원들 아니겠어요?”
지승스님의 속가 별명은 ‘임꺽정’이다. 화통하고 꼿꼿해서 붙은 이름. 얼른 보면 투박한 인상이지만 온유한 결이 수시로 비친다.
“나라꼴이 시방 이거 맞는 거요? 친일파와 조중동이 다 해먹는 세상이지 않은가? 끙. 내가 말이죠, 사실 주지깜이 아니요. 내가 나를 알아요! 그러나 ‘일천오백총’ 조성 사업을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어서 시방 억지로 주지를 하는 거요. 속가에서는 저를 ‘임꺽정’이라는 별명으로 부릅니다. 수틀리면 해치우니까. 남들이 그래요, 스님처럼 대찬 사람이 아니면 누가 그 일을 하겠느냐고.”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가산사에 나타났다. 유기견이다. 지승스님은 기꺼이 거두어 기르지만 개는 아직 포옹을 허하지 않는다고. | 깊은 산골짝에 자리한 절이어서 둘레엔 온통 숲이다. |
지승스님의 낯에 분이 서린다. 관용도 보리심이고, 의협(義俠)도 보리심이다. 부처도 단군도 인간의 본분을 다하라 일렀을지언정 패륜이나 파행을 양해한 바가 없다. 적시에 들솟는 분기탱천은 자연의 이치에 가깝다. 그런데 말이다. 요상하고 요사스러운 게 국회뿐이더냐. 종교조차 문드러지고 있다는 논평이 남실거리는 세상이다. 고요한 절집에 눌러앉아 마음을 들여다보길 일삼는 스님네들은, 이 쓸쓸한 세상에 무엇을 보태려나? 도를 닦아 무엇에 쓰려나?
가산사는 작고 소박한 암자이지만 들어앉은 터전은 호방한 맛이 있고, 곳곳에 눈여겨 볼만한 풍경들이 숨어있다.
“얼마 전에 현각스님이라는 분이 한국불교가 돈을 밝힌다고 질타했습디다. 그게 옳은 소리요. 불교가 깨어나야 해요. 중노릇이라는 거, 깨달음이라는 거 별 게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물어 부끄러우면 그건 진짜 부끄러운 거라는 걸 알아차리는 게 수행이요.”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며 고고한 법문을 펼치는 스님들이 많고 많지만, 실사구시가 쏙 빠진, 그저 애매한 정신주의로 비치곤 해요.”
“선방에 앉아 화두를 타다보면 간혹 시간과 공간 감각에서 벗어나는 수가 있어요. 그걸 견성이니 도통이니들 하지만, 글쎄올시다, 그건 과대해석입니다. 원효도 경허도 성철도, 다들 특별할 게 없어요. 괜히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추앙할 뿐이죠. 성철스님은 신도들에게 3천배를 요구했지만, 그걸 방편으로 썼을 뿐, 그 자신이 그럴 자격은 없다고 했어요.”
“평생을 구도자로 사는 승려들과 속인들이 전혀 다를 게 없다는 말인가요? 뭐가 달라도 달라야할 게 아닌가?”
“절대 그렇게 보질 마시오. 중노릇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테면 생사불이(生死不二)라는 소리를 늘 귀에 달고 살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불안은 덜 할 겁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이 박두한 경우엔 어떻게든 더 살아보려 용을 쓰는 게 아니던가. 머리를 밀고 먹물 옷을 입고서 산에 산다고 색다른 눈으로 볼 일이 아니오. 색다르게 보는 순간부터 허위가 생겨나니까.”
“그렇다면, 스님이 말하는 ‘중노릇’이라는 걸 제대로 한다는 건 뭐를 뜻하지?”
“저에게 시방, 당신은 중노릇 잘했나? 그리 묻는 거요?(웃음) 난 부끄럽지 않아요. 가령, 신도들에게 부탁 받은 기도는 반드시 다 해줬고, 돈 때문에 무슨 사기를 친 적도 없어요. 술을 자못 좋아하지만, 진정으로 술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나쁜 짓을 할 일이 뭐람! 하핫!”
나는 오늘 이상한 승려를 만났구나. 그는 여느 중들과 달리 뜬구름 잡는 소리를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의 속은 양말이 아니라서 뒤집어 까볼 길은 없다. 하지만, 그가 도라는 메뉴를 팔지 않았으니 이 인터뷰가 공정거래인 것만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