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
일전에 단골로 다니던 미용실이 있었다. 미용타운 상가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미용실 중에서 세븐 미용실을 택한 것은 주인의 얼굴이 유난히 밝았기 때문이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싸인볼을 보고 생각 없이 들어선 사람들은 순간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고민에 빠질게 분명했다. 복도로 사이에 둔 두 명의 주인이 대놓고 호객 행위를 하지는 않았지만, 낯선 손님이 들어서면 찰나적으로 눈빛이 번개 치듯 번쩍거리곤 하였다.
.
그 날도 덥실덥실 제멋대로 자란 머리를 자르려고 상가에 들어서니, 금속성의 째진 목소리가 날카롭게 허공을 울렸다. 언제나 생글생글 곰살궂던 나의 단골 미용사와 앞집 미용사가 엉겨 붙어서 한 바탕 전쟁을 치루고 있었다. 단골 미용사가 입에 거품을 물고 분기탱천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래, 이것아, 나는 산전수전 공중전 화생방전까지 다 겪은 몸이다. 어디서 주둥아리를 함부로 놀려, 네가 나 이렇게 사는 데 보태준 것 있니” 하며 낯빛이 붉그락푸르락 그악스럽게 퍼붓고 있었다. 알고 보니 앞집 미용사가 단골 미용사의 이력을 속속들이 들추어낸 모양이었다. 그 소문이 돌고 돌아 당사자의 귀에도 들어가서 오늘과 같은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싸움의 끝은 처참하였다. 나이가 한 참이나 어린 단골 미용사에게 패악질을 당한 후 두문불출하던 앞집 미용사가 권리금도 챙기지 못하고 황급히 마을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기사 산전수전 공중전의 병법을 다 익힌 단골 미용사가 승리를 거둔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니겠는가.
자고이래 말이 많은 사람은 낭패를 당하기 쉽다. 여성을 억압하던 칠거지악(七去之惡) 속에도 수다스런 여자는 내쫓아도 좋다는 기록이 적혀 있으니 말이다.
어릴 때 기억을 떠올려 보면, 약방의 감초처럼 무슨 일이든지 참견을 잘 하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식전부터 식식거리며 이 집 저 집 대문을 두드리면, 영락없이 그 재재보살 아주머니였다. 서너 명의 아낙네들이 남정네들의 눈을 피해 주먹을 들이대며 무릎맞춤을 하는 날은 온 동네가 벌집을 쑤셔놓은 듯 소란스러웠다.
학창 시절에 즐겨 불렀던 ‘솔개’ 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우리는 말 안 하고 살 수가 없나, 나르는 솔개처럼’... 이런 가사였다. 인간은 새처럼 말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니, 그것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깊은 산중에서 묵언 수행하는 수도승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부대끼며 살아야 하니 말 때문에 빚어지는 활극은 피할 수 없는 인간사의 숙명이 아닌가 싶다.
명심보감의 정기편(正己篇)에 보면, ‘입과 혀는 화와 근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이고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고 경고하고 있다. 말 한 마디의 실수로 공들여 쌓은 인간관계와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소설가 황순원의 ‘별’이라는 단편을 보면 동네 과수댁이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가 화근이 되어 남매의 관계가 뒤틀리고 결국에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낳기도 한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사려 깊고 따스한 배려가 담긴 말은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반대로 입만 열면 거친 말과 욕설이 튀어나오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다시 한 번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말하는 태도만 봐도 그가 어떤 품격을 소유한 사람인가를 알게 된다. 중국 전국 시대에 세치 혀로 천하를 주물렀던 소진과 장의는 재갈꾼이요, 모사꾼이었을 뿐 덕이 있었다는 기록을 본 적이 없다.
나는 무장공자(無腸公子) 처럼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남의 입질에 오르내리는 일이 두렵다. 그래서 ‘좋은 말이 아니면 하지 말자’ 고 다짐하며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훈육하고 있다.
이렇게 마음을 다지고 살아도 한 마디 던진 말의 실수 때문에 마음이 힘들고 괴로울 때가 있다. 신라 경문왕 때의 복두쟁이가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고 소리쳤다는 이야기가 십분 이해가 된다.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고 그 말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서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다’ 라고 가르치고 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나는 그래서 날마다 스스로를 근신하지 않을 수 없다. 신이시여!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말을 지켜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