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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않으며 일하게
데살로니가후서 3장 4절 – 9절 2023년 5월 7일 어린이 주일 말씀지
한평생을 살면서 부모에게 걱정거리 형제들에게 짐만 되고 이웃에게 폐만 끼치다가 가는 자들도 있고 반면에 부모에게 자랑스럽고 형제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이웃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생활로 모든 자들의 본이 되는 생활로 막을 내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이때에 사도바울로 가장 먼저 기록케 하신 데살로니가 전후서의 말씀을 주셔서 복음이 믿어진 후 진리의 양식을 간절히 사모하여 마리아같이 주의 발아래 앉아 채워지게 하사 영광의 성도가 되게 하신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본받게 하십니다. 자녀들에게 그 부모가 누구인가? 중요하듯 영적 생활은 앞선 자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먼저 예수님을 본받게 하셨고 그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를 본받되 특히 사도 바울을 본받게 하셨습니다. 이때에 우리들로 그 앞선 사도들과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본받게 하시려 나타내주시는데 이것이 유전(遺傳)입니다. 아직도 본받을 만한 사람이 없으니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오늘은 부모로써 어린이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 있는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양심적인 생활을 기쁨이 넘치고 감사만 하는 생활을 하게 하시려 때에 양식으로 주십니다. 오늘날 기본 양심도 없이 마구잡이로 행하는가증한 목사나 장로들 부모들 어른들로 인하여 자녀들은 더 몰상식하게 남에게 엄청난 손해를 입히면서도 미안해 할 줄 모르고 뻔뻔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주시는 이 양식이 얼마나 귀한지요. 그러나 들으러 나오지 않는 자들이 많으며 나왔지만 양식으로 받지 못한 자들도 있지만 선지자 파숫군들은 양식을 나눌 뿐입니다. 겔2:5-
4절 너희에게 대하여는 우리의 명한 것을 너희가 행하고 너희는 본이 되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이요 우리는 본이 되는 사도 바울과 같은 생명 사역자들입니다. 사도들로 명한 것은 영적 생활을 지도한 것입니다. 양식은 받아 먹고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양식이 있으니 그 양식 받은 자의 생활이 어떠한 것을 사도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먼저 보이시고 행하라 하신 것입니다. (살전1:5)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이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요13:15-
양심시대는 내가 양심대로 율법시대도 내가 행하였지만 성령시대는 내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게 하시려 젖(구원이 복음=기쁨)을 먹이시고 생명의 떡인 밥(은혜의 복음=힘)을 먹여 힘이 생겨 환난과 핍박을 통하여 영광을 더하시는 꿀(영광의 복음=강해짐)까지 먹이셔서 기쁨과 감사로 행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입니다. 고후11:2-
복음으로 살아났건만 아직도 갈라디아 교회처럼 성경을 글로 배워 율법을 내가 행하려 하는 자들이 많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 분들은 수고는 많이 하는데 결국 마르다처럼 짜증과 원망이 늘 가득합니다. 그런 자들은 에수님이 오심으로 복음시대 은혜시대 성령시대인데 내가 행한 것을 자랑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이 되어 상은 불타게 되고 성령의 역사는 전혀 없으니 인본주의로 행하게 되는데 이것이 화(火)인 것입니다. 마23:13-
또 행할 줄을 우리가 주 안에서 확신하노니 누구나 앞선 자가 새벽을 깨우시는 것을 보고 행하기는 쉽지만 앞선 분이 내 앞에 계시지 않을 때 명한 대로 행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시작부터 가장 어려운 환난을 당하면서 복음이 믿어져 살리심 받았고 이제는 진리로 자라나 견고해져서 누가 있든지 없든지 사도들로 통하여 먼저 보여주신 그 생활을 그대로 본받아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각처에 들리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 대한 소식은 사도바울에게 너무 기쁜 것입니다. 살전1:8-
5절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모든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원죄로 말미암아 부패함으로 그 육체는 죄만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새벽부터 성령의 부르심과 감동을 따르게 되면 성령이 도우사 나의 마음을 주장하십니다. 새벽을 깨우는 이유입니다. 시46:5-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가장 큰 역사는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더욱 깨닫게 하사 감사만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똑같은 하루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깨달아지게 하시니 갈수록 더 기뻐서 감사만 나오는데 이것이 자라나는 영생인 것입니다. 요17:3-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예수의 인내는 십자가 구원을 이루기까지 고난을 참으신 것이요 그리스도의 인내는 부활하사 열매맺게 하시려 성령을 부어주시기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열매맺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1.육체의 소욕을 이겨야 하고 2.눈에 보이는 것을 좇지 말아야 하며 3.거짓되고 악해지지 않도록 진리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내를 깨닫게 하신 분들은 장성한 자들로 이제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면서 한 생명 살리는 그 일에 1.늘 기도하며 2.어디든 가게 하사 만나게 하신 자들 중에 복음을 증거하게 하실 때에 듣는자 보다 안 듣는 자가 더 많음으로 안타까우며 3.심지어는 훼방하고 핍박하는 자들도 생겨 어려움을 당하고 4.이미 살림 받은 자들을 어미처럼 희생으로 길러 가면서 눈물도 흘리고 5.이제 생명사역 일군으로 세우는 일에 수고하며 6.혹 잘못할 때마다 책망하여 강하게 하고 7.늘 이겨나가도록 아비처럼 보살펴야 하며 8.끝까지 강하게 하여 순교의 신앙으로 나아가도록 해산의 수고를 더하는 것으로 사도 바울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워나가는 분들입니다. 골1:24-
6절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형제들은 복음으로 아들의 생명을 살림 받은 자들이요 진리의 양식을 사모하여 채워나가며 영광길 가는 성도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내 말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감동되어 나로 말씀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는 자나, 말씀을 받는 자나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합니다. 이것이 양식을 나누는 자의 기본자세입니다. (벧전4:11) 그러나 성경을 지식으로 배워 가르치는 자들은 자기들의 머리에서 나온 것을 설교하고 있으니 자기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명하신 것만을 나타내셨는데 오늘날 강단에서 자기 생각, 자기 말하는 자들은 가증한 자들입니다. 요12:49-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규모(規模) 없이 행하는 것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앞뒤 대책도 없고 중구난방으로 행동하고 실천없이 말만 많이 하는 자들입니다. 복음이 믿어지지 않았고 진리로 자라나지 못하면 누구나 제멋대로 중구난방(衆口難防)이 됩니다. 우리에게 받은 유전은 앞선자 복음의 아비 사도 바울의 모든 생활입니다. 복음으로 살림 받은 자들의 1.신령과 진정의 예배 생활의 방법과 2.기도의 자세나 기도의 내용을 본받고 3.일상에 사랑 실천 생활과 4.사역할 때의 겸손한 자세와 5.한 말씀이라도 더 먹이고자 하는 모습들로 후대에도 본받도록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유전인 것입니다. 살후2:15-
그러나 앞선 자로 보여 주신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는 누구보다 자기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앞선 사도바울을 업신여길 때도 많고 자기는 잘할수 있다고 자리 다툼만 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서 떠나라 하신 것은 앞선 자로 보여줘도 따르지 않는 자들을 가까이하면 언젠가 나도 그들처럼 제멋대로 하는 것이 물들기 때문입니다.
7절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생명 살리는 자의 모습 하나하나를 본받아야 하기에 앞선 자는 말씀을 나누는 것과 생활이 함께 본이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앞선 사도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통해서 생명 살림을 받았고 자라났기에 그들을 본받고 나가야 상과 영광이 반드시 있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생명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는 사도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언제나 철저히 1.새벽을 깨워 자신을 죽여 늘 겸손하였고 2.한 생명이라도 귀하게 여겼고 3.어떤 일이든 갑자기 기분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4.미리 묵상 중 계획과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서 일을 하였고 5.시간 약속은 철저히 지켰고 6.마치고도 축제처럼 기분에 들뜨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한 이요 양심을 따라 범사에 하나님을 섬긴 것입니다. 행23:1-
8절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어디를 가게 하시든지 일하게 하시려 먹게 하셨습니다. 먹기만 하고 일하지 아니하는 자들이 규모가 없는 자들입니다. 양식은 육의 양식과 영의 양식이 있는데 영의 양식을 먹기 위하여 육신의 양식을 먹는 것이며 사도들은 영의 양식을 나누기 위하여 육의 양식도 먹었던 것입니다.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는 것은 일하려고 먹는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양식을 공짜로 먹는 것은 먹고도 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지금 한국에 목회자는 한 교회에서 머무르며 그 일에 집중을 하고 다른 직업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이 교회에서 다른 곳으로 떠나기 때문에 머무는 곳마다 일을 하고 육신의 양식을 먹었습니다. 사도행전 18정3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게 하셨는데 업이 같으므로 함께 거하며 일을 하였습니다. 그 업은 장막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사도 바울도 건축에 대한 기술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 직업만 갖고 산 것이 아니라 이 직업을 복음 증거하는 일에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되어서 교인들의 헌금만 바라고 자기는 아무 일도 안하고 성경과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살전2:9절에 우리의 수고는 생명 살리는 일을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육신의 가진 기술로 일, 곧 장막 만드는 일을 애써서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손을 벌려 도와 달라는 부담과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에는 영적 양식을 나누고 낮에는 육신의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한 것을 본으로 보이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교인도 없으면서 목사라고 하면서 1.생활비 보조받으러 손 벌리며 다니는 개척교회 목사들이 있고 2.자기 돈이 있으니 아예 생활비 받지 않으며 일하는 목사들도 있고 3.목사지만 일하면서 생활비를 받지 않으려 직장에 다니는 자들도 있고 4.교인이 많으니 목사 노릇하면서 회사에 높은 사장들처럼 온갖 대우를 다 받으면서 교인들을 종처럼 여기는 자들도 있습니다. 렘5:31-
9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고린도전서 9장9절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하셨듯이 생명살리는 일을 하기 때문에 먹을 권리 생활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먹기 위해 일하면 삯군이 되는 것입니다.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9장14절에 생명 살리는 일을 하는 자는 이 일만 바로 해도 살게 하십니다. 18-19절에 사도 바울은 육신적인 댓가인 생활비를 받지 않고 모든 사람의 종으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마20:28-
오늘날 말씀 사역자들이 섬기는 종으로 하고 있습니까? 목사라는 자기의 권위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생선의 가시는 뽑아내고 살만 먹듯이 잘못된 자들만 보고 실망하지 말고 비록 소수지만 바로 가는 자들을 보고 따라야 합니다. 사역자라고 특혜를 받고 명예를 얻고자 하는 것은 하나도 없이 오로지 복음 사역을 위해서는 육신의 힘든 일도 했던 것입니다. 육신의 노동을 통해서 내가 먹을 것이 생기고 남에게 줄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4장23절에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치고 잃었던 것을 찾아오지만 실 한 오라기도 자기 것으로 취하지 않았고 사무엘상 12장3절에 부정하게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선지자 사무엘인데 백성들은 왕을 구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선지도 청렴결백하여 그 어느 것 하나도 욕심내거나 취하지 않고 모두 하늘에 쌓은 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5:16에 나아만 장군이 아무리 좋은 것을 주어도 끝까지 고사하는 엘리사입니다. 그러나 게하시는 욕심을 내었고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연보를 도적해가는 가롯 유다같은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은 부지런히 사역을 했고 잠시도 쉬지 않고 시간만 있으면 말씀 앞에 엎드리고 말씀 사역을 하고 육신의 노동을 하며 자비량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부지런의 반대는 게으름입니다. 그러므로 생명 살리는 일은 게으른 자들은 할 수 없습니다. 잠언 24:30-34 에 증왕(曾往)에는 예전에, 돌아보니란 뜻입니다.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에는 가시덤불이 퍼지고 결국에는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른다 하셨는데 게으른 자는 자기도 못 살게 되고 남에게 누만 끼치다가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보고 본받을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생명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어떻게 하셨나? 본받아야 하고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하셨나? 그분의 어떤 점을 본받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복음 사역을 위해서 먹었고 먹은 후에는 일을 쉬지않고 부지런함으로 아무에게도 누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앞선 자를 따라가니 영광길이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게 와서 쉬어라 하신 것입니다. 마11:28-
그런데도 아직도 자기 열심을 앞세워 충성하려 하는 자들은 직분을 무거운 짐같이 여기고 늘 부담을 가지고 머리 아프도록 고민하고 허리가 휘어지도록 일하며 결국 병을 얻어 원망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