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문복희 초우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용쟁호투
페루의
숲
문복희 시집
형설출판사
문복희
시인, 문학박사,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며, 대한 YWCA 실행위원, 한국어문
회 편집위원 및 울란바타르대학교 겸임교
수로 활동중이다.
시집 「첫눈이 오면」 「숲속이야기」와 몽골에서
간행된 한 ․ 몽 대역 시집 「숲으로 가리」가
있으며, 그외에 「한국 신선시의 이해」,
「한국 여성과 문학」, 「행복한 시인의 사회」(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차 례
제1부 페루의 숲
잉카제국의 꿈 …2
마추픽추 1 …… 3
마추픽추 2 …… 4
마추픽추 3 …… 5
마추픽추 4 …… 6
마추픽추 5 …… 7
마추픽추 6 …… 8
마추픽추 7 …… 9
마추픽추 8…… 10
마추픽추 9…… 11
마추픽추 10 … 12
마추픽추 11 … 13
마추픽추 12 … 14
마추픽추 13 … 15
마추픽추 14 … 16
마추픽추 15 … 17
마추픽추 16 … 18
마추픽추 17 … 19
마추픽추 18 … 20
마추픽추 19 … 21
마추픽추 20 … 22
마추픽추 21 … 23
제2부 페루의 강
나스카 라인 1 …… 25
나스카 라인 2 …… 26
나스카 라인 3 …… 27
나스카 라인 4 …… 28
나스카 라인 5 …… 29
나스카 라인 6 …… 30
나스카 라인 7 …… 31
나스카 라인 8 …… 32
나스카 라인 9 …… 33
나스카 라인 10…… 34
제3부 페루의 성
쿠스코 1 …… 36
쿠스코 2 …… 37
쿠스코 3 …… 38
쿠스코 4 …… 39
쿠스코 5 …… 40
쿠스코 6 …… 41
쿠스코 7 …… 42
쿠스코 8 …… 43
쿠스코 9 …… 44
쿠스코 10…… 45
서 평 …… 46
제1부 페루의 숲
잉카제국의 꿈
안데스 늙은 산맥
문명의 묘지인가
황혼에 더 빛나는
빛나는 마추픽추
눈물로
못다 쓴 사랑
봉우리로 솟았다
차창에 기대앉은
외로운 보헤미안
불가사의 절벽 따라
잉카의 꿈 날리며
가슴 속
보이지 않는
산 하나씩 넘는다
2
마추픽추 1
새(鳥) 아니면 올 수 없는
성지(聖地)가 된 꿈의 마을
낯 설은 산맥 따라
날개 없이 날아온 새
오히려
잘못 온 길이
새 지도를 만든다
3
마추픽추 2
물소리 새소리도
얼어붙은 설산(雪山) 지나
꿈에도 볼 수 없는
너를 찾아 여기 왔다
만년설
아찔한 고독
너보다 아픈 사랑
4
마추픽추 3
떠나간 새 한 마리
다시 올 수 있다면
내 삶의 바탕화면
모두 다 지우고
인터넷
올리지 못한 글
나뭇잎에 입력하리
5
마추픽추 4
고난의 순례자 길
굽은 허리 펴게 한다
외로운 새를 만나
맥박 치는 작은 가슴
부리에
심장 쪼이며
황홀하게 울고 싶다
6
마추픽추 5
돌아도 길은 없고
돌계단만 아득한데
저 멀리 안개 속에
당신이 걸어온다
덤으로
살아온 시간
봉우리로 맴돈다
7
마추픽추 6
사라진 꿈을 찾아
설레며 오른 악산(嶽山)
숨었던 해저도시
공중에 떠오르니
숲 속에
세상이야기
메아리로 들려온다
8
마추픽추 7
음표 없는 악보 따라
연주하던 위대한 손
그대 떠난 빈자리에
기다림만 채워놓고
오늘도
눈 뜨지 말고
바람소리 들으란다
9
마추픽추 8
아무도 오지 않는
숲 속의 음악학교
메아리만 모아놓고
작은 새가 속삭인다
눈 감고
볼 수 있는 건
오직 그대 하나라고
10
마추픽추 9
야윈 다리 만져주던
따스한 손 어디 갔나
돌계단에 털썩 앉아
흰구름만 바라본다
아직도
사랑은 남고
앉은 채로 돌이 된다
11
마추픽추 10
누군가 벗어놓은
날개옷을 내가 입고
불꽃 속에 뛰어들던
아찔한 순간이다
시간은
숲 속에 있고
호흡만 멈춰진다
12
마추픽추 11
고산 지대 찬바람에
젖은 땀을 말리며
그대로 나무 되어
하늘을 바라보니
오늘도
천년 전처럼
잉카의 꿈 무너진다
13
마추픽추 12
아직까지 살아온 건
무너지기 위해서다
한순간 폭발하여
재가 되는 천년 사랑
너처럼
무너져야만
슬프도록 찬란하다
14
마추픽추 13
안개 젖은 숲을 지나
깊은 계곡 들어가니
물기 오른 나뭇가지
빨간 순이 올라온다
붓 꺼내
색칠하려니
부끄러워 숨는다
15
마추픽추 14
구름이 무너져서
물바다로 쏟아질 때
그대와 한 몸 되어
안개 숲에 갇히려고
가슴에
가득한 사랑
태초부터 아껴왔다
16
마추픽추 15
숲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새가 있다
나직하게 내려 앉은
자잘한 풀 안쓰러워
작은 새
숨죽이면서
발자국을 멈춘다
17
마추픽추 16
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내가 있다
보고 싶다 생각하면
우린 이미 만난 거다
비로소
너를 만나면
내가 나를 보는 거다
18
마추픽추 17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랑이 끼어있다
아픔과 아픔 사이
눈물이 따스하다
이 숲에
나를 버리고
여백으로 남고 싶다
19
마추픽추 18
남십자성 페루의 빛
산 속까지 비쳐온다
두고 온 어린 누이
내 안에 떠있는 별
그리워
절벽에 올라
편지 한 장 날려본다
20
마추픽추 19
멀리서 보이는 산
다가가면 안 보인다
바닥까지 떨어져도
어둠보다 빛이 많다
이제는
그대를 떠나도
온 세상이 보인다
21
마추픽추 20
첫사랑 그 입술에
살과 피를 온통 담아
절정까지 바쳤다고
모두 다 벗었다고
이 땅에
빈 껍데기만
남은 것은 아니다
22
마추픽추 21
다 떠난 성터에서
없는 지도 그려본다
언젠가는 가야만 할
하늘 끝이 땅 끝이다
다시는
내려갈 수 없어
무너지는 첫사랑
23
제2부 페루의 강
나스카 라인 1
힘 좋은 경비행기
내 몸을 싣고 간다
떨리는 몸짓으로
회색 땅 굽어보니
나스카
그림 동화책
한 눈에 펼쳐진다
25
나스카 라인 2
산을 타고 넘어 온
뜨거운 정열의 불
온 몸을 훑어내며
지나간 자리마다
우주인
펠리칸 새겨
화석으로 남겼다
26
나스카 라인 3
허공에 백묵으로
곡선을 그렸더니
땅바닥 내려와서
그대로 그림된다
몇 천년
그 자리에서
돌이 되는 사랑아
27
나스카 라인 4
몇백 년 살을 깎아
새겨놓은 그림이다
또 다른 나를 찾아
시계만큼 돌고 도니
그 속에
숨었던 시간
빛 속으로 걸어온다
28
나스카 라인 5
시인이 몰래 와서
그려 놓고 사라졌나
혈서보다 진한 사랑
거침없이 이어가니
시보다
강한 그림이
모래 위에 찬란하다
29
나스카 라인 6
종교보다 질긴 사랑
곡선으로 그려 놓고
세상의 밑바닥에
성자로 내려와서
산보다
깊은 그림자
멀리까지 보낸다
30
나스카 라인 7
몇백 번을 지우고
다시 또 그린 엽서
간곡한 사연 속에
꽃이 피고 꽃이 진다
단 한 번
벌새 울음을
듣고 싶어 여기 왔다
31
나스카 라인 8
한밤중 허공에다
찍 갈긴 오줌 줄기
거침없는 사내가
세차게 지나간 후
글로는
적을 수 없는
그림 한 장 남았다
32
나스카 라인 9
천 년 동안 왔다가
또 다시 되돌아간
그 빛을 찾아서
이 자리에 서 있다
시간을
거슬러가도
그대만은 지키리
33
나스카 라인 10
활자가 되지 못한
그리움이 떠다니다
천 길 아래 내려와서
흐르는 물이 되고
말 없는
잉헤니오강(江)만
먼저 와서 울고 있다
34
제3부 페루의 성
쿠스코 1
그림처럼 서 있는
페루의 성 지붕 위에
하늘로 날지 못한
새 한 마리 시인 같다
잉카의
처음과 끝을
찾으려고 남았는가
36
쿠스코 2
술기운에 그려놓은
왕자의 성 아니라면
필연코 침묵으로
조각한 성전이다
아마도
뜨거운 불로
몸을 떨던 사랑이다
37
쿠스코 3
무너지지 않으려고
바닥에 누워본다
하늘 밖 세상 비밀
어디까지 숨어 있나
땅 속에
우는 돌에게
엎드려 물어본다
38
쿠스코 4
꽃이 진 그 자리에
내려 앉은 섬이던가
잉카의 성 저물어도
황혼보다 아름답다
이 밤도
큰 사랑으로
손짓하는 외로운 성
39
쿠스코 5
세월을 담지 못한
페루의 성 그림 엽서
구절초 여인에게
바람 따라 보내본다
오늘도
그리움 뒤에
숨겨놓은 나의 사랑
40
쿠스코 6
지붕 끝 철탑 위에
햇살만 칼날 같고
노을에 걸린 설움
젖가슴에 젖어올 때
하늘 끝
피었다 지는
천년 사랑 외롭다
41
쿠스코 7
중세의 글자들이
떠나간 그 자리에
슬픈 날개 폈다 접은
낯선 땅 작은 새여
한 발짝
돌아설 수 없는
잉카의 성 어쩌랴
42
쿠스코 8
시들은 꽃의 날개
어디를 날고 있나
황홀한 노년의 길
비워두고 지나간다
가야 할
하늘 있다면
무너져도 좋으리
43
쿠스코 9
새떼들 떠난 자리
안개비가 내리고
쿠스코 거리마다
천 년의 꿈 흐르는데
꽃보다
아름다운 성
신화 속에 피어 있다
44
쿠스코 10
잡은 손 놓지 않고
비밀의 성 들어간다
흔들리지 않는 땅에
푸른 뿌리 심어 놓고
마지막
남은 사랑만
돌기둥에 새긴다
45
서 평
페루의 숲과 잉카의 꿈
강경호(서울교대 국어과 교수)
1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이야기 하고픈 사람이 몇 사람 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문복희 교수이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잘 섬기는 독실한 기독교인이며,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꾸는 시조시인이고, 우리 고전을 연구하는 국문학자로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재직 중이다.
며칠 전 만났을 때 <페루의 숲>이란 기행 시조집을 내게 되었다고 했다. 사진도 곁들여 정성껏 쓴 기행시들이어서 더 좋았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서울교육대학이고, 이곳에서는 국어교육에서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를 "어떻게 잘 가르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곳이기에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기행문 쓰기"에 관해 한 마디 하기로 자청하였다.
2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에 대한 이해와 그 공간 속에서의 체험을 통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발견해 가는 존재들이다.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엄연히 존재하는 현상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면 인류는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공간과 삶의 체험에 대한 성찰의 한 방편으로 기행문 쓰기는 오래 전부터 우리 문학교육에 뿌리 내려온 전통을 지니고 있다. 여행의 값어치를 깊이 깨달은 선인들은 그것을 알뜰히 적어 남기려고 애를 써 왔다.
이러한 기행문 쓰기는 낯선 곳을 여행하며 보고, 듣고, 겪으며 느낀 일들을 참다운 우리말로 드러내는 일이다. 학생들이 쓰기에 즐거움을 느끼고 삶의 알맹이를 저마다 마음을 다하여 적어 놓기 비롯하면 우리의 삶이 새로워질 것이라는 쓰기교육의 가치에도 들어맞는 것이다. 오늘날 여가활용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즐기게 된 지금의 현실에서 기행문 쓰기는 여전히 뜻 깊은 글쓰기의 하나로서 국어교육에서 다듬고 채워나가야 할 몫이라고 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진보라고 일컫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글쓰기 문화를 보완하는 이른바 제2의 구술성을 갖춘 새로운 매체로서 전자말을 등장시켰고, 이전까지 국어교육의 내용 영역을 차지했던 말하기와 쓰기를 넘어서서 국어교육의 범위를 확장시켜 놓은 이 시점에, '기행문 쓰기'를 글자를 매체로 한 글쓰기에 마냥 묶어둘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전자말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사진 이미지를 활용한 기행문 쓰기 지도 방안을 실제로 보여준 예가 여기에 있다.
문복희 교수의 시집 초고를 보는 순간 전자 매체 환경에 놓여 있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기행문 쓰기가 한층 더 친숙하게 다가가고, 기행문의 기본 요건인 여정과 견문, 감상을 보다 풍부하게 드러내며, 기행문이 소통되기 위해서 사진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값진 사례로 보았다.
3
영상매체 세대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학생들은 생각을 조리 있게 글로 정리하지 못한다. 소리와 글자, 그림과 사진이 각각 혹은 함께 나타나는 영상매체가 기존의 의사소통을 담당해 왔던 말하기와 쓰기 역할을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진취적인 사회과학자들이 책의 시대, 문자의 시대가 끝났다고 단정 짓는 그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내용이 명료히 이해된 것도 아니며, 그 변동이 현 사회의 구조적 정체성을 구체적으로 개념화할 수 있을 정도로 진척되지 않은 과도기에 있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서 영화와 컴퓨터까지 영상매체를 포함한 전자매체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온 파급효과를 우리는 일상적으로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결코 기존매체들의 폐기처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즉 매체의 발달은 매우 중첩적인 성격을 띤다. 인쇄가 쓰기를 대체하지 않았으며, 쓰기가 이야기를 없애지 않았다. 영화가 연극을 사라지게 하지 않았고, 텔레비전 이후에도 라디오는 어떤 영역에서 기능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는 옛 미디어들에게 그것의 고유한 기능을 되찾도록 하고 있다.
또한 매체의 시청각 의사소통의 특성은 정보가 한 가지 이상의 통로와 한 가지 이상의 기호체계를 거친다는 데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과거와 현재의 모든 매체에서 일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학교와 교육이 문맹 퇴치라는 전통적인 사명을 진정한 미디어적 문맹 퇴치로 확대하려면,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유네스코의 '그륀발트 선언'에서도 읽을 수 있다
학교와 가정은 자녀들이 이미지와 단어, 그리고 소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게 준비해 줄 책임이 있다. 어린이나 성인들은 이러한 세 가지 상징체계의 총체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이는 교육적 우선순위를 재조정할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재조정은 이번에는 언어와 커뮤니케이션 교육의 통합적 접근 경향에 힘을 실어 줄 것이다.(1985.1.22).
사진,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 등을 포함하는 전자매체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매체가 아닌 만큼, 음성매체, 문자매체와 더불어 전체적인 맥락에서 교육상 고려되어야 한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문화 시대에 순수한 글쓰기는 없다. 글쓰기는 내면의 세계에 글말로서 질서를 부여하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과정이다. 더욱이 완결된 결말을 지향하는 선형적인 글쓰기와 글 읽기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미완의 비선형적인 글쓰기와 글 읽기에 익숙해져 있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있어 글쓰기란 힘든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사진 이미지는 이 혼란스러움과 복잡함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리해 준다는 데 그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글쓰기에 있어서 사진 이미지의 역할은 다음 세 가지이다.
첫째, 사진이미지의 활용은 글쓰기의 오류를 수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글쓰기에 녹아 있는 보조적 역할로서 삽화와 마찬가지로 글쓴이와 읽는이의 소통을 원활히 해 주는 역할을 한다.
둘째, 사진 이미지의 활용은 글쓰기의 보조적 의미로 글쓰기를 안내해 주어야 한다. 다층적이고 다문화적인 전자매체문화의 환경에서 글쓰기의 맥락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사진 이미지를 통해 본래 글쓰기로 가도록 안내해야 한다.
셋째, 사진 이미지의 활용은 세대를 달리하고 지역을 달리하는 소통의 환경에서 글쓴이가 의도했던 글의 본 뜻을 살리는 방향으로 글쓰기를 안내해야 한다.
학생들이 사진을 활용하여 기행문을 쓸 때, 감상을 적으려고 한 것인지, 견문을 적으려고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을 때가 많다. 사진 이미지를 바탕으로 글을 쓸 때, 무엇을 중심으로 쓴 것인가가 모호하고, 따라서 자칫 견문은 없고 상투적인 감상만 나열하거나, 정보로서의 견문을 글로 쓰지 않고 사진 이미지로 대체하여 불완전한 글쓰기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기행문 속에서 사진 이미지가 견문과 감상을 대체하는 몫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 역시 글로써 드러내는 부분이다. 학생들의 기행문 쓰기에 있어서 사진 이미지는 스스로 모든 것을 말해주는 예술 사진으로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유발하고, 상승효과를 낳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한 편의 기행문 쓰기에서 '사진 이미지'의 활용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글과 사진 이미지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 내는 '글쓰기'를 통해서이다. 롤랑 바르트는 이에 대하여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정한 창조적 기쁨을 주는 것이라 하였다.
4
문복희 교수는 그가 시인이기 때문에 시조라는 언어로 그림을 다시 그리는 기행시를 쓰기 위해 '사진 이미지'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지도 방법을 보여 주었다.
안데스 늙은 산맥
문명의 묘지인가
황혼에 더 빛나는
빛나는 마추픽추
눈물로
못다 쓴 사랑
봉우리로 솟았다
차창에 기대앉은
외로운 보헤미안
불가사의 절벽 따라
잉카의 꿈 날리며
가슴 속
보이지 않는
산 하나씩 넘는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잉카제국의 꿈」 전문이다. 전체의 서시격인 이 작품은 구불구불 안데스 산맥을 넘어 고대 제국을 형성했던 잉카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인의 설렘과 비극적 몰락에 대한 안타까운 감회를 담고 있다. 기원 1만여 년 전에 이미 이곳에 살기 시작한 원주민들은 14, 5세기 백여 년에 걸친 잉카문명의 화려한 제국을 건설했었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원지대에 오늘날의 과학 기술로도 상상하기 어려운 고대 도시를 건설하고 방대한 제국의 영토를 지배했으며, 수천 년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는 나스카 라인의 수수께끼 등은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페루 기행 연작을 생산케 하는 매개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문복희 시인은 사진 찍기를 즐겨한다. 어쩌다 야유회나 백일장 등 모임이 있어서 함께 사진을 찍는 일이 있지만 바쁜 일상 속에 살다보면 잊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요즘은 디지털 시대가 돼서 사진을 인화하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시인은 인화한 사진을 나누어주며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이번 시집에 인물 사진은 수록되지 않았지만, 분명 시 쓰기를 하는 동안 시인은 쿠스코와 마추픽추, 리마와 페루의 숲을 담은 사진 이미지들을 많이 활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새(鳥) 아니면 올 수 없는
성지(聖地)가 된 꿈의 마을
낯 설은 산맥 따라
날개 없이 날아온 새
오히려
잘못 온 길이
새 지도를 만든다
「마추픽추 1」 전문이다. 고산 지대에 새처럼 날아올라 건설한 왕국, 고대 화려했던 잉카 문명을 이룩했던 꿈의 부족들이 만들었을 석성(石城)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눈은 한 폭의 산수화와도 같은 이미지를 제공해 준다. 「나스카 라인」 연작들 역시 수천 년 세월에도 없어지지 않는 신비로운 우주인의 그림에 대한 영상을 독자에게 전달해 준다. 나스카 라인은 땅 위에서는 볼 수 없고 경비행기를 타고 높은 하늘로 올라가야 볼 수 있는 땅에 그려진 그림들을 말한다. 팬 아메리카 고속도로 양쪽으로 작은 것은 80미터부터 큰 것은 4킬로미터에 달하는 그림으로 약 30미터 깊이와 50미터 넓이의 돌과 모래를 파내어 이루어진 라인이라 한다. 신기한 것은 그 방대한 그림을 비행기도 없던 오랜 옛날에 누가 그렸으며 어떻게 그렸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삼각도형, 거미, 도마뱀, 벌새, 고래, 우주인, 펠리칸, 나무 등 30여 개의 그림이 전하고 있다.
이 그림들은 마추픽추가 발견된 1939년보다 28년이나 더 늦게 발견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의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독일 여성 마리아 라이헤가 사막 한 가운데 망대를 세웠다고 하는데, 이 그림들은 망대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린 사람에 대해서는 나스카 토착민이 종교 의식으로 그렸다는 설이 있고, 옛날 우주인들이 나스카 사막에 내려와 관찰한 동식물들과 자신들의 모습을 그렸다는 설이 있다.
산을 타고 넘어 온
뜨거운 정열의 불
온 몸을 훑어내며
지나간 자리마다
우주인
펠리칸 새겨
화석으로 남겼다
「나스카 라인 2」 전문이다. 시인은 경비행기를 타고 이들 그림을 둘러본 인상을 위와 같은 작품으로 형상화하였다. 문복희 시인의 이번 시집은 남미 안데스 산맥의 고원에 위치한 전설과 신화의 나라 페루 유적지에 대한 낭만적 인상을 사진 이미지와 함께 생생하게 전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히 페루의 인상을 이미지로만 형상화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인의 내면에 있는 사랑과 그리움, 부끄러움과 슬픔들이 페루라는 이국적 배경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출되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
사랑이 끼어있다
아픔과 아픔 사이
눈물이 따스하다
이 숲에
나를 버리고
여백으로 남고 싶다
「마추픽추 17」이다. 그의 시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이 시에는 시인의 내면이 상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 시집은 첫눈이 오면과 숲속 이야기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이번에는 '페루'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앞서 발표한 두 번의 시집에서도 시인은 인도, 몽골 등 이국정서를 바탕으로 하는 낭만적 사랑의 시를 줄곧 발표해 왔다. 이번 시집은 페루라는 특정 장소를 여행하고 그 여정과 견문을 전통적 시조형식으로 묶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라 하겠다. 앞으로도 문 시인의 정진(精進)과 문운(文運)을 빈다.
페루의 숲
초판 1쇄 인쇄/2008년 12월 1일
초판 1쇄 발행/2008년 12월 5일
저자 문복희
발행처 형설출판사
서울 종로구 통의동 7-33 ․ 전화(02) 738-6052~4 ․ 팩시밀리(02) 736-7134
대구 중구 봉산동 152 ․ 전화(053) 425-2811~4 ․ 팩시밀리(053) 425-7315
발행인 장지익
등록 라~제9호 ․ 1962년 5월 1일
홈페이지 http://www.hyungseul.co.kr
e-mail hyungseul@hyungseul.co.kr
• 본서는 저자와의 협의에 다라서 인지는 붙이지 않습니다.
정가 6,000원
ISPN 978-89-472-4180-9 03810
* 불법복사는 지적재산을 훔치는 범죄행위입니다.
저작권법 제97조의 5(권리의 침해죄)에 따라 위반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거나 이를 병과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