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산
광주남(전)평통자문위원, (전)전국교장연수단 회장(교육경력 42년), (전)통일교육전문위원(전)영상미디어클럽이사장, 2019 《한강문학》으로 등단
천사(1004)대교
아침 일찍 일어나 정원에 있는 잔디밭을 산책하고 튼실하게 자라고 있는 나무들을 돌아본 후 가벼운 아침 운동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현관에 들어서면 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칭얼대며 따라다닌다. 고양이도 하루를 시작하겠다는 신호이다.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도 하루 일과 중에 소소한 즐거움이다.
TV를 켜자 지방 뉴스에서 전남 신안군에 있는 천사대교 영상이 보이면서 임시 개통한다는 자막이 떴다.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곳이기에 볼륨을 켜고 자세히 보니 아스라이 보이는 긴 다리가 클로즈업 되면서 다리 밑으로는 고깃배가 지나가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 장면은 정말 한 폭의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압해도에서 암태까지 연도교를 놓는다는 소식을 접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드디어 다리가 연결되어 개통을 앞두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섬 주민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진 것은 물론 섬을 찾고 싶은 여행객들에게도 큰 관심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설 명절을 앞두고 섬 주민들과 섬을 찾고 싶은 이들의 편의를 위해 천사대교를 임시 개통한 것이다.
10여 년이란 긴 공사 끝에 완공한 이 다리는 압해도에서부터 암태도, 자은도, 팔금도, 안좌도, 자라도, 추포도, 박지도, 만월도 등 7개의 섬이 연결되어 서해의 남쪽 해안에 대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매우 중요한 다리라고 할 수 있다.
교량 길이만 7.2km로 국내에서 영종대교, 인천대교, 서해대교에 이어서 4번째로 긴 다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다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하나의 교량에 현수교(기둥과 기둥 사이에 여러 줄을 연결하여 다리 상판을 지지하는 형태)와 사장교( 다리 위에 기둥을 세우고 뻗어나온 줄을 다리 상판에 연결하는 형태)를 혼합 배치하여 독특한 미관을 연출하고 있다. 현수교 주탑 높이가 164m이고 사장교 높이는 195m나 된다. 신안군 안내에 의하면 2010년부터 시작된 공사비가 5714억원이 들었으며 길이 10.8km, 너비 11.5m나 된다. 이 다리의 명칭은 당초 ‘새천년 대교’로 불리워 지다가 공모를 통해서 1004개의 섬으로 구성된 신안군을 상징하는 ‘천사(1004)대교’로 불러지게 되었다. ‘천사(1004)대교’는 신안군에서 섬 간의 거리가 가장 많이 떨어져 있는 교량이기도 하다.
나는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학창시절 방학이 되면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신안의 섬 도초도의 할아버지 댁에 놀러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에 섬에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목포항에서 흑산도행 배를 타고 2시간 정도 지나서 중간에 내리는 곳이다. 낡고 오래된 여객선을 타고 항구를 벗어나면 크고 작은 섬들 사이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다가 넓은 바다로 나가면 파도가 거칠어지면서 배가 좌우로 흔들리며 요동친다. 그럴때면 객실 안에는 섬사람들이 육지에서 사 온 물건들이 이리저리 뒹굴며 아수라장이 되기도 한다. 파도가 심할 때면 배가 30도 이상 기울어져 여기저기서 멀미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람이 잦아들면 언제그랬냐는 듯이 잔잔한 바다위에 맑은 하늘이 어우러져 평온함이 찾아온다.
자연의 풍파를 견디며 외딴섬에 살아온 섬사람들의 삶은 얼마나 고달팠을까? ...
바로 앞에 보이는 섬들을 보면서 배를 타지 않고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연결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렇게 힘들고 불편한 곳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일가 친척들과 내 또래들과 놀았던 기억들이 삶의 끝자락에 와있는 지금까지도 어렴풋이 떠오른다.
천사의 섬에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들이 많이 있지만 도초도의 시목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부드러운 모래가 동그랗게 펼쳐져 있고 사방에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찾는 이들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준다. 이곳을 찾은 한 지인이 본 소감을 오메가 모양처럼 마음을 감싸주는 것 같다면서 ‘오메가 해수욕장’ 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이곳에 와서 꽃게잡이를 하기로 하고 낚시밥과 나일론 줄을 준비한 후 바위 위에 앉아서 긴 줄에 갈치 젓갈 낚시밥을 묶어 던져놓으면 꽃게가 먹이를 따라 물 위로 올라 올 때 뜰채로 잡아 올렸다. 운이 좋아 30여 마리나 잡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제 긴 세월 동안 섬 주민들이 염원해 왔던 다리가 우뚝 서 있다. 물론 아직 다리가 연결되지 못한 섬들이 수없이 많지만 천사대교가 시발점이 되어 연차적으로 확대해 가기를 기대한다. ‘천사대교’ 의 개통으로 섬 주민 모두가 불편함이 해소되고 삶의 질이 좋아질 뿐 아니라 접근성이 좋아져 많은 여행객들이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첨단기술로 완성시킨 멋진 천사대교를 보기로 하고 아침 일찍 여행 채비를 하고 아내와 함께 차에 올랐다. 즐겨듣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안드레아 보첼리와 사라 브라이트만이 부르는 ‘Time to say good bye’를 콧노래로 따라 부르며 가다보니 어느새 ‘천사대교 개통’이라는 플랑카드가 여러 곳에 걸려있다. 바다에 웅장하게 서 있는 천사대교가 눈에 들어온다. 동양의 나폴리라고 불릴만한 섬과 바다 그리고 다리!
생동감 넘치는 도심을 벗어나 야외를 가면 기후와 자연이 잘 어울리도록 아름다운 산과 들판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외국 여행객들이 감탄을 하면서 부러워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해외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한다.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나라들도 우리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IT기반이 잘되어 있고 첨단기술력이 앞서가는 나라, 벤치마킹하고 싶은 나라가 된 것이다. 이제 금수강산 우리나라로 세계 관광객이 몰려 올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천사대교가 우리나라 해양관광의 마중물이 되어 세계의 섬 관광지로 이름난 베트남의 하롱베이처럼 가보고싶은 섬 여행의 명소가 되리라 믿는다.
짧으면서도 함축되어 있는 이름 ‘천사대교(1004 Bridge)!!’ 건설을 축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