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다들 안녕하신지요?
지난 35년간의 교단 생활을 청산하고 야인으로 돌아갑니다.
아무 계획 없이 광야로 나오게 되니 앞으로,
죽는 날까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 합니다.
먼저 가시는 분들의 지혜를 구합니다.
<퇴임사>
가만히 있지 않는 교육
안녕하십니까? 이번에 명퇴를 하게 된 김종인입니다. 지난 2013년 3월에 우리 학교에 와서 만 2년을 근무하고 교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지난 1980년 교단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만 35년 동안 정말 파란만장한 교단생활을 무사히 보내고, 이렇게 명퇴를 하게 된 것은 오직 선후배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특히 우리 학교에 와서 좀 더 오래 학생들을 위해 봉사해야 마땅하오나 2년 만에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이렇게 떠나게 되어 우리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부끄럽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지난해 세월호 사건이 터진 이후, 정말 많이 고민하고 참회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문제점을 생각하고, 우리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참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지난 30여 년 동안 교육현장에서 늘 “가만히 있으라. 조용히 해라. 시키는 대로 해라. 모든 것은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라고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논하는 어느 자리에서 저는 비장하게 말했습니다. 만약에 제가 그 세월호에 탔다면, 우리 반 아이들에게 방송에서 시키는 대로‘가만히 있으라’하고 기다리다가 아이들과 함께 조용하게 죽었을까?, 아니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거역하고 결사적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물어보았습니다.
1978년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80년 울진종합고등학교를 시작으로 포항중학교, 김천여고 등에서 근무하다가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뒤, 5년 만에 1994년 감문중학교에 복직한 이래, 지례중학교, 김천중앙고등학교, 김천여고, 구미 선주고등학교, 김천생명과학고등학교를 거쳐 마침내 우리 율곡중학교에서 퇴직하게 되었으니, 정말 파란만장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동안 저는 학교에 다니면서 지각, 조퇴, 결석을 모르는 모범생이자 중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장학생이었으며, 군대서조차 에프엠(FM)으로 통하던 육군 장교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아이들을 지도하는 모범 교사요, 어릴 때부터 꿈꾸었던 교단을 천직으로 여기며, 평생 평교사로 신성한 교단에 한 목숨 바칠 것을 맹세해 왔으니, 아마 제가 세월호에 탔다면,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죽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아마 아무 말도 못하고 죽었겠지요.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해 보았습니다. 가는 학교마다 문집과 교지, 신문과 소식지를 만들었으며, 1983년『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후, 1984년 『분단시대』 동인을 결성하여 도종환 시인, 배창환 시인 등과 활동하였으며,『흉어기의 꿈』,『아이들은 내게 한 송이 꽃이 되라하네』,『별』,『나무들의 사랑』, 2007년 제5시집 『내 마음의 수평선』을 발간하는 등의 문학 활동과 1990년 대구 『우리신문』 창간 기자, 1991년 포항 MBC 구성작가, 대구 『하나신문』, 김천의 새김천신문 기자, 1987년 포항교사협의회, 1988년 김천교사협의회, 1989년 전교조 김천지회를 만들어 노태우정권 공안 당국의 압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아니한, 시인이요, 기자요, 시민운동가요, 전교조 해직교사였으니, 제가 만약 세월호 안에 있었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거역하고, 마음대로 아이들을 모조리 끌고 나와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입니다.
오! 저는 그런 상반된 두 길을 생각하면서 몸서리치고, 한없이 부끄럽고, 깊은 바다, 심연에서 허우적대는 꿈을 꾸다가 깜짝깜짝 놀라 깨어나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아무 죄도 없는 순수한 학생들을 산채로 수장시킨 것은 바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라는 것을.
김진경 시인은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300명이 넘는 죄 없는 청소년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가는 동안, 구조 책임이 있는 국가기구를 독점한 상층 계급 카르텔은 생명을 구하는 건 안중에 없고, 자신의 기득권을 어떻게 지키고 확대할 것인가에만 골몰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카르텔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언딘으로 일감을 몰아주기 위해 해군과 미군, 공적 구조대와 민간 자원봉사자들의 접근을 차단하느라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허비하였고, 구조를 방기한 채 마치 육해공에서 국가의 전 역량을 기울인 대구조작전이 펼쳐지는 것처럼 언론을 조작하여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려 하였으며, 진실을 알리려는 이들을 정보기관과 경찰 사법기구를 동원하여 억압하는 데 골몰하였다. 이것은 국가기구를 독점하고 있는 상층 계급 카르텔의 명백한 학살행위이다.”
그렇습니다. 300명이 넘는 죄 없는 학생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죽은 것은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민주적 책임 결여가 근본적 문제일 것이요, 어쩌면 우리가 수십 년 동안 교육을 잘못한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해외 학자 1074명이 세월호 참사 관련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들은 성명에서 "세월호 참사가 단순히 비도덕적인 선장과 선원들의 개인적 일탈 행위의 결과일 뿐만 아니라, 최근 진행되고 있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 정부의 무능력과 부패에서 비롯된 미비한 구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는 국민 모두의 공익과 안전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기업의 이윤 극대화만 추구하는 무분별한 규제 완화와 민영화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경제적 이윤과 효율이라는 명분하에 사람 자체를 수단시하는 이익집단이라면, 그것은 기업들 간의 카르텔일 뿐이지 정부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십 년간 교육에 종사해 오면서, 스승의 날 가슴에 붉은 꽃을 달면서, 아이들과 교사와 학부모가 세월호 속에서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장면을, 우리는 그저 아무런 힘도 없이, 넋을 놓고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권의 묵인 방조와 자본의 탐욕이 만들어 낸 참사가 어디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뿐이겠습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자본의 정리해고, 비정규직 노동, 대학 학자금, 생활고, 입시 경쟁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은 또 얼마나 됩니까. '구조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던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정권을 향해 책임을 묻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것이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고, 그로인해 경제 회복을 더디게 한다는 현 집권세력의 후안무치한 책임 회피를 보면서, 아직도 생사조차 모르는 이들이 춥고 어두운 배안에 갇혀 있는데도 언론의 '잊어 달라'는 노골적인 주문을 보면서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희생당한 이들이 다시 살아오게 해야 합니다. 그들이 다시 살아오는 날은 자본의 탐욕이 멈추고, 정권이 더는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언론이 정권과 자본의 나팔수가 되어 그들의 '받아쓰기'를 스스로 거부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매 다시, 꿈꾸어 봅니다. 이제는 정말, 학자금이 없어서, 먹고 살 앞날이 불안해서 아이를 끌어안고 전전긍긍하다 죽지 않아도 되고, 일하다 다치거나 죽지 않는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이 더 이상 입시 경쟁에 목숨 걸지 않아도 되고, 마음껏 끼를 발산하며 스스로 인간으로 서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부활의 교육, 저항의 교육, 가만히 있지 않는 교육’일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교육, 신명나는 수업 한 번 해 보지도 못 하고 교단을 떠나게 되어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리하여 헨리 반 다이크의 무명교사, “그가 사는 곳은 어두운 그늘/ 환란을 당하되 달게 받도다./ 그를 위하여 부는 나팔 없고/ 그를 태우고자 기다리는 황금의 마차는 없”다는 시를 읽으며, 시골 중학교의 이름 없는 교사, 조용히 물러가고자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선생 노릇 제대로 못한 것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학생들을 꾸짖고, 나무라고, 회초리질만 하고 칭찬에 인색하였던 점이 너무도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죄송합니다. 가르치는 일에 발 벗고 나서야 함에도 불구하고, 열정도 없이, 주저하고, 바라보기만 했던 점, 여러 선생님들께 너무도 죄송합니다.
학교에서 늘 받기만 하고 베풀지 못한 것, 또한 떠나는 가슴을 무겁게 합니다. 제게 베풀어 주신 모든 분들의 은혜 잊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겠습니다. 교직원 여러분들, 모두 건강하시고, 늘 행복하시고, 만사가 형통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혹시 경조사가 있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연락해 주시면, 발 벗고 뛰어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으로 졸시 한 편 붙입니다.
나는 스승이 아니다
바른 소리 한마디 못하는
상명하달 지시사항 전달자일 뿐,
자율학습 마당의 감독자일 뿐,
참되거라 바르거라 밀쳐두고
기계적인 지식만 가르쳐 왔나니
오지선다형의 울타리에 가두고
딱딱한 책상에 못 박아 두었나니,
나는 스승이 아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삶은 어디 가고
주입식 날림지식만 팔아먹은 혀로
부끄러이 부끄러이 고백하느니
살아 뛰는 꿈 하나 심어주지 못하고
바르게 질타 한번 못하였거니
붉은 꽃송이 가슴에 달 수 없는 것
이제 두꺼운 껍질을 깨치고 일어서기 위하여
나는 너희들의 스승이 아니다
이 땅의 힘 있는
이 땅의 현실을 눈감지 않고,
함께 어우러져 노래하며
질곡의 늪을 헤치고 나가 깨우치고
진리를 파내는 광부
단단한 울타리를 뚫고
바르게 일어서는 교사이기를 바랐을 뿐,
붉은 심장 하나 꺼내어 달고 싶었네
붉은 꽃잎 하나씩 떼어주고 싶었을 뿐,
우러러 볼수록 높아만 지는
너희들의 스승이 아니니
깨끗이, 이제 그만 잊어다오
<김종인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