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詩, 나는 이렇게 썼다 ■
핸드폰은 희망을 담고 있다
김선호 (시인)
나에게서 詩란 당 세대의 삶을 우려내거나 새로운 인식을 은유해야 한다. 나
는 이 입장을 고수하며 시를 쓰는 편이다. 그래서 시를 모아놓고 보면 일기처럼
그때그때 시를 쓴 시대적 배경이나 감정이 담겨 있다. 현실을 벗어난 시들은 내
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오지 못했고, 초현실적이고 실험적인 시들은 내게 맞지
않는 옷과 같아서 불편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시류에는 편승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시관을 고집하며 시를 쓰는 것도 아니다. 생활 속에서 발견
한 매체들이 시를 통해 형상화 되고 그것이 새로운 인식으로 찬사 받는다면 충
분하다. 그래서 내 시는 일상적이고 평이한 소재들이 대부분이다.
소리샘을 들여다보면
소리방울들이 시간을 따라서 뼈를 이루고 서 있다
부재중일 땐 상냥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라며
맑은 샘 속으로 안내하던 그녀는 간 곳 없고
따뜻하거나 차가운 목소리들이
나야 나를 외치며 출렁거린다
전해지지 못한 무수한 소리 알갱이들은
쓰러지지 않도록 웅얼웅얼
어둠 속에서 공기를 찢으며 고적함을 견디고 있다
소리들은 샘 밖으로 기어 나오려고
억지로 애쓰질 않는다
때를 놓친 기쁨이 슬픔이 되고
슬픔이 노여움이 되고
노여움은 그리움이 된다
두레박을 내리자
밖을 향해 서 있던 소리들이
나팔꽃처럼 줄기에 매달려 따라 올라온다
비어 있는 샘을 들여다본다
살아 있는 언어를 간직했던 자리가 푸르다
- 졸시,「 소리샘」전문
몇 년 전에 친척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영안실에 갔
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그의 영정 앞에서 슬픔을 주체 못하다가 남겨진
부인과 어린 두 아들을 보니 한 없이 애처로웠다. 망연자실해서 울고 있는 가족
들과 장례 준비를 같이하며 올망졸망 남겨진 어린 아이들이 아빠 없이 살아갈
길을 생각하니 그들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망자가 밉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빠의 영정 앞에서조차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린 상주는 우울하
고 무거운 분위기가 무섭다며 우리 아빠는 언제 오느냐고 아빠한테 전화 좀 해
달라고 했다. 내 핸드폰으로 그 어린 상주가 불러주는 번호를 입력하자 긴 신호
음 끝에 “지금은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소리샘으로 연결됩니다.”라는 밝
고 고운 목소리가 안내되었다. 아이는 전화기에다, “아빠 언제와. 빨리 와. 무
서워.”하면서 아빠가 고인이 된 줄 모르고 아빠를 기다리는 소리를 핸드폰 음
성 사서함인 소리샘에 저장했다.
기다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삶은 없다. 그러나 죽음 속에선 기다림이 없다.
기다림의 존재론적 의미나 질량, 차원 등은 모두 다르지만 그 속엔 희망을 담고
있다. 어린 상주는 막막하고 지루함 속에서 아빠를 기다리는 희망이 결코 찾아
오지 않을 것임을 언제쯤 알게 될까? 우리가 핸드폰에 음성 녹음하는 것은 상
대편이 녹음된 음성을 확인하고 답을 주기를 기다리는겠다는 의지를 전제한다.
기다림의 궁극적인 목적은 부재한 대상에게 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다린다
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가 있다. 그러나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기다림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죽음과 함께 핸드폰에 저장된 소리들은
영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묻힌다는 것이다.
소리샘 속을 들여다본다. 소리들은 먼저 저장된 순서대로 등뼈처럼 서 있다.
부재중임을 안내하던 상냥한 여인은 간 데 없고 차거나 맑은 소리 알갱이들이
모여서 웅엉거린다. 전해지지 못한 소리들은 하염없이 때를 기다린다. 그 소리
의 알갱이들은 그리움도 슬픔도 모른다. 다만 소리를 저장해둔 사람들의 그리
움만이 담겨있다. 소리샘을 연결했을 때 한여름 나팔꽃처럼 줄에 매달렸다가
설렘을 안고 딸려 올라오던 목소리를 듣고 반갑기도 하고 때를 놓친 소리에 안
타까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기다림 속엔 만남이 전제되어 있기에 언어들은 살
아있는 것이다.
인간은 ‘죽음 앞에선 존재’라고 하이데거가 말했다.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이 시를 쓰면서 죽음을 앞당겨 생각해 보았다. 하루하루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생 속에 보편적인 가치와 이상이 있다고 믿었지만 우리 삶의 주체는
내가 아니고 정해진 운명에 달린 게 아닌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그러면서 삶의
소중함과 내 존재의 의무를 느꼈다. 죽음이 우리 삶에 활력과 긴장감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이 시를 쓸 때는 너무 슬퍼서 더 이상 눈물이 나올 것 같지도 않았지만 시에
다 슬픔을 넣을 수가 없었다. 시를 밝게 쓰는 내 성격 탓으로 시 속엔 밝음과 경
쾌함이 있다. 샘이란 단어가 푸름을 주기 때문이다.
시「소리샘」을 쓰고 얼마가 지난 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핸드폰 단축번호
5번에 저장된 아버지란 단어를 차마 지울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리워서 내 핸드폰 저장된 아버지 단축번호를 눌렀다. 뜻밖에 신호음이
끊기고 누군가 전화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 번호를 다른 사람이 쓰는구나’하
고 얼른 끊으려고 하는데 뜻밖에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기는 아버지가
늘 가지고 다니시던 유품이기에 없애질 못했더니 아버지 찾는 전화가 온다고,
그 분들께 아버지가 가신 걸 알려드려야 될 것 같아서 아버지 전화번호를 없애
지 못했다고 하셨다. 그래서 얼마 동안 내 핸드폰 속엔 아버지가 어머니 목소리
로 살아계셨다.
핸드폰은 소통의 역할이 주된 임무이지만 희망을 담고 있다. 현대 문명의 이
기 속에 핸드폰은 우리와 뗄 수 없을 정도의 친밀한 기계가 되어 있다. 전자제
품 중에 가장 가깝게 다루는 제품이 핸드폰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며 화면을 들여다보고, 메세지를 확인하곤 한다. 어쩌
다 외출 시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가면 밖에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별다
르게 연락 올 일이 없으면서도 종일 불안한 게 현대인의 삶이다.
열개의 다리마다 핸드폰 번호를 매달고
출항을 꿈꾸고 있다
사각 몸에 신용대출에 대한 글을 친절히 적었다
머리는 세우고 다리만 흔들며 바다 속을
오르내리던 오징어들
몸이 바싹 말라있다
열개의 다리를
세상 안으로 들여 놓을 준비를 하고 있다
심해 속 정박해 있는 폐선 사이에서
은빛 지느러미를 팔딱이며 거친 숨 내쉬던 물고기가
오징어를 뚫어지게 읽다가
다리 한 짝을 찢어간다
다리 일부를 떼어 줄때마다
수액이 빠져나가 하얗게 말라간다
가벼워 질대로 가벼워진 몸,
돛에 기대어 펄럭이고 있다
- 졸시,「 꿈꾸는광고지」전문
길을 걷다 보면 전봇대나 나무에다 핸드폰 번호를 적어 매달은 전단지를 종
종 보게 된다. ‘신용 대출’을 안내하는 광고지인 경우도 있고, 대학생들의 ‘과
외구함’을알리는광고지들도있다. ‘ 파출부’ 용역회사 전화번호도 매달려있고
‘중고 피아노를 산다’는 광고도 보게 된다. 핸드폰 번호를 적어 전단지를 붙이
는 이들도 서민들이고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서민들이다. 우리가 읽
고는 무심히 지나친 글귀들도 있지만 고딕체로 또박 또박 쓰여진 글씨가 우리
마음을 팔랑이게 할 때도 있다.
상상 속엔 우리의 감정을 새롭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고정된 관념은 평면적
인 생각에 갇히게 하지만 상상은 현실을 초월하게 만든다. 몸통인 흰 A4용지에
알리고 싶은 글귀를 크게 적고는 밑 부분에는 핸드폰 번호를 적어 가위로 번호
마다 잘라놓은 모양은 다리 같다. 핸드폰 번호를 적은 다리들이 날아가려는 듯
날리고 있다. 핸드폰 번호를 통해 사회와 소통을 하려고 붙인 광고 전단지가 마
른 오징어 같다는 상상하고는 시를 쓰게 되었다.
몇 번의 퇴고만으로 시를 완성한「소리샘」과는 달리 시「꿈꾸는 광고지」는
여러 번 고치고 고친 끝에 완성된 작품이다. 광고 전단지를 마른 오징어로 은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여러 번 전단지 앞에 가 서 있기도 했고, ‘어떤 글
귀를 인용할까’도 많이 생각했다.
한때는 집안에 꼭 들여놓아야만 될 것 같아서 거구의 몸체를 방안에 들여놓
고 아이에게 닦달을 하면서 치게 하던 피아노가 어느날부터 골칫거리가 되었
다. 중학교를 가면서부터는 피아노 대신 책상 앞의 책과 가까이 하게 되었고 그
러다 보니 피아노는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이사를 할 때도 피아노 옮기는
일이 불편했고 늘어나는 살림에 피아노가 방을 차지하고 있는 일이 부담스러웠
다. 분리수거함에 내다버리기는 아깝고 간직하자니 검은 물체를 모셔 두고 있
는 것이 짐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전봇대에 붙인 ‘중고 피아노
구함’이란광고전단지를보게되었다. ‘ 고가매입’이란글이눈에확들어오면
서 피아노를 팔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흰 종이 구석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찢어 와서 전화를 했더니, 중고피아노를 구해서 외국에 다시 수출한다고 했다.
없애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다시 사용하게 된다는 말에 정감이 가서 가격
을 물었더니 제품을 봐야 알겠지만 대략 60만원 전후로 사겠단다. 방안에 골칫
덩어릴 60만원이나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피아노는 아이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가구란 생각도 있었
지만 저 피아노 소리를 통해 우리들이 웃고 즐거워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 추억
을 생각하니 60만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란 생각이 들었고 몇 년 더 가지고 있
다가 딸아이 시집 갈 때 혼수품에 얹어 보내면 손자들이 대를 이어 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피아노 팔 생각을 접은 적이 있다.
처음엔 피아노를 매입한다는 전단지 광고를 시로 쓸 생각이었다. 손때 묻혀
치던 피아노가 외국으로 팔려나가 또 다른 음악을 만드는 것도 글감이 될 것 같
았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에 수출되어 거리를 운행하는 마크도 선명한 중고
현대자동차를 소재로 쓴 시가 이미 있기에 의미가 겹치는 것 같아서 생각을 바
꾸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 노선표도 안 뗀 채 달리는 중고차들을 소재로 쓴 졸
시「노선을 잃은 버스」가 이미 발표 된 적이 있다. 그래서 신용대출에 대한 글
귀로 바꾸었다. 신용대출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지친 삶과 광고비마저 아끼
고자 불법 광고지를 전봇대에 붙이고 전화가 오기만 기다리는 대출업자의 기다
림. 이 둘 사이에는 핸드폰이라는 매개체가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다. 이 시간 속을 직시하고 현실에 닥친 문제를 극복하
고자 한다. 그러나 마음은 현실 속에서만 살지 않는다. 때로는 허황된 상상도 하
고 때론,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속을 헤매도 한다. 그러나 나는 늘 현실에 매달려
시를 쓰고 있다. 현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나 사물이 유일한 시의 소재이고
그들을 은유화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시가 새롭지도 않고 평이하고 보편적
이다. 깨달음이 있는 시나 자연주의자들이 쓰는 시를 쓸 줄도 모른다. 다만, 경
험을 통해 구성된 인간에 대한 성찰 속에 가슴 밑바닥에 흐르는 정서가 시가 가
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를 쓰는 데 각별한 비법도 없다.
김선호 시인
▪ 2001년 《시문학》으로 등단.
▪ 시집으로 『몸 속에 시계를 달다』가 있음.
▪ 현재, 문협, 한국시협, 문학아카데미 회원.
시문학문인회 사무국장
▪ ks32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