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재룡 시인의 시골 집, 역전의 용사답게 국가 유공자의 집, 팻말이 자랑스럽다.

이삭줍기의 浪漫, 소운/박목철
요즘 사람은 이삭줍기(줏기)란 말 자체가 생소할 것이다.
줍는다는 것은 남이 버린 것을 갖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니 거부감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만 나이가 어느 정도 있으신, 시골에서 성장한 분들은 이삭줍기는 해마다 추수가
끝나면 보게 되는 흔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옛날에는 자기 땅을 소유하지 못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소작농이 대부분이고,
그나마 빌릴 땅도 없어 이집 저집 다니며 품팔이로 먹고사는 농민도 상당히 많았다.
일제에 압박에서 해방되고 나서 남이나 북에서 제일 먼저 단행한 일이 토지 개혁이었다.
북에서는 토지 전체를 빼앗아 국가 소유로 했지만, 남한에서는 지주에게 보상을 채권으로 하고
징발한 토지를 실제 농사짓는 농민들에게 2정보?(6천 평)씩을 나눠 주었다.
이런 토지 개혁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공산화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의 진단도 있다.
토지 개혁과 이삭줍기가 무슨 상관? 하시겠지만,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 땅이 없는 사람이 남이 수확한 농산물을 맛볼 수 있는 수단이 이삭줍기가 아니었을까?
지금이야 먹을 것이 지천이지만, 옛날에는 고구마가 주식의 역할 외에도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소운이 어릴 때만 해도 어른이 외출하면 귀갓길에 사 오던 군고구마는 너무 기다려지는
맛있는 별식이기도 했으니,
동네 고구마밭에서 가을걷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가난한 분들도 상당히 많았으리라,
고구마밭의 가을걷이가 끝나기가 무섭게 호미와 광주리를 준비해 일차 걷기가 끝난 밭에서
미처 캐지 못한 고구마나, 잔챙이들을 열심히 캐는 게 소위 이삭줍기(줏기)이다.
이삭줍기에는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도 모두 동원되어 열심히 이랑 언저리를 파헤쳤다.
힘은 들지만, 생각보다는 수확이 괜찮은 것이 이삭 줍기고, 아이들은 맛있게 쩌낸 고구마를
생각하며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침을 삼키었을 법 하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삭줍기에도 우리만의 생존 법칙이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과일을 거두면서도 까치를 위해 까치밥이라 하여 남겨 주던 미덕이 우리에게 있었는데 하물며
사람을 위한 인정이 없었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농산물 -서리-도 단순 도둑질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이 현장에서 한두 개 먹고 가는 것은 범죄시하지 않는 인정도 있었다)
아마도 땅을 가진 지주는 가을걷이 할 때 너무 야박하게 싹쓸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게 밭에는 가봐야 건질 게 없어" 이런 야박함은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니까,
협회지인 공재룡 시인의 초청을 받고 충청도 일죽 인근 삼성이라는 곳에서 이삭줍기를 했다.
옛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은 기계로 가을걷이를 한다는 점이지만, 걷기가 끝난 밭에서의
이삭줍기 풍경은 지금도 낯설지 않게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자가용을 타고 와 이삭줍기에 열중하는 분들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분들도 옛
정서를 맛보려고 신발에 흙을 묻혀가며 열심히 땅을 파고 있을 것이다.
* 이삭줍기에 열중하는 공 시인님과 최상근 시인의 모습,

* 해병대의 관록이 아직도 만만치 않은 공재룡 시인,

* 최상근 시인, 역시 박사 답다는 찬사를 받을만큼 열심히 하셨다.

공재룡 시인의 집에서 도축장에서 사 온 싱싱한 고기로 배를 채운 우리는 쇠스랑과 호미로
무장하고 기대에 찬 이삭줍기에 나섰다. 문회숙 시인과 문 시인의 지인이라는 변갑진 님,
최상근 박사와 소운, 처음 생각보다는 참가 인원이 적었지만, 열심히 땅을 파헤친 덕에 상당한
분량의 이삭줍기 성과를 올려 수확의 기쁨을 맛보기에는 충분한 양이었다.
(공 시인께서 선물한 술까지 더해, 고구마의 무게로 조금 걷다 손을 바꿔 가며 들어야 할 만큼
고구마의 양이 많았다)
소운도 그렇지만, 최상근 박사도 어디 노동을 해 본 적이 있었겠는가?
열심히 땅을 파헤치는 최상근 박사를 보며 한마디 했다. "입으로 벌어 먹고살기보다 손발로 하는 게
힘들지요? 쇠스랑이 질 몇 번에 숨이 턱에 차는, 어쩌면 스스로에 한 소리가 아니겠는가?
풍요로운 세상을 살며, 힘겹게 생존을 유지해 온 이 땅의 농민을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이삭줍기였다.
트랙터가 훑고 간 황량한 황토밭에 잔챙이 고구마가 싹을 새로 틔우고 있는 것이 곳곳에 보였다.
싹을 틔워 본들 머잖아 몰아치는 삭풍에 다 얼어 죽을 터인데, 문득 인생의 허무함이 가슴에 와 닿았다.
풍성하게 열매도 못 거두고 철 지난 계절에 싹을 틔워서 뭘 어쩌려고?
이삭줍기,
말 그대로 주운 것이니, 삽날에 찍히거나 꼬맹이거나 볼품은 없는 고구마지만 땀 흘린 대가이니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이삭줍기 고구마, 공재룡 시인님의 우정까지 더해 어떤 맛일까?
이삭줍기, 소운/박목철
가을걷이가 끝난
虛虛한 고구마밭에서
이삭줍기를 했다.
까치밥 남기듯
트랙터가 흝고 간 이랑 사이에
꽁꽁, 숨은 고구마,
계절을 잊고
턱도 없게 새싹을 틔우는
철 지난 꿈이 안쓰러워
봄 아니야,
가을이거든,
땀을 훔치며 하늘을 봤다
파랗고 높은 하늘을
이렇게 지는 것인가?
이삭줍기를 잠시 잊었다.
가을 때문에,
* 대외 공개되는 글이기에 여성분의 사진은 올리지 않았습니다.
첫댓글 땀흘려 일하시는 모습 보기가 좋네요
네, 고맙습니다.
땀을 흘려야 입맛도 좋아지지요,
배고푼시절이 생각나네요
옹색하긴 했지만 인정이 넘쳤지요,
어렸을때 이삭줍기를 해보고 잊고 살았는데
즐거움으로 하는 이삭줍기 추억이 되 살아납니다~~
생각보다 이삭줍기 하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자가용을 타고 와서 이삭줍기를 한답니다. ㅎㅎ
아하, 작가님의 이삭줍기(고구마) 경험을 대하니
어릴 적 감자 이삭줍기가 기억이 납니다.
가을 걷이가 끝난 감자밭에서 호미로 땅을 파서
남아있던 작은 알갱이의 감자들을 캐내어 흙을 떨어낸 후
바구니나 통에 담아 집에 가져가서 물에 잘 씻은 후
쪄먹던 생각이 나네요.
옛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정감어린 글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 평안 하시기 바랍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이삭줍기의 추억이 다 있더군요,
시골사는 시인의 댓글을 보니 요즘은 기계로 대충 걷어 가는 탓에
잔챙이나 떨군 이삭이 많다고 합니다.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은 그냥
포기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랑은 파지도 않았더군요,
이삭은 잔챙이가 오히려 맛도 좋고 먹기 편하다는 생각압니다.
긴 연휴 행복하게 보내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리피터님,
참 해보고싶네요~
땅 파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ㅎㅎ
예상외로 이삭줍기를 하는 분들이 많답니다. ㅎㅎ
얼른 집에 가면 더 실한 고구마가 있는데도 빈 고구마밭 혹시 남겨진 이삭이 있나 밭이랑을 뒤지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그렇습니다.
쉽게 구한 먹거리 보다야 한결 맛 있지요,
남은 연휴 잘보내시고 행복하세요,
고구마 줄기에 고등어 쩌져(조림)먹던 생각이 나네요...
같이 간 여자 분들은 고구마 줄기를 걷어 가더군요,
저는 고구마 줄기는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지요,
이삭줍기!참 시적인말같죠? 허나 그것을 주워본사람들은 아마 한숨부터 나올겁니다
예전에는 배가 고파서 이삭줍기를 했으니 한숨이 나왔겠지요,
요즘은 장난삼아 재미로 하니 웃고 떠들고 한답니다. ㅎㅎ
와 진자대박ㅋㅋㅋㅋ
지금도 시골에서는 수확후 이삭줍기를 할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