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132번 글 holyjoy님께서 올려주신 것을..
편의상 이곳에 다시 복사하여 올립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내용이지만.. 특히 Petros님 꼭 읽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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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란 것이 있는가?
(나는 개혁되었는가?5)
한 마디로, 없다는 것부터 밝히고 이 글을 쓰자. 개혁이란 것을 습관으로서의 성품과 기질의 변화로 설명하는 이 글의 서론을 지금까지 쓴 셈이다. 그러면서 이러한 설명이 한국교회와 현대교회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그 적용점을 이제부터 설명하려고 한다. 본론인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대교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한 개념을 먼저 설명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육적인 그리스도인”이란 개념이다. 바로 CCC라는 선교단체의 “4영리”라는 전도소책자에서 비롯되어 한국교회 내에 널리 퍼진 개념이다. 하지만, CCC이전에도 이런 개념들이 점차 현대교회 속으로 은밀하게 침투되어오고 있었다는 것을 주지시키고 싶다. 그리고 이런 지적이 그 단체와 교회사에서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참된 영적 지도자들을 험담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님을 또한 강조하고 싶다.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개념이 작용함으로 인하여 현대교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양산시키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요지이다.
무엇이 “육적인 그리스도인”인가? 이 개념이 교회 내에서 유행하기 전에는, “중생한 사람”과 “중생하지 않은 사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원리적으로나마) 구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통례적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세 부류의 사람으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화되어지기 시작했다. “자연인”, “육적인 그리스도인”, 그리고 “영적인 그리스도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구분의 근거는, 바로 고린도전서2장13절-3장3절에 나오는 “육에 속한 사람”(자연인), “육신에 속한 자”(육적인 그리스도인?), 그리고 “신령한 자들”(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는 표현이다. 바울이 지금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고린도교회의 사람들을 이렇게 “육신에 속한 자”와 “신령한 자들”로 구분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에 속한 자”는 “육적인 그리스도인”이고, “신령한 자들”은 “영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그 근거를 찾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런 성경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분명히 바울사도는 고린도전서 2장에서 “육적인 사람”(중생하지 않은 자연인)과 “신령한 사람”(곧, 영적인 사람으로서의 중생한 사람)으로 구분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분류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신령한 사람”(영적인 사람/중생한 사람)은 “완전한 사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연약한 자들일 수 있다. 어린아이 같다. 자라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이다. 아직 그리스도의 도의 질긴 고기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래도 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다. “완전한 사람”이 아닐 뿐이다. 그런데, 바울은 그러한 “영적인 사람들”을 “영적인 사람같이” 취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의 연약함 때문에 그들을 “육신에 속한 자”같이 여긴다고 한다. 이것은 그들이 “육신에 속한 자”(곧 육적인 그리스도인)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같다. 어쩌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면서 자라감과 성숙이 필요한 자들이다. “영적”이라는 것을 “완전함”과 “수준높음”등으로 이해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헬라철학의 플라톤주의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잘못된 성경해석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중생하지 못함에서 나오게 되는 비성숙함과 거짓과 게으름과 나태함을, 그들이 “육적인 그리스도인이지만” 그럼에도 “영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여서 나오게 되는 불가피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영적인 그리스도인”되기 위해서 힘쓰면 그래도 다행이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육적인 그리스도인”임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자기만족과 도취에 빠져서 자신의 영적인 성숙과 분발을 게을리하고 그 게으름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바로 자신들은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소한 천국티켓은 따놓았다고 생각한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워지는 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수많은 비리들이 여기에서 나오게 되고, 이것을 영적인 지도자들이 분별력이 없이 방조하고 어쩌면 조장하기 때문에 나오게 된 현대교회의 병리현상들이 만발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살펴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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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인용한 부분입니다.
첫댓글 "육적인 그리스도인"???????? 없는 단어를 만들어 내지 마시기를 ...... 육적인 그리스도인≠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 * 지금 시간이 여유가 없습니다. 저녁에 들르겠습니다.
1967년 여름! 입석수양회에서 육적인 그리스도인이 죄 사함과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EXPLO '74, (대형집회의 가장 큰 클라이멕스) '80 세계복음화 대성회에 봉사하고, 목사님 비서로 3년, 그리고 일본선교사로 산지 20년! --> http://www.newspower.co.kr/sub_read.html?uid=14708§ion=sc4§ion2= 이 싸이트에 가셔서 읽어보시길.. 자꾸 CCC 에서는 육적 그리스도인이란 단어 안쓰신다고 하시는데... 어떤 근거로 안쓰신다고 하시는지.. 정말 모르겠군요..
영어로는 carnal Christian입니다. 번역을 뭐라하든 똑같은 말입니다.
.....자신의 중생하지 못함에서 나오게 되는 비성숙함과 거짓과 게으름과 나태함을...... 음 .... 자신이 불신자이기 때문에 나오는 비성숙함과 거짓과 게으름과 나태함을 ..... 이렇게 치환해도 이상없나요?
사영리에는 두종류의 사람을, 성령충만 소책자에는 세종류의 사람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듭난 자와 거듭나지 않은자,,,,,거듭난 자들 중에 영적 어린아이와 영적으로 장성한 자들이 있습니다......바울이 말하고있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인데도 잘못되었다고 하시는 분들은 바울이 기록한 성경보다 신학자들의 말을 더 따르시는듯,,,,,,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특성이 바로 오늘날 현대교회의 특성입니다......바울은 그들을 품고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했지만 그들을 불신자로 대하지 않았습니다!!!.....자신이 복음으로 낳은 자녀들을 대하듯 대하였고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그러한 바울의 말을 듣고 회개했습니다......
사영리를 비판하는 저희는 하나님께서 친히 부르신 성경 교사들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하지만 님은 성경보다 사영리를 더 따르시는군요. 이런 소모성의 꼬리말은 자제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는데.. 님의 이런 행동은 토론할 의향이 없으시다는 걸로 보아도 될런지요? 토론할 의향이 없으시다면 소란을 일으킬 시비조의 꼬리말은 금하셔야 합니다. 카페의 질서를 해치는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운영진이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3종류의 사람을 설명해 줄 때,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합리화하는 그리스도인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모두가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반성하며 성령충만한 삶을 살고자 소원하고 주님께 자신의 마음의 왕좌를 내어드립니다.....문제는 3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야하는지 모르는데 있는 것입니다....자신의 힘으로 신앙생활하니 힘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신앙과 세상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습니다.....바울처럼 영적 어린아이들을 지도해 줄 영적 어미와 아비들이 너무나 절실한 시대입니다....
3종류의 사람을 '설명해 주는 것'과... 사영리에 '실제로 쓰여져 있는 것'을 나누어서 이야기합시다... 저와 cold님은 이때까지 후자에 대해 토론해왔던 것입니다..... 다소 빈약한 4영리를 어떻게 잘 수정하여 사용하느냐는 각자의 몫이고 그 부분까지 토론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4영리에서 오해할 수 있거나 잘못된 부분, 빈약한 부분을 고쳐서 복음을 전하는 님의 삶은 본받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게시판의 글 중에서 후크마의 견해 등등에 대해 성경적으로 답해주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레이스죠이님과 동역자들의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을 하나님은 아십니다. 너무 염려치 마십시오.
gracejoy님 <3종류의 사람을 설명해 줄 때, 자신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합리화하는 그리스도인은 한 명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말에 전 동의합니다. 저 역시 이 부분을 가르칠 때 이런 식으로 얘기한 적 한 번도 없었고, 제가 배울 때도 역시 gracejoy님이 쓰신 내용과 같이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동기가 선하다(이 부분도 차분히 짚어보아야 할 것입니다만) 할지라도 잘못된 교리에 기초하고 잘못된 성경해석이 밑에 깔려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잘못이고 또 죄악입니다. 모래 위에 집 짓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방편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잘못 지어진 집은 하루라도 빨리 허물고 새로 짓는 게 낫습니다. 어차피 허물어질 것이고, 허물어야 하기 때문에 아까워하거나 그 집의 유용성을 들어 계속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잘못된 것을 인정치 않고 괜찮다 괜찮다, 유용하다, 그 위에 좋은 집 지으면 된다..그러면 다 해결된다, 하고 있는 데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