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수복초(壽福草)를 제안(提案) 한다!
-꽃 이름 창씨개명
권 천 학
시인, K-문화사랑방 대표
‘복수초’를 ‘수복초(壽福草)’라고 부르자!
봄이 늦게 오는 캐나다에도 어느새 중간쯤 지나가고 있다.
봄이 다 가기 전에 하고 싶은 몇 가지 말 중에서 더 늦기 전에 이 말부터 해야겠다.
‘복수초’를 ‘수복초(壽福草)’라 부르자!
우리가 그동안 불러온 꽃 ‘복수초’는 한자로 ‘福壽草’이다.
음력 설 무렵 눈밭에서 노란 꽃이 피어나기에 ‘설화초(雪花草)’라고 하기도 하고, ‘원일초(元⽇草)’라고도 한다. 원일(元⽇)은 음력 설날, 즉 일 년을 시작하는 첫날, 초하루를 의미한다.
겨울이 끝나지도 않은 이른 봄에 꽃이 피어난다 해서 봄의 전령사로 불리우는 꽃 중의 대표주자다.
조국의 산야에 쌓인 눈이 녹기도 전에, 물가에 얼어붙은 얼음들이 성성한 때에 그 눈과 얼음을 뚫고 피어나는 꽃. 매화(梅花)보다도 먼저, 겨울에서 봄으로 발돋움하는 식물이다.
목본(⽊本) 식물인 매화에 비하여 초본(草本) 식물인 수복초壽福草는 얼핏 보기에도 약해 보인다. 그 약한 식물이 이른 봄, 아직 겨울이 가기도 전에, 눈 속에서 혹은 얼어붙은 얼음 사이로 노랗게 얼굴을 내보이는 것을 보면, 그 생명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꽃말은 ‘행복과 장수’이다.
그런데, 왜 그 꽃 이름이 복수초인가.
나는 또 왜 수복초라고 고쳐 부르고자 하는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그 이름이 일본식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 이름의 어감(語感)이 좋지 않아서이다.
첫 번째 이유부터 풀어 이야기 하자면,
식물의 이름도 이젠 창씨개명(創⽒改名)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사람들은 이 꽃을 ‘후쿠로소우(福寿草, ふくじゅそう)라고 부르고, 원일화(元⽇草)라는 별명도 그대로이다.
‘복수초’라는 말은 ‘후쿠로소우’라는 일본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일본말식이다. 꽃 이름 속에 여전히 일제의 잔재가 스며있다.
우리말식으로 하면 수복초가 더 맞다. 우리식 또는 우리말 식이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어감도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음력설 무렵에 핀다는 ‘원일화’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일본은 현재 음력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결국 우리는 일본문화를 전승하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복수초’를 ‘수복초(壽福草)’라고 부르자!
이것은 역방향 창씨개명인 동시에 친일로부터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 어감이 좋지 않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처음 그 꽃과 꽃 이름을 알게 된 것은 오십여 년 전쯤, 당시로선 꽤 잘 만들어진 어느 잡지의 화보였는데, 고급스런 종이에 월등하게 좋은 사진 기술을 동원하여 요모조모의 모습으로 찍어낸 화보 속의 꽃, 얼음 속에 핀 노란색 꽃이 눈이 부실지경이었다.
‘봄의 전령사’로 소개된 꽃의 이름이 복수초, 그런데, 대뜸 복수(復讐)가 떠올랐다. 복수는 한마디로 ‘원수를 갚는다’는 말이 아닌가. 복수초∽ 복수초∽ 입으로 뇌이면서 왜 하필이면 그런 이름일까? 무슨 원한이 맺힌 꽃일까. 추운 겨울에 처절하게 피어나야 할 사연이 무엇일까? 하고 내 나름의 엉뚱한 상상을 펼치기도 했다.
뒤늦게 한자(漢字)를 알고 난 후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처음 느낌은 그대로였다. 첫인상이나 첫 느낌은 오래 기억되는 감정이기 때문에 여전히 뭔가 살벌하고 섬뜩함이 묻어났다.
어디 나뿐일까. 더구나 우리의 뒤를 잇는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한자에 대해서 더 무심하다. 그런 그들이 복수초라는 말을 듣고 무엇을 떠올릴까. 아마 ‘복수혈전(復讐⾎戰)’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수복초 복수초, 수복초 복수초.....
한번 입으로 뇌어 보시라.
느낌이 다를 것이다.
굳이 한자(漢字)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 뜻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이 곧 ‘수복초’일 것이다.
작은 꽃 이름 하나 바꿔 부르는 일이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수복초’♠라고 부르자!
②수복강녕(壽福康寧) vs 복수강녕(福壽康寧)
- 역(逆) 창씨개명(創氏改名)
권 천 학
시인, K-문화사랑방 대표
얼마 전, 몇 군데에서 이 계절에 맞는 시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시, 시조, 수필 등을 쓰는 ‘K-문화사랑방’의 식구들에게도 계절에 맞는 아이템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미뤄오고 있던 터여서, 마침 잘됐다 싶어 곧바로 나의 ‘시 창고’에서 몇 편의 봄 시를 골라내어 슬라이드 작업을 시작했다. 〈춘분春分〉, 〈조춘早春〉, 〈봄 예감〉 그리고 〈수복초壽福草〉였다.
지난 회에 〈수복초(壽福草)를 제안(提案)한다!〉라는 글로 복수초의 이름을 ‘수복초’로 부르자는 제안을 하긴 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문화사랑방’ 식구들에게는 이미 한 말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진지하게 듣는지 모를 일이다. 그렇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더하여, 이 기회에 미처 별생각이 없던 사람들도 인식을 바꿔보면 좋겠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이름으로 불러왔다.
오십년도 넘는 그때, 당시의 대표적으로 꼽히던 잡지에서 ‘복수초’라는 제목의 눈이 부신 화보 사진에서 처음으로 본 그때부터였다.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복수초일까! ‘복수초’보다는 ‘수복초’가 더 우리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의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저 나만의 생각일 뿐, 어쩌다 이야기를 트는 사람들과의 대화 속에서만 나누었던 이야기였고, 해마다 봄철이 되면 떠오르는 안타까움이었다. 이번 봄에도 여전히 그 생각이 도져서 끄집어내게 되었다.
우리는 한 때 일본 통치하에서 억눌리고 많은 것을 빼앗긴 아픈 역사를 겪었다. 황민화정책(皇民化政策)이라는 미명아래 ‘일본 황제의 통치하에 드는 영광된 국민’이라는 뜻의 ‘황국신민’이 되게 하는, 그들의 국책으로 내선일체(內鮮一體) 즉 ‘일본과 조선은 하나다’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름과 성(姓)을 강제로 바꾸게 했다. 그것이 곧 창씨개명이다.
그러나
지울 건 지워야 한다.
바꿀 건 바꿔야 한다.
세월이 흘러 드디어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한 오늘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은 싹이 트고 살을 올리며 살아났다. 우리의 선대(先代)들은 일본의 우리민족 말살정책에 온갖 고초를 겪으며 견디다가 해방이 되긴 했지만 그런 와중에 일본의 잔재가 우리의 생활이나 의식 속에 스며 이전(移轉)되기도 했다.
여전히 우리 속에 스민 일본의 잔재는 곳곳에 있다. 여전히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이슈로 활용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친일이니 반일이니 하는 프레임을 마치 정치 담론처럼 써먹는 정치인들은 작은 꽃 이름에 스며있는 일제 잔재를 생각이나 해봤는지 모르겠다.
나는 글을 쓰고 문화를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우리의 전통 문화의식에 맞게 말하고 쓰는 것은 우리의 문화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도에서 ‘수복초’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는 것을 ‘역(逆) 창씨개명(創氏改名)’이라고 하는 이유이다.
‘복수초’라는 이름조차도 일본문화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 되고, 우리 역사의 상처를 그대로 상기하게 만드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만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식물에게도 이름이 중요하다. 기왕이면 우리 정서에 맞고 자연스러운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글자 한 자(字) 바꾸는 일이 뭐그리 대수냐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대수라고 생각한다. 대수? ‘대단한 것’ 또는 ‘최상의 일’이라는 사전적 풀이이다.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새해맞이 가족모임이나 어른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향연(饗宴)에서 ‘수복강녕(壽福康寧)’이란 말을 쓴다. 벽장식 문구나 주렴(柱簾), 병풍에도 베갯잇 수(繡)에도 사용한다. ‘복수강녕(福壽康寧)’이라고 하지 않는다. 수복강녕과 복수강녕을 입에 올려 뇌어보시라. 느낌이 다를 것이다.
수복초(壽福草) vs 복수초(福壽草),
수복강녕(壽福康寧) vs 복수강녕(福壽康寧)
맞지 않는 이름은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처럼 어색하다. 뿐만아니라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글자 한두 자(字)를 자리바꿈하여 우리의 정서에 더 잘 맞게 하는 것이 우리의 문화전통을 잇는 일이기도 하고, 국민정서를 순화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역사의 트라우마를 씻어내는 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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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권 천 학權千鶴
시:〈지게〉, 〈지게꾼의 노을〉로 《현대문학》 데뷔, 진단시 동인, 한국전자문학도서관 웹진 《불루노트》 발행(2001~2006), 캐나다 이주(2008), 하버드대학교 주최 세계번역대회에서시 〈2H2 + O2 = 2H2O〉 등 17편(번역:김하나)으로 수상(2008), 코리아타임즈 주최 한국현대문학번역대회 시 부문(번역:김하나, 모크린스키) 우승(2010), 단편 〈오이소박이〉로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2010), 수필 〈나와 무궁화〉로 흑구문학상 제1회 특별상 수상(2014), 저서:백제테마연작시집 《청동거울속의 하늘》, 나무테마연작시집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 바다테마연작시집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외 10권, 영한시집 《2H₂ + O₂ = 2H₂O》, 일역시집 《空っぽの都市の胸に電話をかける(빈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걸다)》, 《속담명언사전》(편저) 외, 〈K문화사랑방〉 대표, ‘캐나다 한국일보’, ‘부동산 캐나다’ 컬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