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라 바스투를 나와서부터, 오늘까지의 생활도,
육체적 번뇌를 소멸하려고 해서,
오히려 인생의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을 방해했다.
올바른, 치우치지 않는 생활,
그 중도를 빗나간, 마음의 작용과 생활이,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만 것이다.
그러나 왜 괴로움에 의해 마음의 평온함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태어났던 당시에는, 아무런 괴로움도 슬픔도 전혀 기억에 없었다.
그 당시의 일은, 의붓어머니랑 여관들로부터 들은 것 이외 아는 것은 없었다.
이것은 모두 같은 것이다.
" 상당히 난산이었습니다.
당시의 관습대로, 친정으로 돌아가는 도중의,
룸비니 공원에서 태어났던 것입니다.
그 장소는 아름답고, 작은 새, 풀, 꽃, 대자연이,
당신의 탄생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언니도 나이 먹어서의 출산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당신은 튼튼하고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니의 괴로움 대신에, 당신은 통통하고 귀여운 아기였습니다.
그러나 언니가 아무리 괴로웠다 해도,
싯다르타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 증거로는, 천진난만, 항상 생긋생긋 웃어서,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야쇼다라와 결혼할 무렵,
의붓어머니로부터 들은 자신의 탄생 때의 일이 회상됩니다.
성내에서 태어난 크샤트리야들의, 아이들의 일도 잘 알고 있습니다ㅡㅡ.
어렸을 때는, 걱정할 것도 없이, 마음은 둥글고, 풍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자아가 싹틈에 따라, 자기주장은 강하게 되고,
타인과의 부조화가 많아져 갑니다ㅡㅡ.
이와 같이 해서, 싯다르타는, 자아아욕이 점점 자라고,
자기 보존의 번뇌가,
추한 비뚤어진 마음을 만들어 내어 흐림을 만들고,
어두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인간 ㅡㅡ.
거기까지도 깨달았습니다.
ㅡㅡ 그렇기 때문에, 평화롭고,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들에게는 국경이 없다.
자유롭게 날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랑, 다른 동물들은,
스스로의 영역을 만들고, 서로 투쟁하고,
파괴의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우르베라의 태양도, 카피라의 태양도, 하나가 아닙니까.
이 하나의 태양이 전 세계에 열이랑, 빛을 주고 있습니다.
요컨대 모두 평등한 것입니다.
왜 인간은, 추악하게 서로 죽이는 것일까.
역시 자아아욕과 자기보존만으로
치우쳐진 사고방식, 치우쳐진 행동이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도 저 태양처럼, 따뜻하고 둥글고, 풍부한 광대무변한 자비로,
풍부한 마음을 만들고,
투쟁과 파괴가 없는, 조화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ㅡㅡ.
우르베라의 숲은, 완전히 검은 베일에 감싸여 완전 암흑입니다.
가끔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의 불꽃에 의해,
싯다르타의 수척해진 얼굴이 정적한 숲 속에 드러납니다.
싯다르타는 선정하면서,
바른 마음의 기준을 더욱더 계속 생각했던 것입니다.
ㅡㅡ 타인과의 싸움의 원인은 무엇일까.
치우치지 않는 바른 언어로,
상대의 마음을 생각해서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또, 상대의 마음을 무시하고,
듣는 것이 바른 판단을 얻는 것일까.
독선적으로, 일방적으로 세상사를 보는 것이 좋을 리가 없다ㅡㅡ.
보고, 듣고, 말하기 위함의,
일상의 기준이,
확실하게 싯다르타의 마음속에 새겨져 가는 것이었습니다.
ㅡㅡ 올바르게 말한다. 올바르게 본다. 올바르게 듣는다.
라고 하는 기준을 잊었을 때는,
자신만 좋으면' 이라고 하는 마음이 되고,
타인을 상처 입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에게도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세 개의 올바른 기준은,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에도,
올바른 기준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생각해서 말하고, 생각해서 듣고, 생각해서 보는 것은,
마음속의 작용이 근본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의 기준에 치우침이 생겨도,
역시 부조화한 괴로움을 만들어 내고 만다.
상대를 극구 칭찬하는 말에 있어서도,
마음속에 불신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이 된다.
자기 자신이 뿌린 부조화한 씨앗인 한,
수확해야 하는 당사자는 자기 자신이다.
타인을 상처 입히고,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는 것이 되고 만다ㅡㅡ.
싯다르타의 마음속에 그려져 가는 올바른 기준은,
차례차례 해명되어 갑니다.
육체적인 혹독한 수행에 의해서는,
육체적인 한계에 도전하는 것밖에 안 된다,
마음의 허무함을 해결하는 길은 아니라는 것을,
싯다르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괴로움이라는 번뇌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6년간ㅡㅡ
무엇을 멀리 돌아왔던 것일까.
라고 무지한 자신을 되돌아보고 안타깝게 생각한 것입니다.
맹목(盲目)이, 인생 수행의 지름길을 잊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헐떡거리며 한없는 산길을 오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목적없는 영원의 방랑자처럼.
방향을 잃고, 산중을 헤매며, 걷는 어리석은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이 불쌍하게도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6 년간 찾아 헤매었던 스승은,
자기자신의 마음과 대자연이라고 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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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마음.... 공의 세계... 비물질의 세계... 사념의 세계...
시간이 없고 거리가 없는 4차원의 비물질의 세계....
육체 .....색의 세계...물질의 세계...행동의 세계...
시간이 있고, 거리가 있는 3차원의 물질의 세계....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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