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시59:4 - 내게 허물이 없으나 그들이 달려와서 스스로 예비하오니 깨셔서 나를 도우시고 바라보소서.
“내가 허물이 없으나" 다윗은 자신이 완전하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당하는 공격이 자신의 의도적 악행 때문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유 없이 달려오는 적들, 치밀하게 준비하는 공격 앞에서 그는 사람을 향해 소리치기보다 하나님께 “깨어 살펴 주소서”라고 부르짖습니다.
이 말씀은 겟세마네와 공회 앞, 그리고 갈보리 언덕길을 떠올리게 합니다.
특히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거짓 증언과 모함 속에 넘겨지셨습니다.
사람들은 거짓을 꾸며 주님을 정죄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 구원의 길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도 억울함에 함몰 될 때가 있습니다.
설명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고, 침묵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조급히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 하나님을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깨어 있음’은 단순한 눈뜸이 아니라 개입과 해결의 준비입니다.
오늘 혹시 이유 없는 공격이나 오해 속에 있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우리의 상황을 가장 정확히 아시며,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믿음으로 서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권력이 다수의 힘을 앞세워 정의를 왜곡하지 않게 하시고,
법이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공의를 세우는 울타리가 되게 하옵소서.
이 땅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셔서
자기 이익이 아니라 국민과 미래 세대를 생각하게 하시고,
국민에게는 분별의 지혜와 담대한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이 더욱 선명해지듯,
이 나라 대한민국에 진리와 자유가 굳게 서게 하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정의가 무너지지 않음을 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연쇠 살인범이나 흉악범의 인권을 고귀하다고 할 수 있는가?
사회 안에는 언제나 인권과 정의를 어떻게 균형 있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이나 오원춘 같은 흉악범을 두고 고귀한 생명이라고 말하는 이들이라면, 같은 민족인 북한의 인권과 탈북민 보호 문제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겁니다.
그럼에도 북한 인권에는 눈감아 버리고 오히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독재자들을 지지합니다.
이란 국민들은 독재자의 죽음에 축포를 쏘아 올리며 기뻐하는데, 정작 인권을 주장하는 그들은 자유에 히잡을 씌워 이란 국민을 탄압했던 독재자의 죽음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이중성을 보고 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이란 국민에게 축하를 전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닙니까?
어떤 진영이든 인권을 말한다면, 그 기준은 보편적이고 공평해야 합니다.
흉악범의 생명권을 논하면서 동시에 폭정 아래 신음하는 주민의 자유를 외면한다면 일관성에 대한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진영 논리를 넘어, 생명·자유·책임이라는 가치를 균형 있게 세우는 일입니다.
진영의 감옥에 갇혀 자기편만 옳다고 우기는 이중성보다는,
구체적 사실과 객관적 원칙에 근거한 시선이 건강한 사회를 만듭니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주장 속에서 더 나은 기준을 찾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https://youtube.com/shorts/7Gg0pxyEfLI?si=Yh31_33e6UJpWMh-
# 정다훈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