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 사흘째..
일어나니 속이 쓰리다. 어제 백주(중국독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일까? 그래도 구역질과 두통이 없어서 다행이다. 오늘은 그 역사적인 호도협 트래킹이 시작되는 날이다. 서둘러 각자 중도객잔에서 1박할 짐만 간단하게 꾸린 채 아침식사를 했다. 아~ 해장국이 그리운 아침식사인데 토스트에 베이컨, 계란프라이가 전부다. 하루 종일 걸을려면 뭐든지 든든히 먹어야 하기에 쓰린 속에게는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호도협 트래킹 시작점 챠오터우까지 가기 위해 차를 타보니 동서양의 어색한 만남 꼴이 되었다.
좌측좌석 점령 서양인들, 우측좌석 점령 능선인들 ㅋ
2시간여 를 달린 차는 챠오터우에 도착했다. 차 안으로 매표원 아가씨가 와서 표를 끊었는데 서양인중에 학생이 있어서 50% 할인 되는 걸 보고 우리의 산제비형님이 자기도 학생이다며 매표원 아가씨에게 여권과 학생증을 보여주며 말했지만 19세 이상은 학생이라도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순간 모두 빵 터졌다. 어떡하든 경비를 아껴볼려고 노력하신 제비형님의 노력에 애잔함 마저 느껴졌던 건 왜일까? 챠오터우에서 표를 끊고 얼마지나지 않아 모두 하차하여 본격적인 호도협 트래킹에 들어섰다. 정확히 하차지점에 마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속으로 '아저씨들, 오늘 임자 잘못만났어요..' 그랬다.
호도협 트래킹의 첫 발을 띄는 장면..
호도협 트래킹의 초입 구간은 우리나라 시골 뒷산과 흡사했다. 감나무, 옥수수대 등 익숙한 풍경에 마치 낙남정맥 산행을 한다는 느낌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마부들이 각자 자기 말을 끌면서 우리 뒤를 따르기 시작했고 이렇게 만난것도 인연이라서 인사정도 몇마디 주고 받았다. 유창?한 중국어로 말하니 어? 저인간이 왜 우리말을? 하는 듯 의아해 하는 표정이었다. 발걸음을 옮길수록 옥룡설산의 위엄과 수려함이 우리 눈앞에 펼치지기 시작했다. 세계3대 트래킹코스인 호도협 트래킹을 하면서 저마다 느낀 바는 완전 같지는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진사강이 내려다 보이는 절벽과 아찔함 보다 트래킹이 끝나는 내내 옥룡설산 봉우리인 부처님 손이 더 강하게 남아있다.
25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트래킹이라 그런지 자외선이 정말 강했다. 더워서 모자를 잠깐 벗으면 얼굴이 따가울 정도여서 계속 모자를 착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계속 걷다보니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 일정대로 라면 차마객잔에서 점심식사를 해야 하는데 아직 나시객잔도 못와서 지치기 시작했다. 첫번째 고비가 왔다. 나시객잔 밑에서 마부의 유혹질이 계속 되었다. 산제비님이 나를 부른다.
마부가 눈치를 챘다. 사람이 탈게 아니라 짐만 싣는데 얼마냐고 물으니, 150원 이란다. 그것도 배낭 다 실을 수 없고 4~5개 정도만 싣는데.. 순간 아~ 배낭이라도 없으면 너무 홀가분하게 트래킹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달콤한 유혹을 어떡해야 하나? 고심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우리의 힘으로 끝까지 간다였다. 회장님의 장비가 좀 남들보다 많았다. 배낭무게도 그렇고 특히 카메라와 삼각대 때문에 거추장 스러워 트래킹 하는데 상당한 불편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함날자님과 다산초당이 회장님의 장비를 분산해서 나눠 가지고 출발했다. 회장님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아따~ 진짜 홀가분하네~
이 지점에서 말의 1차 유혹이 시작되었다..나시객잔 밑이다..중도객잔까지는 까마득한..
좀 쉬었다 가니 한결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런데 모두 배가 고팠다. 아침을 너무 간단히 먹는바람에 허기가 지는건 당연한 일이었다. 점심을 먹을 희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걷고 또 걷다 보니 나시객잔이 눈앞에 들어왔다. 마당에 펼쳐진 노오란 옥수수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우린 바로 점심주문을 했고 밥이 나오기 전 따리맥주로 갈증을 해소했다. 중국맥주 참 맛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맥주보다 부드럽고 깊은 맛이 느껴져 요즘도 가끔 마트가면 칭다오맥주를 사서 먹는다. 우리나라 맥주는 그냥 목구멍이 따가운 시원함만 있을 뿐 영 별로다.
골고루 챠오판(볶음밥)을 시켰다. 볶음밥이 볶음밥이지 생각했는데 중국에서는 재료에 따라 각기 따로 챠오판 이름이 있다. 소고기볶음밥,돼지고기볶음밥,닭고기볶음밥,야채 볶음밥,계란볶음밥 등..좀 속보이는 메뉴다. 그냥 같이 섞어서 볶아주면 될건데..밥이 나오자 각기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과 함께 먹기 시작했다. 중국 밥은 찰기가 없서 밥그릇을 입에 대고 젓가락으로 먹는다. 챠오판도 그렇게 먹어댔다. 밥의 찰기에 따라 식사행태도 여러모습으로 나뉘는듯 했다. 난 소고기 볶음밥을 먹었는데 쇠심줄이 들어 있었는지 질겨도 너무 질겼다. 그래도 한 그릇 뚝딱 먹어 치웠다.
중국 챠오판을 이렇게 먹어야 한다. 그릇을 바닥에 두고 먹으면 입으로 가지전에 다 흘러 버린다.
나시객잔 마당..노오란 옥수수 빛깔이 너무 고왔다..
나시객잔 전망좋은 옥상에서...
갈 길이 멀다. 해 지기 전까지 중도객잔까지 갈려면 부지런히 걸어야만 했다. 우리 일행 말고도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먼저 출발을 했다. 간단히 2층 전망좋은 곳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부들도 식사를 끝내고 우리가 출발하자 마자 따라 붙기 시작했다.
우리 말고도 앞에 제법 갔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죽자고 따라 오는걸까? 아저씨들, 번지수 잘못 찿았다니깐! 내게 자꾸 차마객잔까지 힘들다고 말타는게 어떻냐고 물어봤지만 우리는 한국에서도 항상 이 정도 높이의 산을 자주 다녀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구라를 좀 쳤다. 점심을 먹고 얼마되지 않아 걸어서 그런지 힘들게 느껴졌다. 특히 28밴드를 치고 올라 갈때는 숨이 턱 밑까지 차고 올랐다. 오~~생각보다 쎄다..그냥 트래킹이라 생각했었는데 제법 오르막이 가팔랐다. 길도 좁은데다 그놈의 흑먼지 때문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었다. 쉬는 타임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만만한게 아니군..이란 생각을 하면서 28밴드 정상 아래 간이 매점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제비형님이랑 다산초당님이 저 마부들이 자꾸 우리보고 빠가라고 놀린다며 투덜대기 시작했다. 빠가? 빠가는 일본말로 뭐 돌대가리? 대충 그런 뜻인데 마부가 일어를 할 일도 없거니와..알고 보니 우리 일행이 모두 8명이고 우릴 보면서 자기들끼리 8명(빠거런)이 뭐 어쩌고 저쩌고 한 모양인데 그걸 들은 제비형님과 다산초당님이 빠가 라는 말이 귀에 들렸고 그렇게 오해 아닌 오해를 한 것이었다. 달콤한 휴식시간에 웃음을 번지게 했다. 28밴드 정상까지 말을 타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말을 타고 우리를 앞질러 가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힘들고 약간은 지루하고 흑먼지에 숨쉬기도 곤란했지만 28밴드 정상은 우리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28밴드 정상 부근에서..
호도협 트래킹을 되돌아 보니 28밴드 구간이 제일 힘들었던것 같다. 28밴드 이 후 구간은 내리막길과 평탄길로 되어 있고 전망도 좋아 트래킹의 진수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28밴드 정상을 찍고 나니 모두 안색이 좋아진다. 이제 오늘 잠자리인 중도객잔으로 바삐 가야한다. 게으름 피지 않고 꾸준히 걸었지만 우리의 발걸음은 차마객잔에서 멈추었다. 차마객잔 도착시간이 거의 저녁5시니 말이다. 오기전 예약해 두었던 중도객잔 방을 취소하고 차마객잔에서 묵기로 했다. 옥룡설산 전망은 중도객잔이 더 좋다라고 들었지만 차마객잔도 우리에게 더할나위 없이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차마객잔 2층에서 옥룡설산을 배경으로..
저녁식사는 특별식인 닭백숙이다. 주문할 때 중국향신료를 넣지 말라고 이야기 했더니만 아주머니께서 한국식이니 걱정하지 말란다. 한국사람들이 와서 많이 먹어서 그런지 완전 한국식 백숙으로 자리잡은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먹어보니 딱 그맛이었다. 오늘 차마객잔에서 자는 이들은 우리를 제외하고 중국연인 한쌍, 독일노인8명정도, 그리고 한국연인 한쌍이 전부인듯 했다. 한국연인 한쌍과 같이 백숙도 나눠 먹으면서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을 가졌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정신없이 오고가는 우리들의 대화에 폭소와 때로는 놀라움을 표출했다. 그도 그럴것이 백숙으로 나온 닭이 오골계다 아니다라고 시작한 언쟁이 어느덧 경상도 남자의 권위주의적 행태의 성토를 넘어 동양철학의 중심인 공맹으로 살짝 갔다가 갑자기 인도 힌두교의 신 이야기가 나오더니 하마터면 안드로메다를 기점으로 전 우주적 관점에서 철학을 논하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 질뻔한 일련의 밑도 끝도 없는 난상토론에 한국연인은 혼비백산,기절초풍,박장대소의 연속이었다.
그 날 안드로메다 시점에서 내가 토론을 안짤랐으면 한국연인은 밤새 붙들려 있었을 것이다.
한국연인과 안드로메다 시점에서 이야기를 짜르고 같이 기념사진 한컷..
위 사진에 나오는 한국연인은 중국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운남성 일대를 정말 자연의 속도로 천천히 즐기며 다니고 있었다. 정말 부러운 청춘이다. 중국현지에서 근무한지 1년반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중국어를 썩 잘하는 듯 했다. 잠시 초등생인 딸이 생각났고 내 딸도 저렇게 컷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 서둘러야 했기에 아쉬웠지만 자리를 정리하고 각자 방으로 가야만 했다. 객잔은 자가발전 시스템이라 전기가 왔다갔다 했다. 잠자리에 들기가 왠지 아쉬워 맥주 몇 병을 사들고 회장님 방으로 갔다. 지리개굴님은 곤히 잠자고 있었고 술냄새를 맡은 몇명이 합류하여 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되새겨 보니 그날 밤 회장님과 산제비님이 안나푸르나 이야기를 들려 주었던것 같다. 젊은 우리보다 먼저 해외산행을 개척한 선배 산악인들의 무용담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밤이 깊을 수록 차마객잔의 밤하늘은 헤아릴 수 없는 별 빛으로 물들어 갔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보기는 난생처음이다. 아직도 차마객잔에서의 밤하늘이 아른 거린다. 자연이 내게 준 크나 큰 선물에 뭘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차마객잔에서 밤하늘을 올려다 보는 산제비님..
첫댓글 아~ 접때가 봄 날 였는데~~
글이 점점 더 재밌어 지네^^
우와.. 너무 부럽습니다^^
그날 밤 봤던 별똥별............평생 간직할 듯~~, 아주 재빨리 소중한 소원을 빌었었는데. 헤헿.
차마객잔에서 바라본 그 하늘은 정말 최고의 한 컷이었다.
행복이란 이런걸꺼야~~
차마객잔의 밤이 또 생각나네요..병장형님 기억력도 좋아
아~진짜 별천지..
그립네요..
오랫만에 보이 그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