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중국에 다녀왔습니다.
‘구채구’라고 사천성에 있는 경승지 입니다.
중국인들에게는 상당히 알려진 곳인데 저희에게는 아직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산은 황산이요 물은 구채구”라는 말이 중국인들 입에서 회자되고 있을 만큼 물이 끝내주는 곳이었습니다.
정말 에머랄드 물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둥글해지고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절경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곳 이었습니다.
가면서 계속 “아이고! 이곳을 우리 노인학교 선생님들과 같이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났었습니다. 이 말은 진심입니다.
재작년인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깨끗하고 좋은가는 각자 알아서 상상해 보도록 하십시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구채구’나 ‘황룡’ 또는 ‘모니구 폭포’에 가실 분이 계시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요. 제가 여정에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는 ‘구채구’가 주제가 아니라 ‘구채구’ 가는 길에 제가 뜻밖의 복을 만났기에 그 행운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구채구’에 가려면 사천성의 수도인 ‘성도’에서 비행기가 내립니다.
사천성은 과거 중국의 서쪽 변두리였습니다. 그러다 어찌어찌 중국인들이 신강, 서장, 운남, 귀주, 청해 등을 슬그머니 차지해 버리고 나니 그만 중국의 중앙쯤에 있게 되었습니다.
삼국지의 배경인 옛날의 촉나라가 바로 이 곳입니다. 유비, 관우, 장비가 나오고 제갈공명이 나오는 삼국지를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희가 아는 삼국지는 ‘나관중’에 의해 많이 왜곡된 이야기이고 실제 중국 정사에서는 조조의 위나라가 정통을 잇는 나라라는 것도 모르시는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아마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중 누가 제일 인기가 있을까”하고 물으면 대부분 관우 아니면 공명, 혹은 장비, 상산 조자룡 등 일 것 같습니다. 간혹 가다가 조조라는 분들도 계시지만 조조는 역시 모사꾼의 이미지가 강한 캐릭터여서 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조조 같은 놈.”이라면 이건 욕이지 칭찬이 아닙니다.
현재 사천성의 수도인 ‘성도’에는 ‘무후사’라는 공명을 모시는 사당과 유비를 모시는 사당이 같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사당이 따로 있었는데 유비의 사당에 전혀 사람들이 가지를 않아 지금처럼 유비의 사당과 공명의 사당을 같이 놓았더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유비의 사당도 덩달아 찾는다고 합니다. 사람의 인정이란 중국이나 우리나라나 거의 틀리지가 않습니다.
이 성도 시내에 흐르는 ‘금강’변에 ‘망강루’라는 대나무 숲이 우거진 것 외에는 그저 그런 누각이 한 곳 있습니다. 이 곳은 당나라 때 유명한 여류시인인 ‘설도’를 기념하기 위한 누각입니다. ‘설도’라면 아마 생소하신 분들이 많을 것 입니다. 그래서 ‘설도’를 소개 하려면 부득불 우리나라 가곡를 한 소절 소개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 지니 세월 덧없어
만날 길은 뜬구름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잘 아시다시피 이 노래는 모든 분들이 너무나 좋아하고, 불렀던 가수들도 너무나 많은 ‘동심초’라는 노래입니다. 소월의 스승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근대문학 초기에 등장하는 ‘안서 김 억’님이 노랫말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이 분이 직접 쓰신 것이 아니고 일종의 번역 입니다.
바로 ‘설도’가 쓴 한시 ‘춘망사’중 세 번째 절을 번역한 노래입니다. 이 번역이 어찌나 좋은지 혹자는 원작보다 안서의 번역을 더 낫게 보는 분들도 계십니다.
이 것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우연히 성도의 ‘망강루’에 갔더니 바로 그 곳에 ‘설도’의 기념 누각과 기념비, 무덤이 있지 않겠습니까?
너무 이상했습니다. 마음이 저려 온다고 할까요? 헤어진 옛 여인을 만난 기분이랄까요? 아무튼 묘한 기분이었습니다. 갑자기 ‘설도’와 ‘안서’와 저 사이에 어떤 끈이 너울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 일행을 먼저 보내고 저 혼자 ‘망강루’에 남아 한참을 ‘설도’에 잠겨보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나중에는 복 있는 여편네는 엎어져도 가지밭에 엎어진다는 말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었습니다.
춘망사 春望詞 설도(薛濤,당 여류시인 770-832)
화개불동상 花開不同賞 꽃 피어도 함께 즐겨할 이 없고
화락불동비 花洛不同悲 꽃 지어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욕문상사처 欲問相思處 그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어요
화개화락시 花開花洛時 꽃 피거나 질 때에는.
람결초동심 攬結草同心 풀을 따서 한마음으로 묶어
장이유지음 將以遺知音 지음의 님 에게 보내려하네
춘수정단절 春愁正斷絶 봄 시름 그렇게 끊어 버렸건만
춘조복애음 春鳥復哀吟 봄 새 다시 슬피 우네
풍화일장로 風花日將老 꽃은 바람에 시들어 가고
가기유묘묘 佳期猶渺渺 만날 날은 아득히 멀어져가네
불결동심인 不結同心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공결동심초 空結同心草 헛되이 풀잎만 맺었는고
나감화만지 那堪花滿枝 어찌 견디리 꽃 가득 핀 나무가지
번작양상사 翻作兩相思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옥저수조경 玉箸垂朝鏡 눈물이 주르르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춘풍지불지 春風知不知 봄 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의 작품.
원래는 장안의 양가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촉으로 부임하자 따라서 촉으로 이사함.
후에 집안이 폐가하여 악적(樂籍, 유흥을 돋구는 여인, 기생과는 약간 개념이 다름.)이 되었으나 시를 잘 지어 유명하여 짐.
춘망사 중 세 번째를 안서 ‘김 억’이 번안하였음.
추신: 기본앨범 181, 182, 183에 사진을 추가 했습니다. 같이 보아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