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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집안현 태왕향(太王鄕) 구화리(九華里) 대비가(大碑街)에 광개토대왕비가 있다.
다물의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광개토대왕이다.
장수왕이 414년(장수왕 3년)에 아버지 광개토태왕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높은 공덕비인 광개토태왕비는 높이 6.39m의 웅장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조선시대까지도 광개토태왕비를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 황제의 비로 이해하였던 것이다.
1880년 무렵에야 이끼와 넝쿨을 제거하고 능비를 새롭게 조사한 결과 광개토태왕비임을 확인했다.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왕은 집안에 광개토태왕비를 세운 이유는 그 비문에 잘 나타나 있다.
해모수의 북부여를 이어 고구려를 개국한 하늘의 아들이며 하백의 외손인 동명성왕(주몽)의 천손사상과
건국이념인 다물정신을 완성하였음을 만천하에 드러내 보이고자 나라의 중심에 세운 것으로 해석된다.
장수왕은 그 광개토대왕비에서 단군조선 이후에 갈라진 민족과 나라를 하나로 대통합하여
한 민족의 위대함을 보여주고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것을 당당히 선언한 것이다.
고구려의 다물은 현재 중국의 동북부 랴오닝 성(遼寧省) 지린 성(吉林省) 헤이룽장 성(黑龍江省) 등
3개의 성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 이 지역 최대의 도시는 선양(瀋陽)이며, 그 외에 하얼빈(哈爾濱)
창춘(長春) 다롄(大連) 치치하얼(齊齊哈爾) 지린(吉林) 등의 도시가 있다.
200만 명 이상의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고 고조선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이 많이 남아있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옛 영토로 여기고 있는 우리 민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지역이다.
동북 3성 그 서쪽 중국 땅에서 나라를 경영한 단군조선의 땅까지도 '되찾을 우리의 옛 땅'으로 삼았던
고구려의 웅대한 뜻을 고구려의 다물에서 우리는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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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글 올려주신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차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