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스웰 목사는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 작가 중의 한 분입니다. 그가 여행을 하다가 어느 주유소에 들렀습니다. 비가 오는 날씨인데도 많은 차들이 그 주유소에 몰려왔습니다. 이 주유소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가? 그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맥스웰 목사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보고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고객들이 우리 주유소를 다시 찾지 않는 이유
1. 사망한 경우가 1%
2. 이사 간 경우가 3%
3. 다른 주유소와의 친분관계가 5%
4.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서 9%
5. 기름에 대한 불만족이 14%
6. 종업원들의 무성의한 태도가 68%
주유소 종업원들의 성의 있는 친절이 고객들을 사로잡고 감동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친절은 누구나 줄 수 있는 선물이고, 누구나 좋아하는 선물입니다. 그러나 질문이 생깁니다. 친절은 주유소나 백화점에 어울리는 말이지 거룩한 교회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친절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옵니다. 대단히 거룩한 부분에 나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는 저 유명한 성령의 열매, 즉 성도가 맺는 거룩한 삶의 열매 아홉 가지가 나옵니다. 그 중 다섯 번째 열매가 ‘자비’입니다. 자비를 여러 영어 성경에서는 kindness 즉 친절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어느 주석에서는 자비를 친절로 번역해야 된다고 강조합니다. 친절은 표정과 말로 나타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말은 중요합니다. 잠언에는 말과 혀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12:18).”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다음은 어느 영시(英詩)의 한 부분입니다.
“노여운 말 한 마디가 친절한 마음을 상하게 만들고, 부지중에 나온 실언이 앞날을 캄캄하게 만들고, 찌르는 가시를 일평생 남겼도다.
그러나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슬펐던 마음에 광명을 주고, 동정의 말 한 마디가 한 영혼을 살려 놓고, 기쁨의 말 한 마디가 캄캄하던 앞길을 광명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언필칭 공평을 부르짖으면 사람에게 사납게 행한다. 그러나 격분된 말로 의를 말할진대 말하지 않는 것이 낫다.”
우리 교회 성도라면 이름 앞에 ‘친절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딱 어울려야 합니다. 친절한 아무개 목사님, 친절한 아무개 장로님, 친절한 아무개 권사님, 친절한 아무개 집사님, 친절한 아무개 선생님.. 다 어울려야 합니다. 통칭으로, 친절한 은광씨라야 합니다. 친절은 다섯 번째 성령의 열매입니다. 거룩한 열매입니다. 아, 그리고 교회가 주유소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j.w.h.
전원호 목사님 목회 칼럼 (수완 은광교회: 오전 10시 예배, 모아엘가 뒤쪽 상가)
http://www.eungwa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