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감염병으로 20만마리 떼죽음… 멸종 위기 처했어요
사이가산양
사이가산양은 중앙아시아와 몽골의 춥고 건조한 초원에 살아요. 한때 유라시아 초원에 걸쳐 살았으나 인간에게 사냥당해 지금은 카자흐스탄과 몽골 일대에서만 발견돼요. 현재 5만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는 멸종위기종이죠. '사이가'는 중앙아시아 유목민들의 말로 산양이란 뜻이에요.
사이가산양은 커다란 코와 긴 뿔이 특징이에요. 수컷의 뿔은 25㎝까지 자라는데, 둥근 고리를 차근차근 쌓아 올린 모양이 점점 가늘어져 끝은 뾰족해요. 넓죽한 코는 찬 공기가 허파로 들어가기 전에 데워주는 기능을 해요. 춥고 건조한 초원에 사는 사이가산양에게 중요한 기능이죠. 코 안의 털과 점액이 콧속으로 들어온 흙모래를 거르고 밖으로 밀어내 허파를 지켜줘요. 콧구멍이 아래로 향해 있어 흙먼지가 코로 덜 들어가요. 몸집은 우리나라 산양보다 약간 커요. 두툼한 코를 보면 굼뜰 것 같은 인상이지만 달릴 땐 최고 시속 80㎞로 말(馬)만큼 빠르답니다.
사이가산양은 대개 한 마리 대장 수컷과 암컷 5~15마리, 새끼들까지 포함해 30~40마리가 서로를 지키며 가족으로 뭉쳐 살아요. 여름에는 초원에서 살다 11월쯤이면 수십에서 1만마리 이상이 모여 남쪽으로 이동해요. 하루 80~120㎞를 걸어 약 1000㎞ 남쪽으로 내려가 겨울을 나죠. 4월이면 다시 북쪽 초원으로 올라가요.
1990년대 초 카자흐스탄에만 80만마리를 포함해 전 세계 100만마리가 넘는 사이가산양이 있었어요. 그러나 1992년 소련 붕괴 직후 중앙아시아가 어수선한 시절 사냥꾼들이 사이가산양을 마구 잡아들였죠. 뿔이 중국에서 한방 약재로 팔렸고 고기와 가죽도 비싼 가격에 거래됐어요. 사이가산양의 수는 2000년에 3만마리까지 줄었어요. 뒤늦게 국제사회가 보호에 나서 2010년에는 25만마리로 늘어났죠.
2015년 5월 참사가 벌어졌어요. 사이가산양의 몸속에 기생하는 '파스퇴렐라'라는 균이 갑자기 치명적인 병원균으로 돌변해 사이가산양이 대량 폐사하고 말았어요. 감염되면 치사율은 거의 100%에 달했죠. 파스퇴렐라는 원래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았어요.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로 사이가산양 서식 지역의 5월 평균기온이 높아지면서 균이 변이를 일으킨 것으로 보고 있죠. 특히 2015년 카자흐스탄의 봄은 예년과 달리 기온이 높았고, 소화가 잘되는 풀이 쑥쑥 자라 사이가산양들이 영양 과다 상태였다고 해요. 단 2주 만에 20만마리의 사이가산양이 파스퇴렐라균 감염으로 장기출혈을 일으키며 죽었어요.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오른 사체가 푸른 초원에 널브러졌어요. 카자흐스탄 당국은 사이가산양을 수백㎞에 걸쳐 수없이 땅에 묻고 또 묻었어요.
국제사회는 남은 사이가산양을 보존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하지만 기후변화가 계속되면 생태계에 또 어떤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