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강현(安康鉉)
1派30世-첨추공파(僉樞公派)
대회가 끝난지 2주가 훨씬 지났는 데도 100키로의 흔적과 기억은 그대롭니다. 감기 몸살과 함께 찾아온 온 몸 구석구석의 통증. 15시간 40분의 고통의 시간들. 소중한 교훈과 깨달음을 후기로라도 정리해야 100키로의 여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대학교 후문이 보이기 시작하고, 어제 저녁 7시에 시작하여 15시간 40분이 넘어가는 긴 여행의 끝이 보입니다. 끝까지 완주했다는 자존감. 에너지를 다 쏟아 부은 후의 만족감. 15시간을 몰입한 성취감으로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완주 월계수가 씌워지고 축하메시지가 소진한 기력사이로 꿈결처럼 다가옵니다. 주어진 생을 마칠 때에도 이런 환호와 충만함을 갖게 되기를 소원해 봅니다. 100키로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년에 다시 한번 대구에 가기로 맘먹었습니다. 지난 인생은 다시 살아 볼 수 없지만 성지순례 100키로는 다시 음미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골인지점까지는 100km (인생 백년하고 비교할 수 있을까요) 팔공산 자락의 큰 고개를 4개나 넘어야 하고 수도 없이 많은 갈랫길을 지납니다. 그 때마다 멈춰 서서 길 바닥을 관찰해야 합니다. 진행 방향 표시가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없이 달리다가는 알바(길을 잃어 헤매이는) 당하기 십상입니다. 우리네 인생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될 때 이처럼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대회장 행 카니발에서 다짐했던 60km가 전코스 완주로 바뀐 것은 순전히 말씀 때문입니다. (울트라 완주 뒤에는 말씀이 있었다) 섭스리 임승필 신부님의 현장미사 강론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힘들고, 지루하고, 멀더라도 (울트라길도, 인생길도) “겸허하고 진실한, 하느님 안에서 행복한 시간이 되십시요” 한티 성지 오르는 길에 만난 어느 70세의 울트라맨의 결정타 한 말씀은 100km 도전의지를 북돋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완주도 못한 대서야...”
유재철 회장의 한마디는 어찌해 볼 수 없도록 못을 박았습니다. “60키로까지 왔으면 나머지는 기어서라도 갈 수 있대요” 내내 달리기만 했으면 완주를 못했을 겁니다. 성지에서는 주모경을 바치고, 숨이 턱에 차오르는 고갯길에서는 박해시대의 피난길 묵상을 합니다. 한밤중에 뛰다가 먹는 야식 해장국은 정말 꿀맛입니다. 84키로에서는 대구북구육상연합회 자봉 아침국수로 피로를 풉니다. CP에서는 환영 간식을 먹고, 남미카엘 형제님의 맨소래담 서비스도 받습니다. 유스토 회장님께 중간 울트라 보고도 드리구요. 능선재를 지나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복사꽃을 카메라에 담아보기도 합니다. 다리 근육은 뭉치고 갈 길은 멀지만 서두르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여유와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벌판을 내달리다가 잠시 멈추어 뒤를 돌아본다고 하지요. 너무 빠르게 달리면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요. 술 마시고 고스톱 치느라고 아침이 된 적은 있었지요 마감에 쫓겨 원고 쓴다고 밤을 새운 적도 있었지요. 그것과는 차원이 영 다릅니다. 신비합니다. 달리면서 맞는 팔공산 자락의 새벽닭 소리와 여명은...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아프리카 속담에 있는 이야기이지요. 100km는 혼자 가기에는 너무 멉니다. 동반자가 있어서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동반자가 있어야 하듯이... 가파른 한티성지를 오르는 길에 만났던 70세의 노장 울트라맨 김수원님 이야기입니다. 75키로 지점(지묘동 사거리)에 이르렀을 때 한 눈에도 매우 지쳐보였고, 근육 경련이 일어났는지 다리까지 절룩거리는 포기/낙오 직전의 마라토너를 만났습니다. 울트라용이 아닌 일반배낭을 맨 것도 그렇고 방풍윗옷도 없이 반팔과 짧은 런닝 팬츠 차림을 보건대, 울트라 경험이 없는 초보임을 한 눈에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치기는 김수원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배낭에서 비상약을 꺼내 복용하게 하고, 지쳤지만, 지친 초보마라토너와 동행하면서 가장 힘든 종반 25키로를 도움받고, 도움주면서 골인을 하시더군요. 옆에서 뒤에서 지켜보면서 큰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티벳 성자 선다싱의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눈보라 치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다가 길에 쓰러진 노인을 발견했습니다. 함께 가던 친구는 짐이 된다고 팽개치고 먼저 가버렸습니다. 선다싱은 그 노인을 업고 걸었습니다. 얼마쯤 가다보니 먼저 간 친구가 얼어 죽어 있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길을 잃지 않으려면 앞선 주자를 따라가야 합니다. 뒤에 오는 주자들에게는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주자들은 깜박이 등을 달아야하고 그래야 다 같이 골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완주라는 목표를 공유하는 공동체라는 것을 100키로에서 배웁니다. 자원봉사가 그리도 고마운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와서 바로 홈페이지에 감사인사를 올렸습니다. ------------ 참으로 감사합니다. 가장 지쳤을 때 다시 기력을 회복하여 첫 울트라 출전의 초보가 완주를 할 수 있었고 오늘 뻐근한 회복을 하면서, 고마웠던 주로의 봉사자 중 북구육상연합회가 떠올랐습니다.
말씀을 듣고는 자원봉사에 인색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울트라... 앞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 결심했지요. 단, 내년에 다시 딱 한번만 부부동반주를 하자. 4CP 북구 육상연합회팀을 한번 더 만나야 하니까... 그렇게 집사람과 약속했습니다.
내년에 뵙겠습니다. 용인 막걸리 한 병 받아 가지고 갈까 하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