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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2:8~9 오직 은혜 (Sola Gratia)
마르틴 루터는 복음을 알기 전에는 죄에 대한 두려움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두려워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억지로 법률을 공부하도록 했습니다. 음악성이 뛰어났던 루터는 법률과는 맞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무서워서 법률을 공부했습니다. 무서운 아버지는 그에게 무서운 하나님 ‘아버지’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언제나 두려워했습니다. 친구가 눈앞에서 낙뢰를 맞고 즉사하는 것을 본 이후 그의 두려움은 더욱 강렬해졌습니다.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의 신분이 되었지만, 항상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마음에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지 않을까, 마음에 평안함이 없이 두려움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랑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두려움에 떨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루터는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범한 죄를 고해했고 고행과 금욕생활을 계속했지만,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교황청을 방문했습니다. 교황청 순례를 통해 죄사함의 은혜를 누리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성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렸습니다. 그래도 이렇다 할 큰 기쁨을 얻지 못하던 중에 그는 주님의 크신 음성을 듣게 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1:17)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하여 루터는 비로소 죄 사함의 기쁨을 얻고,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힘을 얻어 종교개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의 5대 정신
올해가 종교개혁 509주년을 맞이한 해입니다. 종교개혁의 5대 모토, 강령, 정신을 살펴보면서 회복되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①오직 성경!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솔라(Sola)'는 라틴어로 '오직'이라는 뜻이며, '스크립투라'는 ‘성경’을 뜻하는 라틴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신앙과 삶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라는 것입니다.
②오직 은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
'그라티아'는 ‘은혜’를 뜻하며, 죄인의 구원은 어떤 행위나 공로로 얻을 수 없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③오직 믿음! 솔라 피데(Sola Fide)
'피데'는 ‘믿음’을 의미하며,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질 때, 그 구원을 받는 유일한 통로는 인간의 믿음뿐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④오직 예수! 솔루스 크리스투스(Solus Christus)
'크리스투스'는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자 구원자라는 사실을 천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⑤오직 하나님께 영광! 솔리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이 모토는 우리의 모든 구원과 삶의 목적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데 있다는 최종적인 신앙 고백입니다.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종교개혁 5대 강령 중 오직 은혜! 솔라 그라티아(Sola Gratia)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있습니다.
농장주인은 아침 일찍 인력 시장에 나가 건실하고 일 잘할 일꾼들을 뽑아 와서 자기 농장에 들여보내 일을 시켰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근로자의 근로시간이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열두 시간이었습니다.
농장주인은 오전 9시, 12시, 오후 3시, 5시에 각각 품꾼들을 만나 품삯을 상당하게 주리라 약속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한 시간 남겨 놓고도 써주었습니다. 일이 바빠서가 아니라 주인의 선한 마음이 그를 써 준 것입니다. 일과를 다 끝내고 일꾼들에게 품삯을 나누어 주는데 아침 여섯 시에 온 사람이나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이나 품삯을 똑같이 주었습니다.
여러분, 어떤 주인이 열두 시간 일하는 사람과 한 시간 일하는 사람과 대우를 똑같이 해주겠습니까? 예수님의 이 비유를 경제 원리를 가지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설명될 뿐입니다. 은혜는 품삯 계산하듯이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일등이냐, 꼴찌이냐? 먼저 왔느냐, 늦게 왔느냐? 따지지 않습니다. 은혜는 산수나 수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받는 것이지 노력의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구원의 은혜를 우리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일찍 믿은 사람도 나중에 나이 들어 믿는 사람도 죽기 1시간 전에 믿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으면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언제 믿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같은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죄 용서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본디 우리는 하나님을 더듬어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구원을 몰랐고 하나님을 찾지도 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그 큰 사랑으로 구원의 한길을 주셨습니다. 은혜입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그 믿음조차도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습니다.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
믿음도 구원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입니다. 선물을 돈으로 산 사람은 없습니다. 사면 그것은 선물이 아닙니다. 전등불의 대가는 전기 요금으로 지급합니다. 햇빛의 대가는 없습니다. 선물이고 은혜입니다. 공기 역시 선물로 받지 돈을 내고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세요.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 공부해서 된 것도 아니고, 노력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믿어지지 않아 믿지 못한 나였는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성령을 보내주시고 믿어지게 하는 믿음 주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신 것입니다. 믿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줄 믿습니다. ♪찬송가 305장
내 죄 용서받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 1:5-7)
거저 주신 선물, 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예수님의 피로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어느 종교의 유명한 수도사가 결혼 직후 처자식만 집에 남겨 놓고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부모가 찾아와도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만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거주하는 곳에는 철조망을 쳐놓고 10년 동안이나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16년간을 솔잎가루와 쌀가루만 먹었습니다. 그리고 8년간은 눕지 않고 앉은 채 자면서 수양을 쌓았습니다.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엄청난 고행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말이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자신은 한평생 너무나 많은 사람을 속였고 너무나 거짓된 말을 많이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죄가 하늘까지 닿아 산보다 더하고 그러므로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 말했습니다.
고행과 수도를 통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죄인인 나를 구하려고 비우고 낮추어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십자가에서 우리의 죗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받습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으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깨달음으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 지혜, 고행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한평생 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주셨으니까 이렇게 이 땅에서 와서 사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중에 누가 스스로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까? 부모가 낳아주셨다고 말하지만, 만일 부모 마음대로 자식을 낳는 것이라면, 자식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이며, 부모가 자식을 낳는다면 다 똑똑하고 잘난 자식을 낳지 왜 그렇게 못합니까? 하나님이 나를 부모님을 통해 세상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모님의 은혜도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는 더욱 감사한 것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산 것도 기적이며 은혜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합니까? 세상이 얼마나 우리 이성을 뛰어넘어 무섭고 희한한 일이 생깁니까? 난리의 소문을 매일 듣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곱이곱이 잘 넘기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는 것, 산다는 것도, 살아있다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건강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를 당하고 심정지가 와서 생명을 멈추고, 병들어 쓰러지는데, 안전하다 건강하다 하겠습니까? 주님이 허락하신 시간만큼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만이 피난처이시고 안전한 바위이십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품에 있어야 제일 안전할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약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지혜를 하나님께 받은 사람이 누굽니까? 솔로몬입니다. 그런 축복, 그런 지혜를 가지고 살아 본 솔로몬 왕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시 127:1-2)
아무리 인간이 기를 쓰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헛수고라는 말입니다. 물거품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좀 부족하고 미약해도 하나님께서 세워주시고 지켜주시고 도와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호흡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의존하고 있는 환자들 보면 내가 힘들이지 않고 호흡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귀한 은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 사도 바울도 지나온 인생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회고해 보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마르틴 루터의 고백입니다.
“내 인생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 마디마디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광산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나의 조부와 아버지의 꿈은 장차 내가 커서 광산촌의 읍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게 하셨고 수도사가 되게 하셨고 마침내 파계한 수녀와 결혼하게 하셔서 교황권과 맞서 싸우게 하셨다. 나의 걸어온 지난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에게도 이런 겸손하고 깊은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고백과 더불어 늘 감사하시고 보답의 삶으로 맡겨준 사명에 충성을 다합시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 15:10)
바울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려고 더 많이 수고했다고 고백합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헌신하고 충성합시다. 수고하면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은혜의 선순환이 있기를 축원합니다.♪찬송30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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