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나보다 똑똑한 우리, 첫 걸음 떼다
최재덕(전주시민독서포럼 회장)
작성 : 2010-06-30 오후 7:07:17 / 수정 :
전북일보(desk@jjan.kr)
지난 6월 5일 전주시 한 켠에서 작은 조직이 탄생했다. 독서모임 20개의 연합체인 '전주 시민독서포럼'이다. 2008년 가을 몇몇 독서회 대표들이 운을 뗀 지 1년 반 만의 결실이다. 그간의 이야기는 여정에서 누구나 겪는 곡절이라 치고, 시민독서회들의 자생적 연합체로는 아마도 전국 최초일 이 몸체의 창립 의의를 짚어본다.
우선 전주시 독서회들의 면면을 보면, 직장동료끼리의 독서회 같은 사적인 모임에서부터 도서관 등 거점시설의 독서모임, 그리고 강좌 끝에 만든 모임에 이르기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범위도 넓다. 그런데 이러한 모임들을 아우르는 상위 중심조직이 지금까지 없었다. 연합체를 구성하자는 제안에 상당수의 독서회들이 선뜻 응한 이유는 이미 욕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 간디학교 교가의 일부다. 포럼 출범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빈 땅에 그림을 그려야했던 점이다. 크고 작은 숱한 회의를 거치면서 스스로 길잡이가 되고 나침반이 되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전주시 평생학습센터(센터장 김수현)의 시의적절한 도움은 오아시스 이상이었다.
유명인의 이름에 기대기 위해 그들을 간판으로 영입한 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끼리 만든 단체. 벤치마킹한다고 외국을 기웃거리거나 하지 않고 현장에서 답을 찾으려는 단체. 포럼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하여 포럼의 추진력은 명사의 이름석자나 외국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한걸음 앞으로 나아간 사회를 소망하는 모든 독서모임 회원들의 꿈이다.
또 단순함은 뛰어난 수행능력을 갖는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포럼의 할 일은 다음과 같이 압축되었다. 정기적으로 공개수업을 함으로써 시민들에게 다양한 독서회의 실체를 보여주어 가입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 전주의 독서회를 파악하여 기존모임의 소멸을 막고 새로운 모임의 생성을 돕는 독서회 인큐베이터가 되는 것, 독서모임들과 전주시 사이에 소통의 창구가 되는 것.
무슨 일이든 뿌리를 내릴 때까지가 어렵다. 더구나 초기 결정은 회원이 지닌 에너지의 흐름과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변치않을 운영상의 고갱이는 각 독서회의 자율성이 최대로 확보되는 가운데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원리이다. 여럿의 견해를 모아 비전을 찾고 다수가 공감할 때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민주사회의 작동원리는 그래야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표면적으로 성공한 단체보다는 가치 있는 단체가 되는 것이 목적이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옳은 방법으로 걸어갈 것이다.
출범식 당일 시민 21명이 신입회원으로 가입했다. 각자의 희망에 따라 8개의 독서회로 나뉘어서 찾아갔다. 회원확보 보다는 출범식 자체에 무게를 두었던 터라, 기대이상의 수치에 포럼은 뿌듯해하고 있다. 이번에 함께한 20개의 독서회 말고도 전주에는 많은 독서회들이 있다. 어디까지나 자율적 결정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독서회들이 포럼에 동참하여 책 읽는 생활인들의 도도한 물결을 형성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사회 각 분야에서 미래를 예측하며 그에 맞추어 현재를 디자인하느라 바쁘다. 이제 막 첫 발을 뗀 전주시민독서포럼은, 그러나, 다가올 미래가 아니라 다가와야 할 미래에 더 무게를 둘 예정이다. 최선을 다하되 마지막 걸음은 신께서 옮겨놓으신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평온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는다.
/ 최재덕(전주시민독서포럼 회장)
▲ 최재덕 회장은 송천시립도서관에서 시민독서모임 토론 진행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독일어 통번역사로 활동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