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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민족의 영산 백두산 능선종주 산행기(정종백)
산행기간 : 2002.8.11(월)~17(토)
이동경로 : 인천공항=> 북경=>연길=>이도백하=>
백두산>이도백하>연길>북경>인천공항
종주코스 : 백두산(장백산)입구(서파)>5호경계비>마천루>
청석봉>백운봉>녹명봉>차일봉>(1일차 10시간)
북파입구>소천지>불로봉>흑풍구>고래등>백암봉>
철벽봉>화구벽>달문>천지>달문>화구벽>철벽봉>
천문봉>고래등>흑풍구>불로봉>북파입구
(2일차 10시간)
(백두산 종주시간 2일연속 총 20시간)
종주인원 : 37명
[제1일차 : 2002.8.11(일)]
[서울에서 연길까지]
11:00 인천공항 집결
일행 37명과 가이드 1명이 모두 도착 출국 수속을 밟다
13:40 인천공항 이륙
고도 1800m 유지 북경으로 계속 향하다
14:10 기내식
15:24 북경공항 도착( 1시간 늦춘 중국시간으로 맞춤)
이하 계속 중국시각으로 표시
15:50 중국 국제출국장 단체통도(團體通道)
16:20 북경 국내선 화물카고 입고
(중국 북경현지 가이드 조선족 장영숙의 안내)
17:30 CA1695편 연길행 북경출발시각이 17:10분이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다
(연길yanji까지는 2시간 소요)
북경 탑승구 28게이트에 중국제 전자제품 TV모니터가 있고, 바로 옆에
우리의 제품DIGITAL LG TV모니터가 설치 되어있다
17:46 18:05분 중국광주행 출발비행기가 현지 일기 불순으로 비행기가 계속
출발지연되었다 함(중국광주행 승객은 당황 한다)
(연길행도 계속 지연되고 있음. 우리의 가이드는 중국은 1시간 지연은
당연한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으며 때로는 4시간도 지연되고 때로는
공항에서 새우잠도자야 된단다)
17:57 연길행 비행기도 계속 지연으로 미도착이다
공항의 날씨가 갑자기 천둥이 번쩍거리고 기상이 악화 된다
18:10 1시간 지연 후 이내 비행기가 도착되고 탑승을 시작한다
기내는 한국인이 많다. 흡사 한국 지방 국내선의 모양과 같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연길직항로가 없는것은 조선족이 많이 사는 연길만
경제적으로 좋아지는 것을 막기위한 중국 당국의 계획적 비행 루트라한다
백두산관광을 한국인이 많이하다보니 연길의 경제적 상황이 중국의 다른
종족중에서 가장 좋아졌다 함. 이의 부의 분배를 공유하도록 하기위한
북경경유를 하도록 한다는 말이지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한국인은 조선족이 잘살기를 바라는 마음들이다
18:47 탑승은 했지만 아직도 이륙도 못하고 활주로 대기중이다
기내방송의 안내원목소리다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국어안내방송을 했다)
"손님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륙을 못해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앞의 몇대의 비행기가 이륙을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습니다.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이륙명령을 받아야 이륙합니다.
불편하더라도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우리말이 서투른 기내 안내원의 안내멘트다 중국인 치고 잘한 한국어
기량이다
혹. 중국인의 대륙성 기질로 서두르지 않는것이 좋다
기내는 조금은 이야기들을 한다 대개가 한국인 관광객으로 한국 국내선이
아닌듯 착각된다
이륙후 20분이 지나 안정기류대 2070m(내손목의 고도계고도다. ±50m)
20:49 연길 도착(이때부터는 연길에서의 가이드 윤향란이 안내)
한글로 공항안내표시가 정겹다
연길의 모든 광고판은 모두 한글로 되어있거나 한글과 중국어(한자)로 되어있다.
연길은 전혀 중국이 아닌 우리의 어느 도시 인듯한 느낌이다.
하기야 여기가 그 옛날 대한민국의 지방 도시가 아닌가?
우리의 연길 숙소 대우호텔에서 간단한 요기를 하다
23:20 대우호텔(우리대우가 건축)에서 “내일은 03:30기상 4시 출발이다”하고
잠이 들다. 연길의 밤거리는 그리 요란 스럽지 않다
----연길이란-----
동북지방의 길림성 동부에 있는 길림은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주도로서 인구는
약 30만으로 그 가운데 조선족이 59.6%, 한족이 38.8%, 그밖에 만주족·회족·
몽고족 등 10개의 소수 민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시 전체의 면적은 747.4㎢
이지만 도심만 따진다면 18.6㎢에 지나지 않는다.
연길은 인구비례에 의한 소비가 중국에서 첫손 꼽히며 택시 보유 1인당 배당률도
중국 제 2위라고 할 정도로 소비도시이자 문화도시이다. 1개의 자체 방송국이
있는데 연변방송국은 중국의 다른 소수민족에게는 없는 유일한 소수민족
자치방송국이라 조선족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연길에는 여행객을 끌만한 이름난 명승고적은 거의 없지만, 연변에 사는 친척을
방문하거나 사업차 찾아가는 사람을 제외하면 대개는 백두산 관광을 위한
경유지로 들르게 되는 곳이다. 그리고 연길은 조선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사람이 관광하기에는 매우 수월하지만 거리구조나 교통수단은 다분히
중국적이다.
[제2일차 : 2002.8.12(월)]
[연길에서 이도백하까지]
03:30 기상하라는 모닝콜이 울린다
다시 배낭을 정리하고 대우호텔 로비라운지 2층에 위치한 호텔
직영점에 쇼핑을 하고있다.
"국내최고급의 관광상품을 구전히 마련해 놓고 타 쇼핑 센타보다 20% ~
30%저렴한 가격으로 손님들에게 이윤을 양도해 드립니다.
손님여러분들의 왕림을 환영합니다."
다분히 북한쪽 어휘들이 이채롭다
04:50 백두산에서의 첫번째 마을이며 하늘아래 첫번째 마을 이도백하
로 연길을 출발하다
이도백하로 가는길(가이드는 차안에서 다음과 같은 여러곳을
안내하며 차창으로 지나는 여러곳을 안내함)
연길병원,아침시장모습,교회,공원다리,광고(가로일때는 위쪽이 한국어
아래쪽은 중국어, 세로일때는 오른쪽이 중국어 왼쪽이 조선어),
브루화통하의 연서교(이다리를 경계로 연길의 하남과 하북으로 구분한다 함),
신풍촌, 곡창지대 ,수금소(톨게이트), 중국의 동북삼성(흑룡강성,길림성,
요령성), 연길에서의 역대구분은 1910년대(일제강점기), 1937년대(조선족
집단 이주기), 1945(광복)으로 구분한단다
조양천,술(곡주)을 우리 조선족이 좋아한단다.
동물상,안개지대(기온이 하강),노투구(노인들이 많이 모여산다는 일개구로 사과
배가 유명하다.
만인갱 역사(일제치하시 사살된 조선족들을기리는 곳)등을 연길 가이드는
설명한다
05:50 차안은 어제밤 못잔 잠때문인지 잠자느라 조용하다.
하지만 나는 이토록 어렵게 온 중국 연길 우리의 옛 조상들의 숨결이 숨쉬는
곳을 낱낱이 기록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하기 위하여 눈을
더 크게 뜨고 차창밖을 본다.
차창밖은 옥수수 벼 등 우리의 70년대의 삶과 비슷하다
비가 많이 왔나보다
아침을 짓는 지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아직도 땔감연기다)
벌써 3번째 수금소(톨게이트)다
길림성이다. 여기가 우리의 선조들이 비상하던 땅인가! 이 광활한 토지에서......
차창 밖으로 이동전화 기지국이 많다 하도 지역이 넓기 때문에 유선케이블을
포설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차라리 무선전화기지국을 설치하고
무선전화를 이용하는것이 좋을 듯 싶다
우리의 무선통신을 이곳에 접목시켜간다면 사업성이 있을 듯싶다
(도시지역은 유선으로 수림산간지역은 무선통신으로 개발하는 것이
유리할듯하다)
07:00 출발 2시간 후 휴게소다.
휴게소라하더라도 식사하는곳은 없다.차길옆 길거리에서 여러물품을 파는 곳이다
술한잔(약술)에 2,000원 달걀3개 1,000원, 구기자술,홍경천술을 파는 어린 여자
아이이름은 신미라(조선족3세)라 한다. 할아버지,부모님과 함께 산단다.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방학이라 돈을 벌고 있단다(알바라 하니 했더니 못알아
듣는다.아르바이트도 못알아 듣는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전라북도라 한다 전라북도의 어딘지는 학생은 모른다 아쉽다 .
이산가족이라도 찾아 줄수있는것 같은데..
이내 안도현고교가 나온다
안도현(--참조--전라도와 경상도 이주민들이 많이산다고 함)은 조선족이 20%로
조선족 인구가 점점줄어들고 있단다
중국정책적으로 산아제한 정책을 편단다. 1부부간에 1아이만 갖자는 운동을
벌이며 2아이는 낳을때는 사회주의 정책적으로 농토를 줄인단다.
1아이일때는 학교도 그냥보내지만 둘째아이 부터는 학교에 벌금을 내고
학교를 보내야 한단다. 그러다보니 우리 조선족 인구가 줄어들고 있단다
07:12 다시 휴게소를 출발한다 차창밖을 쳐다보며 계속 지난다
우리의 집들과 똑같은 집들이 많이 있다
한족과 조선족의 집모양은 비슷하지만 지붕이 조금 다르단다.
우리의 조선족 집이 더 모양이 좋다
소달구지가 지난다. 망아지 달구지도 지난다
연경이라는 곳이다
중국은 땅덩어리는 크지만 아무리 찾아 봐도 묘(무덤)는 보이질 않는다.
중국은 인구가 많이 때문에 무조건 화장을 시켜야 한단다
아주 화장 문화가 정착되어버렸단다.
차창밖의 이정표가 모처럼 보인다. 이도백하 30Km다.
계속 달리다보니 직진 멀리 구름 위에 백두산이 보인다(가이드안
내)차내는 갑자기 멀리있는 백두산의 전경을 보고자 술렁인다
금방이라도 백두산을 오르고자하는 심리이리라....
08:06 송강을 지나다
08:10 4번째 수금소다
수금소가 많은 것은 지금 달리는 이길은 중국 임업국이 목재를 실어날으기 위해
터놓은 길로 이길을 지나는 차는 으례 통행세를 내야 된다는 것이다.
이도백하 18Km 이정표다
이 지대가 보통 해발 640 ~ 750m고지다
고산식물 형성지대다 너무 푸르다 엄청난 임업자원이다
하늘은 너무도 맑다(북경과는 전혀 다르다)
햇볕은 장열하게 내리 쬔다
숲은 울창하다 대단하다
지금 중국이라는 체제 속에서 그 중심에 있는듯 하다.
08:29분 백두산 아래 첫번째 마을 이도백하마을을 지나고 있다고 가이드
가 말한다
유명한 미인송(붉은 소나무껍질로 정말 아름답다)을 지나고 있다
목재를 실어나르는 철길이 3개 있다.
무법천지 지역이며 산적이 욱실거린단다(가이드 안내)
그러면서도 양봉.인삼으로 연길에서 가장높은 수입이 있는 지역이
단다
이도백하의 고려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배들이 시장한지 밥을 보니 금방 모든 음식을 사그리 치워버린다.
대단한 식욕가들이다
식당앞에서 현지 아이(형제인듯함)2명과 사진을 찍었다.
아주 우리의 어린시절 약 30 ~40년 뒤진 몰골이다.
현지가이드 윤향란이와도 사진을 촬영했다
바로 식당앞 기념품 판매대에 정말 까맣게 그을린 젊은 아이가
나의 손목컴퓨터(시계,고도계,나침반,기압계.수평계 등이 있는것)
를 보고는 일본제품이냐고 묻자 핀랜드 제품이라고 하자
한번만 손복에 차보자고 했다 무의식중에 벗어주었더니
금방 손목에 차고 눈치가 이상해진다 아마도 순간 손목에 차고
도망갈것 같은 생각에 빨리 벗어 달라고 하자 마지 못해 벗어준다
아마도 틀림없이 조금 만 지체했으면 차고 도망갔을 것이다
이곳은 무법천지 어느지역으로 도망가도 쫓아 갈수도 없다
순간 정신이 반짝든다
훗날 누구든 나와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부분을 기록해 둔다.
비록 이것 뿐만이 아니라 모든것을 조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09:20 아침식사시간인데도 술들을 많이 나눈다
이도백하 고려식당 출발 이제 백두산에서 가장 가까운 백운봉산장
으로 간다
엄청나고 방대한 고산식물대를 지난다.이루 형언할 수없는 산림
자원이다 . 이땅이 그 옛날 우리의 만주 벌판 땅이었던가.
아쉽다 우리민족을 빨리 부흥하여 다시 찾을수 있는 때를 만들어
야 한다 우리시대가 지나고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이땅을 다시
찾아야 할것이다.
어제밤 대우호텔 냉장고에 있는 술을 먹은 대금이 비쌌다고 이구
동성이다. 물도있었는데 먹었더니 비싼 대금을 치루었단다.
맥주 캔 1캔당 중국돈 10위안(우리돈 1530원이다)이었단다
아주 봉이다
고산임도(어휘가 생소하다.높은지역의 산속 임야가 있는 길)길이다
목제이동도로가 계속 펼쳐진다
이곳 이도백하에서 포장도로를 달리면 바로 장백폭포로 가는길은
50분정도 소요되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백운봉산장으로 가는데 3시간 정도 걸린다
포장도로는 일반관광을 하는 사람들이 가는곳이고 비포장도로
백운봉산장으로 가는길은 전문산악인들로 백두산을 트래킹하는
사람들이 가는길이다.
우리는 당연히 비포장도로로 백운봉산장으로 간다
고산임도길은 이정표도 없다 해발고도 1050M..
출발후 1시간이 지나 고산임도길의 중간 지점에서 화장실을 들리기
위해 5분간 정차한단다.
"중국 길림성 장백산 공산당 두서관리점"
이라는 건물의 팻말이 보인다.섬뜩하다.
중국정부가 허가하는 관리 가이드 몇사람이 있다.
상당기간이 지났기에 이제는 우리의 산행인들을 보고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대한다.
중국개방의 물결이 이곳 고산임도 백두산 아래까지 물결친다.
10:30분 고산임도길 모처럼 이정표가 보인다
맑은 하늘에 검은 구름대가 갑자기 나타난다
금방이라도 폭우가 내릴것 같다
해발고도는 계속 1070 ~1080m를 오르 내린다
해발1115m 용화서 주민이 작업을 하고 있다
비포장도로라 하더라도 목재를 실어나르는 차들이 사고 나지
않도록하기 위하여 비가 많이 와 길이 파손된곳을 보수하느라
삽으로 계속 흙을 덮는다
인구가 많다 보니 길이 파손되면 금방 보수하느라고 계속 고산
임도를 걸리고 다닌다.
10:50분 해발1005m 고도다
숲은 더욱 울창하다 몇번씩 차창 밖으로지나는 고산지대의
숲을 카메라로 잡아본다 물론 흐리겠지만 너무도 그냥지나기가
아쉽다
높이가 10m정도로 차창위로 한참을 쳐다보아야 나무위가 보인다
차내는 모두 잠들고 몇사람의 일행만 주변을 살핀다
이 좋은 곳에 평생에 다시는 못올지도 모르는 이 우리의 옛조상
땅에 왔는데 어찌 잠이 올까. 내가 잘못 됐을까?
잠자는 일행의 사람들이 피곤해서일까?
10:54분 고산임도를 따라 달려오는 중 아무런 차도 없다
더더구나 버스는 구경도 할수 없다
아마도 포장도로를 따라 찝차를 타고 천지를 보기 위해서
가까운 쪽으로 갔나 본다
이때다 앞에서 트럭 1대가 보인다 아마도 목재 수송차량이나 보다
40년전 어렸을때 지리산에 갔을때 구례군 간전면 화전민촌
에 갔을때 보았던 트럭과 흡사하다.
비포장도로지만 길은 너무도 고르다
우리가 탄 버스의 속도가 매우 빠르다
500m ~ 1000m 간격으로 길을 고르는 1 ~ 2명의 아낙네들이
보인다
정녕 공공작업을 하기 위하여 동원된 인원인 듯 하다
우리가 어렸을때 동네일을 한다든지 공동의 일을 하기위하여
집단으로 작업을 했던 시절과 거의 유사한 듯 하다.
11:02분 보이지 않았던 작은 버스 1대가 정차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아마도 작업인부를 운반하는 차량 인 듯하다
차량에는 "장백산 자연보호구 작업차량"이라고 적혀 있다.
11:05분 가옥 1동이 보인다
아주 깊은 산속의 가옥의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내부에 사람이 있는 듯하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아마도 이 여름철이 지나면 저 가옥의 사람도 이곳을 떠날 것이다
눈이 많이 내려서 사람이 기거할 수 가 없단다 사람의 키를
넘고 10m가 넘는 이 숲들이 눈속에 잠긴단다.
끝없는 임야지대다. 엄청난 자연의 보고 지대다.
차안의 일행들이 잠을깨 눈을 뜨고는 다들 놀란다
활엽수지대, 침엽수 지대 등 다양한 수림이 가득하다
11:24분 5분내 백운봉 산장이란다
케이블이 전주로 지나간다
이곳은 고산임도의 가옥들간에 연결하는 통신 케이블선인
모양이다. 약 우리의 케이블 7 ~8 선이나 되는듯 하다
11:36분 백운봉 산장이다.큰 배낭을 산장 침실에 옮겨두었다
화장실에 먼저 가고 싶다
중국의 화장실문화는 아직도 미개한 수준이다
이곳의 화장실은 앉아서 있는 모습의 머리 부분이 서로간에 다 보인다
어떤이는 도저히 결딜수 없는 듯 구역질을 한다.
그래도 때가 되어 점심은 먹어야 한다
서파에서는 백두산과 가장 가까운 산장이며 이 산장외에는 이제는 없다
깊은 산속의 산나물과 엄청난 큰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식사를 한다
그래도 맛있다. 고추는 아마도 밥 맛을 돋우는
야채임에 틀림없나 보다.
13:21분 식사를 완료하고 백운봉 산장을 출발하여 제자하로 백두산 고산
지대의 임야지대에 있는 관광을 나선다
13:30분 서파 장백산 입구 정문이다.
기념촬영이다. 또다시 버스는 임도를 따라 계속 달린다
해발 1,180m고지다.
계속 해발 상승이다 고산지대의 높은 잣나무숲이 울창하다
정글이다. 어마어마하다.
우리보다 먼저 온 관광팀(산행은 안하고)인 듯 버스 1대가 지나
간다 약 3시간에 걸친 고산임도에서 만난 첫번째 버스다
해발고도 1,440m
계속되는 숲에 매료되어 차창 밖의 대자연의 모습을 담고 싶어
카메라를 눌러댄다
14:20분 제자하 도착
고산지대의 자연화원과 장백산 금강 대협곡들을 관광하고자 달린다.
차창 밖으로 갑자기 폭우가 쏟아 진다.
15:30분 장백산 금강 대협곡 도착
김태룡과장과 걸으면서 작은 배낭에 들어 있는 들쭉술을 마신다
모처럼 절주하다 마셔보는 술이다
잔도 없이 병채 들이킨다.
금강대협곡은 마치 제주도 만장굴의 용암이 흐르면서 만들어낸
깊은 계곡과도 같은 대 협곡이다
건너편의 거리가 300m가 넘는단다.
사진들을 무수히도 많이 들 눌러댄다. 장관이다.
16:00 관광을 종료하고 백운봉 산장으로 출발
이때 해발 1,340m다
흥분된 관광이었다. 고산지대의 대형 화원지대다
또다시 폭우가 쏟아 진다. 내일 이같이 비가오는것을 대비하여
사전에 백두산의 기후를 알려주는듯 하다.
아뭇튼 신기하리 만큼 우리가 걷는다든지 산행을 하면 비가 중단
하지만 차만 타면 폭우가 쏟아진다
우리가 산악회를 구성하고 계속 산행을 한지도 3년이 넘었지만
산행하는 도중 비를 맞아 본적은 없다
비가 오다가도 우리가 가면 비가 멈춘다.신기하다
산을 사랑하는 순수한 사람들이기에 산신령님께서 너그러이
보아 주시는지 모른다. 감사 또 감사.
차안은 술판이다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나 보다
누군가 담배를 피운 듯 담배 냄새가 난다
여성 일행 몇분이 담배 냄새가 난다 한다
내가 누가 담배피우냐고 큰소리를 질렀다
김선기회장도 너무 시끄럽다고 화근이다
아마도 우리가이드와 현지 가이드에게 미안하나 본다
그렇지.. 우리의 땅도 아니고 그도 중국의 땅이고 조선족이라
하더라도 중국의 가이드가 있고 운전사가 있다.
좀처럼 화내지 않는 회장이 화를 내는 모습이다.
전체를 진행하기가 쉬운 것은 아닐진데 이번 산행 계획에서부터
지금 이시간 까지.. 아니 아직 시작도 하지 않는 백두산 산행이
남았는데 처음부터 고생이 많다.
우리의 연합회원뿐만 아니라 희망자들도 함께 모이다 보니
상당히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17:00 백운봉 산장도착
18:17분 백운봉 산장에서 식사를 완료하다.
내일 새벽 2시에 출발하려고 했으나 기상상태가 좋이 못하여
24:00에 기상하여 출발하잖다.
앞으로 잠을 잘시간이 불과 3~4시간이다
큰배낭은 봉고차에 싫고 작은 배낭은 직접 매고 산행을 하기
위하여 산행에 필요한 모든 장비는 작은 배낭에 옮기고
불필요한 장비는 모두 큰배낭에 넣었다.
이제 잠을 자고 일어나면 꿈에도 그리고 그리던
백두산 정상을 향하여 발걸음을 시작한다
지금 정말 감회가 어린다.
내일을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준비 하여 왔던가
1년전부터 계획을 세우고,6개월전부터 백두산행을 위한 특별
나름대로의 산행연습을 계속 했던 어려움. 너무도 산행연습을
하다 무리하여 무릅이 아파왔지만 자칫 아프다면 못갈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나혼자만이 삭여야했던 그 동안의 시간들..,
일부러 비가와도 산행을 하다보면 마치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으리라
밤 12시 기상을 위하여 이제 취침을 해야 하나 보다
우리팀 말고 다른 팀이 한팀 있다.
행동에 조심해야 할것 같다 대자연속에서 해발1020m
밤 식사도 진수성찬을 했다 점심 메뉴와 같다.
감회가 깊다 이런 대자연이 우리는 없다는 사실이다
왜 이 멀리 돌아서 와야 되는 지 바로 북한땅을 밟으면 더욱
쉬울것인데 그러나 여기에도 강대국이 개입되어 있는 느낌이다
중국의 경제적 수입 방향을 찾는듯 하다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