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츰 속력을 줄이던 버스가 멈춰 선다.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일어선다. 할머니는 입을 열어 행선지를 말한 적 없는데 운전기사는 어떻게 그(=할머니)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던 걸까. 이곳을 매일 운행하는 버스라서 주민들 을 알고 있는 걸까. 여전히 체머리를 떨며, 또각또각 단장을 짚어가며 뒷문까지 걸어간 할머니가 나를 돌아본다. 어렴풋한 웃음이거나 인사인지, 그저 무연한 표정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나를 건너다보다 몸을 돌린다.
이렇게 인적 없는 곳에 사람을 내려줘도 되는 건가. 그러나 잘 살피자 숲 사이로 검은 돌을 이어 쌓은 집담이 보인다. 눈 쌓인 담과 담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저 소로(小路)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이 있는 걸까. 노인의 두 발이 눈 덮인 땅으로 완전히 내려서길 기다려 기사가 뒷문을 닫는다. 함박눈을 맞으며 허리를 굽힌 채 걷는 노인의 모습이 차창 너머로 멀어진다. 그가 더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고개를 꺾고 돌아본다. 이해할 수 없다. 그는 나의 혈육도 지인도 아니다. 잠시 나란히 서 있었을 뿐인 모르는 사람 이다. 그런데 왜 작별을 한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