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여름의 빌라/백수린/문학동네
단기 4354년 시월 시절을 살고 있는 나는 무엇의 경계인으로 서 있을까?
이미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도 않은 단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부터, 지금의 시대와 경계에 서 있나보다.
현시대의 문화와도,
시간의 현재성과도,
딸들의 세상과도,
어쩌면 남편과도 다른 세계에 속해 있는 경계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단지 부지불식간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인지도....
그 무수한 경계들로부터, 서 있는 지금의 위치가, 그저 저절로 쌓아올려진 것이 아닐것인데, 백수린의 눈으로 보자면, 지금까지 무수한 경계 속에서 나 자신도 모르는 시간 속에서 그러한 경험들이 쌓이고, 감정의 변화가 쌓이고, 지나간 사건이나 시간을 반추해보면서 반성하고, 다른 사람들의 세계와 시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경계위에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 함민복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노래한다. 그 경계가 너와 나를 가르는 분단의 의미가 아니라, 너와 내가 함께 꽃향기를 향유하는 공감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백수린의 경계인들도 그러한 공감의, 공유의 경계선이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배경이 되게 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평론가의 표현대로라면, 백수린 작가는 “선량한 호기심으로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선들을 세심하게 살핀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런 작가의 작품 속에서, 독자로서 미처 발견해내지 못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책은, 르누아르나 모네의 그림처럼 익숙한 책의 표지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알프레드 시실리(Alfred Sisley)의 작품 <Windy Afternoon in May>다. 그래서일까?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나간다. 여러 편의 이야기가 실린 소설집으로, 이야기 하나하나에 신경 쓰다 보니, 집중이 덜 된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사건이나 배경에 따른 아주 작고, 누구하나 신경 쓸 것도 없는 일에도, 저자는 그 세밀한 감정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시간의 궤적> 중에서 “어떤 기억들이 난폭한 침입자처럼 찾아와 ‘나’의 외벽을 부술 듯 두드릴 때마다, 이러다가는 내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나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본문 17쪽)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고, 감정의 변화에 따라 점점 더 성숙해지고, 시간을 되돌려 그 때의 상황을 반추하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주변의 모든 환경까지도 더듬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듯도 하다.
<고요한 사건>에서는 “초라한 골목이 어째서 해가 지기 직전의 그 잠시 동안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워지는지, 그때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동안 내 안에 깃드는 적요가, 영문을 알 수 없는 고독이 달콤하고 또 괴로워 울고 싶었을 뿐.”(본문 94쪽) 이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첫댓글 읽고 가요~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