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김해시 분성산 남쪽 정상부에 복원된 분산성. 김해시가 2000년부터 연차사업으로 분산성 복원공사에 착수 전제 923m 성곽 가운데 현재 절반인 470m가 복원된 상태다.
-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최전방 요충지 - 2000년부터 최근 복원 진행…방문객 줄이어
경남 김해시 삼계동과 삼안동, 활천동의 경계를 이루는 분성산(해발 382m)은 김해지역의 진산이다. 산의 정상에 서면 남쪽으로는 서낙동강, 부산 하구언, 김해평야가 한눈에 펼쳐진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부산 북구 화명동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다. 서쪽으로는 김해시가지와 내외신도시, 국립김해박물관이 내려다보이고 멀리는 장유신도시와 김해·창원 경계인 불모산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사방팔방의 경계가 가능했던 분성산은 가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왜구의 침입을 막는 최전방 전선이었다. 봉화로 왜구의 침입을 한양까지 전달하고, 타고봉(만장대)에 달아 놓은 북으로 위험을 알리는 등 우리나라 동남부 지역의 최전선 요충지였다.
■가야가 알알이 배인 분산성
지리적 특성상 전략요충지였던 분성산에 산성이 없을 리 없다. 바로 분산성(사적 제66호·분성산의 산성)이다. 분산성이 언제 들어섰는지 정확한 연원은 알 길이 없다. 단지 삼국시대 산성의 주류인 왕관을 씌워놓은 듯한 테뫼형(山頂式 : 산 정상을 둘러싼 산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미뤄 가야시대 때 처음으로 축조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분산성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몇 차례 무너졌다가 개축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세워진 정국군박공위축성사적비(靖國君朴公蔿築城事蹟碑) 기록에 따르면 김해 부사를 지냈던 박위(?~1398·고려말 조선초 문인)가 조선 초에 한 차례 고쳐 축조했다. 이후 임진왜란 때 무너진 것을 1871년(고종 8년)에 또 한 차례 성벽을 개축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전체 923여 m에 달했던 성벽은 모두 허물어지고 현재까지 남은 성벽은 53여 m에 불과했다.
이 같은 분산성은 2000년부터 김해시의 복원사업에 따라 옛모습을 되찾고 있다. 시는 지난해까지 55억여 원을 투입해 동문 인근에서 북문과 서문을 거쳐 봉수대까지 470여 m에 걸쳐 높이 5∼15m, 너비 3∼4m의 성곽을 복원했다. 올해도 15억여 원을 들여 동문에서 남문까지 100여 m를 복원한다. 북문은 상태가 양호해 예전 그대로 존치했고, 서문과 동문은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또 전체 성벽 중 1871년 이후 지금까지 허물어지지 않고 남은 성벽 53여 m는 옛모습 그대로 두기로 했다. 시는 2021년까지 75억여 원을 더 들여 남안문에서 봉수대까지 300여 m를 복원하는 등 분산성 전체를 완벽하게 복원한다는 계획이다.
분산성이 옛날 전략요충지로서의 기능을 잃었지만, 성곽이 제모습을 드러내면서 지역의 새로운 나들이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옛모습 찾은 봉수대
분산성 일대에는 군기고와 우물, 탄약고 등 성벽방어에 필요한 각종 시설의 흔적이 남아있다. 군사전략 요충지였음 다시 한번 가늠케 한다. 이 가운데 5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봉수대는 한 개만 복원돼 산성을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 분산산성지도에 따르면 분산성 봉수대는 봉대가 5개인 '5봉수'로 추정되지만 모두 복원하지 못하고 1997년 봉대 1개인 '단봉'으로 복원한 것이다. 봉대가 5개인 것은 평시에는 한 개, 적이 나타나면 두 개, 적이 국경에 접근하면 세 개, 적이 국경을 침범하면 네 개, 적과 아군이 싸우기 시작하면 다섯 개 봉수대에 연기를 올렸다고 한다.
분산성의 봉수대는 영남 동남부 봉수대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부산 강서구 간비오산 성화예산 봉수에서 올린 횃불과 연기를 보고 김해시 진영읍 자암산 봉수와 경북, 충북, 경기도, 한양으로까지 연결됐다.
봉대가 1개인 단봉으로 복원돼 당시의 위용을 그대로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러나 봉수대와 봉화는 1시간에 100여 ㎞를 연락하는 조선시대의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당시 5∼6시간 정도면 남해에서 서울까지 연락할 수 있어 당시의 어느 통신 수단보다 신속한 전달 수단이고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곳 봉수대에 오르면 부산과 김해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복원 후에는 봉수대를 찾는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다. 김해 지역 유일의 산성과 봉수대는 인근 가야역사테마파크 조성과 함께 가야역사 주요 탐방코스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 인근 가볼만한 곳
- 분산성 만큼 오랜 역사 지닌 '해은사' - 각종 천문기구 갖춘 '김해천문대' 인기
김해 분산성 북문 인근에는 범어사 말사인 해은사(海恩寺·사진)가 분산성만큼 오랜 세월 산을 지키고 있다.
이 사찰은 2000여 년 전 가락국이 건국되고 7년 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허황후와 장유화상이 배에 불경과 파사석탑을 싣고 바다를 건너 가락국에 도착, 무사 항해를 도와준 바다에 감사의 뜻을 담아 이 절을 세웠다고 한다. 해은사는 전란과 화재로 몇 차례 소실과 복원을 거듭해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대왕각에는 김수로왕의 영정과 허황후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영정 앞에는 허황후가 인도의 망상도에서 가져왔다는 돌이 있다. 영산전 뒤편 타고봉엔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이 복원돼 있다.
또 다른 볼거리는 분성산 정상 6600여 ㎡의 부지에 들어선 김해천문대다. 이곳에는 천체투영실과 전망대를 갖춘 영남 유일의 천문대다. 김해천문대는 2002년 2월 개관했고 최근 전면 리모델링을 했다. 전시실에는 천문관측의 역사를 입체영상으로 설명해주는 매직비전과 중력실험장치 등 총 10여 개의 천문 전시기구가 있다.
전망대에서는 시가지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밤에 보는 시가지의 야경은 또 다른 볼거리이다. 관측동에서는 달은 물론 토성의 고리까지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인기를 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