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35구간)
진고개~두로령(‘2010.01.16.토)
설원의 세상에 갇힌 여명.
숨소리마저 소음으로 처리될 것 같은 깊은 적막.
앞선 이의 검은 형체를 따라 그냥 내딛으며
붉은 동녘하늘을 눈에 가득 넣는다.
○ 일 시 : 201.01.15(금) 22:00 ~ 2010.1.16(토)
○ 구 간 : 진고개~동대산~차돌백이~신선목이~두로봉(백두대간)~북대사~상원사
시산 정기산행일. 백두대간 오대산 구간을 회원들과 함께하기로 한다. 15일 저녁10시 시청후문을 출발하여 강원도 평창군 진부IC로 빠져나와 국립공원 입구에서 주문진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이리저리 꼬여있는 고갯길을 천천히 올라서니 어둠이 깔려있는 진고개 도착한다. 새벽04시. 차안에서 휴식하고 준비한다.
05시. 산행준비 완료. 시산 회원팀은 두로봉에서 상원사로 하산하여 점심식사를 하고 부산으로 움직이고 대간팀은 두로봉에서 구룡령까지 거리도 제법 되지만, 고저차가 심해 백두대간 전 구간 중에서도 힘든 구간을 내려 동해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심야버스로 이용하기로 했다.
인원 점호 확인후 어둠속 설원으로 먼저 산길에 든다. 이번 구간 중 오대산 두로봉에서 신배령까지, 약 4Km가 출입금지 구역이다. 두로봉 정상 아래에 있는 지킴터를 감시요원이 출근하기 전에 통과해야 한다. 불어오는 눈바람은 온몸을 움츠리게 하고 그저 말없이 앞사람 뒤꽁무니만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차츰 진고개 가로등이 멀리 느껴지고 산위에서 부는 바람소리와 어둠을 깨우는 소리 개소리만 고갯마루를 훑고 넘어간다.
일렬 종대의 행렬이 하얀 눈 위로 발자국만 성큼성큼 남기며 동대산을 향해 오른다. 너무나 잘 나아있는 등산로가 이상타 싶을 정도다. 조금후 일이 일어난다. 반대쪽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등산이정표에 그대로 박혀있다. 진고개에서 노인봉으로 말없이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전달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다시 진고개로 뒤로 돌아 동대산 들머리 돌계단으로 내딛는다. 거친 바람이 하얀 눈 위를 비추는 랜턴 빛에 빗질을 해댄다. 돌아온 뒤쪽으로 황병산 군기지 불빛이 마주 보인다. 높은 곳에서 내려 보는 것은 그저 황홀하다. 주변이 불야성처럼 밝은 스키장 불빛도 한 몫을 한다.
무척 춥다. 후드를 앞 이마까지 덮어쓰고, 눈으로 덮인 오르막길을 계속 오른다. 거친 바람소리는 잠시도 쉬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쉼없는 오름길에 땀은 땀대로 등을 적신다. 동피골야영장 쪽에서 올라온 길이 합류하는 삼거리 이정목을 만난다.
랜턴 불빛에 헬기장이 드러나 보이고, 가장자리에 아담한 동대산 정상석이 서 있다. 모두 어깨의 배낭을 내려놓고 가쁜 숨소리도 정리를 한다. 타는 목도 한 모금 물로 축인다. 여기가 동대산~ 기념촬영에 들어간다. 오늘 가야할 거리가 만만치 않아 또 출발의 구호가 떨어진다.
앞으로 나가야 하는데 올라온 길로 내려간다. 동피골야영장 삼거리 이정표에서 현위치 표시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또 잘못 길을 가고 있다고 정상으로 다시 오른다. 눈이 벽처럼 쌓여 있는 동대산 표지석 뒤로 나간다. 길이 열려 있지 않았다. 푹푹 빠지는 눈길을 줄줄이 사탕처럼 촘촘히 붙어 빠져나간다.
어둠이 조금씩 벗겨지면서 이제 산도 나무들도 서서히 그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새하얀 차돌 암괴와 그 옆 이정목에 붉은 일출이 춰진다. 차돌백이 도착. 아침 기운이 사방에 펴진다. 모두 환호의 소리를 내며 지금 순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잠시 휴식을 가지며 아침을 먹기로 한다. 노총각 몸이 부실한지 오늘따라 영 맥을 못 춘다. 무슨 사연이 있었나 자꾸 힘들다고 한다.
평탄한 길이 진행되다가 완만하게 올라 1261봉 헬기장에 도착한다. 오대산 두로봉에서 비로봉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이 펼쳐져있다. 안부에 내렸다가 다시 오름길로 1,234봉을 넘는다. 앞쪽으로 비로봉의 윤곽이 뚜렷하게 보인다. 앞사람과 노총각의 시간차가 많이 생겼다. 모두들 신선목이에 도착하여 대간 플래카드를 펼쳐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또 한번의 오르막이 버티고 있는걸 보고 노총각 기겁을 한다. 서너발 오르고 쉬고 조금 움직이다 그 자리에 앉는다. 정말 몸이 많이 안 좋은가 보다. 배낭을 대신 메어 주려해도 싫다한다. 조금씩 움직여 보자해도 좀 더 쉬었다 가자한다. 우두커니 대책 없이 서 있자니 흘린 땀은 식어 추워지고 아직 갈 길은 남았는데... 혼자 감당이 불감당이다.
완만한 오름길로 바뀐다. 멀리서 우리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능선을 마지막 힘을 내어 오른다. 햇살 바른 국립공원 지킴터가 따뜻하게 보인다. 일행들이 모여서 우리가 오는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 갈림길 삼거리에서 오랫동안 우리를 기다렸나 보다. 조심해서 잘 내려가라 당부의 말을 서로 전하며 헤어진다.
먼저 도착한 다른 산님들도 두로령으로 내려가고 공원지킴터에서 우측으로 이동 넓은 두로봉 정상에 서서 사진촬영을 마치고 서둘러 떠난다. 정상석 뒤쪽을 목책이 둘러치고 있는데, 목책에는 두 개의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출입금지 안내판을 넘어 진행하니 쌓인 눈의 깊이가 무릎 위쪽으로 푹 푹 들어간다. 내림 길이 아무 생각없이 작은 나뭇가지를 헤집고 쭉 쭉 잘도 미끌려 내려간다. 이쪽 길이 아닌 것 같다. 모두 그 자리에 멈춰라!의 자세를 취한다. 다시 뒤로 돌라 올라가! 명령에 다리 힘이 스르르 빠지고 나뭇가지를 잡고 천천히 온 자리로 되돌아 섰다.
두로봉에서 신배령의 산길을 내려보니 훤하게 잘 나있다. 그런데다 눈까지 많이 내린지라 선답자들 발자국은 흔적이 없고 쌓인 눈을 헤쳐 나가기가 적잖게 걸림돌이다. 다시 한번 우측 길로 접어들어 미끄러져 내린다. 이번에는 길을 찾았다 싶었는데 웬걸 또 뚝 끊어진다. 왼쪽 주목지대로 들어가니 장난이 아니다. 발을 잘못 내딛으면 사정없이 밑에서 뭔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빠져버린다.
다시 뒤로 돌아서 두로봉으로! 후퇴명령이 내려진다. 한길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발을 빼내어 한걸음씩 내딛으며 올라선다. 더 이상 눈과 잡목이 많아 전진이 거의 불가한터이라 오늘 산행은 여기서 종지부를 찍고 시산팀과 합류하기로 한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상원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 공원지킴터를 지나 두로령으로 그저 미끄러져 내려간다.
두로령은 평창군 진부 상원사에서 홍천군 명개리간 오대산을 관통하는 도로가 나있는 곳이다. 도로변에 닿아 잠시 숨을 고른다. 당분간 산행은 예측하기 힘든 단다. 엄청난 폭설이 백두대간을 설상의 침묵 능선으로 만들었다. 아쉽지만 상당기간 종주산행을 접기로 하고 기온이 상승하는 시기까지 무조건 기다려야 한다는 대장님 말씀이다. 이 지방도446 도로는 홍천군 내면으로 이어주는 산길이지만 이렇게 눈이 쌓이는 날이 많은 관계로 몇 개월 열리지 않는단다. 차도 다니지 않는 넓은 도로변에서 편안하게 자리를 펴고 점심을 먹는다.
상원사 주차장까지는 길이 잘 나있다. 백색의 눈길을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걸어 나간다. 걷기가 지겨워 뛰어도 본다. 하얀 눈밭에 벌러덩 누워도 보고 아무도 간 흔적 없는 쪽으로 각자의 흔적을 내어보기도 한다. 북대사의 처마가 보인다. 바로 상원사로 달린다.
숲이 온통 흰 눈으로 뒤덮여 있고 거제수나무 가지사이로 비친 붉은 빛을 가슴에 담아본다. 굽히지 않고 올 곧게 뻗은 흰 줄기의 군락을 보면 맑은 영혼의 향기가 살아 숨을 쉬는 것 같다. 자연에 있으면 마음이 산이 된다고 했던가? 굽이굽이 돌아내리니 상원사 주차장이 눈에 들어오고 길따라고속관광버스가 제일 먼저 눈에 뛴다. 시산팀 모두들 나와서 대간팀을 반겨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