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강화도에 다녀오다.
조유미
<도입부>
기다리고 기다리던 강화도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다. 친구들과 함께 강화도가 고향이신 김영균 선생님의 안내로 강화도를 간다니 더욱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오늘은 전날 밤에 드라마를 보고 자서인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리고 어제 무슨 꿈을 꿨는지 얼굴에는 침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날 밤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느라 늦게 자서인지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가 살아숨쉬는 강화도에 간다니 피곤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사실 오늘은 외할머니 생신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사촌동생을 보기로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 서운하기도 했는데 부모님께서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 듯 나를 달래주셨다. “외할머니 생신도 중요하지만 강화도 역사 체험은 특별히 김영균 선생님께서 시간 내주셔서 가게 된 거고,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니까 둘러보고 오렴.”
엄마차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학교 앞에는 벌써 세린, 진호, 서현, 승민이가 와 있었고, 몇 분의 엄마들과 7인승 차를 몰고 오신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엄마들은 각자 역할 분담을 해 우리들의 허기를 채워줄 맛난 간식 등을 싸오셨다. 나는 맨 뒤에 서현이와 세린이랑 같이 앉았다. 원래 2인승인 자리인데, 맨 앞에 앉을 수 있는 특권도 있었는데, 내가 욕심이 과했는지, 친구들과 함께 앉았다. 내 욕심에 따라 자리에 앉았으므로 친구들과 함께 앉아 좋긴 하였지만, 긴 다리를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매우 불편하였다.
출발!~
총 8명을 태운 차는 강화도로 출발하였다. 나는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전개부>
강화도에 가면서, 나는 친구들과 요새즘 한창 인기 있는 MINECRAFT라는 핸드폰 게임과 참참참, 가위바위보 놀이, 그리고 비밀스런 수다를 떨면서 갔다. 비 때문에 황토색이 되어버린 한강과 넓은 평야인 김포평야, 구름사이로 가려진 산 꼭대기들을 관찰하다보니), 선생님이 운전하던 차는 어느새 강화 남문에 도착했다. 강화 남문이 매우 낯익어 생각해보니 이곳이 바로 강화도에서 찍었던 ‘런닝맨’ 오프닝 장소이다. 선생님께서는 맨날 이 남문사이을 통과해 먼 거리였던 학교까지 걸어가셨다고 말씀하였다. 오랜 역사를 담은 채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강도남문’을 보며 나는 숙연해져서 잠시 입을 다물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강도남문을 뒤로 하고 우리는 고려궁지에 갔다. 고려궁지는 고려 고종 19년(1232) 6월 몽골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도읍을 개성에서 천혜의 요새 강화도로 옮길 때 만들어졌는데, 원종 11년(1270) 5월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9년간 쓰였다고 한다. 바로 이때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졌는데, 아쉽게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던 장소로 못 갔다.
그러나 고려궁지 안에서 고려궁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고, ‘시도유형문화재 제25호’ 인 강화 유수부 동헌과 외규장각, 이방청 건물만이 있었다. ‘강화 유수부 동헌’은 조선시대 관아의 건물로 강화지방의 중심 업무를 보던 곳으로, 쉽게 말하자면 지금의 ‘군청’이다. 건물 내에는 사또와 신하들이 업무를 보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었다.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바로 업무를 보던 건물 크기였다. 경복궁 안에 있는 사정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았다. 이렇게 좋은 공간에서 어떻게 업무를 보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다음으로 둘러본 곳은 외규장각인데, 이 곳은 1782년 2월 정조가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설치한 도서관으로, 왕립 도서관인 규장각의 부속 도서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왕실이나 국가 주요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가 몇 군데 펼쳐져 있었다. 원래 도서관이면 여러 책들이 꽂아져 있어야 하는데, 고작 세 봤자 약 5권정도의 책 밖에 전시가 안 되어있어 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설명을 보니 외규장각 도서들은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되었다. 그 후, 대한민국은 프랑스에게 몇 차례 환수를 요구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2010년 11월 12일 G20정상회의에서 양국 대통령들이 외규장각 도서들을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임대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합의했고, 2011년 6월 11일 145년만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 약 4년정도 남았는데, 나는 그 남은 시간동안 꼭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외규장각 도서들을 보고 싶다.
고려궁지를 들른 후, 우리는 철종이 태어났었던 용흥궁도 둘러보았고, 강화도 조약 체결지였던 연무당 옛터, 강화 서문도 들렀다.
'강화도 조약 체결‘은 1876년 두 나라 대표가 강화도 연무대에서 조약을 맺었는데, 포를 설치하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회담을 하였다고 한다. 강화도 조약 원인은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이 조약을 맺을 것을 요구하였다. 역사적 의의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며, 불평등 조약이었다. 이 조약을 계기로 일본이 우리 해안을 자유롭게 정탐할 수 있었으며 일본인의 잘못을 벌할 수 있는 권리를 원천적으로 막았다.
이렇게 역사적 의의를 가진 강화도 조약이 이곳 연무당 옛터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니 감회가 새로워다. 잡초가 무성히 자라있지만, 연무당 옛터를 통해 강화도 조약과 조약 체결지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드디어 점심 시간! 우리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 차가 많이 주차되어 있는 곳을 찾아 헤매다가 강화도 시내에 가보면 맛있을 것 같고, 자동차도 많이 주차되어 있는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 들어가보니, 삼삼오오 여럿이 모여 앉아 삼겹살 등 여러 가지 고기 종류를 먹고 있었고, 또한 설렁탕과 물냉면, 비빔냉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우리는 시간과 비용 때문에 고기는 먹지 않고, 설농탕 3명, 물냉면 4명, 비빔냉면 1명으로 나누어서 먹었다. 나는 물냉면을 먹었는데, 비오는 날, 배고프고, 힘들고, 피곤할 때 동치미 육수와 쫄깃쫄깃한 면을 먹으니 몸 속에 있던 피로와 허기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특히, 이 집 국수는 색깔도 보통 면과는 달리 진하면서 면이 가늘어서 이가 약한 나에게는 최고의 보양식이었다. 동치미 국물, 계란, 식초, 겨자, 오이, 쫄깃쫄깃 한 면은 여행 중 나의 피로를 싹 해소해주는 음식이었다.
그 다음으로 간 곳은 고인돌 공원과 역사박물관이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유네스코 지정문화재로 선정되었는데, 우리나라의 고인돌 집중 분포 지역은 강화, 고창, 화순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 집중 분포 지역인 만큼 다양한 모양, 생김새를 갖춘 고인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 알게 된 것은 고인돌을 짓는 과정이다. 고인돌을 짓는 과정은 <아래 그림 참조>다음과 같다. 첫째, 고인돌 세우기, 둘째 고인돌 사이에 흙 채우기, 셋째 덮개돌 올리기, 넷째 흙 치우기의 순서로 지배자가 죽으면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고인돌 공원에는 신석기 시대를 공부하면서 배운 움집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다. 움집 안에는 불이 없어서 깜깜했었고, 움집 한 구석에는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드는 아궁이가 있었다. 또한 신석기 시대의 토기들이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고인돌을 다 관찰하고 약 5분간 걸어서 도착한 곳은 바로 강화도 역사박물관이었다.
역사박물관은 2010년 10월에 개관하였으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강화도의 역사와 문화를 체계적으로 전시, 보존, 연구하는 박물관이다. 나는 2층에서 사회시간에 그토록 공부한 빗살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 등을 볼 수 있었다. 특히, 빗살무늬 토기는 토기 위에 빗살무늬가 그려져 있어 토기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람들한테 뽐내었다.
또한 그곳에서는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대가 쳐들어간 삼람성 전투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였다. 삼람성은 양헌수 군대가 유일하게 프랑스 군대를 이겨낸 곳으로 유리 속 안에서 진짜 전쟁이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고 많은 곳을 볼 수 있었다. 그밖에 용두레와 고려청자 등 바쁘고 긴 역사 속에서 태어난 여러 멋진 유물들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는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 갑곶진 등 전적지 5곳을 쭉 둘러보았다. 그중, 초지진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효종 7년(16656)에 만들어진 요새이다. 이쪽에서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때 싸운 흔적들이 곳곳에 새겨져 있었다. 총알과 칼집으로 구멍이 뚤린 성벽 등등. 강화도의 전적지 5곳은 대부분 바다가 바로 옆에 있거나 가까이 보이는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이 통제되었던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북방지역에 위치한 평화전망대에 갔었다. 특히 이곳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지역으로 곳곳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군대와 군사들이 곳곳에 쫙~ 깔려 있었다. 세린이는 북한이랑 가까운 지역이라고 하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놀랍다고 하였다. 나도 북한과 가까운 지역에 다다르니 세린이처럼 정신이 아득해졌다. 북한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쳐다만 본 채 60년을 견뎌왔다니 그저 마음이 아프기만 했다)
평화전망대의 전방에는 약 2.3km 해안가를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송악산이 있는 개성시 및 개성공단, 개풍군이 있었다.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배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으로는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역을 경계로 김포시와 파주시가 위치하고 있다. 오늘 날씨가 흐려서 망원경으로도 북한을 볼 수 없었지만 안내자 말로는 개인 날은 북한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생활모습과 주택, 학교, 마을회관 및 선전용 위장마을 등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결말부>
평화 전망대를 끝으로 하루 동안의 ‘역사의 고장 강화도’ 체험학습이 막을 내렸다. 우리는 양념돼지고기구이를 먹고 밥과 찌개를 먹고 강화도를 떠났다. 오면서는 우리가 앞좌석에 앉았는데, 오빠들과 같이 아이 엠 그라운드 게임도 하고 대화와 종이 던지기 놀이를 하면서 논술팀 멤버들 간의 우정과 신뢰를 더욱 더 쌓아갈 수 있었던 계기가 됬었다.
우리 나라의 상고사부터 현대까지 역사적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강화도이기에 이 땅 어느 한 곳도 역사의 자취가 배지 않은 곳이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와, 단군이 하늘에 제사 지내던 마니산, 개인 날이면 손에 잡힐 듯 보인다는 북녘 땅을 미처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며 서울로 향했다.
첫댓글 선생님, 그 수정했어요. 다시 한번 답장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