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초겨울 바람이 골짝을 따라 제법 세다. 마이산 탑사의 풍경과 이성계의 전설을 만든 암봉은 암묵적으로 보는 시각을 압도한다. 직각의 절벽은 아득했다. 화강암이 아닌 주먹돌과 호박돌등등 여러가지 혼합된돌로 이루어진 절벽이 장쾌하게 솟았다.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실감한 무진장지역 고원지대의 흐름은 완곡했다. 진안 톨게이트이즈음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두개의 암봉은 무수히 펼쳐진 고원지역의 봉우리들을 거느리면서 솟아있다. 말의 귀를 닮은 마이산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6시30분 출발 2시간30분을 쉼없이 달렸다. 진안근처 휴게소에서 라면을 끓인 간단한 아침이었다. 뻐근한 뒷목이 조금 풀린다. 톨게이트에서 10여분을 달렸다. 이곳 사하촌이 복잡하다. 왜 절 입구에 고깃집이 이렇게 많을까. 다행스럽게 주민의 차를 뒤따라 온탓에 별다른 제제없이 차량으로 절 입구 주차장에 내렸다. 우리가 하산할 때에 많은 관광객들은 4킬로미터의 길을 걸어오느라 꽤 힘들어하는것을 보았다. 요금소에서 절 입구까지 벚나무들이 좁고 구불구불거리는 길 양옆에 터널을 이루고 있다. 벚꽃철에 다시 오면 화사한 아름다움을 만끽하리라.
초입엔 박석을 깔아놓았다. 경복궁의 박석에서 보여주는 자연스러움이 없다. 또한 낯설음은 주변부에 놓여있는 여러가지 조각상들의 어지러운 배열도 더 이질감을 주고있다. 그리고 새로운 절집도 아닌 건물이 터의 신선함을 많이 해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내의 손을 잡고 천천히 다가간다. 좀 이른 시각이라서 탐방객이 한 두명뿐이다. 그래서 고즈넉하게 탑파를 바라볼 수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옆 넓지않은 경사터에 자연석으로 쌓은 탑탑탑, 영상으로만 보았던 아름다움을 시야가득 담아본다. 한발 한발 다가가며 각도를 달리해서 각인해본다. 탑파 사이를 천천히 천천이 걷는다. 드라마에 나왔던 장면을 떠올려보면서 여배우의 우수에찬 눈매를 다시 그려본다. 힘든 고행의 한사람이 이룬 평생의 얼이리라. 천지탑까지 느린 걸음으로 올랐다. 밑을 내려다보면서 흘러오는 선선한 바람에 목도리를 고쳐 멘다. 긴 숨을 마시면서 옆 절벽 끝을 바라본다. 돌탑들과 골짝 멀리 조망하면서 올라오며 본 사진에 계신 하얀 노인의 얼굴이 겹친다. 아! 한사람이 이룬 이 정성스런 수고로움의 결과물이 이렇게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구나!
타박타박 몇 걸음에 불과한 협소한 공간을 채운건 그의 땀과 손끝에서 나온 의지의 소산물 독특한 이곳의 자연과 조화를 이뤄 마침내 많은 이들이 찾는 아름다운 공간으로 확대된다. 재 해석되고 회자된다. 조금더 탑파 사이를 걸었다. 호젓하게 운치를 즐겨본다.
탑사 옆으로 난 소로길을 걸어 조금 돌아올라갔다. 작은 절이 있고 그 옆엔 이성계를 위한 기도처가 우직한 암봉 밑에 있다. 이곳역시 어떤 아우라를 풍긴다. 조선 건국에 얽힌 옛 이야기를 다 믿을수는 없겠지만 지형의 상서로운 기운을 받으면서 다시 계단을 올랐다. 계단에는 골바람이 매우 세차다. 골짝 위엔 암봉 등산로가 폐쇄되었다. 이 위에서 탑사쪽으로 바라보는 모습이 천황문이다. 마이산 암봉과 이성계 기도처 암봉사이가 매우좁아 문이라고 칭한 것 같다. 신고온 등산화가 무겁게 느껴진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위성 지도를 보면서 마이산 등산을 기대 했건만 0.6킬로의 짧은 등산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온 길을 돌아나오면서 탑사의 전경을 몇 발자국씩 뒤로디디면서 돌아보기를 몇번 더했다. 풍경 한컷한컷 각인히며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장수,
탑사에서 나온 시간이 11시30분 장수를 코스로 추가 한것은 말 때문이다. 마사회에서 운영하는 말목장이 있어서 예전부터 한번 방문해 볼 참이었다. 은퇴 후 시골에 정착하고 나서 말을 사육하고 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장수는 특이한 지형이다. 고원분지형상인데 길이 산 중턱에서 흐르듯이 분지 안쪽으로 이어진다. 15년전 방문했을 때 삼백육십도 산들이 빙 둘러싸 있는 마치 함지 안으로 빨려들듯 했던 기억들이 살아난다. 아내도 역시 새로운 경험으로 경이롭게 자연의 아득한 광경을 조망하면서 좋아한다. 그런데 참으로 아쉽다. 인간의 헤코지을 여기에서 또 다시 목도한다. 통행량도 적은 이곳을 4차선 길을 분지 가운데 허리자르듯 돋워 만들어놓아 분지를 양분해 놓은것이다. 선견없는 지도자를 뽑은 사람들을 안타까워 하면서 읍내를 빠저나온다. 제법 먼 면소재지에 위치한 드넓은 목장이 아늑하게 자리했다. 정문에서 방문을 허락받고 말들의 우리주변을 걸었다. 특별한 공간이 주는 아내는 생소한 광경을 보면서 먼 발치로 말들을 곁눈질 한다. 처음 접하는 말들이고 또 울타리에 말은 물을수도 있다는 경고 문구가 더욱 조심스럽게 한다. 400여마리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둘러본 100여마리도 평생 제일 많은 말들을 본것이다. 특이한 종류도 있고 잘생긴 한번 타보고 싶은 말들이 한칸 한칸 사육되고있다. 안내인 말은 개인 마주들이 이곳에 비용을 지불하고 의탁해서 경마와 번식을 주 업으로 경영한단다. 내가 방문한 목적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남원으로 출발.
남원,
춘향을 보러왔다. 장수에서 멀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지않고 지방도로를 따라가다가 지리산으로 갈려고 했었는데 그 길에선 지리산으로 향하는 길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남원의 광한루원으로 온것인데 마침 아내도 광한루를 한번도 온적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면서 아내의 감탄사! 와 좋다였다. 오작교, 광한루누각, 팽나무, 왕버들의 굽은허리, 수확여행 온 학생들의 소란스러움, 춘향 영정의 단아함과 깨긋한 표정, 열녀춘향전이라는 현판의 초서채, 연못의 넘치는수량과 잉어의유영, 맑은 연못에 드리워진 누각의 자태, 삼신산으로 표현된 연못의 구조등은 보는 시각과 치우침의 면면을 감흥으로 천천히 감상한다. 이 글을 쓰면서 광한루원에서 주워온 도토리 닮은 열매 한줌을 만져보면서 둘이서 걷던 루원의 따스했던 햇살을 회상한다. 추억은 깊은 여운이다. 여행은 허허롭고 느림의 미학이다.
노고단 아찔,
행선지에 없던 노고단길 와! 아득함으로 겹겹이두른 아찔함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십년감수 했었다. 전날 여행계획 할때 탑사와 말목장을 주 코스로 주변의 맛집도 넣고 등산도 겸사해서 길을 들었다. 목장투어를 끝낼즈음 시간이 오후 1시경인지라 예까지 새벽부터 또 경비도 그렇고 곧바로 집으로 가자니 아깝다는 의견일치 티비에서 보았던 노고단 올라가는 길을 생각했다. 한번 가보자남원으로 출발했지만 그 길에선 지리산 방향이 없었다. 춘향을 베알하고 지리산 길로 헨들을 돌렸다. 이정표의 지시데로 주행 좁고 구불거리고 가파른 도로를 위태위태 돌고돌아 노고산 방향을 찾았다. 헌데 산속 깊이 들어왔건만 길이 막혔다. 전날 내린 눈 탓이었다. 애초에 들머리에서 통행금지 표시를 해 놓았다면 이런 수고를 헛되이 하지 않았으리라. 길을 돌아나오면서 함평의 상림을 떠 올렸다. 20여킬로라는 이정표를 보고 반갑게 주행하면서 아내에게 신라 최치원이 조성했다는 그 오래된 숲길을 이야기하면서 둘이서 손잡고 걷는 상상을 했다. 얼마간 이동하는데 실상사 이정표와 노고단 이정표를 발견하고 이쪽에서도 갈 수가 있구나 싶어 핸들을 돌렸다. 그 길은 뱀사골과 노고단을 거쳐 구례로 넘어가는 산악길이었다. 티비에서 보았던 길보다 더 깊고 곡선의 굽은 정도와 높이가 그야말로 아찔함의 연속이었다. 700미터 부근부터 음지엔 전날 내린 눈이 쌓여 있고 도로엔 모래를 뿌려 놓았지만 맘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럭저럭 노고단 주차장근처에 차를 대고 조망 좋다는 곳에서서 밑을 바라보면서도 여기에서 내려 갈 걱정에 전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왔던 길로 다시 내려갈까 아니면 구례족으로 갈까 주저주저 할때 어느 차가 구례쪽으로 가길래 뒤를 따랐다. 그 차는 100여미터 가곤 옆 갓길에 멈춘다. 그때부터 지옥속으로 빨려가는듯했다. 1단기어에도 60도 급경사에 축축하게 눈녹은 살얼음과 획획굽어진 길에서 밑의 아찔한 낭떠러지에 심장이 요동쳤다. 아내의 사색된 얼굴과 손잡이 꽉 움켜진 팔에서 전율이 흘렀다. 최대한 산쪽으로 바짝 붙여 되돌아보고싶지 않은 2킬로의응달진 길을 벗어났다. 조금의 안심이다. 차츰 진정되었지만 방심은 금물 급경사길은 아직도였다. 최대한 부레이크를 자제하면서 엔진 브레이크로 마음 졸이면서 내려온 길 와! 대단한 경험이엇다.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잠시 후회할 즈음 천은사 입구였다. 고찰의 당우는 연수가 적지만 축대가 일품이다. 예전 이곳은 아주 벽지였을텐데 돌의 크기가 무척 컸다. 축조비용이 인원의 동원이 그만큼의 재정적 뒷받침이 가능했을까. 민초에게 누를 끼치지 않고 공사를 했을까. 부석사의 장쾌한 축대보단 못하지만 어느곳은 높이도 높았지만 그 결구가 예술이었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예쁜 여스님과 눈을 마주쳤다. 맑은미소와 어디서 오셨는교 하는 치아가 희고 고르다. 단아한 맵시 고왔다. 저수지 위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이곳에서도 경사지를 잘 활용한 터의 배치를 한수 배운다. 느티와 각각의 늙은 거목들에 둘러쌓인 고찰터를 한바퀴 돌아나오면서 손으로 만저본 이끼긴 축대, 추녀의 곡선, 건축물계단의 효용성 등등을 발길에 묻어본다. 추억에 방점하나 찍고 밤길 흐릿한 고속도로를 달려 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