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광복절.
의미있는 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더위도 식힐 겸, 모처럼 한적한 시골을 찾았다. 임진왜란 당시 칠천량 해전이 있었다는 어촌의 한적한 카페다.
‘카페 베토벤’ 이라고 지역에서는 그래도 조금은 유명한 곳이라고 했다.
카페에서 바라보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늘의 이런 호사가 누군가의 생명을 건 사투로 이루어진 처절한 투쟁의 산물이라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한 방울씩 아주 천천히 똑똑 떨어지는 커피의 눈물.... 더치커피.
분위기 좋은 카페였지만 커피가격이 만만찮다. 음식보다 더 비싼 커피가격의 아이러니한 현실.
어쩌면 이것도 현재의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불해야 할 대가가 아닐까?
그곳 한 켠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바로, <가시나무새>다!
어렸을 적에 마치 열병처럼 앓듯 소설에 빠져들었던 작품이었다. 잃어버린 형제를 찾은 반가움이 감정을 휘감았다. 후에... MBC에선가 드라마로도 방영된 것으로 기억된다. 미드가 판치는 지금의 현실에 비해 당시, 색다른 소재로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몰입했었다.
신부님과 소녀의 슬픈 사랑이야기.....
일생동안 신부님만을 향한 맹목적인 여인의 사랑.... 바로, <가시나무새>의 운명, 바로 그것이었다.
평생 뾰족하고 긴 가시가 박힌 나무를 찾아다니다가... 그런 나무를 찾아내면 가시에 돌진해 박혀 죽는다. 새는 죽어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
바로, 비운의 삶 속 주인공이다!
극단적인 신화속 내용이지만, 묘하게 매력적인 소재인지라 이를 바탕으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 노래 등이 만들어지거나 적어도 제목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조성모의 '가시나무'에도 그런 이미지가 느껴진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뺏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상한 가시나무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곳을 찾아 지쳐 날아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롬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시인과 촌장’의 하덕규가 작사 작곡하고 부른 ‘가시나무’ 가사다.
한 인간의 ‘내면 속 혼돈과 정체성에 대한 고뇌’를 담은 시적인 가사와 아름다운 선율 때문에 많은 가수들이 즐겨 리메이크했지만 우리에겐 영화 같은 뮤직비디오로 더 익숙한 조성모의 히트곡 ‘가시나무’가 먼저 떠오른다.
https://www.youtube.com/watch?v=POu_1kHWNC8
너무 본류에서 벗어났다. 다시, 소설 <가시나무새>로 돌아간다.
일생에 단 한 번 밖에 울지 않는 전설의 새.
슬픈 가시나무새의 전설과 같이 비극의 운명적 몸으로 살다간 여인.
가장 길고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 죽음의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우는 가시나무새의 사랑을 닮은 인생.
사랑을 목숨과 바꾼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이 작품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여류 작가, 콜린 맥컬로우가 사랑하면서도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이다.
1977년에 발표되어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 일으킨 소설로 가톨릭 사제인 랠프와 그런 랠프를 사랑했던 매기의 3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신부와 여성의 금지된 사랑이라는 소재도 소재거니와 작중에서 랠프가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바람에 카톨릭에서는 이 소설의 히트에 불쾌한 기분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성직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고 이 소설을 비난하기도 했다.
사랑이란 순수한 감정 앞에 인간은 그들이 만든 거미줄과 같은 숱한 제도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 가시나무와도 같은 세상의 덫이다.
새삼, <가시나무새>를 통해 종교에 대한 편협한 시각을 반추해 본다. 종교의 시각으로 본다면 인간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다. 평생을 제도권이라는 가시나무 같은 세상에서 그 죄를 갚으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하는 넓은 의미의 인간으로서 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 세계에서 나는 돌고 도는 작은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삶은 감옥이 아닌 축제의 장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도 결국, 개개의 우리 자신이 풀어야 할 몫일 터.
<가시나무새>는 가슴 절절한 사랑이야기일 뿐 아니라 인간의 삶에 대한 근원적 고민까지 던져주는 수작이다. 가을이 오기전에 꼭 다시 읽어보기를 희망한다.
첫댓글 읽어보고싶게 만드십니다~
아주 오래전에 영화를 보고 깊이 감명 받은 기억이 납니다.
신부와 소녀의 애절한 사랑, 다시 한번 보고싶네요.
일생을 살면서 사랑을 하려면 이정도는 해야지... 후회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