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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자나무울타리 유경숙 로사 소설가 내 고향집은 아직도 탱자나무울타리다. 오래전부터 비어있는 집을 유실수와 약재나무들이 지키고 있고 또 그것들의 보호수 탱자나무가 울을 짱짱하게 치고 있다. 올가을에도 탱글탱글한 탱자 한소쿠리를 따왔다. 저 혼자 꽃피고 열매 맺어 주인에게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는 나무를 보자 가슴 한켠이 콕 찔려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첫 당선소감을 쓸 때 고향집 탱자나무를 걸고 ‘자연 닮은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탱자나무는 밑둥치부터 꼭대기까지 길고 억센 가시가 지그재그로 엉켜 표독스런 외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절대로 제 살을 찌르거나 옆에 있는 다른 생물을 다치게 하지 않는다. 해마다 그곳에서 새끼를 쳐나가는 검은지빠귀, 허물을 살짝 벗어놓고 지나가는 뱀, 더듬이를 높이 치켜들고 짝짓기를 하는 민달팽이, 첫 날갯짓을 펼치는 호랑나비 등이 우화(羽化)를 거처가거나 탯자리로 삼는 생명의 나무다. 어디 그뿐인가. 제 몸을 친친감고 올라온 호박넝쿨에게 길을 내주고 펑퍼짐한 궁둥이를 들이밀며 눌러앉는 늙은 호박까지도 기꺼이 받아주는 넉넉한 품의 나무다. 또 봄날엔 배추흰나비날개빛깔처럼 고운 흰꽃을 피워 향기를 주고 가을엔 알토란같은 황금색 열매를 내어 약재로 쓰게 한다. 나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조금만 색다른 음식을 먹어도 두드러기가 나고 걸핏하면 헛구역질을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지각(枳殼-노란탱자를 조각내 말린 것)달인 물을 마시게 했고 지실(枳實-풋탱자를 썰어 말린 것)우려낸 물을 피부에 발라주었다. 그럼 감쪽같이 나았다.
일제징용 중에 병을 얻은 아버지는 약초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들을 철따라 채집해 두었다. 그래서 우리집 광에는 늘 약초와 씨앗주머니들이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울안에는 약재로 쓸 나무가 우선순위로 심겨졌다. 엄나무를 비롯해서 골담초 화살나무 옻나무 산사나무 오가피 작약 당귀 인삼 장록까지 약초밭이 딸린 집이었다. 동네사람들은 물론이고 먼데 사람들까지도 소문을 듣고 약재를 구하러왔다. 얼굴을 깊게 가린 한센병을 앓던 중년부인도 가끔 왔었다. 아버지는 아무리 귀한약재라도 위급한 사람이 있으면 서슴없이 내주었다. 나는 지금도 식물을 구별할 때 두가지 방법으로 나뉜다, 약재인 것과 약재 아닌 식물로.
장미가시가 제 꽃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었다면 탱자가시는 남을 지켜주기 위해 날카로움을 지녔다. 제 품에 깃들어 살던 생명들을 훨훨 떠나보내고 초록가시를 짱짱히 굳혀가며 겨울을 맞는 나무. 생명체들의 보금자리인 탱자나무울타리처럼, 나도 생명을 살리고 보듬는 글을 쓰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지, 누군가에게 의지가지가 되어주고 품을 내주었던 적이 있는지, 한해의 삶을 돌아보며 가슴 철렁한 계절이다. 올 한해 그분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거두셨을까? 빈곤한 소출은 아니었을까!
2009. 11. 22. 그리스도 왕 대축일. 대구주보 칼럼 |
첫댓글 유선생님! 탱자나무 주변을 오래도록 지켜보던 소녀의 그림자가 보이네요^^ . 저도 빈 쭉정이만 그분께 드린 것 같아 쓸쓸하답니다 ~
전번 피정 때도 그렇고 요즘 몇번 만남의 기회가 있었는데 장선생님 뵙기가 어렵네요. 그래서 김소양씨 한테 안부를 물었어요. 평안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