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혈의 누>의 주인공 옥련은 어린 시절에 청일전쟁을 거쳐 개화기에 인생을 보낸 인물이다. 어릴 때 부상을 입고 친부모와 헤어져 시련을 겪지만, 일본군 군의관에게 입양되어 소학교를 다니며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일본군 군의관 양아버지가 전사하면서 다시 시련을 겪지만 구완서라는 인물을 만나 미국에 유학을 가기도 하고 최종적으로 친부모와 함께 재회하는 행복한 결말로 끝맺는다.
이 작품은 고전 소설의 영웅 일대기와 다르게 혈통이나 출생, 신비한 죽음과 같은 특이한 요소는 없다. 그렇지만 시련과 조력자의 존재, 우연성 같은 부분에서 고전 소설과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어린 시절에 부모와 떨어져 시련을 겪지만, 일본군 군의관이라는 조력자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친부모와 재회하여 주인공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부분을 예시로 들 수 있다. 그리고 작품 내내 이야기를 이끌어 주는 ‘우연성’ 역시 고전소설을 떠올리게 한다. ‘우연히’ 조력자를 만나 유학을 가고 ‘우연히’ 이역만리 타국에서 아버지와 재회하는 부분이 그렇다.
2. 이인직(李人稙)은 19세기 중반에 태어난 인물로, 을사오적 이완용을 보좌해 한일합방 성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며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그의 작품 <혈의 누>가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의 특징을 동시에 갖춘 신소설의 대표작품이지만, 작품 내 요소는 물론 작가의 실제 행적까지 의심할 여지없는 친일 정치가이다. 이인직은 유학생으로 일본정치학교를 졸업하여 러일전쟁에 일본군으로서 종군했다. 이후 이인직의 친일 행적은 줄곧 계속되어, 일진회 기관지 국민신보의 주필로 활동한 것부터 친일 성향이 드러난 <혈의 누>가 연재된 만세보의 주필 활동이 그것이다. 나중에는 이완용의 비서가 되어 1910년 국권피탈(= 한일합방, 경술국치)을 돕는 데에 열심히 참여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조선 통감부 외사국장 고마쓰의 저서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인직의 친일 정치가로서의 행보는 그의 행적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혈의 누>의 주인공 옥련의 조력자가 무려 일본군 군의관인 것이다. 주인공을 입양하고 끝내 청일전쟁에서 전사하는 ‘일본군’임에도 주인공을 따라 이입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독자는 일본군 양아버지를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불어 자유연애로 만난 구완서를 만나게 된 계기 또한 일본군 양아버지에 입양되어 일본에 가게 되면서 생긴 만남이기도 하다. 이인직의 또다른 소설 <은세계>에서도 그의 사상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구한말 의병을 일개 도적에게 이름 붙인 것은 물론, 강원 감사가 주인공 가족을 핍박하고 가문을 기울게 만드는 인물로 등장한다. 본래 의병(義兵)은 구한말은 물론 일제강점기까지 일제에 꾸준히 저항한 민병이다. 그러나 작중에서 등장한 악역 세력은 의병이 아닌 도적에 가까움에도 굳이 의병이라고 이름 붙인 데에서 작가의 사상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
3. <은세계>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비교해 보고, 주제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시오.
은세계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기준은 조력자 김정수의 등장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주인공 남매의 아버지 최병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기 위해 금전을 모으지만 강원감사의 모진 고문을 겪고 임신한 아내와 아이를 두고 사망한다.
작품의 흐름은 최병도의 친구 김정수가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한다. 남편 최병도가 죽자 아내 본평부인은 충격을 받아 아들 옥남을 낳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인다. 그러다 조력자 김정수가 나타나 집안을 관리해주고 옥순, 옥남 남매를 미국 유학길에 보낸다.
그러나 김정수 집안에 일이 생겨 사망하고 남매는 서둘러 귀국한다. 주인공의 어머니 본평부인은 자식들과 재회하며 제정신이 들어 상봉하게 된다. 본평부인과 남매는 셋이서 불공을 드리러 가지만, 맞닥뜨린 의병과 갈등을 빚어 잡혀가게 된다. 은세계의 후반부는 영웅소설의 양상을 띄는데, 조력자 김정수의 등장이나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고전소설의 중~후반 단계는 구출자에 의해 양육, 그리고 투쟁으로 위업을 이루고 고향으로의 개선 등이다. 신소설 은세계에서는 김정수(구출자)에 의해 보살핌을 받고, 미국 유학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와 개혁을 주장하는 모습에서 고전 영웅소설과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