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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가게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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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시인 스크랩 아비 / 오봉옥
초짜배기 추천 0 조회 40 13.03.12 21: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아비 / 오봉옥

 

연탄장수 울 아비
국화빵 한 무더기 가슴에 품고
행여 식을까봐
월산동 까치고개 숨차게 넘었나니
어린 자식 생각나 걷고 뛰고 넘었나니
오늘은 내가 삼십 년 전 울 아비 되어
햄버거 하나 달랑 들고도
마음부터 급하구나
허이 그 녀석 잠이나 안 들었는지.

 


첫눈 1 / 오봉옥

 

첫눈이 나리면요
소구루마 끌고 간 아비, 짐꾼인 아비
눈길에 미끄러지면 어쩌나 웅덩이에 빠지면 어쩌나
동구 밖 길 보다 보다 잠이 들었어요
장사 나간 엄니, 과일행상 울 엄니
얼어붙은 사과 다 못 팔고 눈물바람으로 오실까봐
자다가도 함께 울었고요.

 

 


첫눈 2 / 오봉옥

 

첫눈이 나리면요
나만한 애들 몰려나와 와와 소리지르고요
누나만한 계집애들 어머어머 껑충거려요

우린 두 발을 동동거리는데
꽁꽁 얼은 사과 누가 사갈끄나
엄니도 저만치서 동동거리고 섰는데

 

난 첫눈이 싫은 열다섯
두 살 터울 누나도 첫눈이 싫대요.

 


임이길래 / 오봉옥

 

임이길래
발목까지 엎드렸지
떠나지만 말아주길 빌고 또 빌었지
임이길래
한 번은 돌아보지 않을까
한 번은 손짓이라도 하지 않을까
십 년을 목을 빼고 기다렸지
임이길래
밤마다 꿈을 꾸지
와서는 눈물이 되고
와서는 꽃이 되는 임이길래
또 십 년을 기다릴 작정이지.


 

정다방 김양 1 / 오봉옥

 

사랑니도 안 난 고 기집애
어디서 왔을까
연안부두 으슥한 뒷골목을 걷다가도 실실 웃고
여관방에 누워 살을 섞다가도 까르르르 웃는 고 기집애
나이는 몇 살일까
낯선 사내 간 뒤 혼자서 뒷물하며
그때사 닭똥 같은 눈물
남 몰래 뚝뚝 흘리고 있을 고 기집애
이름은 무엇일까.

 


정다방 김양 2

 

숫총각 하나 물어
시집 간다기에
오메 저년 오메 저년 했건만
석 달 만에 다시 돌아와
여그가 내 고향인갑다 하는
오메 저년 저 주둥이.

 

 

 

나 같은 것들 / 오봉옥

 

열다섯 상고머리 시절엔 풀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새벽이슬이 난 줄 알았다
스물하고 두어 살 시절엔 외로워서 슬퍼서 보조개가 깊은 가시내랑 밤새 술이나 마시며 살고 싶었고
피 끓는 스물다섯 그 시절엔 조국이니 민중이니 역사니 그리도 큰 것들 어깨에 터억 걸쳐 메고 백리길

내달리는 내가 자랑스러웠지
그런데 내 나이 서른댓쯤 되어보니 돈맛도 알겠고 곱빼기 술맛이며 이런저런 권력 맛도 알겠으니
어쩐 일인가 세상 다 살았는가
아님 가슴속 저 깊은 곳 양심 꼬랑지 같은 것이 반생을 더 끌고 갈지도 모르고

 

지금 난 십 년 후 내 모습도 생각하고 있어.

 

 

 

이사 / 오봉옥

 

아내는 애써 눈길을 돌립니다 밤짐을 싸며
낡은 보자기 우엔 남에게 얻은 옷가지며 바퀴 없는 장난감 자동차가 말없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그 곁엔 먼지 쌓인 책들이랑 한 시대를 자랑처럼 내 달렸던 낡은 유인물이랑 괜한 코 휑하고 푸는 못 견디게 서러운 내 그림자도 있습니다

 

밤짐 속엔 온갖 죄 묶여 있습니다 대낮에 남 보란 듯이 저지른 죄 꽁꽁 묶여 있습니다

누가 지나간 날은 아름답다고 했습니까
누가 어둠 속에서만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까

난 지금 허리통도 붕알 밑도 다 드러나서 숨기 좋은 곳 찾아 하 떠납니다

 

아내는 애써 눈길을 돌립니다 밤짐을 싸며.


 

발을 씻어주며 / 오봉옥

 

강실강실 웃어서 서러운 당신에게
발을 씻어주며
속다짐 합니다
지상에 나만의 길은 없어요
난 그저 당신의 그림자 끝 한 흔적일 뿐이지요

 

허리가 길어서 외로운 당신에게
발 한번 맡겨놓고
애써 발끝을 감추는 당신에게
말없이 가만히 속말 하나 합니다
뭐가 그리 부끄러우신가요
난 당신의 거기 가랑이까지도 빨아드릴 수 있는데요

 

구부러진 발가락이 어머니같이 슬퍼서
내 가슴에 와 쿡쿡 박히어서
당신의 발을 씻어주며
영원한 약속 하나 덧붙입니다
당신 안에서 살다가
당신 안에서 지워질게요.

 

 

 

살다가 / 오봉옥

 

밤새 이놈으 저년으 하고 쌈박질하다가
살을 섞는다
깨진 살림살이 곁 지친 잠에 떨어진 딸년도 밀어놓고
단칸 셋방에 눈물로 눈물로만 누워
전설같이 살을 섞는다.

 

 

 

 

 

오봉옥 

1961년 광주 출생. 1985년 창작과비평사 [16인 신작시집]에 [내 울타리 안에서] 외 7편을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지리산 갈대꽃] [붉은산 검은피(상, 하)] [나 같은 것도 사랑을 한다].

산문집 [난 월급받는 시인을 꿈꾼다]. 동화집 [서울에 온 어린왕자(상, 하)]. 비평집 [시와 시조의 공과 색] 등. [겨레말큰사전] 남측 편찬위원.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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