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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나아감 * 초대 * 송영 8,30 * 신앙고백
고백과 사죄 고백의 기도 사죄의 선언 감사의 찬양 12
말씀으로 오심 성경 요한복음 17:20-26 어린이 말씀 조명을 위한 기도 말씀: 교회의 하나됨을 기도하는 예수님 헌신의 기도
감사로 응답 감사의 찬송 454 감사의 예물 감사의 기도
파 송 * 파송의 찬송 384 * 축도 |
고난 주간 찬송 1, 9, 149, 158, 155, 시편 3, 매일성경- 마태 23,25장 마가 13-16장
종려주일 김재윤 목사님 설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우리가 주일 날 배우기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여러분들 잘 아시는 내용을 먼저 말씀을 드리면, 31문답에 예수님께서 이 분이 그리스도로 우리가 고백할 때, 유일한 대제사장으로서 고백하는 고백에 대해서 설명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자기의 몸을 우리를 위해서 제물을 드리시고 그것뿐만 아니라, 지금도 항상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신다. 그걸 예수님의 대제사장, 유일한 대제사장 되심의 중요한 내용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항상 간구하고 계신다.. 히브리서에도 똑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도 계속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자주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다,’ 그런 구절들을 접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도 어떻게 보면 쉬지 않고 기도하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히브리서 5장 7절에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
예수님의 기도는 때로는 참 이런 통곡과 눈물을 함께 한 그런 기도였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도 기도하셨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도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데 어떤 기도를 하실까요? 우리가 여러 가지 상상을 해 볼 수 있지만, 적어도 성경말씀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길게 소개해주는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7장 말씀입니다. 우리의 상상하는 것을 떠나. 성경을 따라서 지금도 예수님께서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실까? 또 이 땅에 사셨을 때, 어떤 기도를 하셨을까?를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말씀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전체가 사실은 예수님의 기도입니다. 예수님의 이 기도 가운데, 여섯 번, “아버지여”라고 부르는, 그런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의 이 기도는 그냥 한글의 문장으로 봤을 때는 평범할 지 모르겠지만, 이 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매우 절박하셨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이 기도를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향해 직접적으로 나가는 그런 자리로 나가시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부터 16장까지 제가 순서를 따라서 몇 번 설교를 드렸는데, 그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 했던 마지막 고별설교였다면,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고별기도인 것입니다. 바로 이 기도 다음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음을 당해서 나가셨기 때문에, 이 기도 가운데 예수님의 심정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 훨씬 절박했던 것 같습니다.
1. 예수님은 말씀을 받아 하나님과 교제하는 우리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예수님의 이 고별기도, 그 속에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셨을까요?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면,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고 계실까요? 제일 먼저 제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오늘 읽지는 않았는데, 요한복음 17장 9절에 예수님께서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이 때 ‘기도한다’, ‘빈다’, ‘간구한다’라는 단어를 여기에서 처음 사용하셨어요. 내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기도의 대상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구인가?를 예수님께서는 8절 말씀에서 미리 설명해 주셨습니다. 8절 말씀에서는 5개의 동사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누구인가를 설명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첫 번째로,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말씀을 받았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말씀을 주셨고, 또 성자 예수님께서는 저희에게 이 말씀을 건네주셨다. 하나님 편에서 그들이라는 존재는 그들 스스로 어떤 살아가는 존재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준 그 말씀,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받아서 전해 준 이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들, 이 말씀에 의해서 형성된 자들, 이 말씀으로 그 토대를 삼는 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편에서,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 편에서 하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대했을 때, 저희는 이것을 받았고, 저희는 성자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온 것을 알았고,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은, 그런 사람들입니다. 단지 막연하게 ‘하나님 백성, 혹은 제자들’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이 준 말씀을 받고, 그 말씀을 통해서, 성부와 성자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있는 그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 속에 자기를 보여주시는 성부 성자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라는 것을 이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께 우리를 악으로부터 지켜 달라고 기도하신다.
이들을 위해서 두 가지를 기도하십니다. 11절 말씀에 보면,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예수님께서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첫 번째 기도는 이들을 지켜달라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17절 말씀에 나옵니다. 17절에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첫 번째는 이들을 지켜달라고 기도하시고, 두 번째는 이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예수님께서 이들을 지켜달라고 하시는 이 기도를 먼저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12절 말씀을 보면,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모든 사역이 무엇을 위해서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이미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목자로서 이들을 지키고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이렇게 그들을 지키고 보호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11절 말씀에 세상에 있지 않고,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아버지께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떠나더라도, 이제까지 이들을 지키고 보호하였던 내가 하나님 우편에 가더라도, 아버지께서 계속해서 이들을 지켜달라고 그렇게 간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지켜주시고 보호하시는 간구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단서가 하나 달려있습니다. 이들을 지켜주시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아버지의 이름이라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인상적인 것은 11절 말씀에 이 아버지를 ‘거룩하신 아버지여’라고 부르면서, 이 거룩하신 아버지, 그 이름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조금 여러분들이 구약성경에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어떤 그림을 가지고 지금 이것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본다면, 좀 복잡한 그리고 굉장히 어려운 설명이지만 출애굽기 28장에 보면 그 대제사장의 복장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이 제사장의 복장은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성막처럼 보이도록 성막과 똑 같은 천으로 옷을 짜고, 제사장이 걸어 다닐 때 마치 성막이 걸어 다니는 것처럼 옷을 만들었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눈에 뛰는 것이 이마에 붙인 패입니다. 순금으로 만들어서 이 제사장의 머리에 붙이는 패가 있었는데 이 패에 뭐라고 기록되어있느냐 우리 한글 성경에는 ‘여호와께 성결’ 이렇게 붙여있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거룩을 여호와께 돌려드리라”, “거룩을 여호와께로” 그렇게 써 붙였습니다. 곧 이 제사장의 이마에 뭐라고 적혀있느냐?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 이 거룩은 하나님께만 돌려드려야 한다.’ 그런 패를 이마에 붙이고 다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동일한 제사장이 우리가 예배가 마칠 때마다 받는 축복을 기억해 보시면, 민수기 6장에 대제사장의 축복에 의하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며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곧 여호와께 거룩이라는 패를 붙인 이 제사장이 그 백성들을 향해서 어떤 복을 비느냐? 이 백성들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 이름으로 지켜달라고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시오.라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마치 구약성경의 대제사장처럼 그 거룩을 아버지께로라는 패를 붙이고 하나님께 받은 그 복을 백성들을 향해서 배푸시는 그 대제사장으로서 이 기도를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이름, 거룩하신 아버지 그것은 단지 우리가 가진 이름과는 굉장히 큰 차이가 있는 단지 하나의 명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큰 피난처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높은 요새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든든한 반석이십니다. 솔로몬이, 이것은 우리가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열왕기상 8장 29절 말씀에 보면
주께서 처음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성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오시오며 주의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성전을 가리켜서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한 곳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전 그리고 성전이 있는 시온, 예루살렘은 한 장소입니다. 그런데 그 장소가 시온이 되고 성전이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주의 이름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이 특별한 건물이어서도 아니고 예루살렘이 난공불락의 요새여서가 아닙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그곳에 있기 때문에 이 성전은 성전이 되고 시온은 시온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솔로몬이 계속해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데 그 간구의 내용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이 비록 범죄하고, 포로로 잡혀가고 그리고 먼 곳에서부터 많은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여호와의 이름이 있는 이곳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고 간구하고 자기의 죄를 사해달라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께서 이 성전과 시온으로부터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솔로몬이 여기서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은 이처럼 장소이고 성전이고 피난처이고 요새입니다. 비록 이곳에 물리적으로 몸이 없다고 할지라도 이곳을 향하여 기도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피난처가 되어주시고 모든 보호가 되어 주시고 그리고 죄사함을 이루는 크신 은혜를 다 이뤄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똑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고 보호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이처럼 우리에게 단순한 하나의 붙여진 우리의 이름과 같은 의미가 아니라 우리의 철저한 피난처가 되어주시는 우리의 쉴 수 있는 그늘, 아버지 의 이름 안에 들어오는 모든 자들이 보호와 지킴을 받는 그런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아버지의 이름 대신에 계속해서 예수님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은 점점 더 숫자가 줄어들고, 사도들의 설교와 사도들의 사역과 교회의 행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병을 고치는 권능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해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안으로 들어오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간에 들어오는 모든 자들, 세례가 그런 것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바깥에 있었던 자들이 세례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 받음으로 이들이 어디로 들어오느냐?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악하고 계시는 은혜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과 똑같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 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그런 큰 공간과 천막과 전이 되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들을 지켜달라고 보호해 달라고 하나님을 향해서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호받는 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아무일 없이 편안한 그런 일들만 계속 되는 것이냐?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를 지키고 보호해 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이냐? 그것은 17장 15절 말씀에 좀 더 구체적인 예수님의 기도에서 나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내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도록 보전하기를 위함이나이다.
예수님께서 지금 그들을 위해서 가장 위협적이고, 가장 어려운 일 그리고 가장 심각한 일을 무엇으로 보십니까? 이들이 어떤 궁핍함을 가지고, 이들의 어떤 생활이 잘 꾸려지지 않는 것 그것이 시급 한 일이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 앞 뒤 말씀에 보면 세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고 세상과 하나처럼 살아가는 그것이 가장 큰 위협입니다. 당장 어떤 사업이 잘 이뤄지지 않고 이들의 생계를 꾸려내지는 일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속한 자로 살아가지 못하고 마치 세상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그런 삶으로 빠져들어가는 것이 예수님께서 생각하실 때 그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보호하시고 지켜달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단순히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고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난들 거기로부터 지켜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 악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의 삶에 가장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많은 것들이 주어지고, 아무리 우리의 삶이 평탄하게 걸어간다 할지라도 우리가 세상과 함께해서 악에 빠져있다면,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사실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간구하고 계시는 우리를 보호하고 지켜주시는 이 기도와 아버지의 이름 안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켜달라고 기도하시면서 그 울타리 안에, 그 요새 안에 지켜달라고 말씀하시면서 다른 어떤 것들 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세상에 빠지지 않도록, 악에 빠지지 않도록 이 세상과 하나되지 않도록 지켜달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비슷한 간구의 내용이 요한일서 5장 18절에 나옵니다. 요한복음의 내용과 같은 권면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는 우리가 다 범죄하지 않는 줄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리라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함이니라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할 것이며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오. 영생이시라.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 하라
여기서 우상은 단지 눈에 보이는 상으로 만들어진 우상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우상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으로,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신뢰하고 그것들 안에서 살아가라고 말하는 수많은 가르침, 수많은 유혹들, 수많은 세계관들, 수많은 가치들 그런 것들이 우리를 향해서 달려오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간구하고 계십니다. 거기로부터 우리를 지켜달라고 우리를 보호해 달라고 그리고 이 그 악이 우리에게 닿지도 못하도록 그 악으로부터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도 반복해서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7장 26절 말씀에 보면 다시 한 번 아버지의 이름이 나옵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예수님께서는 이 아버지의 이름을 과거에 한 번 알게 해주시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변함없이 알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아는 자들, 아버지의 이름 안에서만 자신의 피난처를 찾는 자들에게 이 아버지의 이름이 변함없는 피난처가 되게 해주실 것을 명령하시고 약속하시고 여전히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그들을 위한 첫 번째 기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들을 지켜달라는 기도 속에 들어있는 의미들입니다.
3.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예수님의 두 번째 기도는 그들을 거룩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17절 말씀에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19절 말씀에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거룩하게 하기 이전에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오늘 요한복음 17장에 나오는 이 예수님의 기도는 사실, 그들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에서 시작하십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이기적이아서가 아닙니다. 마치 우리처럼 우리 기도 먼저하고 난 뒤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먼저 기도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위한 기도, 그들을 위한 기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먼저 거룩하게 되셔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7장 1-8절까지는 어디에 해당 되느냐?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 해당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무엇이냐? “아버지께 나를 영화롭게 해주십시오.” 하는 기도입니다. 17장 1절에보시면 “아들을 영화롭게 해주십시오” 말씀하시고 5절에 “아버지여 내가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를 지금으로부터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자신을 먼저 영화롭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십니다. 이 영화롭게 하신 다는 말을 듣는 순간 예수님께서 굉장히 빛나는 면류관을 받으시고 큰 어떤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지금 영화롭게 해달라는 이 영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영화롭게 되신 것은 십자가에서 이뤄졌습니다.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시는 일은 예수님의 죽음에서 성취되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말을 씻기신 이후에 요한복음 13장 31절에서도 한번 이미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1절에 보면 그가 나간 후에, 곧 가룟인 유다가 예수님을 팔기 위해 나간 다음에 바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냐? “지금 인자가 영화를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신 것, 그리고 가룟인 유다를 통해 팔리는 것 바로 그것이 인자가 영광을 받는 것입니다. 인자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여기서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 해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 거룩하신 제물로 바쳐지는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자기를 영화롭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계신 것입니다.
자기를 드림으로서 자기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자기가 온전한 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이 제물로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리게 되는 것 그것이 예수님께서 먼저 자기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구별된 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구별된 제사장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성취하신 모든 것을 이제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서 그들에게 주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십자가의 말씀을 통해서 그 말씀을 전함을 통해서 이들을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자기 자신이 거룩하게 되셨습니다. 죽음으로서 온전한 제물이 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거룩하게 되셨습니다. 자기 자신이 거룩하게 되지 않고서는 그들을 거룩하게 만드는 진리의 말씀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먼저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거룩하게 하신 주님께서는 이제 17절 말씀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진리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옵소서.” 곧 아버지의 말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무엇보다도 십자가의 도를 통해 그 말씀을 통해서 그들을 거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자기 자신만 거룩한 자가 되신 것 뿐 아니라 이들이 거룩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간구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을 통해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나누는 대화가 요한복음 20장 22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21절 말씀에 보면 어떤 말씀을 하시느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은 어디에 나오느냐? 요한복음 17장 18절에도 똑같이 나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낸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이 똑 같은 말씀을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0장 21절에 하신 후에 22절에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에게 나아가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가 되셔서 십자가의 도를 통해서 이들을 거룩하게 하실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나중에 제자들에게 씌워주신 성령님을 통해서 이들을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들을 거룩하게 하셔서 그냥 교회 안에 머물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보내실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의 이름으로 강하게 된 이들이 그냥 그들만의 삶을 향유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아들이 이제 이들을 거룩하게 된 자들을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된 이들을, 구별된 이들을 다시 세상에 보내실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7장 25절 말씀에 보면 의미 심장한 또 한 번에 아버지를 부르는 이름이 나옵니다. 여기에 “의로우신 아버지여”라고 아버지 하나님을 부릅니다. 아까 전엔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여라고 부르신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아버지여하고 성부 하나님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보내어진 그 제자들이 그리고 그들이 나가게 될 세상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의로우신 아버지께서 세상에 나간 그들을 통해서 그들 가운데 여전히 의로우신 아버지로 계시면서 이들이 거룩하게 되어져서 세상 속에서 여전히 의로운 자로 머물 수 있도록 지켜주실 것을 여기서 다시 한번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아버지는 의로우신 아버지로, 비록 그들이 세상 가운데서 많은 죄악 가운데서 불의 가운데서 살아가더라도 의로우신 아버지께서 그들을 세상 가운데서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에 이제 아들도 이들을 세상에 보낸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호소한 의로우신 아버지란 이름도 여전히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죄악과 싸우고 불의와 싸우고 이 세상에서 갖은 불이익 가운데서 싸워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의로우신 아버지는 여전히 의로우신 분으로 그들을 의로움에 머물도록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아버지하고 호소하면서 세상에 보내고 계신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신 것은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됨을 위해서 기도하시는 것은 요한복음 17장 11절에 나오고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도 계속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됨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반복되어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하나됨의 의미를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시편이 있는데 그것이 시편 133편입니다. 짧은 시편이기 때문에 제가 시간이 흘렀지만 제가 한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니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에 산에 내림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이 시편은 제목에 나와있는 것처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입니다. 성전에 올라가서 무엇을 하지요? 하나님을 예배하고 제사 드리는 곳입니다. 단지 그냥 육체적인 형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예배하는 가운데 형제의 연합과 견고함은 실현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됨은 단지 함께 모여있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향해서 바른 예배를 드리는 데 형제의 동거함과 연합함이 선하고 아름답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133편 2절에 아론의 수염, 대제사장에게 흘러내리는 대제사장의 위임식에 흘러내리는 기름, 마치 그것과 같은 연합을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십니다.
곧 우리의 하나됨은, 동거함은, 연합함은 이 대제사장을 중심으로 하나되어 가는 것, 예배로 하나되는 것, 제사로 하나되는 것, 축복 가운데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는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셔서 우리가 누리는 그 복을, 이 영생과 복을 하나로 누리게 되는 것 모든 것들 것 이 시온에서 누리게 되는 것을 함께 누리게 되는 것 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된다고 했을 때 단지 모여있고 단지 교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서 하나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평안과 복 가운데 똑같이 그것을 누리며 하나되는 그것을 바라봐야 되겠습니다. 한 분 하나님께서, 한 백성된 우리들에게, 한 분 예수님께서 그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위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됨을 위해서 명령하시고 그것을 위해서 지금도 간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0장 16절에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태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여기 두 번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됨은 한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한 목자아래 있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을 통해서 같은 목자 아래 거하는 것이 우리의 하나됨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지 제자들을 위해서 이것을 이야기 하셨을 뿐 아니라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에 대해서도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0절에도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 만을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도 위함이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목자 안에, 한 음성을 듣고 모이는 미래의 우리 성도들, 미래의 제자들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될 모든 교회들 그들을 위해서 미리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 가정의 자녀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계신다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또 아직 우리 교회 속해 있지만 그러나 이 교회 안에서 이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모든 성도를 향해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직은 이 우리에 들지 못하였으나 그러나 한 음성을 듣고 한 목자 안으로 들어오게 될 그들, 우리와 비록 같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아직 이 우리 안에 들지 않은 모든 자들, 그들도 이 안에 들어와서 안 목자 안에서, 한 음성을 듣게 해달라고 그렇게 그들을 위해서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것입니다.
똑 같은 표현을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1장 52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들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 그들이 모여서 하나가 될 것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하나 됨을 위해서 자신이 죽으실 것을 여기에서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오는 주간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는 고난주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먼저 거룩하게 해달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 영화로서, 그 영광으로서 그들도 영화롭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7장 21절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라 합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휘황찬란한 영광이 아니라 예수님의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영광을 예수님으로부터 넘겨받은 우리 성도들은 이 땅에 살면서 행복하고 휘황찬란한 삶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같은 고난이 세상의 모든 악과 세상의 가치관과 세상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모든 그 말로부터 마치 죽음과 같은 그런 삶을 경험하는 것이 우리의 영광스럽게 됨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이름으로, 의로우신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여전히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 안에서 견디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나의 영광으로 여기며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영화로운 자리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하나가 되지 않고 이 세상과 여전히 싸우고 있을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화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다음 한 주간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고난을 묵상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화롭게 되신 그 죽음이 나의 죽음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한 주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게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그 영광이 함께하는 이 세상 가운데서 비록 불이익과 많은 불의와 우리에게 다가오는 위협이 있다 할지라도 그러나 그것을 꿋꿋하게 견디며 살아가는 그 삶 가운데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는 영광스럽게 해주실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의로우신 아버지께서 그 이름으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셔서 계속해서 이것을 확실하게 이겨 나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지금도 기도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주님의 기도를 잊지 마시고 지금도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고 있을 우리 예수님의 이 기도가 우리 안에 실현되도록 함께 힘쓰고 애쓰는 우리 성도들이 죄시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