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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문명의 발상지 멕시코(Mexico)
2. 성모발현 과달루페 성당(Basilica de Nuestra Senora de Guadalupe)
옛 성당건물(Old Basilica) / 새 성당건물(New Basilica)
다운타운에서 미니버스로 1시간 정도 북쪽으로 가면 시경계선 부근에 ‘과달루페의 성모’로 유명한 과달루페 성당이 있는데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건물이라고 한다.
1531년 12월 9일, 미사를 보러가던 원주민 인디오 ‘후안 디에고(Juan Diego/57세)’는 테페약 언덕에서 청록색 망토를 걸친 성모님을 만난다. 성모님은 인디언 부족어로 나는 ‘과달루페 성모’라 불리기를 원한다고 하시며
‘어려울 때에 정성을 다해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사랑, 자비, 도움과 보호를 드러내도록 내가 지금 있는 이 자리 테페약 언덕에 성당을 짓도록 하여라.’라고 말씀하신다.
과달루페(Guadalupe)는 아스텍(Aztec) 인디오 언어의 한 가지인 나후탈(Nahuatl)어로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테 콰틀라소페우(Te Coatlaxopeuh)’가 ‘테 과틀라소페우(Te Quatlaxopeuh)’로 되었다가 영어로 번역하면서 ‘과달루페(Guadalupe)’가 되었다고 한다.
마야인들이 신성시여기고 섬기던 뱀 신은 깃털달린 뱀 신인 케찰코와틀(Quetzalcohuātl)이 있는데 1세기 전후 융성하였던 멕시코시티 인근의 테오티우아칸(Teotihuacan)에서 처음 발견되고, 유카탄 반도 중부 치첸잇사(Chichen Itza)에서 발견되는 쿠쿨칸(Kukulkan)도 뱀 신이다. 영어로는 Feathered Serpent.
당시 멕시코 인디오들은 세 가지 모양의 뱀의 형상과 조각들을 숭배하고 온갖 잡신들을 섬겼으며 그 신들에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사실상 성모님은 마야인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뱀의 머리를 짓밟으러 오셨던 것이다.
디에고는 주교관으로 달려가 성모님을 만난 이야기를 전하지만 스페인 주교 ‘후안 데 수마라’는 믿지 못하고 미심쩍어하며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한다. 다시 테페약 언덕으로 간 디에고는 성모님을 만나 그 말을 전했고, 성모님은 처음 만났던 언덕위에 가서 피어있는 장미꽃을 주워오라고 한다. 바위투성이의 산일뿐더러 겨울철로 장미가 피는 계절이 아니었지만 언덕위에는 장미꽃이 만발하여 있었다. 꽃을 주워 내려오자 성모님은 디에고가 펼쳐놓은 틸마(Tilma/멕시코인들의 망토/거친 선인장 줄기로 짠 천) 위에 가지런히 장미를 놓아주며 가는 도중에 절대로 펼쳐보지 말라고 한다.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 가서 틸마를 펼치자 멕시코에서는 자라지 않는 주교(主敎)의 고향인 스페인 카스티야(Castilla)산 장미 꽃송이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며 꽃을 쌌던 디에고의 틸마에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나타나는 기적이 일어난다.
성모발현 / 쏟아지는 장미꽃 / 과달루페 성모님
틸마에 새겨진 성모님은 1m 45cm의 자그마한 키에 피부색은 인디오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며 머리에서 발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청록색 밝은 망토를 입은 모습이었다.
1754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과달루페의 성모(Our Lady of Guadalupe 혹은 Virgin of Guadalupe)를 북아메리카 수호성인으로 선포하면서 화해의 모후, 희망의 모후, 위로의 모후, 토착화의 모후, 사랑과 자비의 모후로 선포하였다.
무자비한 스페인 식민통치와 마야 고대신앙 추종으로 겪는 고통에서 구원해 주시려고 발현하신 성모님은 수많은 멕시코 인디오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켰고, 멕시코 인디오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위로 받았는데 다른 면으로 생각해 보면 스페인은 식민통치의 한 수단으로 이용하였을지도 모르겠다.
멕시코인들의 ‘과달루페 성모’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가톨릭 신앙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전국 어디를 가나 성당마다 과달루페 성모님을 모시고 있고 성당이름도 과달루페를 딴 성당이 수도 없이 많았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수많은 신도들이 굉장히 먼 성당 정문 바깥부터 성모님을 모신 제단까지 묵주기도를 바치며 무릎걸음으로 가는 행렬이 끝이 안보일 정도였다.
스페인이 멕시코 식민통치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을지도 모를 ‘과달루페 성모’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멕시코 독립운동은 물론, 멕시코혁명 때에도 성모님이 새겨진 휘장을 높이 받들고 성모님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독립투쟁과 혁명에 나서서 민중의 커다란 구심점과 힘이 되었다고 한다.
매년 수십만 명의 성지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이곳은 성모님이 발현하셨던 테페약 언덕 위에 자그마하고 아름다운 성당이, 그 아래 광장에는 1709년 다시 세워진 아름답고 웅장한 바로크식 옛날 성당건물(Old Basilica)이 있다.
그런데 옛 성당 건물은 오랜 역사와 지반침하로 붕괴의 위험이 있어 현재는 박물관과 공연장 등으로 사용되고 바로 옆에 조개껍질을 엎어놓은 형상의 엄청난 규모의 새 성당(New Basilica)을 지어 미사를 봉헌한다. 디에고의 틸마에 새겨진 성모화(聖母畵) 원본도 이곳에 모셔져 있다.
테페약 언덕을 오르는 아름다운 석조계단은 꽃과 장미로 뒤덮인 언덕 모습과 어울려 환상적이었고 옆쪽 절벽 아래에는 디에고가 성모님을 만나는 모습의 조각이, 또 조금 떨어져 디에고가 주교님 앞에서 틸마를 펼쳐 보이는 모습이 동상으로 세워져 있다. 테페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성당의 모습은 정말 그림 같이 아름다워서 가슴가득 감동을 주었다.
나는 친지들에게 선물 할 묵주와 목걸이를 비롯한 성물 몇 점을 산 뒤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 틸마에 그려진 성화 조사
1979년, 미국의 과학자들은 적외선을 이용하여 틸마(Tilma)에 새겨진 성모님 모습을 면밀히 조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때 성모님의 눈을 우주광학기술로 2.500배 확대하여 보았더니 성모님 눈의 홍채(紅彩)와 동공(瞳孔)에 장미꽃을 쌌던 틸마를 펼치는 순간과 거기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나타나 보였다고 한다.
과학자들은 더욱더 신중히 조사를 하고 내린 결론은 “인간의 손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다. 성모의 눈은 즉석카메라처럼 눈앞에 비친 순간의 형상을 그대로 포착하였다.” 라는 결론을 내리고 조사를 중단했다고 한다. 또, 이 그림은 붓질을 한 흔적이 전혀 없으며 사용된 물감도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염료로 밝혀졌고, 선인장 줄기로 짠 거친 천임에도 안으로 전혀 배어들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색이 바래거나 변질도 없었으며 식물성도, 동물성도 아닌 전혀 새로운 물질로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케찰코와틀(뱀) 피라미드 / 성모님 눈동자 홍채에 나타난 사람들 1,2
3. 테오티와칸(Teotihuacan) 대 유적
테오티와칸 유적의 태양의 피라미드 / 달의신전에서 내려다본 사자의 길(Avenue of Death)
멕시코시티 센트로 메디코 역(중앙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여덟 정거장을 가서 라 라짜(La Raza)역에 내리면 기원전 유적인 테오티와칸으로 가는 아도(ADO)버스 정류장(Auto Buses del Norte)이 있다. 여기에서 시외버스로 2시간 30분, 48km 북쪽(버스비 34페소)에 있는 이 유적은 기원전 5세기에 시작하여 기원후 5세기까지 번성하였던 도시인데 누가, 언제, 어떻게 이런 유적만 남기고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는지는 수수께끼라고 한다.
테오티와칸이라는 이름도 후세에 붙인 이름인데 아즈텍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신들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이 문명은 이후 똘텍(Toltec) 문명에서 아즈텍(Aztec) 문명으로 이어진다.
2월 9일, 뜨거운 햇살 속에 매표소 앞에 도착하니 길게 늘어선 선인장 길이 이채롭다. 입장료는 51페소인데 비디오카메라로 찍으면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입장료를 받는 건물과 연이어 작은 박물관이 있고 박물관을 나서면 곧바로 약 2.5km에 이르는 사자(死者)의 길(Avenue of Death)이 나타나는데 전쟁 포로들이 끌려오던 길이라고 한다.
길 양쪽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크고 작은 피라미드들과 신전들, 그리고 일반인들 주거지역이 있다.
밀림 속에 묻혀있던 이 유적을 발굴, 정비하여 1987년에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는데 사자(死者)의 길도 원래는 5km나 되는데 현재 복원은 절반 정도라고 한다.
이 길을 가로질러 건너면 광장이 나타나고 가운데 제법 큰 피라미드(Citadel)가 있고 그 위로 올라가면 바로 뒤에는 숨어 있는 듯 훼손이 심한 케찰코와틀(Quetzalcoatl) 신전이 닿을 듯이 있다. 계단 입구가 뱀의 머리가 조각된 이 건축물은 고대 멕시코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깃털 달린 뱀(Feathered Serpent)인 케찰코와틀(Quetzalcoatl) 신을 모시는 신전이다.
케찰코와틀 피라미드 / 케찰코와틀 신(벽화)
바로 앞의 피라미드(Citadel)은 이 케찰코와틀 피라미드를 보호하려고 나중에 쌓은 듯, 거의 온전한 모습이고 훨씬 커서 멀리서 보면 뒤에 있는 케찰코와틀 피라미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케찰코와틀 피라미드는 훼손이 심하여 수리 중이라 들어가거나 올라가지 못하게 막아 놓았는데 피라미드 전체가 정교한 조각들로 감싸여있어 눈길을 끈다.
광장에서 나와 사자의 길을 걸어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제일 높은 태양의 신전(Piramid de la Sol)이 나타나고, 멀리 길이 끝나는 곳에 달의 신전(Piramid de la Luna)이 보인다. 유적지 전체 면적이 83 평방km로 상당히 넓어 달의 피라미드까지 가느라 상당히 힘이 들었는데 가면서 보면 양 옆으로 ‘나비 궁전(Palacio de Quetzalpararotl)’, ‘재규어 궁전(Palacio de Jaguars)’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궁전과 일반인들 주거 공간 유적들이 흩어져 있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는 태양의 신전은 밑면의 넓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피라미드인 이집트 기자(Giza)의 쿠푸왕 피라미드와 비슷한데 높이는 64m로 절반 정도이며 오르는 계단이 248개로 제법 땀을 흘려야 오를 수 있다. 달의 피라미드는 42.6m로 조금 낮은데 산사람(포로)을 제물(가슴을 갈라 살아있는 심장)로 바쳤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사자(死者)의 길'이란 명칭은 이곳 달의 신전까지 오는 5km의 길을 제물이 될 사람들이 길게 줄을 맞추어 오던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달의 여신은 특히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좋아하여 포로가 잡혀오면 산채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서 살아서 박동하는 심장을 달의 여신 제단에 바쳤다고 한다.
멕시코의 피라미드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달리 사면에 위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맨 꼭대기는 평평하게 하여 제사를 올리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테오티와칸 유적은 반나절 정도면 모두 돌아볼 수 있고 또 멕시코시티를 오가는 버스도 수시로 있어서 멕시코시티를 방문하는 사람은 쉽게 관광할 수 있겠다. 관광객 대부분이 백인들이었는데 대학생 나이또래의 젊은 한국인 커플 한 쌍과 일본인 한 쌍을 만나서 잠시 담소를 나누고 관광을 끝마쳤는데 더운데다 걷는 길이 제법 멀어서 다소 피곤하였다.
3. 아름다운 은광도시 따스코(Taxco)
아기자기한 거리모습 / 따스코 야외식당에서 햄버거로 점심
멕시코시티 서남쪽 178km 지점에 있는 따스코는 해발 1.500m의 계곡 속에 자리 잡은 작고 아름다운 도시로 멕시코 식민시대 이전부터 은광(銀鑛)이 발견되어 유명해진 도시라고 한다. 이곳은 기후가 온화하고 풍광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고 하여 다녀오기로 했다.
시내 한국식당에서 만났던 멕시코 인에게 관광하는 방법을 물어보았더니 호텔에서 가는 패키지가 있는데 1인당 2천 페소(20만 원)라고 한다. 나는 그렇게 여행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러면 지하철로 산 라자로(San Lazaro)역에 내리면 따스코 행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산 라자로 역으로 갔더니 따스코행 버스는 다른 노선의 끝인 따스께냐(Tasquena) 역 앞에 있다고 한다. 이런 망할 녀석... 서둘러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고 따스께냐 역에 도착하여 10시에 출발하는 따스코 행 고속버스표(140페소)를 살 수 있었다.
멕시코시티 남쪽, 만년설을 이고 있는 거대한 산을 넘어 2시간 30분여 달려서 도착한 따스코는 골짜기에 오밀조밀 들어선 너무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작은 도시였다. 오는 도중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채롭다. 제법 큰 산인데 몽땅 선인장으로만 덮여있는 산도 있고, 푸른 수목들로 우거진 산도 지나간다.
스페인 정복자 코르테스도 이 은광도시를 알고 있었지만 황금만 쫓던 코르테스는 별로 관심이 없었고 1751년 프랑스인 광산업자 조셉 보르다(Joseph de la Borda)에 의하여 재개발되는데 그에게 엄청난 부(富)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그는 벌어들인 돈으로 1758년 당시 바로크양식의 최고 걸작으로 칭송받는 세바스찬 성당(Santa Prisca y San Sebastian Church)을 건립하는데 내부 장식은 식민시대 최고의 예술가로 꼽히던 까브레라(Miguel Cabrera)에 맡겨서 오늘날 외관은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내부 장식 또한 천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걸작들로 채운다. 또 성당 앞 자그마한 광장(Zocalo) 한편에는 보르다가 지어서 아들에게 주었다는 보르다 호텔(Casa Borda)도 있는데 보수 중이었다.
따스코 전경 / 스프라틀링 기념관 / 성 세바스찬 성당
그러나 따스코가 오늘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미국인 스프라틀링(William Spratling) 때문이라고 한다.
1920년대, 그는 이곳의 아름다운 경관과 온화한 날씨에 반하여 책을 쓸 목적으로 오게 되는데 이 지역 인디오들의 뛰어난 손재주를 발견하고 은세공 기술을 가르쳤는데 아름다운 인디오 문양의 은제품들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단번에 세인의 관심을 끌어들였다고 한다. 세바스찬 성당 뒤 쪽에 자그마한 스프라틀링 기념관(Museo de Taxco Guillermo Spratling)이 있고, 독특한 이곳 인디오문양의 은세공 걸작품들과 스프라틀링의 생전 활동모습 등이 전시되어 있다.
따스코는 자연석 작은 돌로 길바닥을 깐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 비탈길로 이루어진 작은 골목에는 낮고 예쁜 집들이 빼곡히 차 있고 2월인데도 집집마다 가지가지 꽃이 핀 화분들로 아름답게 치장되어 있어 너무나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따스코 성당은 언덕 높은 곳 좁다란 평지에 세워졌는데 아래쪽 시장 통에서 성당으로 오르는 가파른 골목길은 온통 은세공품 가게와 음식점 등 가게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어 미로 속에 갇힌 듯하다. 방향도 잡기가 어렵고 넘쳐나는 관광객들로 비켜서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걸어 다녀도 충분한 거리지만 4페소(400원)에 작은 미니버스도 탈 수 있는데 버스는 좁고 꼬불거리는 골목길을 서커스 하듯 사람들을 비집고 잘도 다닌다. 또 조그만 폭스바겐 택시도 수도 없이 많다.
이곳에서 파는 은세공품은 모두 도금이 아니고 진짜라는 말을 듣고 몇 개 샀다.
가격을 흥정하는 재미도 있었고 가격은 꼭 무게를 달아서 파는데 무척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되었다. 며느리를 주려고 작은 목걸이를 샀는데 페넌트와 줄도 따로따로 무게를 달아서 가격을 매기는데 아주 예쁜 목걸이가 140페소(만 4천원)였다.
나중 들은 이야기로 이곳에도 가짜가 많다고....
저녁에 돌아와 따스코 관광의 경비를 계산하여 보았더니 왕복 교통비, 5~6가지 작은 선물 구입, 점심 식사대를 모두 합쳐도 600페소(6만원)가 채 안되었다. 호텔 패키지 2.000페소는 좀 과하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따스코는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아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도시가 따스코(Taxco)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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